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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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작가로 여겨지는)생각에 잠겨 시내의 한 카페에 앉아 있다. 오후 내내 그와 시간을

보낸 참이다. 그와(파이라고 여겨지는)만날 때마다 난 시무룩한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그게 내 삶의 특징이 되어 버렸다. 그의 어떤 말이 나를 흔들었을까? 아, 그렇다. ‘메마르고

누룩없는 사실주의’ ‘더 나은 이야기’ 펜을 들고 종이를 꺼내 글을 쓴다.

성스런 의식의 언어. 도덕의 찬미. 고결함과 의기양양함과 환희의 여운.도덕관념이 되살아나

사물을 지성으로 아해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해진다. 우주를 도덕적인 선을 따라 정돈한다. 존재의

기본원칙은 우리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임을 깨닫는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인 덕이지만, 때로

명확하지않고, 분명치도 않고 즉각적이지도 않다.

나는 잠시 멈춘다. 신의 침묵은 무엇일까? 생각에 잠긴다. 덧붙여 쓴다.

혼란스런 지성이지만 확실한 존재감과 궁극적인 목적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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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이 책을 사서 아이들을 읽히고 나는 이제서야 읽는다.

베스트셀러였고 캐나다 출신이자 스페인에서 태어난 얀 마텔의 작품이다.

모험이 가득하고 거칠고 드라마틱하지만생존에 관한 이야기다.

부커상에 빛나는 얀 마텔에 대해 재미를 느끼게 된다.

태평양의 한가운데서 조난당한 파이의 적나라한 모험 이야기를 그는

어떻게 써냈을까? 처음엔 실화라고 생각하고 읽었다가 나중에 3부를

읽으면서 실화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복잡함이 생겨났다. 실화이던 아니던

그게 문제는 아니지만 열렬한 공방이 있었던 소설이고 작가는 침묵한다.

누군가는 신념에 관한 소설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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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쪽에서 본 리차드 파커는 어마어마해 보였다. 고개를 돌리고 반쯤 일어난 자세였다. 일부러

힘찬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발을 벌린 자세가 대단했다. 그의 체구는 위압적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유연한 품위가 우러났다. 리처드 파커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근육질이었지만, 엉덩이

에는 가늘고 반들거리는 가죽이 몸통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갈색이 감도는 오렌지빛 몸통에 검

은 줄무늬가 있는 몸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고, 하얀 가슴과 몸 안쪽과 긴 꼬리는의 검은 고리

무늬는 조화로웠다. 머리통은 크고 둥글었고, 무시무시한 귀밑털과 멋들어진 턱밑 수염이 있었다.

또 고양이과에서 가장 보기 좋은, 두껍고 길고 흰 수염을 갖고 있었다. 머리 위에는 완벽한 아치

모양의 작고 뚜렷한 귀가 있었다. 홍당무 색깔의 얼굴에는 콧날이 넓고 분홍빛이 도는 코가 있었다.

웨이브진 검은색이 얼굴을 강렬하면서도 섬세하게 둘러싸고 있었지만 별로 눈을 끌지 못했다. 검은

색이 닿지 않는 콧날이 적갈색으로 환하게 빛났기 때문이다. 눈 위와 뺨, 입가의 흰 부분은 카타칼

리(인도의 민속춤) 무용수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래서 얼굴은 나비의 날개 같아 보일 뿐 아니라

고풍스런 중국의 느낌까지 났다. 하지만 리처드 파커의 노란 눈과 마주쳤을 때, 그 눈길을 강렬하고

냉정했으며 놀라는 기색이란 없었다. 들뜨거나 다정한 느낌없이, 분노를 폭발하려는 순간의 침착함을

담고 있었다. 귀가 꿈틀대더니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입술 꼬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눈에 띄지 않는

누런 송곳니는 내 가운뎃손가락 길이만 했다.

공포 때문에 내 온몸의 털이 모두 곧추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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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하늘이 있었다. 바닥은 평평하지만 윗부분은 둥글고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흰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구

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 잿빛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숨 막히게 자욱하지만 비는 올 것 같지 않은 하늘도 있었다. 얇게 내려 앉은 하늘, 작고 흰 양털 같은 구름이 피어 오른 하늘. 솜 덩어리를 늘어놓은 것 같은 얇은 구름이 높게 끼기도 했다. 형태없이 희미한 아지랑이 같은 하늘도 있었다. 짙고 거센 비를 머금은 구름이 지나만 갈 뿐

비는 뿌리지 않는 하늘. 모래톱처럼 생긴 작고 평평한 구름으로 자욱한 하늘. 수평선에 걸쳐진 덩어리로만 보이는

하늘. 태양빛이 바다에 밀려들면,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확연히 드러났다.

…………

여러 가지 바다가 있었다. 바다는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바다는 비밀을 털어놓는 친구처럼 귀에 속삭였다. 바다는

호주머니에 든 동전처럼 쨍그렁댔다. 바다는 산사태가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포로 나무를 문지르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사람이 토하는 소리를 냈다. 바다는 죽은 듯 고요했다.

그 둘 사이에, 하늘과 바다 사이에 온갖 바람이 있었다.

또 온갖 밤과 달이 있었다.

난파된 배에 남았을 때의 생존지침서 中에.

-소변을 마시지 말 것, 바닷물이나 새의 피도 마시지 말 것.

-해파리, 뾰족한 물고기, 앵무새같은 부리를 가진 물고기, 풍선처럼 부푼 물고기도 먹지 말 것.

-물고기는 눈을 누르면 힘을 못 쓴다.

-초록색 물이 파란 물보다 수심이 얕다.

-산처럼 생긴 구름에 유의하라. 초록색을 찾으라. 최종적으로 육지인지는 발로 확인 하는 게 좋다.

-옷에 소변보지 말 것.

-바다거북은 버릴데없는 훌륭한 식사감이다.

2 Comments

  1. 푸나무

    2013년 1월 12일 at 1:31 오후

    다음 주는 영화보는 주간으로 해야 할까봐요.
    파이도
    로얄도
    레미제도,
    봐얄텐데…..
    책이 더 잼있을것 같은데…
    도서관 검색해봐야지….   

  2. Lisa♡

    2013년 1월 13일 at 9:54 오전

    파이는 일단 책부터 보세요.

    금방 볼 수 있을 겁니다.
    푸나무님 실력이라면 말이지요.
    심오하진 않으니까요.

    레미는 아무래도 오리지널 뮤지컬이 낫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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