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imagesby.jpg

출판사 : 학고재.

거기, 그렇게 있을 수 없는, 물과 하늘 사이에 흑산은 있었다.

사철나무 숲이 섬을 뒤덮어서 흑산은 검은 산이었다. 멀리서부

터 검푸른 숲이 뿜어내는 윤기가 햇빛에 번쩍거렸다. 바람에 숲

의 냄새가 끼쳐왔다.

imagesui.jpg

정약전과 조카사위 황사영, 그리고 그 주변의

야소를 믿는 천주교도들이 죽어나가는 사연이

그려진 소설로 김훈 특징의 단문장과 어딘지

모를 찝찔함과 비릿함이 배여있다.

늘 그렇듯이 김훈의 글은 읽고나면 피비린내라도

내 몸에 물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약전은 흑산이라는 이름이 무겁다고스스로는

자산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자산어보가 탄생한다.

imagesnu.jpg

..둘째 처숙부 정약종의 가르침이 가장 뜨겁고 분명했다. 이

세계는 시공을 초월해서 스스로 근원이 되는 존재가 있으며,

그 존재가 만물을 주재한다는 것은 셋에다 넷을더하면 일곱이

되는 것과 같아서 증명할 필요가 없고 언설로다투어야 할 일도

없이 인간의 이성으로 스스로 알 수 있다.그러므로 선과 사랑은

세계를 주재하는 자의 원리이며 악과 증오는 그 원리에서 벗어

난 자의 타락일 뿐이다. 이 확실한 존재에 대한 느낌이 떠오르는

것이 모든 앎과 학문의 시초이다. 라고 정약종은 가르쳤다. 황

사영은 처숙부가 말하는 신이란 강물과 같아서 현재를 모두 거

느리고 흘러서 미래의 시간으로 생성되는 지속성으로 여겼다.

그때 황사영은 글이나 말을 통하지 않고 사물을 자신의 마음으

로 직접 이해했고 몸으로 받았다.

…..말하는 정약종은 목소리를 낮추었고 황사영은 두려움에 떨었다.

imagesbn.jpg

여인네들의 울음소리는 어둠을 찢었고

늙은이의 울음은 메말라서 버석거렸다.

마을은 밤새 울었고 놀란 개들은 짖어댄다.

슬픔은 비빌 곳이 없어서 지층처럼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 쌓였고, 사람들은 다시 바다로 나갔다.

김훈의 글은 읽다보면 슬픔이 이처럼 쌓이는데

그는 그렇다고 해서 양보도 없고 가차없다.

imagesme.jpg

….. 정약전과 창대는 신당 언덕에 앉아서 한나절씩 바다를

바라보았다. 창대는 바다 물색의 변화와 물무늬의 흔들림을 들

여다 보면서 그 밑에 무슨 물고기 떼가 지나가고 있는지를 설명

했다. 창대는 새들이 한쩍 방향으로 몰려갈 때 그 까닭을 짐작

해서 정약전에게 말해주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전에도

저랬습니다. 그것이 창대의 말투였다. 정약전은 묻지 않고 들

었다. 창대의 말은 분명해서, 물을 것이 없었다. 모르는 것을 말

할 때도 창대의 모름은 정확했다. 조개껍데기의 고랑이 마흔 개

라면 그것이 왜 마흔 개인지를 물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창대

는 물을 수 있는 것과 물을 수 없는 것, 대답할 수 있는 것과 대

답할 수 없는 것을 뒤섞지 않았다. 창대는 섬에서 태어나서, 서

너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고요히 들여다 보아서 사물의 속

을 아는 자였다…..

정약전은 창대(장덕수)의 도움으로 <자산어보>를 집필할 수 있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