맑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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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도록 뻐꾸기가 울었다.

비올 바람인지 비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나무를 스쳤다.

꼰덕꼰덕 잠이 쏟아졌다.

조용한 정적에 애 이름을 부른다.

아이는 책을 보고 있다고 했다.

채털리부인의 사랑?

아니란다…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소설이란다.

또 다른 아이를 부른다.

좀 더 큰소리로..뭐해?

모비딕을 읽고 있단다.

" Call me Ishmael"

피곤함에 온몸이 젖어든다.

밤 10시는 넘겨야지..건포도를 먹어야겠다.

파란 건포도를 20개 정도 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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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체국과 친한 사람이었다.

늘 우체국을 가야했고 우체국에 간다는 말을 자주 했다.

우체국 계단이라는 단어가 낮설지 않았다.

요즘 우체국과 멀어지는 느낌이다.

우리동네 우체국에 가면 늘 머리를 정갈하게 빚어넘긴

키큰 여성이 반겨주었다.

친절하고 눈이 큰 마음 편해지는 여성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친절함도 그녀의 묶은 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소포를 부치면서 늘 그녀 소식을 묻는다는 게 깜빡하고 나온다.

" 그 분은 요즘 왜 안보이나요?

제가 그 분 쉬는 날만 골라서 오는 건가요?"

아니란다.

그녀가 결혼을 했고우체국을 그만두었다는 답이다.

좋은 일이지..

그런데 친절 하나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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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마르소가 나오는 영화 ‘디어미’

거기엔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 나온다.

어릴 때 꿈을 연상하고 그 추억에 빠지는 그녀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협상의 테이블에서 불현듯

오래된 앨범속의 어릴 적 자기모습과 현재 모습에서

심한 괴리감을 느끼고 영화가 늘 그렇듯이

자기 꿈과 추억과본연의 순수를 찾아가는 영화다.

클라리넷 협주곡이멀리서 들리듯이 서서히 들려오면

영화를 보는 나도 아슴프레 어떤 기억이 서서히 움트며

뭔가 끄집어내어질 듯, 꺼낼 듯, 말듯 해진다.

음악이 주는 묘미다.

추억을 주머니에서 꺼내는 음악이라고 해도 될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음악이라는 게 이렇듯 아름다운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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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실을 따야겠다.

10그루 매실나무를 얻은 나는 용사처럼 용감하다.

제법 알이 굵게 열었던데 오늘에야 전리품을 취득하리라.

매실나무에는 코팅한 하얀 종이에 내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다.

나무에 그렇게 이름이나 주소가 선명하게 적혀있으면 소유주가

확실해서 아무도 손을 못댄다고 한다.

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한다고 하니..

내 이웃은 내 이름 한 자를 엉터리로 적었다.

어느 새 틀린 그 글자가 좋아보이는 사람이 되었다.

매실을 설탕에 담글 때 변함없이 하는 생각은 이렇게

많은 양의설탕을 넣는데 살과의 전쟁은 어찌되냐이다.

정확하게 그 답을 주는 이는 없었다.

겨우 얻어낸 답이 2년이 지난 발효된 매실은 그 설탕의

단맛이 다 발효가 되어 살찔 염려가 없다는 것이다.

어제 다 못 운 뻐꾸기가 아침부터 창앞 나무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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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omments

  1. 나를 찾으며...

    2011년 6월 11일 at 12:13 오전

    뻐꾸기가 울기 시작한 이야기가
    어제 못다운 뻐꾹 이야기로 끝이 나니
    마치 단편소설하나를 쓰윽 읽은듯 합니다.
    오늘 글의 내용과 사진은 너무나 안성맞춤.

    요오 사진은 어릴 적 뛰어놀았던 우리집 마당을 너무나
    닮ㅁㅁ아서~~~   

  2. 오드리

    2011년 6월 11일 at 2:01 오전

    안되겠다. 작심하고 글써라이……오늘 최고네.ㅎㅎ   

  3. Lisa♡

    2011년 6월 11일 at 4:01 오전

    나찾님.

    어릴 때 좋은 집에서 자랐군요.
    저는 남의 집 셋방살이 하느라
    마당이라는 게 전혀 기억에 없답니다.
    갑자기 마당깊은 집 생각이..ㅎㅎ
    지금도 뻐꾸기는 계속 우네요.   

  4. Lisa♡

    2011년 6월 11일 at 4:02 오전

    진딧물이 온몸에 감아도
    매실 따기에 여념없이 따다가
    들어와 일단 있는 설탕에 한
    유리병 담고 나머지 씻어놓고
    방에 오니 이런 칭찬이..
    언니가 좋아하는 스타일인가보다.

    헤헤…오드리님 고마워용~~   

  5. 밤과꿈

    2011년 6월 11일 at 1:35 오후

    지금까지 읽어온 리사님의 글중에서 압권이올시다^^*

    뻐꾸기가 지금도 웁니까?
    밤에는 울지 않지요………ㅋㅋ

    산행을 마치고 시장엘 들러보니 매실이 한창이던데
    정말 2년 지난 매실 엑기스에는 설탕이 없어지나요?
    그럼 그 많은 설탕은 어디로?????????   

  6. douky

    2011년 6월 11일 at 2:17 오후

    저도 발효된 매실액은 몸에 두루두루 이롭다고 알고 있어요.

    저는 이사 온 뒤
    장담그기, 매실청 담기는 다 포기하고 있는데… ㅠㅠ
    설탕 넉넉히 잘 넣으시고 어두운 곳에 잘 보관하셔서
    맛있는 매실청 만드세요~~   

  7. Lisa♡

    2011년 6월 11일 at 3:07 오후

    밤과꿈님.

    압권?
    고맙습니다.
    어젠 밤에도 뻐꾸기가 울더군요.
    참 특이하죠?
    오늘은 모든 것이 잠잠하게 침묵이군요.

    설탕이 이미 다 녹은 상태이지요.
    없어졌다기보다는 용해되어 당분으로 있다가
    발효되어서는 엑기스로….ㅎㅎ   

  8. Lisa♡

    2011년 6월 11일 at 3:09 오후

    덕희님.

    저는 언제나 매실청은 성공을 한답니다.
    저희집에 3년된 진짜 맛있는 매실청이
    많이 있어요.
    복분자도 있구요.
    언니들이 와서 먹어보고는 달라고 난리더군요.
    제가 청을 내는데는 일가견이 있나봐요.
    사실 설탕을 그리 넉넉하게 넣진 않고 가끔씩 돌려서
    완전 뒤집어 절여버리지요.
    그런데 설탕을 넉넉히 넣지 않으면 약간 시더군요.   

  9. 추억

    2011년 6월 11일 at 11:23 오후

    추억을 주머니에서 꺼집어내는 음악이라고 해도 될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멋진 표현이네요.,,내가 언제 리사님의 주머니에 들어갔나,,,? ㅎㅎ. 아침부터 클라리넷 협주곡을 들어봐야겠네요.   

  10. Lisa♡

    2011년 6월 12일 at 2:09 오전

    ㅎㅎㅎ….추억님.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었군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침에 들으면 종일 추억에 잠길지도.   

  11. 나를 찾으며...

    2011년 6월 12일 at 3:11 오전

    좋은 집은요?
    집이 넓긴 했어요..ㅎ
    박봉의 공무원인 아버님께서
    자식 넷을 키우려다보니
    윗채. 아랫채 구분지어 아랫채는 세를 놓았었지요.
    그래서 근근히 저희형제들을 대학까지 마치시게 한 것 같은데요..ㅎ
    마당은 꽤나 넓었었지요.. 겨울뺀 사시사철 꽃 속에서..
    넓은 장독대, 옆 텃밭…등등..
    그런데 살아보니 그것은 과거…지금이 더 중요한 삶 아닌가 시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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