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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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마주쳐도 그다지 눈에 띌 것 같지 않은 남자.

세무서나 관공서에 가면 마주칠 것 같은 남자.

학교에 가면 지루한 수업도 잔잔히 웃으면서 열심일 남자.

눈이 와도 혼자 조용히 그 눈을 반길 남자.

비가 오면 아무도 몰래 속으로 좋아할 남자.

감나무에 감이 떨어지면조용히 주워 주머니에 넣고

책상 위에 올려놓고 뚫어져라 바라볼 남자.

시골 엄마가 부르면 모든 일 제쳐놓고 달려가서 그 곁에 종일

말없이 손 꼭 잡고 앉아서 속으로가슴아파할 남자.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들리게 말하는 남자.

마음 나쁜 이들에게는 존재도 보이지 않는 그런 남자.

우스개로도 야한 농담은 죽어도 못할 것 같지만 알고보면

뜨거운 가슴을 가진 남자.

그렇게 보이는 남자가 시인이란다.

그것도 시쓰는 일이 즐겁고 너무나 좋은 그런 시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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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미치도록 바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7시까지—

아침준비를 하다가 아이들을 7시에 체육관에 데려다주고와서

다시 9시에 데리고와서밥을 먹이고 입고 나간다는 딸의 옷이

튿어져 바느질을 하고 10시 반에 노원구에 있는 운전학원에 가서

등록을 하고 12시반까지 책상 유리깔러 온다길래 부랴부랴 집으로

오다가 아들들을 자전거 가게에 맡겨논 자전거 갖고오라고 내려주고

어젯밤배달한 수박이 무우 같아서 가게로 가져가 바꾸고 집에 오니

유리가 도착 … 책상을 다 치우고 유리를 깔고 아이들 밥을 먹이고

1시반에 시작하는 아이의 아르바이트 장소까지 데려다주고 2시에

예약한 강남세브란스에 도착해 다 끝나고 나오니 6시가 넘었다.

아들은 보이지도 않는 사랑니 발치를 한다고 살을 째고 이를 부셔서

사랑니를 뽑고 퉁퉁 부어서 입도 못다무는데 아이를 데리고 시낭송회를 갔다.

먼저 집에 가라니 엄마랑 같이 가겠다니 뭐…

시낭송회 내내 숨쉬는 소리도 안들릴 것 같은 시인 말에 귀기울이랴

아들의 찌푸린 인상에 마음 졸이며 보냈다.

그래도 시낭송회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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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개가생김.

말뚝에 매여 있음.

개와 말뚝 사이 언제나 팽팽함.

그 사이의 거리 완강하고 고요함.

개 울음에 등뼈와 말뚝이 밤새도록 울림.

이렇게 그의 시 <직선과 원>에 ‘함’이 5번.

‘음’이 5번, 그리고 ‘름’과 ‘림”옴’ 등이

여러차례 반복되었다.

그가 래퍼인가?

나는 적어도 그가 랩을 알거나 아니면 나중에도

‘이거 랩과 비슷하잖아~~’ 하길 원한다.

그가 랩이라는 걸 알고 웃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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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따로 못했지만 캐나다에 사시는 ‘N’님도 귀한

걸음 하셨다.

새로 오신 청담회원이신 정태용님 격렬하고 멋진 시낭독을

기꺼이 하셨고 잔잔한 저녁호수를 바라보는 기분이 드는 밤이었다.

아들말이 왜그리 조용하냐고 약을 먹어서 자기는 졸렸는데

졸기도 미안했다고 한다.

즐거운 저녁이었다.

아이가 아파서 먼저 나오는 내 뒷꼭지마저 편안한 밤이었다.

20 Comments

  1. 김진아

    2011년 6월 18일 at 12:01 오후

    담아갑니다. 리사님..^^

    하루가 꽉 차게 움직이시는 바쁘신 리사님..

    글 읽어 가던 준혁이가…한마디 합니다.

    ‘이분은 바람 사이를 날라다니시는가봐’ ㅎㅎㅎ   

  2. Lisa♡

    2011년 6월 18일 at 12:19 오후

    아…………본문스크랩으로 풀께요.   

  3. 오드리

    2011년 6월 18일 at 1:26 오후

    히히, 빨리가서 서운했어. 안바쁘면 내 사진 보내줘봐.    

  4. 겨울비

    2011년 6월 18일 at 10:10 오후

    언제 사진을…
    왔다갔다 하지도 않고 셔터소리도 없이 찍으셨어요?
    한 번 보니 열심히 시인의 말을 듣고 있어 리사님도 사진 안 찍으시는구나
    했는데요.
    스마트폰의 위력인 거죠?

    비가 오면…
    시골 엄마가 부르면…
    우스개로도 야한 농담은 못 할 것 같은…

    잘 모르지만 정말 그리 여겨집니다.

    세상에…
    사랑니 뽑은 아드님
    인사를 하고 또 하고 내려가던 모습…
    지금 생각해도 안쓰러워요.
       

  5. Lisa♡

    2011년 6월 19일 at 1:03 오전

    오드리님.

    사진?
    보내줄까말까?

    흠….5분내로..이제야 봤네.
    카톡도 이제야 보고…사진 한 장인데
    겨우~~   

  6. Lisa♡

    2011년 6월 19일 at 1:04 오전

    겨울비님.

    내 스마트 폰에서 사진 찍히는 소리가 나니까
    아들이 자기 것 소리 안나게 해서 찍으라고
    주길래 몇 장 찍었답니다.
    다 좋았지만 이번 특히 좋았어요.
    왜냐하면 마이크 탓도 있지만 너무 몰입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라…
    시인의 말들이 다 기억에 남아요.
    그 모든 것이..참 이상하죠?

    아이들한테 인사 하나는 확실하게
    가르쳤나봐요.
    그랬었었군요….ㅎㅎ   

  7. 산성

    2011년 6월 19일 at 2:00 오전

    그래요…아픈데도 어른들께 공손하던 그 청년
    영~마음에 드네..요.

    이제 좀 괜찮아졌나요?
    안쓰러워 자꾸 뒤돌아 보게 하던…

    부지런하신 리사님…^^

       

  8. Lisa♡

    2011년 6월 19일 at 4:16 오전

    산성님…ㅎㅎ

    그날 안좋다더니 결국 심하게 부어
    입도 다물지 못해서 (그날도)
    어제 다시 가서 찢어야 하는데 실밥 때문에
    찢지도 못하고 소독만 하고 오늘 또
    가서 소독하고 이제야 겨우 약간 가라앉았어요.
    생니를 뽑아서인지 많이 힘들어 하네요.
    ..ㅎㅎㅎ…왜그리 조용하냐고….ㅋㅋ   

  9. 추억

    2011년 6월 19일 at 5:05 오전

    바쁜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요즘 나도 정신없이 바쁜데 같이 바쁘네요. 따로따로 바쁘지만 하여튼 추카해요.   

  10. JeeJeon

    2011년 6월 19일 at 6:40 오전

    반가운 얼굴도보고
    온 귀를 모아 시인의 목소리 들으랴 님의 아들 얼굴도보랴, ㅎㅎ
       

  11. Lisa♡

    2011년 6월 19일 at 6:52 오전

    추억님.

    바쁘시니 추억님이야
    생산적인 것이고 저야 하인수준이지요.
    아이들의 하인요..기사요.
    아무튼 좀 안 바쁘고 싶지만 그래도 행복한
    바쁨이지요.   

  12. Lisa♡

    2011년 6월 19일 at 6:52 오전

    지전님.

    그러게 말입니다.
    지전님 바지가 너무 예뻐 사진을
    찍었는데 올리려니 너무 어둡네요.   

  13. shlee

    2011년 6월 19일 at 8:38 오전

    소 한마리 사야겠네요.
    소는 누가 키우나 했더니…
    공무원분위기의 시인께서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드신것 같네요.
       

  14. Lisa♡

    2011년 6월 19일 at 8:46 오전

    와…..쉬리다….히히

    쉬리님.

    아이깜딱이야~~
    소한마리 사라해서..

    소는 여자들이 키워야 한다고
    박영진이…그랬죠?

    분위기가 숙연과는 좀 안어울리고
    상당히 몰입하게 만드는 귀 기울이게
    만드는 그런 거였어요.

    흐트러짐이 없엇다고 할까..?   

  15. 네잎클로버

    2011년 6월 20일 at 4:20 오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은 느낌이었던 듯해요.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고 새겨듣게 되는..
    특히 참 좋았죠? ^^   

  16. Lisa♡

    2011년 6월 20일 at 11:10 오후

    네—맞아요.

    잔잔하고 평온한 듯한..
    그리고 알찬 그런 날이었습니다.
    다음 9월엔 확실한 기쁨이 또
    일어날 것 같아요.   

  17. 밤과꿈

    2011년 6월 21일 at 11:20 오전

    시 낭송회가 성황리에 끝났군요~ 축하합니다~

    시집을 들고있는 저 손은 여자분 손 같은데…
    무척 투박하네요^^*ㅋㅋ   

  18. douky

    2011년 6월 21일 at 11:28 오전

    중간에 얼음팩 갈아주러 가고 싶었지만
    조용하고 진지한 분위기에 꼼짝도 못하고…
    아드님 정말 고생했겠어요.

    시인 사진 없을까 걱정했는데…
    제가 본 사진 중에 제일 잘 나왔네요…
    분위기있고 멋있으신 모습~~

    또 다른 분위기의 이번 낭송회…
    좋았지요?   

  19. Lisa♡

    2011년 6월 21일 at 11:56 오전

    밤과꿈님.

    저 여자분요?
    제 친구입니다.
    제 손보다야 낫죠.   

  20. Lisa♡

    2011년 6월 21일 at 11:56 오전

    덕희님.

    ㅎㅎㅎ..아직도 고생 중입니다.
    부은게 덧나서 아마 부은 부분을
    잘라야한다고 하네요.
    걱정입니다.
    오늘 신검에서는 3급을 받고..
    둘째는 1급을 받고..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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