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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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속

1889년 토리노. 니체는 마부의 채찍질에도 꿈쩍 않는 말에게 달려가 목에 팔을 감으며 흐느낀다. 그 후 니체는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라는 마지막 말을 웅얼거리고, 10년간 식물인간에 가까운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

…..라는 나레이터로 영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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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거장 감독인 ‘벨라 타르’ 작품.

그가 말하길 마지막 작품으로 토리노의 말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

영화를 보다가 그만 볼까…여러 번 그러다가 30분이 지나면서 나는

그냥 스며들었다.

반복적으로 불안하게 흐르는 음악과 흑백의 짙은 암연 속으로.

거장은 말하기 "존재하는 것들은 무겁다" 고 했다.

반복을 거듭하던 영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으나 종내 무서운 소멸로 간다.

스러지는 것이 이토록 아름답고 잔잔한 공포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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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이크 기법으로처음부터 끝까지 촬영된 토리노의 말은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있었던 니체가 안고 흐느낀 그 말의 실제

마부와 그 마부의 딸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사가 없기에 스포도 없다고 봐도 된다.

거의 90%가 대사없이 지속되고 중간에 잠깐 나오는 마부의 이웃이

길에 내뱉는 세상에 대한 의미있는 말과 지나가던 집시들의 야유와

어지럽게 뱉는 몇 마디 욕이 전부이다.

6일간을 보여주는데 나는 이 6일 간이 마치 세상이창조될 때 6일간,

7일째는 인간을 만드셨다는 그 6일을 소멸의 6일로 보는 기분이 들었다.

점점 물, 즉 우물도 말라버리고, 빛이 사라지고, 교통수단이던 말이 병들어

먹기를 중단하고 서서히 죽어간다.

그들은 여기서 더 살 수 없음을 감지하고 짐을 수레에 싣고 떠나지만

곧 되돌아온다.

대사가 없기에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세상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는 뜻이련가.

일종의 포기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둘은 여전히 창 밖을 보고 우두커니 있거나 낡은 식탁에 앉아

언제나 그랬듯 감자를 먹는다.

아니 "먹어야 살아~" 라고는 하지만 먹지 못한다.

마지막 엔딩에서 움직임이 없이 식탁에 앉아있는 딸의 모습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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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침에 일어나면 롱 스타킹을 무표정하게 신고

밴드를 한다.

그리고 윗도리 단추를 채우고 긴 고무줄 치마를 뒤집어 쓰듯 걸친다.

그 위로 겉의 주름치마를 입고 짧은 상의를 걸친다.

앞치마를 두르고, 양털조끼를 입는다. 그 위에 긴 가디건을 입고 구두를 묶는다.

아버지.

왼쪽 팔만 쓰는 아버지에게 옷을 입히는 딸.

양말을 신기고 멜빵이 달린 바지를 일단 입히면서

남방을 걸치게 하고 멜빵을 마저 올린다.

니트조끼를 입은 후, 상의 자켓을 입고 구두를 신기고

끈을 묶는다.

매일 반복되는 것은 옷입기, 감자삶아서 식탁에 앉아 먹기.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기, 잠자기이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스톱시키면 다 흑백의 멋진 화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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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앗아갈 듯한 바람으로 시작된다.

지루한 바람소리에 움직이기 싫어하는 힘든 말과 한 쪽 팔을 못쓰는 마부.

낙엽만이 날아다니는 창 밖, 움직임없는 언덕 위 나무 한 그루.

첫 날 마부는 나무 갉아먹는 벌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며 변화를 느낀다.

그리고 마지막 .. 그리도 휘몰아치던 바람도 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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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사진이 된 아주 아름다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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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링카(약술)를 사러 온 친구는 인간, 자연, 순간들, 무거운 침묵

마저도 그들이 다 빼앗아 간다고 말한다.

패셔너블하게 뻗친 외투의 털이 상당히 강하다.

5일째 말이 먹지도 않고 움직임도 없다…갑자기 참을 수 없는 슬픔으로 다가온다.

결국 감독은 모든 소멸하는 것들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도 장엄하고 아름답고 느리게.

아트모모에서 35mm필름으로 상영 중.

4 Comments

  1. daskors

    2012년 3월 24일 at 6:44 오전

    훓융한글 잘보고 갑니다 .   

  2. Lisa♡

    2012년 3월 24일 at 10:21 오전

    ㅎㅎ

    고맙습니다.

    삶의 유한함에 대한 생각정리를
    잠시하게 되었답니다.   

  3. 조르바

    2012년 3월 24일 at 12:48 오후

    사진이(장면이) 예술이군요..@@    

  4. Lisa♡

    2012년 3월 24일 at 1:53 오후

    그러니까요.

    장면장면이 명화같아요.
    어둡고 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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