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맑게 개인 파란 하늘을 보는 아침은 4월의 마지막 날처럼
기분좋은 일이었다. 4월의 마지막 날이 왜 기분좋게 다가오는지
그건 잔인했던 4월을 빨리 벗어나고픈 까닭일것이다. T.S엘리엇의
운명같은 말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4월은 잔인했다.
게다가 갈수록 서로 탓만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으니 더욱 어서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하다하다 sns상으로떠도는 유언비어에다
별의별 장난질까지 겹쳐 이젠 짜증이 날 지경이다.
어쨌든 힘든 한 달이었다. 누군 우울증이 오려 한다고 하질않나,
누구는 무기력해진다고 하고, 더러는 멘붕이라고도 했다.
나는 자기자리에서 예전처럼 그대로 행동하면서 그저 우리사회의
모든 공직자부터, 교육자부터 서서히 바꿔나가야하며 우선 나부터
제대로 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 아닌가 한다.
집 가까이 신통방통한 한의원이 있다길래 어깨쪽부터 침이나
맞을까 하는 마음에 들렀다.
아침 9시에 시작하는데 두시간여만에 100명의 손님이 찼다.
모두 같은 곳, 예를 들면 팔과 다리에 침을 5-6개 꽂은 채
주욱 앉아있는 로비의 풍경부터 아주 색달랐다.
그리고 양옆으로는 허준방, 제마방이라는 명칭이 붙은 방이
있는데 그 안은 남과 여로 나뉘어 또 같은 자리에 침을 꽂은
채 주욱 둘러앉아있다. 여자방은 그래도 수다가 쉴새없다.
처음보는 이들끼리 어쩌면 십년은 되어보이는 수다들인지.
허리를 굽히고 들어간 아는 언니가 바로 펴고 나왔다고 소개해
간 곳인데 자그마한 원장이 종횡무진 그 안을 누비며 우스개와
함께 침을 턱턱 놔주고 있었다. 신기한 건 어느 할머니가 귀에
매미가 산다며 시끄러워서 살 수 없다고 하자 원장님왈, "그럼
매미 잡읍시다" 그러더니 바로 매미를 잡았다는 할머니의 말이
있었고 주변에 온통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근데 재밌다.
재미있어서 또 가고싶다면 어쩔거야?
숙은 말을 참 알아듣기 어렵게 한다.
그러니까 해야할 중요한 내용은 빼고 그 외의 껍데기에 해당하는
말만으로 슬쩍 던진다.
도대체 뭔 말인지..알 수가 있어야 대답을 하지.
예를 들어 누굴 중매서주기로 해서 "어찌됐어?" 하고 물으면
"으음…그게 글쎄 … 사람들은 참 이상하지?" 한다.
보겠다는거야? 말겠다는거야? 뭐야?
또 식사자리에서 누가 "저는 이런 음식은 첨인데 맛있겠네요"
하면 그대로 받아들이지않고
"아야~~그 사람 좀 가리고 털더라" 이런 식도 있다.
아들학교 시험감독중이면 전화를 받지말고 끄던가 아니면
사실대로 문자를 보내던가 하면 될 일도
"음….지금….음….이따가…"
대체적으로 그러는 편이라 때론 황당할 적도 있고 대체 뭔 말을
또는 대체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 모를 적이 많다.
매번 캐묻기도 지루하고, 스스로 맹한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대충
알아듣는 척 하게 된다.
란여사가 말하길 자기는 정말 세상에 있는 복은 다 받았다고
할만치 행복하게 살다가 어느 날 아이가 초등학교때 희귀병에
걸린 걸 알고는 처음엔 하늘을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하고
우울증에 걸려 살다가 지금은 조그만 것에 모두 감사하며 사는데
아이도 아프고 하루에 인슐린을 4차례나 맞아야하는 일상도 이젠
평온하게 받아들인다고 하며 잘난 척 하다가 아이가 자길 바르게
한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 아들은 지금 엄마가 잘 키우소 뒷바라지 잘 해서 S대를 다니는
중이란다. 어릴 때 방황할까봐 같이 장자, 노자를 읽고 대화를
했더니 자연히 아이는 동양철학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노라고.
자식이 병으로 힘들게 하는 것보다 힘든 일이 어디 있을까?
주씨는 늘 말이없고 조용한데 자기는 둘때로 자라 엄마에게 구박을
받고 살며 그 트라우마에서 아직 벗어나질 못했다고 한다.
지금 할머니가 되어 몸을 잘 못가누면서도 힘든 일은 자기에게
언니나 동생은 그리 걱정하면서 자기걱정은 한 번도 하는 걸
못봤고 그런 엄마가 섭섭하단다. 다 각자 고민의 몫이 있다.
벤조
2014년 5월 1일 at 2:18 오전
신통방통 한의원, 재미있습니다.
거기 가면 낫는다, 나을 것만 기대하니 정말 낫는가보지요?
저 빨강모자 마네킹 정말 입크다.ㅎㅎ
청목
2014년 5월 1일 at 4:54 오전
역시 이 집에 들려야 미소라도 얻어갈 수 있습니다.
예의 그 한의원, 제가 허리땜에 침 맞으러갔던 의원과 풍경묘사가 비슷하네요.
부산에서 가장 낙후된 서부쪽 장인의 건물에 의원을 열어 <침>으로 돈을 벌더니 이제는 남구의 부촌으로 옮겨 잘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디스크로 한 두어달 고생할 때 그 의원엘 찾아가 보려다가, 돈이 욕심이 나니까 사람이 침 보다는 약을 팔아먹으려 수작부리는 게 싫어서 관뒀지만.
5월엔 좀더 밝은 소식이 찾아오겠죠?
Lisa♡
2014년 5월 1일 at 6:48 오전
벤조님.
신통방통 한의원 진짜 가면 재미에 이끌릴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어요.
동분서주하는 여자 실장보는 재미도 있구요.
어쩌면 그리도 손님들 순서를 잘 아는지….
Lisa♡
2014년 5월 1일 at 6:49 오전
청목님.
5월이 되니 벌써 한가롭고 여유로운 분위기입니다.
5월은 확실이 뭔가 만개하는 기분이 들고 어디론가
나가서 쏘다녀야 하고 도시락이라도 싸야할 그런
기분이 드는 게절의 여왕달입니다.
오늘 햇살도 눈부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