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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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은 눈부시면서도 슬픈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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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역할은 옷을 입는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자아실현을 도와준다.

인간은 삶의 풍요를 위하여 미적 향연이 필요하다.

-이브 생 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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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에 만나 첫눈에 반한 이브와 피에르 베르게는

50년간 연인이자 친구이자 사업의 동반자로 같이 살았다.

사람들은 성적으로 예술적으로 사업적으로 동행한 그 둘의

관계에서 아름다움까지 느끼기도 한다.

위 사진은 2008년 이브를 떠나보내는 장례식장에서 사르코지와

피에르 베르게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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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에 크리스찬디올의조수로 들어간 생 로랑은

21살에 크리스찬 디올을 물려받는다.

디올의 뒤를 이어 수석 디자이너가 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디올의 사망 때 오뜨꾸뛰르가 죽었다고

말했지만 1958년 이브의 첫 콜렉션 후 다시 오뜨꾸뛰르가

살아났다는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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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큐는 퀴어 영화에 속하지만 사실은 이브가

그동안 모은 수많은 작품들이 있는 방이 주제였다.

이브가 세상을 떠나자 베르게는 그와 함께했던

작품들을 모두 크리스티를 통해 경매에 내놓으며

거둬들인 수익금 전부를 에이즈를 위한 자선단체에

기부하고만다.

베르게는 현재 에이즈자선단체의 회장을 맡고 있다.

그들이 살던 집에는 마티스, 몬드리안, 고야, 브랑쿠시,

장 뒤낭, 앤디워홀 등의 작품들이 가득하고 박물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조각이나 그림들이 온통 점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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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미라케시에 있는 그들의 집.

이브는 이 미라케시 정원 미조렐에 묻힌다.

그들이 사랑한 이 집은 아주 아름답다.

정말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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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예술은 인내하는 것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시대를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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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있던 이브는

언제부터인가 술과 마약에 빠졌고 밤문화를 즐겼다.

1990년 그가 자신이 마약과 술에 중독이 됐다는 걸

안 후부터는 치료를 하며 우울증이 극에 달했고

그는 은퇴를 하게 된다.

이브 생 로랑은 천재 디자이너였으며

피날레에 디자이너가 등장하는 시도를 처음으로 했으며

여자에게 처음으로 양복을 입혔다.

젊은 이들의 주머니를 위해 기성복시장에도 도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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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게는 이브를 기억하며

그들이 살던 방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말하길

만약 내가 먼저 죽었다면 이브는 결코 이 그림들과

조각들을 팔지 않았을 거라고.

이브는 그들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의 경매는 하루만에 판매액수로 최고기록을 세우며

6000억 달러라는수익을 안겨주었다.

처음 몬드리안의 원피스를 선보이던 날..이브의 전화를 받고

사무실로 간 그는 숨이 막히는 완벽한 원피스를 보았다.

몬드리안이그들에게로 찾아왔던 날이라고그는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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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JeeJeon

    2011년 11월 8일 at 8:37 오전

    세기의 디자이너인줄만 알았지
    몰랐던 삶의 에피소드가 가득하네요.. 즐겁게 왔다갑니다

       

  2. Lisa♡

    2011년 11월 8일 at 1:15 오후

    네–지전님.

    이브 생 로랑….미적 감각만이
    가득한 남자였더라구요.   

  3. Lisa♡

    2011년 11월 9일 at 3:40 오후

    스폰지에서 하는 걸 알고

    몇 번이나 가려다가 놓쳤답니다.

    이제 봤어요.

    이브 생 로랑은 예술가에 특별함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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