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상에선 멀리 이스라엘의 희미한 산그림자가 보였다.
이스라엘이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히 종교적이고, 분쟁적이고
세계 경제의 어떤 끈같다는 여러 직감들이 머릿속을 떠돈다.
룸메는 이스라엘을 싫어한다고 말했고 누구는 이스라엘을 이해
한다고도 했고, 나는 가자지구나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이상하게 詩가 떠올랐다.
나라없이 떠돌던 이스라엘민족이나 본래 국가가 없었던 팔레스타인을
이야기하자면 골치가 찌끈거린다.
그래도 이 곳 요르단에 오면 이스라엘 백성이 헤맨 광야를 잊을 수 없다.
이제 우리 일행은 산정상을 찍고 배두인족 차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하산을 하는 길이다.
한참을 지겹게도 내려온 우리는 올라갈 때 바베큐치킨을 구우며
연기를 풍기던 고급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걸어서 나온다.
3달라짜리 당나귀가 눈앞에 어리지만 무시하고 더 보기위해 걷는다.
조금만 걸으면 Grand temple 이 나타난다.
그 넓이는 매우커서 사진을 찍으려면 빙그르 돌아도 모자란다.
나는유적지의저런 기둥들의 색감이 왜그리 좋은지 모르겠다.
내려오면서 수없이 올라가는 유럽인들을 만났는데 주로 독일인 아니면
프랑스인들이다.
간혹 미국인들이나 영국인들이 섞여 있지만 거의 1위는 독일인들이다.
그들은 내게얼마나 더 올라가야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40분이거나 30분을 말한다.
더러는 얼굴을 찡그리며 아직도? 하는 표정과, 아하, 거의 다 왔군! 하는
두가지의 표정인데 우리네 등산시의 일반적인 그 표정들과 동일하다.
다 내려와서는 사실 다리에 힘도 없고 풀린 다리를 추스려 맥없이
투덕투덕걷는데 자유롭게 혼자 걸어나오는 길이 평화롭긴 했다.
나는 알 카즈네를 혼자 많이 감상하려는 욕심에 부지런히 걸어나왔다.
세계인들이 수없이 다녀가는 저 자리, 저 발자국들엔 어떤 상념들이
서려 있을까? 저마다의 환호와 고민과 사랑과 역사가 서려있다.
지나가면서 말들과 낙타의 분비불 냄새는 지독하지만 이젠 그런 것쯤은
들판을 지나다 맡는 인분냄새처럼 참을 줄 아는 나이가 된 것이다.
그렇다, 내 나이도 이젠 장거리 여행에서는 지치는 나이이고, 더 이상
위험한 고난이도 여행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간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않아야 하고, 지겹지 않아야 하고, 느낄 줄 알아야
하고, 볼 줄 알아야 하고, 뭔가를 지니고 있는 나이여야 한다.
가이드가 이름 붙여서 어필하자면 저 바위는 사천왕상의 얼굴을 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수백개의 저런 바위가 버티고 있기에 졸갑스레 도깨비라든가
얼굴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하찮음이다.
우리라면 이 바위덩이 하나로도 충분히 족한 상품일텐데 싶다.
코뿔소 같아보이기도 하고, 뚱뚱한 하마같기도 하다.
저 물결인지 나이테인지 같은 무늬는 현란하다.
결코 가볍지 않음을 뭐라할까….하다 떠난다.
나…간다.
이 우주삼라만상 같은 바위군단들아.
잘 있어라.
이제 안온다.
아니 못온다.
사막에서 보기힘든 한 떼의 새들이 날아간다.
사진은 새가 아닌 멀리 보이는 햇빛에 반사된 산이다.
새는 순식간에 놓쳤다.
해가 잘 든 시크는 어느 새 황금빛이 되어 있었다.
혼자 오래도록 알 카즈네를 그윽히 사랑하는 연인을 관찰하듯
바라보고, 닳도록 바라보다가 오후 3시반에 나온다.
알 카즈네를 떠나는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는 밤의
페트라를 또 보기로 합의하지 않았나.
터덕터덕 걸어나오는데 이 시크는 뭐야? 이리도 매력적이라는 말인가.
나홀로 걷는 시크는 진짜 시크함이다.
나바테인들이 만든 BC 7세기 경의 수로.
이건 아랫쪽이고 목이 부러지게 위로 쳐다보면
그 위 바위에도 수로가 있다.
외국인들 중에 부부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천천히 걸으며 도란도란 의견도 나누고, 책자를 훑으며 길을
아니 암석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노인들이 걷기엔 무리가 아닌가 싶지만 워낙 단련된 여행객들이라
괜찮아 보인다.
보기에 참 편안한 게 인생의 무게를 내려놓게 된다.
양껏 욕심을 부리며 살아왔다는 자괴감이 늘 들었다.
그렇다고 그걸 고치지도 못할 거라는 압박감도 한 수 더 뜬다.
부끄럽다.
걷다보면 어디선가 벤허의 말발굽소리같이 들리는
저 거대하고 기괴한 소리가…바로 말마차를 타고
몰고 다니는 상인들이다.
그 오래 전 많은 아랍상인들이 이 곳을 통과하고
물건을 팔기 위해 지나갔을 전설같은 장면들이 그려진다.
그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허리에 그 휘어진 칼들은 하나씩 차고 낙타를 다듬으며
머리엔 천으로 둥근 터번을 비단으로 휘감고 있었을까?
낮의 페트라를 떠나는 사람들은 조용하다.
그리고낮아졌다.
시크는 4시가 되면 다 떠나야 한다.
곧 해가 지기 때문이다.
전기도 없고 현대적 시설이라고는 없다.
다니면서 늘 4시반이면 호텔에 들어가곤 했다.
나는 서둘러 나온 탓에 입구에 앉아서 나오는 이들을 관찰한다.
어디서 왔을까?
페트라에 왜 왔을까?
호주에서혼자 와서 말없이 내 옆 나무의자에 앉아 한없이 알 카즈네를
감상하던 그 하얀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
저 독일 할머니는 살이 쪄서 힘들어보이는데 꾸준히도 걷네…뭐 이런 잡념들이
오간다. 집에도 가고싶고.
한 떼의 중국인들이 시끄럽게 지나간다. 왜 이 시간에 들어가지?
바로 튀어나와야 하는데 이상도 하지. 시크 입구에서 다시 정식입구까지
한시간을 걸어나와야 함이 아득하지만 그래도 다리야, 힘내.
행복했잖아!
안녕, 나바테인들의 페트라여!
Hansa
2014년 12월 25일 at 12:31 오전
이번 알카즈네 여행기는 사뭇 철학적이군요..
느낄 줄 알아야, 뭐가 지녀야하는.. 하하
오랜 세월의 모래바람이 단단한 바위에 바람무늬를 만들었군요..
리사님 덕분에 가지 못한, 아마도 가지 않을 알카즈네의 풍경과 인심을 감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Lisa♡
2014년 12월 25일 at 1:36 오전
한사님.
가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좋은 볼거리가 아닐까요?
ㅎㅎㅎ
나의정원
2014년 12월 25일 at 7:12 오전
아니~ 못온다 ~ 란 멘트에 픽~~~
정말 알 수없는 나바테인들입니다.
어렵게 만들어 놓은 곳을 어디로 가버렸는지….
Lisa♡
2014년 12월 25일 at 9:19 오전
나바테인들요.
수수께끼의 족속들입니다.
재주가 아주 비상한 천재들이거든요.
아직도 그들이 존재한다면 어느
민족으로 스며들어갔을까요?
빈추
2014년 12월 25일 at 12:57 오후
좋은 곳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가 볼 기회가 저에게도 생길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참 볼만한 곳이란 생각이 가득합니다.
Lisa♡
2014년 12월 25일 at 1:21 오후
빈추님.
당연히 가볼 기회야 생기겠지요.
다만 용기를 내야지요.
정말 볼만하죠?
오드리
2014년 12월 26일 at 1:18 오전
사진도 잘찍고 여행후기도 A+이야.
Lisa♡
2014년 12월 26일 at 1:31 오전
어머나….언니에게 A+를 받으니 으쓱~~으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