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말이 필요할까..
그가 어떤 시인인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제가 소중히 여기는 우리말 중에 ‘섬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섬김’이라는 말을 입 안에서 굴려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좀더 순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을 갖습니다.
외람되지만 저는 제 시쓰기가, 적으나마 세상의 목숨들을 섬기는 한 노릇에
해당하기를 조심스러이 빌고 있습니다. ‘섬김’의 따뜻하고 순결한 수동성
속에서 비로서 가능할 어떤 간곡함이 제 시쓰기의 내용이자 형식이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시가, 제 말을 하는 데 바쁜 시이기 보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시이기를 바랍니다. 앞장서 서두르는 시이기보다 묵묵히 기다리는 시이기를,
할 말을 잘 하는 시인 것도 좋지만, 영혼은 언제나 설움과 쓰디씀 쪽에서 더 온전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감히 그들을 위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비 맞는 풀과 나무들 곁에서 ‘함께 비 맞고 서있기’로써 저의 시쓰기를 삼고자 합니다.
우산을 구해오는 일만 능사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겠습니다. 그 찬비 맞음의 외로움과 슬픈
평화를, 마음을 다해 예배하겠습니다. 그 ‘곁에 서서 함께 비맞음’의 지극함으로써 제 몫의
우산을 삼겠습니다. 제 몫의 분노를 삼겠습니다. 지는 것으로서, 짐을 독실하게 섬겨 치르는
것으로서 제 몫의 이김을 삼겠습니다. 그것으로서 저의 은유를 삼고, 그것으로서 저의 환유를
삼겠습니다. 그것으로서 저의 리얼리즘을 삼고, 전복적 글쓰기를 삼고, 할 수만 있다면 저의
생태적 상상력과 저의 폐미니즘을 삼을 수 있기 바라겠습니다.
이 소망이 과한 것이라면, 부디 저의 시쓰기가 누군가를 상하게 하는 노릇만이라도 아닐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간구하겠습니다. 풀과 돌의 이름을, 거기 그렇게 있는 그들의 참다움을
내 시를 꾸미려고 앗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제 이름을 꽃피울 때를 오래 기다리
겠습니다. 그들이 열어 허락한 만큼만을 저의 시로서 받들겠습니다.
그리하여 큰 수행이자, 큰 과학이자, 큰 예배로서, 저에게 시쓰기가 오래도록 다함이없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김사인 시인이 2006년 대산문학상을 받을 때
소감이었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위의 글이나 말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는 사람이다.
박산
2011년 12월 20일 at 2:05 오전
좋은 시간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멈추지 않고 이리 잘 이끌어가시는 것은
아마도 심성 고운 리사님 같으신 분들이 많은 가 합니다
Lisa♡
2011년 12월 20일 at 10:38 오전
박산님.
고맙습니다.
이 자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도 거기 늘 오시는 한의원 원장님께
갔더니 자기는 이 모임이 너무 좋다고
들뜬 목소리로 그러시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