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는말이없었다.욕을할것같기도하고호통을칠것같기도한데,
그냥가만히거기에있다.
나는아버지가말을할때까지기다렸다.
이런쪽의고집이라면나도만만치않다.
"어디냐?"
아버지가물었다.
나는대답하지않았다.그순간,나는도대체여기가어디인지
알수없어졌던것이다.그렇지만그런느낌은그리오래가지않았다.
수화기너머로아버지가자세를바꾸는기척이느껴졌다.
"비가내리고있구나."
아버지가말했다.나는무심코고개를끄덕이다가,"그래요."하고말했다.
"지겹게오고있어요.그칠것같지가않네요."
아버지는잠시입을다물고있다.
나는수화기를반대쪽손으로넘겨쥐고전화박스바깥에내리는비를바라보았다.
"곧그칠거야."
아버지가말했다.
"그치지않는비는없으니까."
"죄송해요."
내가말했다.
……..p250
책의제목이심상치않았다.
[그치지않는비…]
바람불고하늘이흐려지면쏟아져내리는’비’
그’비’가’그치지않는다’…그렇게박혀있다.
두꺼운겉페이지를넘긴다.
이쁘지만아픈색깔..살구색페이지가기다린다.
아무것도쓰여있지않은그아픈색깔이이책의내용을귀뜀해준다.
-"여행을하자."형이말했다.
….p7
….첫만남부터가슴이뻐근해졌다.책을덮고말았다.
아마도그’형’은살아있는’형’은아닐것이다.느낌이그랬다.
그리고그느낌이적중했다.
하루가지나고이틀째가되어서야’형’의존재와더불어’나’라는주인공의
여행길에동참할수있었다.
-익숙한거리의모습이사라질때까지걷기로했다.여행에서첫번째로하고싶은일은
우선낯선곳으로가는것이었다.그런데아무리걸어도눈에익은곳에서
벗어날수가없었다.내가아는세계의반경은생각하는것보다넓구나.
나는의외의현실앞에조금좌절했다.
……p11
‘지독한외로움’으로’나’의’아버지’에대한존재감이드러나는부분이
마치스치듯지나가는바람처럼흩어졌다다시제자리로모인다.
청소년문학상의대상을받은책이라고했다.
내아이둘은이제청소년에서중간글자를빼면청년이되는중간즈음에자리하고있다.
‘나’의주인공의외로움과고민의부분부분이내아이들에게도함께했던
예민한사춘기순간과맞물렸다.
아이들은예민했다.무신경,무심각,무감각인것같아도
아이들은가정사에깊숙히뿌리하고있었다.
마냥어린아이들이라고무신경하게대했던것은우리자신
‘어른’이였던것을…
이책을통해서다시한번깨닫는계기가되었다.
-어른들의이야기는잘못찾아간상영관에서본영화를또보는것만큼이나지겹다.
형편없는영화의장면들은죄다비슷하고,또어디선가베껴온티가난다.
…….p19
주인공’나’는모범생의이미지를지니고있다.
모범생은어느날여행을떠난다.우수한성적에기대되는학생이라는
선생님의말과따뜻한정감이느껴지는상담선생님도..’나’에겐그저’남’일뿐이다.
자기밖에모르는지독한외로움이라부르는’아버지’는그런’나’를가장잘알고있었다.
자퇴서에서명을할때,아무말없이’너원하는편’으로들어준다.
그럼우린다르게받아들인다.말려야지,그렇게하는것이부모냐고….
그런데나는주인공’나’의’아버지’의마음을알것같다.
내아들에게도나역시’너원하는편’으로들어줄테니까,
‘자퇴’,’여행’…그래책임을지는것은바로’너”자신’이니까.
우리큰아이가지독한마음의짐을움켜잡고있을때,
‘어느날내가죽었습니다.’의섬뜩한제목의책을가방에넣고다녔다.
겉표지가버려야할책마냥너덜너덜해질정도로…
잠에서쉽게일어나지못하던새벽시간에조용히그책을다읽었다.
소리내울지도못하고..그땐그랬다.
아이가그렇게아픈것을뒤늦게서야눈치재고마는내미련함에울었다.
아무렇지도않게평소처럼다르지않게티나지않게행동하고대화하고,
시간은그렇게또평소처럼다르지않게티나지않게지나갔다.
[그치지않는비]에서’나’주인공은교통사고로극심한고통과함께
‘괜찮다아들’이라는말을남기고떠난영원히마르지않을그리움의’엄마’와
자신의마음조차보듬기가힘에부쳐스스로자신의삶을정리해버린
영원히후회로그리워할’형’과
살아있어도살아있지않은자신과어찌보면꼭닮은,
외로움을어떻게풀어야할지엄두조차내지못하는지독한외로움의’아버지’.
그모든것의공통점이’비’였다.
‘나’는비가그치지않을거라고했다.
지독한외로움의’아버지’는그치지않는비는없다고했다.
시작과끝은같은동선에있음을..
태어남과죽음역시도산자와죽은자의모습만다를뿐
변한것은없다는것.
주어진같은시간안에서우리모두영원히그치지않을것처럼내리는
비를맞으면서도조금있으면반드시그칠거라믿는다.
그것이’삶’이다.
아프게후비고들어와자리를잡는..
기다림의끝.’삶’이였다.
…..
-기억은지워지는게아니다.그냥끊임없이만드는것이다.
만들고또만들고,그러는동안에도만들어진기억은거기에있다.
그것들은늘나의곁에자리잡고있다.
나는이제그사실을조금씩,그렇지만확실하게마음속으로들이는중이었다.
……p241
-"잘있어."
내가말했다.
"잘있어."
형이따라말했다.
나는가방속에서비에젖은돈뭉치를꺼내바람과함께날려보냈다.
집에돌아갈만큼의돈은지갑안에충분히있었다.
허공으로흩어지는지폐를보면서아버지를생각한다.
그리고형을,어머니를생각한다.
그와중에도빌어먹을빗물이계속해서눈속으로비집고들어왔다.
나는울고있었다.
…..p258
-여전히비가조금씩내리고있다.
내가예상했던대로그치지않았다.하지만언젠가는그칠것이다.
사람들은그런걸비라고부른다.
아버지의말대로그치지않는비는없는것이다.
…
-이윽고구름이걷히고,수없이많은별들이모습을드러냈다.
잠깐숨이막혀왔다.
"별이야,형."
내가말했다.
잘됐군,이제저걸타고내려가면되겠어,그렇지만나의유치한감상주의를
비웃어야할형은어디에도보이지않는다.
잠깐은쓸쓸한기분이들었다.그러나곧그런기분은사라졌다.
…
여행은끝났다.
……p258~259
-후기-
하나.아무에게도아무말도하고싶지않은때가있었다.
나는망가졌고,다른사람들역시마찬가지라는생각을해왔다.혼자만을위한글을썼다.
대화를나눌때보다는상념에젖을때가더많았다.그시절의기억이
첫번째장편소설을완성하는힘이되었다.이제나는그때보다는덜아프고,
덜고독하다.특별한계기가있었다고는말할수없다.다만시간이흘렀을뿐이다.
어쩌면모든상처는그런식으로자연스럽게낫는건지도모르겠다.
이글을일고있는당신이어디에있든,무엇을하든,어떤심정이든,
조금씩나아지기를바란다.그런바람을가지고이글을썼다.
처음읽는당신에게,
만나서반갑습니다.
다시한번읽은당신에게,
곧다시만날거라고약속합니다.
2013.
오문세.
….고맙고착한사람이다.모든세상이’힐링’하며힐링거릴때,
눈높이아래에서흔들거리는청소년에서중간글자하나빼면청년이되는
그들에게찰진선물을주었으니말이다.
‘어느날내가죽었습니다.’이책을책장맨위에올려놓은
고등학교2학년이된큰아이에게[그치지않는비]를건네주었다.
힐끗한번눈길을주고,또힐끗눈길을주더니페이지를펼친다.
귀에꽂아놓은이어폰을빼고자리를잡아읽는모습이봄볕에곤하게일어나는
아지랑이같이보였다.
이제이책을소문내야겠다.
우리,자식들안고푸짐하게울어가며이야기를풀어보자고해야지,
문학동네청소년은넓고깊게세상을만나는십대들의책입니다.
나의가치와우리의가치가어우러지는세상을향해나아갑니다.
제3회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대상.
‘그치지않는비’
오문세장편소설.
<만나서반갑습니다.>
<또만나기를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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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tter
2013년 3월 18일 at 11:56 오전
읽어봐야겠어요.
데레사
2013년 3월 18일 at 1:48 오후
좋은책입니다.
읽어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