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시인이라 불리는 게 좋다는 이시영
시인의 2012년 <창비> 출간 새 시집이다.
제목이 시사하는 사회적 이슈가 있다보니
내용이 좀 무겁지 않을까 하고 봤다.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곳곳에 따스함이
가득한 詩들이었다.
가을 아침, 경비원 아저씨들이 정성껏 쓸어 담아놓은 노
오란 은행잎 푸대 속에 들어가 고양이 한 마리가 새끼 여섯
을 낳았다. 여리디여린 것들이아직 눈도 뜨지 못하고 부신
햇볕에 고개를 젓고 있는 모습이 꼭 어린 하느님을 닮은 것
같다.
—–축복.
어머니 앓아누워 도로 아기 되셨을 때
우리 부부 출근할 때나 외출할 때
문간방 안쪽 문고리에 어머니 손목 묶어두고 나갔네
우리 어머니 빈집에 갇혀 얼머나 외로우셨을까
돌아와 문 앞에서 쓰러내렸던 수많은 가슴들이여
아가 아가 우리 아가 자장자장 우리 아가
나 자장가 불러드리며 손목에 묶인 매듭 풀어드리면
장난감처럼 엎질러진 밥그릇이며 국그릇 앞에서
풀린 손 내밀며 방싯방싯 좋아하시던 어머니
하루종일 이 세상을 혼자 견딘 손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네
—어머니 생각.
이른 아침에 오는 봄비는 가로등 긴 그림자를 쪼으며 온다
이른 아침에 오는 봄비는 마당에 갓 풀어놓은 병아리떼
왁자히 지저귀는 소리로 온다
이른 아침에 오는 봄비는 먼바다의 시푸른 콧등을 타고
넘어서 오는 숭어의 쫙 찢어진 비린내로 온다
이른 아침에 오는 봄비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누운 누군
가의 섬광 같은 눈동자를 적시며 온다
이른 아침에 오는 봄비는 원효3가 좋은주유소의 벤젠 냄
새도 반드시 섞여서 온다
—박용래를 훔치다.
여름비가 사납게 마당을 후려지고 있다
명아주 잎사귀에서 굴러떨어진 달팽이 한 마리가
전신에 서늘한 정신이 들 때까지
그것을 통뼈로 맞고 있다
—소나기.
………….시집을 읽는 내내 내 얼굴엔 미소와
심각한 표정과 아련함과 아기같은 가슴이 되는 걸 느꼈다.
때론 현실참여적이고, 때론 아이같고, 때론 동자승같은
시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읽었다.
군데군데 지인들과 인연을 엮어 만든 시들도 참 재미있다.
용산참사를 상기하며 지은 제목의 의도는 알겠는데 그보다
따스한 제목을 했다면 속의 내용과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딴 생각 잠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