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제2연평해전을떠올릴때더욱참담해지는것은생각할수록어처구니없는우리의무심함때문이다.딱한달뒤11주기가돌아오는이비극에대해우리가느끼는감정은착잡미묘하다.뭐랄까,트라우마처럼붙어있는죄책감비슷한느낌이다.천안함폭침이분노와충격을주었다면,제2연평해전은우리를그저미안하고죄송스럽게만들었다.그것은죽어가는형제자매를모른척한가족의뒤늦은회한과도비슷할것같다. 제2연평해전이터진것은2002년한·일월드컵폐막전날(6월29일)이었다.서해북방한계선(NLL)에서목숨건사투가벌어지고장병6명이산화했지만,이날우리의관심은온통터키와의월드컵3·4위전에쏠려있었다.정부는사태를축소하느라쉬쉬했고,온국민이애도(哀悼)는커녕붉은티셔츠차림으로거리응원을벌였다.다음날김대중대통령은영결식참석대신월드컵결승전을보러도쿄로날아갔다.’참수리357호’의6용사들은그후로도6년동안죄인처럼묻혀있어야했다.
이런트라우마가있기에6용사스토리가영화화된다는소식이그렇게반가울수없었다.많이알려지지않았지만지금경남진해에선’NLL연평해전’이란영화가10월개봉을목표로촬영중이다.메가폰을잡은것은해군병장출신김학순감독이다.그는"참수리호6용사의영화는왜없느냐는지인의질타가가슴을때렸다"고제작이유를밝혔다.김감독뿐아니라제작진상당수가해군·해병대에서복무한것이눈에띈다.윤영하소령역의주연정석원(28)씨부터해병수색대출신이다.
첫촬영은넉달전서울홍익대거리에서시작됐다.참수리호조타장한상국중사가부인을위해결혼식반지를구입하는장면이었다.운명의그날,한중사는허리관통상을당하고도끝까지방향타를놓지않았다.그의시신은41일만에참수리호조타실에서방향타를단단히움켜진자세그대로발견됐다.그후한중사부인이"(영웅을냉대하는)이런나라에서살고싶지않다"며이민을떠나사람들마음을울리기도했다.
이영화는제작과정자체가한편의감동드라마같다.’대장금’의한상궁으로유명한배우양미경(52)씨는개런티를한푼도받지않고출연했다.그가맡은역할은부상병을돌보다전사한의무병박동혁병장의어머니다.양씨는"꼭만들어져야할영화인데제작난항이란말을듣고안타까워서…"라고했다.양씨뿐아니다.120여명의배우·스태프전원이사실상무(無)보수로참여하고있다.진보와좌파코드가판치는영화계,이들은왜유별나게애국의가치에매달리는것일까.
장외에선20·30대젊은이들이응원부대를자처하고나섰다.청년들은’2030나눔서포터즈’를조직해영화홍보와제작비기부캠페인을벌이고있다.주변사람들에게연평해전의진상을알리고인터넷에인증샷을올리기도한다.청년들은참수리호영웅들스토리를처음들었을때의충격과감동을잊을수없다고한다.11년전이들은초·중학생이었다.연평해전에아무부채(負債)가없을청년들이앞장선것이놀랍고그저고마울따름이다.
그러나영화제작은순탄하지않다.제작비가턱없이모자라기때문이다.5·18광주를다룬’화려한휴가’에굴지의대기업이투자했었지만’연평해전’엔어떤투자회사도붙지않았다.CJ·롯데·쇼박스등문을두드린투자사로부터모조리거절당했다.애국과안보코드의영화는흥행이안된다는뜻일것이다.좌파상업주의가지배하는영화판의현실이이랬다.
제작진은대신인터넷모금으로비용조달에나섰다.일반인으로부터몇만원씩후원받아지금까지2억여원을모았다.놀랍게도소액후원자의80%가20~30대청년층이었다.
모금첫날,한고교생이5000원짜리문화상품권을보내왔다."당장가진게이것밖에없어서…"라고쓴고교생사연을보고제작진은눈물을뿌렸다."연평해전당시나도육군병장이었다"며1억여원을후원한30대사업가도있었다.모금에참여한수천명후원자들의사연은제각각이지만공통적으로하는말이있다."이영화는꼭나와야한다"는것이다.
제작진은지금진해앞바다에서해상전투신을촬영중이다.먹고자는숙식비와기자재임차료만도한달간5억원이더필요한데제작비는바닥난지오래다.악전고투속에서도배우·스태프들을버티게하는것은단하나,’꼭만들어야할영화’라는신념이다.
어떤어려움이있더라도이영화는반드시완성돼빛을보았으면좋겠다.그래야무관심속에산화한참수리호6용사,우리가냉대했던그들에대한미안함이조금은덜어질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