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물리치는 주문들.
제일 친한 친구에게 읽고 있는 잡지에서 패션이나 가십거리들 재미난 기사들을들려달라고 주문한다.
그녀에게 거대하게 부른 배를 만져볼 수 있도록 가까이 앉으라고 말한다. 친구가 집에 가야 할 시간이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이니까. 그리고 친구가 몸을 숙이고 자기도 날
사랑한다고 속삭이면, 그녀를 꼭 안아준다. 이것은 우리가 평소에 흔히 나누는 말들이 아니니까.
남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곁에 앉아 하루 일과를 낱낱이 보고하게 한다. 모든 수업과 모든 대화, 저녁은
뭘 먹었는지 등등. 동생이 지겨워하며 공원으로 나가서 친구들과 축구 좀 하게 해달라고 통 사정 할 때까지.
….아빠가 엄마의 뺨에 입 맞추는 걸 지켜본다. 두 분이 미소 짓는 것도 놓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두 분은 내 부모님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잔디 위에 드리운 그림자가 길어지는 동안 이웃집 아줌마가 장미를 손질하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녀는 옛
날 노래를 흥얼거리고, 나는 남자친구와 같이 담요를 덮고 있다. 그에게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저 정원을 키우
고 어머니에게 정원을 관리하도록 격려한 사람이니까.
달을 관찰한다. 달은 가까이 내려와 있고 주변에는 분홍빛 달무리가 졌다. 남자친구는 착시현상이라고, 지구
와의 각도 때문에 커 보이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달의 크기에 자신의 크기를 가늠해본다….
암에 걸린 10대 소녀의 버킷리스트.
만약 곧 죽음을선고받았다면 어쩔 것인가.
화를 내고 괴로워하며 남은 시간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묵묵히 받아들이고 매시간을 하고싶은 일을
하고 지낼 것인가?
나는 언제나 결정적인 말을 듣게 되면 한 방 맞은 기분일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스럽다가 곧 은근한 통증으로 바뀔 거라고. 하지만 전혀 은근하지 않다.
날카롭다. 심장이 날뛰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갑자기 정신이 또렷해진다.
매일매일, 마치 누군가 내 인생을 잠시 가져다가 정성 들여 윤을 낸 다음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은 것 같았다.
하늘에서 이른 아침의 여명이 내려와 도로 위에 번진다. 택시 안은 교회처럼
춥고 공기가 희박하다.
그리고 침묵, 아주 작은 침묵, 하지만 모양이 있는 침묵이다. 마치 모서리가
날카로운 상자 주위에 쿠션을 댄 듯한 모양.
나는 깬 채로 누워 도시의 전등이 모두 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잘 자라는
속삭임에. 졸음에 겨운 침대 스프링의 삐걱이는 소리에…
나는 애덤의 손을 찾아 꼭 쥔다.
밤새 일하는 경비원들과 간호사와 장거리 트럭 운전사들이 존재한다는 게 기쁘다.
밤낮이 반대인 다른 나라에서는 지금 여자들이 강에서 빨래를 하고, 아이들이 줄지어
등교하고 있다는걸 아니 마음이 놓인다. 지금 이 순간 세상 어딘가에서는 어느 소년
산을 오르며 염소의 목에 달린 명랑한 방울 소리에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참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