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풍문으로 들었소’를 재미나게 보고 있는 중이다.
정성주 작가의 드라마에는 늘 속물들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부모가
속물인 경우에는 자녀들도 비슷하게 속물이다.
이번 풍문..의 경우는 약간 다른데 그 아들이 아직 어린 고교생부터
시작되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상대가 순수해서 바뀌거나 본래의 순수성을 지녔거나인데
썩을대로 썩어빠진 가족의 스토리부터 속물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이번 풍문..의 경우는 속물의 종류가 약간 다르긴 한데 어쨌든 삶의
가치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르다.
한편, ‘요나스 요나슨’이라고 스웨덴 작가의 경우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그렇고,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의 여자’의 경우에도
늘상 등장하는 캐릭터가 정말 엉뚱하고 기발한 싸이코(?)들이다.
한 명은 정상이고, 한 명은 바보같은 쌍둥이가 등장하고, 거대한 꿈을
꾸거나 무지하면서 순진한 정신병 환자들이 종종 나오는데 밉지않다.
그 엉뚱발랄함은 지나치게 순진무구함에서 발생하는데 지나치게 한 쪽으로
치우쳐서 그 길로 곧장 직진하는데 그로인해 생기는 사건들이 엄청 웃긴다.
이렇듯 작가들이 한 방향으로 확실하게 꿰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j는 딸에게 벌벌 떤다.
예를 들면 어디 세일 한다는데 가볼래?
했다가 갔는데 세일이 끝났다 하면 쌩난리를 치고 보통 화를 내는게
아니란다. 정확한 건 좋지만 뭐 그 정도까지.
그러니 딸이라도 상전이라 뭐하나 잘못 말하면 보통 일이 아니고,
음식을 해도 하나라도 말 잘못하면 음식을 갖고 난리를 친다니 그게
딸에게 벌벌 떨어야 하는 이유란다.
가방 사러가자고했는데 그 가방집이 토요일은 문을닫는데 모르고
토요일 가자고 했다가 엄청핀잔을 듣거나, 평일도 문을 일찍 닫아
못간다고 해도 화를 뭐같이 낸다니 뭐 그런 딸내미가 있는지..
문제는 그 딸이 내 딸과 같은 방을 일년간 같이 쓴 아이라니 갑자기
그 일 년간 내 딸이 당했을 고통을 상상하니 가슴이 아파온다.
그때 내 딸이 엄청 힘들어했던 기억이 나고 룸메가 별스럽다는 얘기가
기억나고 아이가 정말 일 년을 참은 게 기특해진다.
슈테판 츠바이크, 버지니아 울프, 마크 로스코, 끌랭….등등
그들의 삶이 정확히 어쩐지 모르나 왠지 그들의 마지막 삶의 정리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李가 말했다.
자기는 부잣집 딸이어서 과거에 베풀고 살았는데 왜 이 모양, 이
꼴로 사는지 모르겠단다.
화들짝!
놀라기도 해라.
베풀고 살았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저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말도 안돼.
상상의 과거 속에서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과거에 대부분 다 잘살았고, 무지
공부도 잘 했고, 돈도 써볼만큼 다 써봤다고 말한다.
만날 때마다 이상하게 무슨 감정인지도 모르나 그녀의 입에서 나올
무지막지한 듣기 힘든 말들을 들으려고 하는건지 기대가 될 정도다.
경기여고 나오지 않았으면 무슨 말을 할까 할 정도로 꼭 등장하는
그너매 경기여고도 언제나 빠지지않듯이 부잣집도 씨리즈에 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