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대통령 [박정희]와 리더십 – 위대한 리더십이 만들어낸 대단한 나라.

-박정희과학기술기념관의주요중기추진사업계획-

정치지도자로서박정희대통령이우리나라의과학기술자에대한애정과소중함을처음으로

공언한것은,1963년6월22일최고회의의장으로참석한해군대학졸업식에서한축사였다.

박의장은당시

"지금이야말로열사람의정치인보다한사람의과학자가더욱소중하고,

백사람의기술자가애국할수있는때"라고밝혔다.

이와같이박대통령은열사람의정치인보다는한사람의과학자의소중함을인식하고,

조국근대화의주축을이루는과학기술의발전을위해지도자로서수많은업적을남겼다.

과학기술기념관에서는1961년부터78년까지의과학대통령박정희에대한자료수집및

정리를중기주요사업으로정한뒤그중20개를특별전시하도록할계획이다.

페이지544-과학기술인의’박정희과학기술기념과’건립

…………..

….책을읽을때는천천히읽기를아이들에게늘권장한다.

몇권을읽은것이아니라,얼마만큼책의내용을제대로이해하고있는지를더따지게된다.

이책은2010년9월에출간되었다.나오자마자교보문고에서책을구입하였다.

실질적국가에도움이되지않은자들의책들이줄줄이열거된책장사이에서

너무나도고고하고당당한모습으로비치되어있었다.

전쟁의역사에관심이많았던아이는현재의독립기념일을인정하지않는다,

대신6.25전쟁을치뤄내면서이루어낸’대한민국’을진정한독립으로인정한다고했다.

제나이또래의아이들과는매우다른생각을가진아이.

정치인을가장혐오한다는아이다.우리나라에서제일먼저척결해야하는사람을뽑으라면

민주와민족을앞세워사심을키우는정치인이라하였다.

그아이는기술을배우고자하는아이다.

자신의인생목표역시기술을바탕으로한직업군인이라고한다.

‘과학입국자립기술’

1976년10월3일과학기술처에보내온박대통령의친필휘호.

-휘호를보는순간우리과학기술계종사자는누구나그것이암시하는내용이

곧온국민과과학기술계를향한대통령의간절한꿈이요,비전임을알수있었다.

대통령은평소에도늘"과학기술진흥이곧국력이며미래국가발전의원동력"이라고

기회있을때마다역설했고,또그것을신앙처럼믿고실천해온국가통치철학의일면임을

우리는누구나다알고있는사실이기도하였기때문이다.

페이지394-

……………..

…2000년의현재의우리를보자.

사람밖에없는우리나라에무엇이바탕이되어살아가고있는지

애써그것을인정하지않는다는것은현실부정밖엔되질않는다.

그당시아무것도없는우리나라에이러한정치지도자를만났다는것은

대단한행운일것이다.

1966년10월6일KIST기공식참석후공사예정지를둘러보는박대통령의사진..

날짜를자세히따져보면얼마나짧은시간에이루어진일인지..

소름이돋는것을느낄수있다.

(1950년6월25일시작된전쟁의기간은3년1개월2일.1953년7월27일)

서울과학관준공식장면,페이지431

-1962년8월에는서울창경궁인근와룡동에폐허로버려져있던국립과학관을211평,

2층건물로준공했다.-페이지432.

-3.박정희대통령의극비명령.지대지유도탄을개발하라-

-당시우리나라의공업수준은가내공업수준을벗어나지못한상태였고,

방산분야는상황이더욱심각했다.미국의지원하게M16소총공장이건설중이었으나

완공되려면몇년을기다려야하는상태였고,총열을가공할수있는설비는대전의국제특수금속회사가

보유하고있던’브로칭머신’한대가전부였다.-페이지476.

-7.박정희대통령의각별한지원과관심-

-한번은대통령의ADD순시때연구원들과대화할기회가있었는데,

외국에서살다가귀국한유치과학자들이승용차가없어불편하다는이야기를듣고

그자리에서차량구입과운용시발생하는세금을면제해주도록지시해법을제정하기도했다.-

페이지488.

-이처럼박정희대통령은전폭적인신뢰와지원으로연구원들을독려했지만,

그에따른책임과결과도반드시요구하는철저한면모를보여주었다.-

페이지489.

-8.첫작품무유도로켓’홍능1호’개발-

-발사시험은대천에있던미육군시험장에서실시했다.

그런데얼마전에같은시험장에서실시된우리육군의호크지대공유도탄발사시험때

추진기관의앞부분에서화염이분출해그자리에참석했던국방부장관등일행이

탁자아래로피신하는일이있었다.

그래서처음으로시도하는홍능1호비행시험에서는무엇보다안전이중요하다고생각되어

발사각을20도미만으로설정했다.

비행시험은1974년12월실시했다.다행스럽게도비행시험은사고없이성공적으로이루어졌다.

그리고원격측정장치를로켓내부에장착해로켓의속도,롤,비행시간등의

비행자료도얻을수있었다.-

페이지490-491.

-12.여덟번의백곰시험발사.실패와성공의반복-

-새로이전한발사장에는절개지와바다의해수면으로부터오는반사파의강도가높아서

레이더파의강도가대폭증가하는현상이발생한것이며,

이러한현상을없애기위해서는유도탄의안타나에감쇄마개를씌워서반사파를차단해야했는데,

이것을간과한것이다.그러나새벽에어디서감쇄마개를구한단말인가?

그때눈에띈것이바로담뱃갑속에있던은박지였다.

급한대로은박지로유도탄안테나를씌웠더니모든문제가해결됐다.

이와같이유도탄을개발하는데에는아주사소한부분때문에실패하는일이비일비재했다.

작은부분이라도철저한점검과대비가필요하다는것을’은박지사건’으로다시한번통감했다.-

페이지507.

-14.공개발사의성공.그리고대통령의일기-

-백곰유도탄이발사되는광경을직접육안으로보면서귀빈과연구원들은모두환성을올렸다.

발사된백곰은1단추진기관이성공적으로분리되고2단추진기관이점화되면서속도를높이다가

곧시야에서사라졌다.

박정희대통령은백곰이시야에서완전히사라지자그제야쌍안경을내려놓고TV모니터로눈길을돌렸다.

TV모니터에는유도탄의비행상황이시시각각으로표시되고있었다.

마침내유도탄이목표상공에도달해표적을향해수직낙하중이라는방송이나오고,

곧이어탄착지해면에유도탄이떨어지면서물기둥이솟아오르는모습이현지에

설치된카메라에찍혀모니터에나타났다.완벽한성공이었다.-페이지509.

-1971년12월유도탄개발에대한대통령의최초극비지시가있었고,

1974년5월’항공공업계획’에대한대통령의재가가있었지만시험시설과생산시설을갖추고

본격적으로유도탄개발에착수한것이1976년이니불과2년여만에우리기술로유도탄을

개발한것이다.비록미국의NH유도탄을모방한것이지만유도탄의외형만같을뿐

유도용소프트웨어,유도조종장치,기체,추진기관등은

모두개량하거나새로개발한것들이었다.-페이지510-511.

‘금일오후충남서산군안흥에서는우리나라에서처음으로유도탄시험발사가있었다.

1974년5월에유도무기개발에관한방침이수립된지불과4년만에로켓,유도탄등무기개발을

성공적으로완성하여금일관계관들참관하에역사적인시험발사가있었다.

1.대전차로켓2.다연장로켓3.중거리로켓4.장거리유도탄

네종목이다성공적이었다.

그동안우리과학자들과기술진의노고를높이치하한다.’

이일기를보면박대통령이지대지유도탄개발에얼마나기대와정성을쏟았으며,

그날의시험발사성공을얼마나기뻐했는지생생하게느낄수있다.

페이지512.

-1969년10월23일드디어3년간의KIST건설1단계공사가마무리되었다.

준공식에서박정희대통령은치사를통해"국내외에서우수한지식과기술을습득한우리의과학자,

기술자들이한데모여연구개발에심혐을기울이는연찬의도장으로서,다른연구기관과의협동의

광장으로서,또산학일체의심장부로서우리나라의과학기술진흥.경제개발.국력증강을위해

실로막중한사명을수행해야할것"이라고강조하고"온국민의지대한성원과기대를잊지말고

긍지와사명감을갖자"고말했다.

박대통령이최형섭소장을임명하는자리에서예산얻으려고

경제기획원을들락거리지말라,절대로인사청탁받아들이지말라고

당부했다는것은앞에서도이야기했다.

이런당부를실천으로옮긴일화다.-페이지195.

-해외과학자유치와과학기술집현전.

KIST는초대소장을중심으로해외에나가있는우리나라과학자를유치하는일에전력을쏟았다.

이과정에서박대통령은과학자개개인에대해관심을보였다.

종합제철소건설을위해서는연구원에대해직접메모까지하면서챙길정도였다.

핵심연구원들을청와대로초청해파티를열고,기회있을적마다금일봉을제공하는등으로

든든한후원자역활을하였다.

1966년2월첫이사회직후박대통령은참석자들에게다음과같이당부했다.

"옛날세종대왕께서는학자들을집현전에모아놓고한글을만드셨지만

우리도이제이연구소에유능한과학자들을모아서연구하고기술을개발해야겠어요."

이같은통치자의관심에따라미국바텔연구소인력이1966년4월부터71년까진서울에상주하며

근대적인연구소의모습을갖추는일에매진하였다.-

페이지197-198.

-박정희대통령이과학기술분야에특히관심이많은대통령으로부각되는데,

빼놓을수없는분야가바로원자력발전이다.

우리나라의원자력사업은1948년대한민국건국시에

이승만대통령이원자력원을내각에설치하고,

초대장관에김법린씨를임명한데서시작되었다.

원자력원은황무지였던원자력분야인재양성에

지대한공헌을했다.-페이지272.

-1967년당시한국은산업화,공업화의원동력인전력이심각할정도로부족했고,

그나마있는전류도잦은정전에다

전류의파장도고르지못해정밀제품생산은아예

꿈도꾸지못할지경이었다.

나는박대통령을모시는동안

단한번도’안돼’라는말을들어본적이없다.

일본과과학기술장관끼리회의를열어실리를

챙기겠다는전례없는나의모험에도허가를해줬다.-

페이지272.

-4.심사숙고하고과감하게솔선수범한박대통령-

한국의과학기술발전과근대화에서경부고속도로개통과포항제철완공은

빼놓을수없는사건이다.

경부고속도로노선을정하는어느날,

박대통령은각료들과함께기차에탑승한뒤나에게물었다.

"경부고속도로의노선을결정해야하는데아직자동차도적고,

물동량도많지않은단계에서

고속도로를독일의아우토반처럼만드느냐,

아니면경비가적게드는국도1호도로로하느냐를고민중"

이라며내의견을물은것이다.

나는"고속도로는자동차전용도로이므로

동네사람이나우마차가다닐수있는부도로가꼭필요합니다.

따라서고속도로는별도로건설하시고,

국도1호도로는부도로로활용하시는것이좋겠습니다."

라는의견을밝혔다.

1970년당시경부고속도로착공예산책정이안되자

주원건설부장관은대통령지시라며

각부처예산의10%를제공토록하는비상수단으로

야당의전면적반대속에서도

428킬로미터에이르는고속도로를세계에서가장빨리완공했다.

경부고속도로가없었더라면

우리나라경제동맥이없는격이돼

경제발전에큰애로가되었을것이다.

포항제철건설과관련한일화는

내가강기천전해병대사령관에게직접들은것이다.

‘1969년초의어느날아침일찍,

사령관실의적색전화가울려서받았더니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다짜고짜"강장군.연병장이필요한데내놓을수있어요?"하고물었다.

내가"각하께서필요하시다면언제라도내놓겠습니다."라고

대답하자대통령은기다렸다는듯

"그러면연병장은어떻게하시렵니까?"하고되물었다.

"뒷산의땅이넓으니그리옮길것입니다."라는

대답을들은대통령은전화를끊었다.

그러고는불과3시간뒤

대통령이직접헬리콥터를타고포항의부대까지

내려오셔서회의가열렸다.

그자리에서박대통령은이연병장자리에제철소가들어설것이며,

여기에철도,여기에제방등의구상을발표하시는것이었다.’

이렇게박대통령이시동을건

포항제철은오늘날세계몇번째가는제철소로우뚝서있다.-

페이지278-279.

……………..

…아이가리더십의최고로꼽은일화의한편을모두옮겨본다.

내아이는이제중학생2학년이다.

현재의모습을그대로볼줄아는눈을갖기를원하는것뿐,

내가아이에게주관적인생각으로직접적으로주입한것은하나없다.

단지,대한민국의기본이어떤식으로이루어졌는지,

흘러다니는~~카더라는이야기에밑바닥에깔린여운을볼수있도록

도와줄뿐이다.

흠집잡기로쓸데없는시간을허비하기엔시간이너무나아깝다.

나혼자만이살다가사라질국가여선안되기에

아이들에게현대사에이르는교육을

어떻게가르쳐야하는지를늘고민하는사회가되었으면한다.

2개월에걸쳐아이와함께읽은이책의내용은

감동과희열,존경과부끄러움이교차하였다.

-과학대통령박정희와리더십-

이책의판매수익금은’박정희과학기술기념관’건립과과학영재육성,

과학문화확산등국내과학기술발전을위한공익사업에전액기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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