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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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 등에 매는 책가방.

까만 케미슈즈에 빛나던 태양.

금붕어 모양으로 생긴 색색깔 눈깔사탕이 든 유리병.

길에 쪼그리고 앉아 찌그러진 깡통국자에 저어만들던

똥과자.

손톱에 끼워서 먹던 사마귀과자.

말을 이상하게 앵앵거리던 춘맹이.

내 팔에 노랗게 빛나던 우쭐거리던 주번완장.

물로 닦고 기름칠해서 닦아두던 복도 끝의 먼지.

스르륵 올리면 셔터처럼 올라가던 필통.

고무줄을 끊고는 코를 찔찔거리며 달아나던 창호.

새로 산 설빔 위로 내려앉던 화약딱총.

부두가로 석필 주우러 다니던 그 시절.

골목대장.

침을 뱉고 떨어뜨려 발로 문지르던 구리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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빳빳하게 세운 하얀 칼라가 달린 교복.

그 아래겨울이면 시리던무우다리.

하교길이면 늘 그림자처럼 따라오던 훈이녀석.

담배연기 자욱하던 사르르.

빨간 목플러를 매고 라이방을 끼고 있던 DJ.

언니따라 들어갔던 등이 높은 무아다방의 그 낯설음.

미팅서 만난 우클렐레를 치던 고려대생 시후.

대신동 칼바람.

언니와 내가 같은 이름으로 받은 연애편지.

연탄불에 구워먹던 오징어와 소주.

강촌에서의 하룻밤.

작은 차에 8명이 타고도 좋아하던 젊음.

동부이촌동의 ‘예전’과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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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청첩장에 버젓이 이름이 올라있던 첫사랑.

그리곤 많은 이별을.

그 결혼식에 참석한 친구들에게서 받은 상처.

가배다방.

재구와 재득이.

뉴욕제과.

고려당의 팥빙수.

새벽에 치던 베트민턴과 깨죽할머니.

지하 롤러스케이트장.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피아노로 쳐주던 명훈의 러브.

산복도로.

오라이를 외치던 버스차장들이 입었던 커다란 주머니 달린 가운.

버스 토큰.

10명의 조카들.

동삼중리의 동백나무들.

마음 내키지않던 키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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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

28만원 첫월급.

학화 호두과자.

지루하던 개포동.

아이들을 두고도 여행을 미련없이 떠나던 거침없음.

혼자 여행온 여자에 대한 여성들의 지난한 호기심.

얇은 머리카락.

열광하던 월드컵 축구경기.

길가에 퍼져앉아서 야채파는 할머니들의 쪼그라진 손.

등산 후에 마시는 막걸리 한 잔.

광화문통 아줌마로의 변신.

택시기사를 능가하는 운전실력.

가만히 바라봐도 행복한 사계절 액자인 내 창.

내 곁을 떠난 신애.

부모님들의 순리에 따르는 죽음들.

요통.

늙어간다는 걸 실감하고도 그리 불행하지만은 않은 나이.

중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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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나이 오후 3시쯤?

17 Comments

  1. 김술

    2011년 10월 1일 at 4:00 오전

    역시…
    폐일언하고,
    동부이촌동 ‘준’
    거기서 스톱!   

  2. 혜림

    2011년 10월 1일 at 4:53 오전

    소국 사진 너무 예뻐요
    ‘물고기를 인 여인’ 그림 너무 좋더라구요
    첫 월급 얼마 받았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요^^   

  3. 밤과꿈

    2011년 10월 1일 at 7:30 오전

    벌써 인생을 반추할 나이인 오후3시로 접어들었네요…

    그러나 아직 9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있으니까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후회없이 고고씽!   

  4. 무무

    2011년 10월 1일 at 9:29 오전

    가배다방의 커피 보다는 그 분위기
    뉴욕제과는 학교 가기 위해 지하철 타던 곳
    개포동, 내 신혼집

    ^^
       

  5. Lisa♡

    2011년 10월 1일 at 12:23 오후

    술님.

    아이고 배야~~큭큭큭…
    왜 이리 욱겨요?
    맞죠?
    준에서 거기까지!!   

  6. Lisa♡

    2011년 10월 1일 at 12:24 오후

    헤림님.

    하시는 일 잘 하시고 계시죠?
    오랜만에 얼굴 드러내기? ㅎㅎ
    그 그림 좋쵸?
    이국적이기도 하면서 환상적이고.
    첫월급..그땐 거의 그 정도였거든요.   

  7. Lisa♡

    2011년 10월 1일 at 12:24 오후

    밤꿈님.

    그러니까요.
    아직 많이 남았더라구요.
    슬슬 시작해야겠어요.   

  8. Lisa♡

    2011년 10월 1일 at 12:25 오후

    무무님.

    제가 가배다방 죽순이였답니다.
    신혼을 그곳에서?
    같은 하늘 아래 잠시….ㅎㅎ   

  9. 오현기

    2011년 10월 1일 at 1:50 오후

    ‘나를 규정하는 것들..’
    쉬나크인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보다 더 생생하네요…
    침을 뱉고 뒷발아래 깔고 빙빙돌려 빛을 내게 하던 구리동전… ㅎㅎ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일인데… 생각나네요…
    첫월급 28만원….
    저때는 대기업 초봉이 보통은 42만원… 비정규직 이셨나봐요… ㅋㅋ    

  10. Lisa♡

    2011년 10월 1일 at 2:21 오후

    오현기님.

    그때가 1986년도 일 겁니다.
    아마도 비정규직은 아닌 걸로..
    좋은 직장이 아니었나봐요.
    그때 만도기계였아요…ㅎㅎ
    맞을 건데…
    구리동전 생각나죠?   

  11. 오현기

    2011년 10월 1일 at 2:28 오후

    그때도 비정규직이 있었을려나요?
    아르바이트만 있었겠네요..
    만도기계 좋은 회사였던 것으로….
    주식시장에서도 한때 인기였던 회사로 기억해요…
    저도 대입해서 ‘삶의 파노라마’ 기억해보려고 해도 생각나는게 없어요..
    밋밋하게 헛인생 살아왔나봐요..ㅋㅋ
    기억력이 범상치 않으시고 멋지고 풋풋한 추억들…    

  12. 오드리

    2011년 10월 1일 at 11:46 오후

    이럴때 리사님의 진가가 발휘되네요. 나는 죽어도 못 쓰는 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단문들, 아름답고 좋아요.   

  13. Lisa♡

    2011년 10월 2일 at 12:06 오전

    오드리님의 칭찬에

    몸둘 바를 모르겠떠요..

    덩말 그런가요?

    사람들은 이런 글 다 좋아해요~~~그쵸?

       

  14. 오드리

    2011년 10월 2일 at 12:13 오전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ㅋㅋ   

  15. Lisa♡

    2011년 10월 2일 at 12:18 오전

    ㅋㅋㅋ—

    사람들은 긴 글보다는 단문을.
    심각한 글보다는 웃기고 재미난 글.
    혹은 날카로운 첫키쓰같은 글들.
    분위기 잡은 글들을 좋아하더라구요.   

  16. 6BQ5

    2011년 10월 2일 at 3:28 오전

    제가 미국온게 77년 이고 79,80년은 한국에 방학동안 알바하러(영어 과외공부 선생) 나갔더랬구 그때마다 이쁜 여자들 구경 다니던 곳이 명동, 경복궁앞, 동부 이촌동 (준) 이었읍니다. 그리고 80년 8월 둘째주에 지금의 아내 만나고 85년에 결혼하고 그뒤론 쭉~
    돈벌러 다녔읍니다. 역마살 이 아주 고약하게 껴서 20여년동안 "떳다 떳다 비행기" 하고
    다닌 추억 이 제 추억 입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 커서 집 떠나고….   

  17. Lisa♡

    2011년 10월 2일 at 3:53 오전

    영어 일찍 깨치셨나봐요~~ㅎㅎ
    77년에 가셔서 그 다음해 바로 알바가 가능하다니..
    본래 공부를 잘하셨군요.
    결혼을 일찍 하셨네요.
    동부이촌동 준…유명하지요. ㅋㅋ
    돈벌러 다닌 기억만 있는 게 현실의 남자들인가봐요.
    아마도..가장이니까 다들 거기에만 매달린 거지요.
    가장님들 다들 고맙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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