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엔의 홍까오량 가족을 읽으려면 며칠을 그냥 몰두해서 작정하고 읽어야 한다고
y언니가 그랬는데 정말 열심히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중국적 대서사시라서였을까 내겐 줄거리가 주는 큰 감동은 없었지만 모엔의 서술은
대단하고 정말 노벨상을 받을만하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리얼하고도 적나라하다해야
맞는 말이랄까? 700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읽다보니 중국 1940년 즈음의 역사적 사건
들이 머릿속을 수놓는다. 말로만 듣던 팔로군, 철군회 하며 일본군의 만행등, 이 소설의
첫부분인 ‘붉은 수수’를 장이모우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 전세계에 중국에 대한 동경을
품게 했다. 붉은 수수는 이 소설의 전편을 관통하며 모든 장면에 등장하며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처절하게 그려지는데 붉게 물드는 수수밭을 연상하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환상적
그림이 그려지다가 처참함에 이르르면 상상조차 하기 싫어질 정도로 잔혹하다.
주인공 나(모엔 쯤으로 보고) 화자는 아버지 또우관과 할아버지 위잔아오, 할머니 췌얼
(리 펑리엔)을 관찰자적 입장에서 나레이터를 하는데 주로 또우관이 본 이야기 형식으로
엮어 나간다. 배경은 모엔의 고향인 산둥성 까오미 둥베이 향으로 끝없는 수수밭이 펼쳐져 있다.
모엔이 말하길 그때의 수수밭은 지금과는 달라 잡종 수수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나라나
땅이나 식물이나 순수함 그 자체로 존재하기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 내게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인간의 퇴화는, 갈수록
부귀해지고 갈수록 편안해지는 생활 조건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러
니까 부귀를 추구하고 편안한 생활환경을 얻는 것은 인류가 분투하는
목표이고 필연적으로 도달해야 할 목표이긴 하지만, 바로 그것이 불가피
하게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심각한 모순을 낳는다. 인류는 자신들의
노력으로 인류의 언떤 우수한 능력을 소멸시키고 있다….
모엔이 하고 싶은 말이었을까? 소설 중간에 생뚱맞게 등장하는 글이다.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내용이다.
작가의 말에 적은 둘째 할머니에 대한 기억의 글이다.
둘째 할머니가 너그러운 태도로 말한다.
"손자야, 돌아오렴! 돌아오지 않으면 너를 구할 방법이 없단다. 나는
네가 돌아오기를 꺼린다는것을 알고 있다. 너는 천지에 가득한 파리를
두려워하는구나. 너는 검은 구름 같은 모기들도 두려워하는구나. 그리고
너는 축축한 수수밭에서 기어다니는 다리 없는 뱀도 두려워하는구나. 너
는 영웅들을 숭배하지만 나쁜놈을 미워하는구나. 그러나 누군들 ‘최고의
영웅이기도 하고 최고로 멋진 사내대장부이며 최고로 개자식인’ 그런 놈
이 아니겠니? 내 앞에 서 있는 너한테서 나는 너의 몸에서 풍기는 도시의
집토끼 기운을 맡을 수 있단다. 너는 재빨리 모쉐이 강물로 뛰어들어 사
흘 낮과 사흘 밤 동안 물에 잠겨 있으렴. 오로지 걱정되는 것은, 네가 씻
어낸 더러운 물을 마신 강물의 물고기가 머리에 집토끼 같은 귀가 한 쌍씩
이나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야!"
작가에게 있어 모쉐이 강물은 영혼의 정화를 위한 고향의 강물이다.
그는 고향에 돌아올 때마다 고향 사람들의 눈에서 모종의 신비한 힘의 계시를
받곤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고향이 주는 힘은 작가에게 있어 의미 있는 곳이다.
책을 읽는내내 머릿속을 떠나지않던 공리.
왠지 붉은 수수밭의 그 장면장면이 남아 계속
췌얼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인들에 대한 생각들이 교차되면서
무섭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고, 밀려오는 느낌도 받고
이런 사람들이 현대에선 어떻게 변할까 하는 여러가지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머리를 흔들게 된다.
중국인들의 민족정신에 대해 작으나마 복잡한 사고가
여러 형태의 잔상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