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락한 이유
데니스 루헤인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0월
–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5월의 어느 화요일, 레이철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첫 프롤로그에서 드러난 문장에서 강한 임팩트로 독자들을 사로잡은 문구다.
여 주인공인 레이철은 왜 사랑하는 남편을 죽였을까?를 궁금하게 하는 첫 도입부 이후 책은 레이철이란 여성의 시점으로 그려낸 그녀의 전반부 인생, 그리고 브라이언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의 흐름을 진행한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심리학 교수인 엄마 밑에서 자란 레이철은 아버지를 모른다.
어린 시절 어렴풋한 기억 속에 남은 아버지의 이름이 제임스란 것만 알려줄 뿐 정작 그녀가 아버지의 존재를 알기도 전에 엄마는 교통사고 사망, 남은 유산으로 아버지의 존재를 찾기 시작한다.
사설탐정 브라이언으로부터 미련을 갖지 않는 게 좋겠단 충고를 받아들인 레이철, 이후 가까스로 제임스를 찾게 되지만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님을, 엄마의 외유로 생긴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공황발작을 일으키게 되고 친부에 대한 포기를 하면서 메이저 방송 진출을 하려 노력한다.
마침 아이티에서 벌어진 지진은 그녀를 그곳에 특파원으로 파견하게 되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실상, 강간, 폭력, 약탈을 목격하면서 어린 소녀를 강간과 살인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했단 죄책감에 휩싸이면서 방송 도중 공황발작을 생방송으로 보이게 된다.
결국 모든 매체에서 레이철이란 이름은 유명인사가 되고 그녀는 방송을 떠나게 된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쓰지만 공황발작으로 인한 세상 밖으로의 발을 내딛기를 거부한 채 칩거하는 레이철, 우연히 다시 만난 브라이언의 따뜻한 심성과 그녀를 이해하는 마음은 그녀에게 또 하나의 사랑으로 다가온다.
책은 전반부가 레이철이란 여성의 성장과정, 왜 그녀가 공황발작을 가지게 됐는지에 대한 진행을 보임으로써 그녀 안에 잠재되어 있는 위축과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마주칠 용기를 가지게 되지 못한 과정을 보였다면 후반부는 브라이언을 만나고 부부가 되면서 그녀가 점차 공황발작을 이기고 조금씩 바깥세상으로 나가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을 부부의 사랑으로 이겨내는 과정을 그린다.
하지만 어느 날 거리에 나선 그녀의 눈에 외국에 출장 간다고 나선 브라이언이 건너편에 있다면?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 시작한 레이철은 이후 정작 3년간 부부로서 살아오면서 자신이 브라이언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책의 진행은 전반부가 통속적인 한 여인의 심리 위축을 그린 과정이었다면 후반부는 이로 인해 결혼이란 안전을 통해 자신을 이해해 준 한 남자를 진정으로 사랑한 결실이 뜻하지 않게 남편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과정 속에 그려지는 사기, 사랑, 음모, 배신, 추악한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을 보인다.
전작인 [살인자들의 섬], [미스틱 리버] 외에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있게 읽은 갱스터 소설 커글린 가문 3부작 [운명의 날], [리브 바이 나이트], 이후 후속 작품들이 남성 위주의 다양한 스릴의 장르를 다룬 책이라면 이 책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레이철의 공황발작을 충분한 개연성 있는 사연을 들려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녀가 브라이언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수긍하게 한 점, 그 이후 브라이언의 실체를 통해 또 다른 인생으로 빠져들게 되는 과정들이 저자의 특허인 심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스릴이 가질 수 있는 느낌을 후반부에 비로소 드러내는 과정들이 충분한 흡입력을 느끼게 해 준다.
왜 그들은 추락을 해야만 했을까?
평범한 삶을 원했던 레이철과는 다르게 자라온 환경에서 느낀 불합리에 대한 불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다져온 브라이언이란 상반된 두 인물들의 대화를 읽고 있노라면 과연 브라이언은 레이철을 사랑하기는 할 것일까? 그저 연기에 능숙한 그만의 표정으로 그녀를 끝까지 속인 것은 아닐까?
적어도 고백이란 부분에서만은 두 사람 모두 진실을 말했다는 것만 느끼게 될 뿐 모든 것이 거짓으로만 볼 수밖에 없게 만든 브라이언이란 인물에 대해 혼란을 느끼게 된다.
서서히 조여 오는 범죄 무리들과의 대결은 촘촘히 다가오는 심리 압박의 느낌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하며 영화 속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연상 시키는 듯한 배경들이 인상적이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인 만큼 전반부의 느림을 이해하고 읽는다면 후반부는 저자만의 탁월한 추리 스릴을 만끽하며 즐길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스릴이란 장르 속에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려낸 듯한 작품, 하지만 결국 이 책은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던진 한 여인의 아픈 이야기란 생각도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