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33인승 비행기이다.
YETI항공, ARGI항공, BUDDA항공등 3개사의 항공마크가 보인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까지 비행기를 타지않고 육로로
버스를 이용할 경우 약 7시간이 걸린다.
여기가 인도인가?
우리 일행은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이 훨씬 넘은 시간에야
겨우 그것도 감사하며 탈 수 있었다.
이유불문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포카라 도착해서 찍은 비행기 사진)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갈 때는 오른쪽에
앉아야만 히말라야 전경이 보인다.
그대신 올 때에는 왼쪽에 앉아야 하지만
갈 때 탔던 좌석에 그대로 앉아주는 센스!!
그래야 누구나 골고루히말라야를 감상할 수 있다.
언제나 배려는 더 나은기쁨을 주기 마련이다.
위 사진 왼쪽으로 블랙마운틴이 보인다.
나야폴까지는 포카라 공항에서 버스로 이동했다.
꼬불꼬불도는고갯길에 끼익~~거리는 오래된 버스의
브레이크 밟는 소리는 그야말로없던 멀미를 유발시키고
참았던 멀미의 기운을 마구 일으킨다.
나야폴에 도착하면 즉시 트래킹이 시작되는데 카고백에서
스틱을 꺼내들고, 각자의 짐들을 맡을 포터가 배정되는 순간.
나의 포토는 가장 영맨으로 18살인 ‘라주’였다.
포토 중에서도 힘의 원칙이 적용되는지 가장 어린 라주가
가장 무거운 나의 가방과 승영씨 가방을 맡았다.
가엾은 것….나는 그에게 힘을 주기위해 자주 웃어주다못해
나중에 팁을 듬뿍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런 길을 갈 때는 좋았지..
재미도 있고 네팔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으니까.
눈을 반짝거리며 호시탐탐 그들의 문화엿보기를
하며 걸었다.
퍼밋을 받는 곳.
여러군데가 있는데 가격은 가는 곳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면 30불이 입장료이고
나중에 트래킹을 마치고 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데10불이 든다.
몰랐었는데 엄홍길이나 박영석처럼 7좌를
등정하고 에베레스트에 기를 꽂는 전문산악인들은
주로 일인당 5000만원에서 1억을 주고 등반을 한단다.
4명이 등반할 경우 2억을 내고 산을 탄다.
그러니 일반 산악인들은 7좌 이상의 최단 기록을 내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한다.
7좌 이상의 기록을 갖고 있어야만 스폰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을에 잔치가 있나?
소를 갈라 내장을 바르고 고기를나누고 있다.
버팔로를 잡는 걸 봤는데 털을 다 뽑으니 속에
하얀 살이 퉁퉁불어서 사후경직 상태로 있는 걸
버스 속에서 봤다.
여기는 말과 버팔로가 많다.
네팔인들은 내륙지방이기도 하지만 생선을 먹지 않는다.
오징어도 먹지 않는다.
신기한 건 그들이 키우는 야생개들도 마찬가지다.
‘
네팔리들의 일상생활 속에
영산으로 언제나 깊은 마음 속에
있는 마차푸차레가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안나푸르나보다는
마차푸차레를 좋아한다.
저렇게 잘 보이는 날이 드물다.
웰컴.
모든 게 조악하다.
다니면서카드놀이를 하는 걸 자주 목격하는데
우리 포터나 키친멤버들도 늘 뒤에서 카드를 했다.
이동장사의 악세서리를
벽안의 푸른 눈들이 살까 궁리 중이다.
ㅎㅊ 여행사에서 제공한 첫번째 점심식사.
우리를 모두 놀라게 한 식사이다.
점심에는 언제나 특별메뉴가 제공되는데
짜장면도 주고 비빔면도 주는 놀라운 일들이
우리 입을 즐겁게 했다.
주는 양 외에 조금만 더 먹어도 오후 트래킹에
몸이 무거워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가방 두개씩을 지고 나르는 포터들.
그들이 신기한 건 저 짐을 지고도 늘 노래를
부르거나 맨발이거나 미끄러운 길도 뛴다는
점인데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전통 네팔리송으로
듣기에 마치 우리나라민요 곡조를 듣는 느낌이다.
베이지색모자를 쓴 오라버니.
나이가 가장 많은 60대라서인지
늘 앞에 가려고 애를 썼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으려고 노력했다.
우리에게는 현지가이드 외에 3명의
세르파가 배정이 되었는데 앞과
중간, 그리고 후미에 배정이 된다.
후미에 있던 빠담은 만약 누군가 쓰러지면
업고 뛰거나 매고 가야한다.
그들은 약간의 한국말과(거의 못하는 수준이지만)
영어를 구사한다.
현지 가이드는 한국말을 잘 하는 편이다.
다만 완벽한 서울사람이 되기위해(?)
센 발음은 하지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뒤편 왼쪽이 현지가이드 카뉴이다.
어느 교사여성이 카뉴를 개뉴라고 늘
발음을 해서 웃기도 했다.
아주 선한 눈매에 잘 생겼고 착하다.
위 사진의 길 스타일을 우리는 제일 싫어했다.
밋밋하고 재미없다.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내려올 때는 정말 싫증이 났다.
걷기 두 시간째..
이렇게 걷는 거, 어렵지 않아요~~(사마귀유치원)
속으로 이렇게만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기대만 해봤지만 내일부터는 그게 아니란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아직은 두려움이 가시질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면
그 무엇을 못하리~~ 두려움을 극복하기로 했다.
아름다운 거대한 광경만 기대하기로 마음다짐을 했다.
아좌~~~~~
너도 걷고, 나도 걷고,계속 걸어야만 했다.
트래킹 시작 후 약 5시간을 걸어서 우리 숙소까지 가는 코스다.
하늘색 남방복장의 최변과 그의 아내가 뒤에 보인다.
최변은 안나만 3번째로 한 번은 50일간 히말라야를 돌았다.
자기가 왜 이렇게 힘든 코스를 또 왔는지 모르겠다고 한탄이었다.
하지만 그는 또 가고 말 것이다.
내 눈에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1475미터 힐레가 보인다.
1475미터~~그 까이 꺼.
그래 힐레까지는 히히거리며 갔다.
수많이 보게 될 다랭이 논들.
커다란 산 전체가 다 다랭이논인 경우가
많았다.
운남성을 떠올리기도 했다.
남해 다랭이 논밭 떠올리기는 금지!
라주.
겨드랑이 옷이 다 찢어졌지만
저렇게 팔을 내리고 있으니 모르지~~롱.
슬리퍼를 신고 눈길을 달려 오빠가 결국
그냥 가져간 k2운동화를 주고 말았다.
좀 컸지만 끈을 꽁꽁 동여매라고 일렀다.
영어도 한국말도 몰라 그저 웃거나 내가
영어로 뭐라하면 무조건 "no~~"라고만.
나만 보면 생긋생긋 웃기만 하던 소년.
롯지.
힐레롯지다.
새벽에 나와 화장실을 가다가
본 하늘의 별은 환상이었다.
롯지도 올라갈수록 열악하다.
모든 전기충전이나 마시는 것들도
올라갈수록 비싸고 값이 두배로 뛴다.
화장실은 올라갈수록 얼어서 사용불가이다.
벽과 벽 사이는 베니다판대기 하나?
움직임조차 다 세세히 들린다.
물론 잠을 거의 설쳤다.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 옆 방이 내 방이다.
2인 1실로 내 룸메는 ‘빵꾸똥꾸’다.
‘빵꾸똥꾸’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날 웃겼고
처음 만나도 10년 된듯한 사이로 지냈다.
나의 모든 조크를 다 알아듣는 신기한 여자였다.
내일은 두 배 높이의 산을 가야한다.
바위섬
2012년 1월 25일 at 4:41 오전
트래킹 연재 횟수를 거듭할 수록 흥미진진 할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듭니다
글과 사진이 여느 여행기 못지않을 정도로 수작입니다..정말 기대됩니다
연재 마치기전에 출판사에서 러브콜 오는건 아닌지??
뽈송
2012년 1월 25일 at 4:43 오전
한 때는 그렇게 한번은 꼭 오르리라 했던 안나푸르나를
난 지금 간접적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자세히 기술해 주었는지 오르면서 마냥 즐겁고 가슴이 뜁니다.
이런 걸 가지고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하는지…
Lisa♡
2012년 1월 25일 at 5:01 오전
바위섬님.
기대해도 됩니다.
아주 자세히 적을 것이니까요.
제가 가기 전에 여기저기 찾아봐도
자세한 정보가 부족했거든요.
그래서 작정했어요.
자세히 적어보기로,,,,그러니 가실 때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Lisa♡
2012년 1월 25일 at 5:03 오전
뽈송님.
그 마음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방금 오빠랑 제가 다시 가고프다고
피력할 정도이고 뭔가 매력에 빠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답니다.
그러니 가고픈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정말 기억에 남고 많은 걸 간직하고 왔답니다.
벤조
2012년 1월 25일 at 6:11 오전
리사가 돌아왔다!
여기까지 단숨에 읽고,
흔적 남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찬찬히 오를겁니다.
보고싶었어요~~
Lisa♡
2012년 1월 25일 at 6:17 오전
아—벤조님.
김영하 소설 제목 패러디를…
크크크…..아 아직 올릴 건 많고
조블은 말을 안듣고 난감하고
있답니다.
앞으로 더 재미있을 겁니다.후후.
바위섬
2012년 1월 25일 at 8:28 오전
아~참! 혹 귀한 자료 날라갈지 모르니 필히 백업 해 두세요
그리고 글,사진 모두 저작권 등록도 해 두세요^^
무무
2012년 1월 25일 at 8:51 오전
라주를 만났다고 햇을 때 부터
이미 저는 예측을 햇습니다.
리사님이 뭔가를 주고도 또 주었을 것이다..ㅎㅎ
대학교때 조국순례 대행진이라고 유네스코학생회에서 주관하던
프로그램인데 14박15일 국토 순례하던 거였어요.
자기가 먹을거 잘거 입을거 다 싸들고 행군하는거였습니다.
그땐 정말 걷는거 자신있었는데..ㅎㅎ
Lisa♡
2012년 1월 25일 at 9:19 오전
바의섬님.
그럴께요~~ㅎㅎ
Lisa♡
2012년 1월 25일 at 9:20 오전
무무님.
눈치챘쬬?
제 아니라도 엄마라면 누구나 다..
그랬을 겁니다.
제 아들 또래라서 마음이 쓰였지요.
지금도 잘 걸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어려운 길은 아닙니다.
빙 둘러서 걸으니까요.
우리나라 산처럼 바로 치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걷기엔 어찌보면 더 쉽답니다.
김진아
2012년 1월 25일 at 2:22 오후
라주..사진 보면서, 울컥 했어요.
마음이…그랬어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큰 아이요. 신문사에서 주관하여 움직이는 프로그램에 보낼려고 열심히 모으고 모으고 있거든요.(몽골 같은 지역이요…) 제가 욕심이 많구나 하지만,
꼭 보내고 말겠어요.
Lisa♡
2012년 1월 25일 at 3:28 오후
진아님.
가는 거 그리 어렵지 않아요.
성당에서 가는 것도 있구요.
라주는 행복하답니다.
우리보다 더욱 더..말입니다.’늘 웃구요~~~
몽골이나 캄보디아 가는 경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무무
2012년 1월 26일 at 2:57 오전
진아님, 저는 딸애 중1때 보냈어요. 휴전선 따라 걷는 것.
그땐 고생 무지 했는데 그 고생이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러더라구요.^^
꼭 보내세요.
Lisa♡
2012년 1월 26일 at 3:52 오전
무무님.
아이들을 힘들게 키워야 좋쵸?
정태영
2012년 1월 27일 at 11:08 오전
포카라. 웬지 낯설지 않은 지명입니다.
항상 히말라야를 향하는 그리움은 네팔의 지명과 명소가 머릿속에 각인되어있고
특히 포카라는 제가 전에 근무하던 회사에 취업하러온 판데이 강가다르의 집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판데이 그친구 귀국한 후 내가 만약 네팔을 다시 찾는다면 포카라에 들러 며칠 쉬고 가라고 했었는데. 지금 이 혹독한 추위에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네요.
낯선 딴 네팡, 그곳에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멋진 추억이 될것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어요.
Lisa♡
2012년 1월 27일 at 11:12 오전
정태영님.
강가다르…라는 지명이 있었답니다.
포카라는 히말라야의 관문인데
거긴 그다지 춥지 않구요.
위에서 내려와서인지 포카라는 마냥
따스하게만 보이고 열악함도 덜 하답니다.
나이 더 들기 전에 용기를 내어보십시오.
강추입니다.
10월에 가면 눈도 없고 고생을 덜 합니다.
다만 성수기라 사람들이 엄청 많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