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단의 초현실주의 개척자라고 불리우는 김종하 화백이
2011년 5월30일 별세했다.(1918~2011)
나는 솔직하게 그 유명한 김종하 화백에 대해 몰랐다고 할 수 있는데
며칠 전 우연히 그의 작품세계를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우리나라 화단의 산증인이라고 불리었고 박수근화백과 2인전을
1956년 3월에 반도호텔(현 조선호텔)에서 열기도 했는데 당시 저명한
김화백에 비해 박수근은 무명이었고 이 전시회를 계기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앙드레 김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박경리가 ‘토지’ 연재를 동아일보에 할 때 조건이 김종하 화백이
삽화를 그려주는 조건이었다고 할 정도이다.
위 사진은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우리나라 누드화 최고액가이다.
가만히 보고있노라면 조선백자의 기품과 흔들림없는 균형이 돋보인다.
상당히 아름다운 누드화에 속한다.
‘물고기를 인 여인’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혹자는 이 작품을 누드화라고도 한다.
굳이 말하자면 초현실주의 누드화이다.
여기서 누드란 여인의 비치는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 인 물고기
즉 물고기의 강조된 배가 여인의 배를 상상하게 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누드가 탄생되었다.
이 여인은 한국적인 외모도 아니고 목과 팔과 선이 아주 가늘다.
유럽의 어디쯤에 사는 여인이다.
그러나 머리 인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여인의 모습이다.
작가가 외국에 살면서 한국적 정서를 잊지 못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김화백은 일본서 유학을 했고 한국서 교단에 계시다가 파리로 건너가서
공부를 하며 거기서 일생의 많은 부분을 보내고 귀국하셨다.
부인도 같이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은 윤기가 흐르고, 탱탱하면서살짝 나온 섹시한 여인의 배를
물고기를 빌려서 표현한 상당히 수준높은 작품이다.
물고기의 눈을 살아있고 입은 웃고있다.
2003년 작품이다.
화백도 나이가 들면서 작품도 따라서 푸근해진다.
건드리면 금이라도 갈 것 같던 누드화들이 점점
선이 퍼지고 중후해지면서 모델도 따라서 변한다.
여기서 그물스타킹은 일종의 페티쉬즘을 표현했다.
자연과의 어울림을 여체와 함께 표현했다.
앞으로 등산갈 때 나무들의 굴곡에 여인을 담아볼 일이다.
색체는 고목빛인데 꽃은 피고있다.
무르익어가는 인생의 황혼기에서 일어나는 삶에의 욕망일까?
구도나 색체가 안정되어있고 여인들도 사색하거나 편하다.
상당히 작은 키의 김종하 화백.
198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루벤스’문화훈장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는생존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동경미술학교를 수석졸업을 하였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도
인기있는 화가였다.
작품이 많이 알려져 있지않았던 까닭은 작품활동은 꾸준히 하면서도
자기작품을 팔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적으로 애호가들 사이에만 알려져 있고 대중에게는
알려진 작품이 그닥 없었던 것이다.
이 누드화는 여인과 물고기와 바다와 물방울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한폭의 동양화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도 여인의 탱글거리는 배와 가는 목선이 강조된다.
이 두 작품은 박항률화백의 작품으로
김종화화백의 물고기를 인 여인과 비교해서 올렸다.
고기의 표정과 여인의 표정이 사뭇 다르다.
상당히 사색적이다.
JeeJeon
2011년 10월 18일 at 1:50 오전
아, 이렇게 그림을 볼 수 있네요
Lisa♡
2011년 10월 27일 at 11:17 오후
어머…지전님.
댓글 언제 달았어요?
이제사 봤네요.
그림 좋쵸?
하자스라
2012년 7월 15일 at 12:45 오후
해설 따라 감상하고나니 재미있네요~
Lisa♡
2012년 7월 15일 at 1:48 오후
아…………….네………………ㅎ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