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교수가 날을 잡은 건 어제 저녁이다.
숙이부부와 M교수와 영이랑 우린 뭉쳤다.
아주 오랜 친구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곰삭은 모임이었다.
내가 지난 번에 M에게 준 책과 DVD를 보고
그가 나에게 한 턱을 내는 자리였다.
무역학과 교수가 된 그를 보는 일은 자주
있었지만 터놓고 우리가 뭉쳐서 술자리를
한 적은 없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오라는 숙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나는 정장차림으로 나갔다.
이상하게 더웠다.
친구들이 상의를 탈의하라고 했지만 탈의하는 순간
울리불리라 절대 안된다며 너네들 무슨 49금 볼 일
있냐고 하면서 웃기기가 시작되었다.
1차를 횟집에서 하고 2차를 숙이남편이
굴을 먹고싶다면서 굴전먹으러 가자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어젯밤 굴의 모든 것을 맛보느라
당분간 굴은 고개를 돌리게 생겼다.
굴무침, 굴전, 굴구이, 굴이 들어 간 파전.
1차를 배부르게 먹었기에 정말 힘들었다.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3차를 노래방으로
전진했는데 그 노래방에서 M교수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보게되었다.
그는 180이 넘는 키에 상당한 대머리이다.
노래방 이후 우리는 일년에 딱 두번만 보자는
M교수의 말을 무시하고 분기별로 모이기로
손가락걸고 맹세했다.
노래방에서 그렇게 웃기는 남자 처음봤다.
인기 짱이 되어버린 M이 우리의 관심대상
1호가 되었다.
M이 노래를 부를 때 벽을 뚫고 옆 방으로 가는 줄
알았고, 모니터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줄 알았다.
나는 쓰러졌고 영이는 박수를 너무 쳐서 시끄러웠다.
M의 구두는 어디로 갔는지 허공에 날아다녔고
그 큰 키는 반으로 접혀있고 눈은 아예 감고
얼굴은 입이 그리 큰 줄 몰랐다.
숙이 남편이 연이어 접대할 일이 있다며 얌전하게
있는 것도 웃음에 한몫을 했다.
나는 너무 더워 민소매차림으로 있었는데 M이
웃기는 통에 민소매차림으로도 너무 더웠다.
오랜만에 깔깔거리고 미친듯이 웃었던 날이다.
M은 내 오빠가 총장으로 있는 학교에 재직 중이라
아마 지금쯤 엄청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곘다.
우리는 지나간 30년을 이야기했다.
알고보니 영이가 M을 여러 번 중매를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40이 넘어서 결혼을
했는데 상대의 직업은 의사였다.
어제도 우리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와이프를
부르라고 했지만 그는 현재 냉전 중이라
이 기회에 미친 척하고 놀겠다며 자기도
오랜만에 마음 터놓고 너무 재미있어서
아이같은 마음으로 돌아가 미팅하는 기분이란다.
우리가 아무도 파트너 하지않는다고 하자 자기는
20대부터 대머리라 익숙하다면서 흐뭇한
표정으로 우리 삼총사를 바라봤다.
초등학교때, 혹은 고등학교에서, 또 대학에서
서로서로 얽키게 만난 사이들이라 이리 오래
꾸준하게 얼굴을 본다는 게 나름 행복이다.
화창
2011년 11월 10일 at 2:13 오전
우리 회사다닐 때는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해서 정말 놀 대는 어떻게 놀까? 연구를 많이 했지요~~ 두르마리 화장지를 둘둘 감기도 하고 병뚜껑으로 안경을 쓰기도 하고… 이제는 벌써 노년이 되는지… 노래방에 가면 남들 노는거 구경하는게 더 재미있습니다~~ ㅎㅎ
무무
2011년 11월 10일 at 2:33 오전
어릴적 부터 친구가 제일 좋더라구요.
아주 오랫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아무말 안해도 서로를 이해하고…
즐거운 시간 행복하셨음이 보입니다.^^
Lisa♡
2011년 11월 10일 at 4:30 오전
화창님.
그런 거 하나도 안하고
오로지 몸으로만 너무나
강렬하게 웃겼답니다.
난하지도 않고, 우아하게
그러니 코믹하기 이를데없이..
세련되었더라구요.
Lisa♡
2011년 11월 10일 at 4:31 오전
무무님.
어릴 적 친구들이라
뭘해도 편하긴 합니다.
그리고 보니 어제 그 무뚝뚝이
친구남편이 시를 하나 낭송했네요.
암튼 재밌게 살고파요.
김술
2011년 11월 10일 at 7:04 오전
M이라는 분 대단하신 모양입니다.
리사님을 그리도 즐겁게해주셨다니
전 음치라 노래방가는거 별로지만
술에 취하면 쫌 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그냥 feel 충만!!!
Lisa♡
2011년 11월 10일 at 8:22 오전
M요…생각 외에 얻는 소득이었습니다.
저는 웃기는 사람 제일 좋아하거든요.
정말 원도 없이 웃었답니다.
오래된 친구라도 (부부가 다) 그런 줄 전혀
몰랐거든요.
FEEL충만 부분에서 ㅋㅋ…혼자서…ㅋㅋ
숨결
2011년 11월 10일 at 10:22 오전
친구와 술은 오래될수록 좋다, 향기롭다, 즐겁다, 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네요. ^^
Lisa♡
2011년 11월 10일 at 10:30 오전
그러니까요~~숨결님.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오래된 친구들만이 나눌 수 있는 게 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