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시절 나를 부끄럽게 하고 싶지 않다.(한겨레 <시론> 펌)
김사인 시인·동덕여대 교수

긴급조치 관련자로서 여러 차례 망설임 끝에 글을 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문익환 목사에게 지난해의 긴급조치 재심 무죄 판결에 이어 형사보상 지급결정이 내려졌다는 보도가 엊그제 있었다. 긴급조치 관련자 1140명 가운데 이미 300여명이 재심절차를 밟고 있다고도 들린다. 잘된 일이다. 이만한 과거사 바로잡기도 재야 법조계를 비롯해, 많은 분들의 오랜 숨은 노력에 힘입어 가능했다. 더욱이 두 분의 상징성을 생각할 때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를 향해 우리 사회 전체로서도 진일보를 이룬 것으로 봐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뭔가 개운치 않다. 우선, 긴급조치가 위헌이요 무효라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연이은 결정에도, 그 잘못된 법을 만들고 집행했던 입법 사법 행정 기관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1년이 가까운 지금까지 공식사과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외진 시골까지 새벽에 들이닥쳐 부모들 앞에서 수갑을 잘도 채우던 민첩한 검경이, 왜 이런 때는 묵묵부답 한없이 진중한지 모를 노릇이다. 무안해서일 거라고 이해하지만, 긴급조치 무효·위헌 판결에 따른 후속절차를 어느 기관도 안내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만도 아닌 것 같다.

그 불가피한 결과로 두 번째, 김대중·문익환 두 분을 비롯하여 지금까지의 긴급조치 재심이, 피해자들 각자가 알아서 ‘다시 살펴줄 것’(再審)을 ‘청’(請)하고 ‘구’(求)해서야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엎드려서 받은 절’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앞선 시기의 재심청구는 경색된 국면을 열기 위한 고육지책의 법정투쟁이었겠지만, 대법원과 헌재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고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지금까지 상황이 그대로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모양새는 공권력이 자신들의 지난 과오를 ‘재심’이란 방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에 긴급조치 관련자들을 ‘피해자’ 신분으로 들러리 세우는 격이라 보는 것이 오히려 정확하다. 무죄선고에 이어 보험금 정산하듯 수감일수당 보상금 계산 뽑아놓고 받아 가시라는 것인데, 미안하다는 인사를 판결문에 끼워넣는 법원은 그래도 양반이다. 우리가 법정의 무죄판결이 없어 그동안 불명예스러웠던가. 죄의식과 불명예가 있었다면 그건 우리가 아니라, 법이랄 수도 없는 엉터리 법을 만들어 휘둘렀던 딱한 그들의 몫이 아닌가.

세 번째로, 재심의 사법적 결론인 ‘무죄 및 피해보상’은 더 중요한 것을 은폐할 수 있다. 1970년대 유신 폭압에 항거했던 청년들을 ‘피해자’로만 간주하는 논리는 부분적·표피적 진실에 불과하다. 당시의 많은 학생들은 닥쳐올 고통과 현실적 불이익을 잘 알면서 자신을 던졌다. 이러한 정의감과 자발적 헌신의 차원을 배제하고 가해와 피해로 사안을 통속화하는 함정이 지금의 재심 과정에는 있다. 공적 희생이라면 명예로이 보훈되고 예우되어야 하겠고, 피해라면 그에 상당한 금전으로 보상 및 배상될 것이다. 어느 쪽이 더 소중한 본질이어야 하겠는가.

그러고도 남는 이 불편함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추궁한다. 사과해 와서 보훈과 피해보상 이루어지면, 그러면 다인가. 긴급조치 재판 589건 가운데 252건이 이른바 ‘막걸리 긴급조치’ 사건이다. 버스에서, 술집에서 던진 말 한마디로 1, 2년씩 감옥에 산 이들이다. 그들에게는 이런 절차에 대해 누가 기별이라도 했을까? 그들 때문에라도 가해 당사자인 국가기관이 나서야 마땅하지만, 한때 민중을 입에 외던 나는, 파출소 앞에만 가도 오금이 저릴 그들의 우선 보상을 위해 무슨 애를 썼나. 고생으로 말하자면, 나와 가족뿐 아니라 그 시대를 견뎠던 이 땅의 사람들이 크건 작건 모두 피해자 아닌가. 그뿐 아니다. 이념의 좌우를 떠나, 필설로 못다 할 현대사의 원통함과 억울함들이 아직 위로받지 못한 채 처처에 즐비하지 않은가. 아아, 아무리 생각해도 저 무례한 자들의 법정에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김사인 시인·동덕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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