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非世說) 李祭夏그림의 ‘작품 보증서’

조영남의 그림 ‘대작’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은 쉽게 가라않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이 사기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니 이제 이 사안은 사건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이 사건은 자신이 그리지도 않고 대신 누구를 시켜 그리게 한 그림을, 자신의 가수로서의 유명세를 이용해 서명만으로 자기 그림인양 둔갑시킨 채 비싼 값에 팔아치움으로써 대중을 기만한 게 그 본질이다. 여기에 무슨 관행이니 아이디어니 콘셉트라는 말을 들이대는 것은 본질을 호도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시중의 대체적인 여론이다. 

이 사건의 만만찮은 파장 가운데 하나는 우리 미술계와 미술작품에 대한 불신감도 있다. 잘 알려진 유명작가라지만, 어디 믿을 수가 있겠는가. 그림을 구입한 입장들에서는 새삼 다시 한번 그림을 살펴보고 의구심을 갖는 불신풍조가 만연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미술계는 이번 사건을 얄팍한 술책에 의한 개인적인 일탈로 보고 냉정한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이른바 ‘조수 작업’ 등의 관행에 대한 분명한 기준 및 관점과 함께 자체적인 정화와 정리작업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그래서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한 원로 중견작가의 좀 독특한 ‘작품 보증서’가 눈길을 끈다. 개인전에서 자기 작품을 인증하는 보증서를 발행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는 줄은 잘 모르겠다만, 그렇게 남다른 일은 아닌 것으로 안다. 보증서는 말하자면 구매자에 대한 예의일 뿐더러 자기 작품에 대한 일종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가의 그것은 좀 남다르다.
물론 자신의 그림을 구체적이고도 확실하게 소개하고 보증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든 것이지만, 때가 때인지라 미술계도 미술계지만, 작가 개인적으로도 대중들의 미술작품들에 대한 불신감을 불식시키려는 차원에서 이 점을 특히 강조하고자 하는 나름의 의지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다.

그 작가는 이제하다. 이제하(79)는 이미 소설가. 시인으로 잘 알려진 작가지만, 이에 국한하지 않고 그림과 음악을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작가다. 말하자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는, 장르에 구분받지 않는 자유스러운 문학예술인이다. 그의 전방위적이면서 자유스러운 글쓰기, 그림그리기, 노래부르기는 특히 SNS를 통한 활동에 잘 나타난다. 그가 매일이다시피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는 글과 그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다. 그러니 수 많은 팔로워가 이제하를 따르고 좋아한다. 그가 2014년 펴낸 산문집 ‘모란, 동백’은 2011년부터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그림을 묶은 것이다.

이제하의 ‘작품 보증서’는 그가 지난 5월 인사동에서 가진 개인전에 걸었던 자신의 그림들을 자신이 확실히 그렸다고 ‘보증’하는, 작가가 구매자에게 주는 증서다. 이제하는 이 보증서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진으로 올렸다. 

“상기 작품은 본인이 밤잠을 생략하고, 피와 땀으로 직접 그린 작품임은 보증합니다.”

보증서에 적혀있는 글이다. 내용이 참 구체적이고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절실하고 자기 작품에 대한 자신감도 묻어난다. 자신의 그림은 아이디어도 그렇지만, 결코 조수 등 다른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닌, 진짜배기 이제하의 것이라는 점을 선언하고 보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보증서는 조영남 사건의 와중에 이 사건을 의식하고 만든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하는 조영남 사건에 대한 견해를 보증서 게재 이전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제하가 조영남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는 이 견해에서 잘 드러난다. 이제하는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 상 수상을 높이 평가하는 한편으로 상 못 따 환장하는 몇몇 면면과 표절하는 작가들을 거론하면서 조영남 사건이 “신경숙의 표절에 못지않는 실수”라고 나무란다. 그러면서 자기 작품을 남의 손으로 그리게 하는 것은 “정말 구제불능의 파렴치”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제하는 조영남이 한 짓을 ‘실수’라는 표현으로 안타깝게 보고 있으면서도 그 행위 전반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나무라고 있다. 그림도 그렇고 그림의 정통성도 그렇지만 조영남은 이제하의 한참 아래다. 이제하로서는 한참 후배인 조영남으로 인해 불거진 사건의 와중에, 자신이 전시회를 하고있는 것에 일말의 부담감과 함께 어쩌면 모처럼의 전시회가 망가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들었을 것이다. 물론 이번 조영남 사건으로 인해 작가의 작품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담겨져 있다.

그의 ‘작품 보증서’는 자신의 그런 생각을 반영하면서 작품에 대한 구매자의 신뢰를 담보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응책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아울러, 문학과 미술을 포함한 문화예술계에 드리우고 있는 여러 부정적이고 일탈적인 현상들에 대한 답답한 마음도 읽혀진다.

이제하의 작품 보증서’는 한편으로 좀 튀는 느낌도 준다.  이제하 개인의 입장에서 전시회에 대한 부담감과 아울러 이로인해 야기될 수 있는 어려운 처지를 벗어나고자 하면서 재빨리 취한 발 빠른 조치가 아니겠는가 하는 점에서 이런 지적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미술계로서는 이번 조영남 사건이 대중의 미술계에 대한 불신감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큰 위기일 수도 있다. 미술계로서는 이런 위기에 대처하고 극복하기 위한 조치와 대책을 백방으로 강구해야 한다. 이제하의 ‘작품 보증서’가 좀 튀는 듯이 보여지면 어떤가. 치열한 작가정신을 조장하고 대중의 미술계에 대한 불신을 불식시킬 수 있다면 앞으로 열리는 개인전 마다에 이런 문구의 보증서를 의무화하는 것도 한 방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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