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악인 남상익 *-
“모든역경을담담하게받아들이는게산악정신”

소속
경기도산악연맹부회장
대한산악연맹이사
경기도등산학교강사
돌비알산악회고문

등반경력
91년매킨리등정(웨스트립)
92년천산산맥칸텡그리등정
93년엘브루즈동봉등정
94년매킨리등정(웨스트버트레스)
프랑스스키등산학교연수
몽블랑등정
95년킬리만자로등정
96년엘브루즈서봉등정
05년가셔브룸2봉등정

9월27일저녁,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열린경기도산악연맹가셔브룸1·2봉연속등정보고회장에들어서면서과연어떤모습일까궁금했다.그런데,뜻밖에남상익(南相翼·53)대장은환한표정으로참석자들을맞아주었다.단지양손검지와중지에붕대를감고있는모습이낯설었다.그는지난2005년8월7일오전7시30분53세의적잖은나이에8,000m급고봉정상에올라가셔브룸2봉(8,035m)한국최고령등정기록을세웠지만,혹독한대가를치러야했다.

8월6일남상익대장은파키스탄히말라야의가셔브룸2봉C4(7,350m)에서네번째정상공격을앞두고있었다.이날등정을목표로전날C3에서올라왔지만날씨가좋지않아머뭇거리고있었다.해가뜨면서날씨가급속도로좋아지자남대장은내일은틀림없이성공하리라자신했다.그날밤10시30분,김병권,송하민대원,셰르파2명과함께정상으로한발씩다가섰다.다섯명모두안자일렌한채등반했다.

수원지역고산등반계의대부

오십중반의나이에젊은후배들과고봉을등반한다는게쉬울리없다.높이를더할수록체력은점점떨어졌다.그렇지만포기하면후배들도따라내려서지않을까하는걱정에아무말없이한발씩올랐다.특히맨뒤에서올라오는송하민대원은C2아래서10여m추락이후컨디션이뚝떨어진상황이었기에후배의기가꺾이는것을보고싶지않았다.

“대장님,먼저올라가세요.”

기나긴시간이었지만,결국정점은다가왔다.마지막캠프를출발한지9시간이지난이튿날오전7시30분경정상을한발앞두고앞장서오르던김병권대원은남대장에게경기도산악연맹가셔브룸2봉초등의영광을돌렸다.건강이확신서지않는상황에서도원정대를이끌어준남대장에대한고마움의표현이었다.

“정상이칼날같더군요.그래서양다리를벌린채걸터앉았죠.정말파노라마가멋있더군요.한데태극기를펼치려고하니,손에잘잡히지않지뭐예요.당연히이상하다싶었죠.셰르파가장갑을벗긴뒤제손을보더니등정사진이고뭐고빨리내려가자고하더군요.”

▲53세에해발8,035m인가셔브룸2봉정상에오른남상익씨.

손이점점굳고감각이무뎌졌다.C4,C3를거쳐C2로내려선다음수프를끓여먹고는곧바로C1으로향했다.1분1초라도빨리밑으로내려서야한다는초조함때문이었다.그러나설원지대까지는고정로프에하강기를걸고억지로내려섰지만이후몇발짝도걷지못해주저앉곤했다.

“억지로내려선게오히려피로를가중시키고혈액순환이제대로되지않게한것같았습니다.C1에도착하자후배들이준비해놓은미지근한물에담가동상기를조금가라앉힌뒤내화를신은채잠들었으니까요.그바람에오른쪽발가락도동상이걸린것같아요.하루더빨리하산할수있다는정보에따라곤도고로패스를하행캐러밴루트로잡는바람에빙하를거슬러해발6,000m가까이되는패스를넘고,또1,000여m절벽을내려서느라발에무리도많이갔을겁니다.베이스캠프에서주사를놔주고,하행캐러밴중복용할약까지지어준이탈리아팀여자의사와또이튿날만난스페인의사도괜찮을거라해서마음놓았던것도잘못이었던것같습니다.모든게운명적으로그렇게될수밖에없는상황이었어요.”

▲가셔브룸BC에서이탈리아여의사의지시에따라치료를받는남상익대장.

남상익씨는경기도,특히수원지역에서는고산등반의대부격인산악인이다.91년매킨리(6,194m)를시작으로,92년천산산맥포베다(7,439m)-칸텡그리(7,010m),93년엘브루즈동봉(6,621m),96년엘브루즈서봉(5,642m)등수원지역에서이루어진대부분의원정을대장으로서이끌었다.그러나97년에베레스트와2000년K2(8,611m)등히말라야고봉원정을추진했으나,재정적인후원이이뤄지지않아끝내무산되곤했다.

남상익씨가산에맛을들인것은77년제대직후였다.충북증평출신인그는제대직후가정형편상대학복학을포기하고,수원의진한상호신용금고를다니던중친구들과지리산을찾았다.“뱀사골을거슬러올라연하천에서하룻밤묵었습니다.그때는뱀사골이길기도길었지만정말호젓하고아름다웠던것같습니다.아마첫날잔곳이연하천부근이었을겁니다.그때는대피소가없었으니까요.하루자고났더니세상이확바뀌어있더군요.안개속무릉도원에들어선기분이었으니까요.”

▲94년매킨리를2회째등정한남상익씨(오른쪽).왼쪽은93년에베레스트등정에성공한최오순씨.

그날이후남상익씨는산에흠뻑빠져지냈다.그의도보산행은자연스럽게암벽등반으로이어졌고,또자연스레흰산을머릿속에그리게되었다.그렇지만,주변에공장이많아외지사람이많이사는수원지역에서향토의식을고취시키며재정후원을이끌어내기란쉬운일이아니었다.몇차례나히말라야원정이무산되자그는적은비용으로도나설수있는산들을찾았다.그게91년에나선매킨리였다.첫원정이었지만,당시로서는그가아는매킨리최난루트로정상을노렸다.

“능선길이가5km에이르는캐신리지를노렸지만원정직전일어난지진으로크레바스가생기는바람에기점인재패니스쿨와르로접근조차못하고말았습니다.그래서마침며칠전헤어진서울대미대팀이등반하는웨스트립으로방향을틀었죠.”안개와구름속에오른뒤안개가걷히자엄청난고도감에긴장하기도했지만,사흘앞서등반에나선서울대팀을추월하는등빠른속도로등반,남상익씨는후배4명과함께정상에올라서는데성공했다.

한해걸러본인은뇌수술,아내의혈액암수술

이듬해92년에는돌비알산악회를비롯한6개산악회로이루어진수원연합팀을이끌고천산산맥의고봉에도전했다.그때도자금때문에갈등이많았다.열심히훈련했지만막판에계획한경비가마련되지않아각산악회에서1명씩제외해야했다.대장인남상익씨도당연히빠지는쪽이었다.그렇지만원정에참가할수없다는통보에충격을받은후배들이산에서내려오지않자남상익씨는결심했다.자신의명의로발행한2,000만원짜리어음을할인해경비를마련했다.그리곤후배들을이끌고앞서출국한팀을쫓아갔다.그런데현지에서는황급한상황이기다리고있었다.

▲94년매킨리웨스트버트레스루트마지막캠프인데날리빌리지에서.맨왼쪽부터박영석,남상익,한상국,고강준호,기자.

“포베다C2에올라서니까오후4시경태원이가후배인임영택과정상에올라섰다는기쁜소식을전해주더군요.그래서시간이너무늦었으니등정사진찍고빨리하산하라일렀죠.이후나흘간아무런소식이없었답니다.”

피가바짝바짝마르는시간이었다.기다리다못해국제캠프를운영하는카자흐스탄산악인들에게구조를요청했다.나흘째되는날7,000m지점에서더이상기다리는게무리다싶어마지막캠프에서등정조를애타게기다리던최오순대원에게하산을지시했다.

“다행히부근에있던카자흐스탄산악인들에게구조될수있었습니다.그런데후배를데리고내려올때까지멀쩡하던태원이가C3설동에서잠깐쉬고나더니탈진상태에빠지고말았습니다.발가락은이미동상으로엉망인상태였고요.그런상태에서도후배를안전하게하산시켜야한다는책임감이태원이를견디게해주었던거죠.그래도지금생각해봐도멋진등반이었습니다.두산모두알파인스타일로해냈으니까요.”

남상익대장은박태원대원을후송시킨다음후배들을이끌고칸텡그리등반에나섰다.무엇보다이듬해인93년출국한여성에베레스트원정대대원최종선발을앞두고있는최오순대원에게좋은경험을쌓게해주고싶어서였다.그등반에서남대장은후배5명을이끌고정상에올라서는데성공했다.

▲92년포베다등반중심한동상을입은후배박태원씨를후송하다쉬고있는남상익씨(왼쪽에서두번째.

이렇게이태연속고산원정을성공적으로이끌었지만,꿈꿔온8,000m급거봉원정은멀기만했다.그래도그의고산등반에대한열정은식을줄몰랐다.93년엘브루즈동봉등정이후94년매킨리(웨스트버트레스),한국산악회프랑스스키등산학교(ENSA)연수,몽블랑(4,807m),95년킬리만자로(5,895m),96년엘브루즈서봉(5,642m)등96년에이르기까지매년하얀산의정상에올라서면서꿈을이어갔다.

“엔사교육에서는정말많은것을배웠습니다.현지산악인들은생활자체가등반이었습니다.우리교육이전수차원이라면그들교육은원리에충실한연구과정이었습니다.산에대한생각과가치관도많이바뀌었습니다.그전에는인수봉정도오르다,원정만다녀오면산에관해웬만큼다할줄아는것이라생각했는데,이후로는평생배워도모자란다는생각을갖게되었으니까요.짧은기간에기술을습득하는것은가능할지몰라도자연의원리를습득하는데에는많은시간이걸리니까요.그런데참힘들더군요.97년에계획했던K2원정은IMF로무산되고,새천년을맞는2000년에는에베레스트원정을계획했지만무산되고말았으니까요.”

그래도그는고산원정에대한꿈을저버리지않으려애를썼지만,예상치못한병으로여러해동안등반을접어야했다.

▲대한산악연맹창립기념산행때울릉도성인봉에서.

“지금도날짜를잊어먹지않고있답니다.2001년9월1일,점심을먹고났는데구토가나고머리가아파오기에급체정도로생각했죠.집에돌아가이튿날백두산산행을앞둔집사람이배낭싸는데도와달라는얘기를듣고도그냥침대에쓰러지고말았답니다.그래도대수롭게생각하지않고이튿날아내를정류장까지데려다주었죠.그런데차를모는데갑자기머릿속에서피가흐르는느낌이들지뭐예요.”

장비점문을열고난뒤정신이몽롱해졌다.카운터뒤에누워있다후배의부축을받고부근의내과를찾았을때는“빨리큰병원으로가보라”는의사의진단이기다리고있었다.빈센트병원응급실을찾았을때도의사들이대수롭지않게생각하고일반내과병실에자리를내주었다.

“뇌동맥지주막파열이라는병명이었습니다.정신이몽롱해지는모습에황급히찾아온뇌전문의가확인한결과현장에서30%,이송중30%,수술중30%사망할가능성이있고,또수술에성공한다하더라도한쪽은마비될가능성이있을만큼위험한상황이라고하더군요.그런데도8시간의수술을마치고중환자실로옮겨지자마자깨어나고움직였지뭐예요.아마빨리깨어나지못했더라면지금한쪽을제대로못쓰는상태로지내고있을지도모릅니다.”

마비되는최악의상황은피했지만,건강에관한한누구보다자신했던그였기에자존심이무척상했다.이후남씨는모든행동을조심하며지낼수밖에없었다.그런데이듬해에는또다른고통을겪어야했다.이번에는아내의중병이었다.급성백혈병이라불리는혈액암이었다.

▲94년여름프랑스스키등산학교교육을마친뒤유학재씨(왼쪽)와오른몽블랑정상.

“수술을하더라도살수있는확률이높지않다는주치의말을듣는순간정말암담하더군요.아무튼주위사람들이많이도와준덕분에지금거의회복단계에이르렀답니다.집부근의야트막한산도오를수있을정도가되었으니까요.”

남상익씨는수술후유증을염두에두고전문등반은거의하지않고지냈다.이번가셔브룸원정역시함께나설생각이아니었다.단지여러차례의경험을후배들에게전해주고픈마음에훈련대장만맡았다.그런데막상원정이코앞에다가오자후배들은남상익씨가대장을맡아줄것을적극권하는바람에뿌리치지못했던것이다.

“머리에또이상이오면어떡하나하는걱정이많았습니다.그래서BC에서지휘만하는조건으로원정에참가했습니다.그런데어쩔수없나봅니다.막상BC에도착하니가셔브룸1봉과2봉루트가눈에들어오지않아두산의루트가갈라지는C1으로올라갔고,또1봉등반때위쪽상황이어떤가하는궁금증때문에C3까지올라가게됐습니다.그러다1봉을시즌초등으로성공하고난뒤나머지2봉등반대원들이세차례나정상공격에실패하자더이상오를힘을잃고말았어요.허가받은등반기간이다끝나가열흘을연장해놓았는데도등정이이루어지지않자한번의기회밖에없다는절박한심정이들더군요.그래서체력이남아있는저하고김병권대원이정상공격에나섰던거죠.송하민대원은철수중C1에서합류했고요.”

“아내와약속한건강산행부터지킬터”

남대장에게는가셔브룸1봉과2봉연속등정이목표였다.그래야만다음에경기도와수원시차원에서히말라야고봉원정의지속적인후원을받을수있을것같았고,또뒤를이을후배들이나올것같았다.때문에뇌출혈의위험을무릅쓰고정상까지올랐던것이다.가셔브룸원정을마치고귀국했을때그의모습은처참할정도로엉망이었다.양손과오른발은붕대를감고,평소73kg의체중이60kg으로13kg이나빠져있었다.두차례의수술끝에양손가락을절단했다.그런데도보고회때그의얼굴에는성취감이배어있었다.

▲85년처남인최원식경기도산악연맹회장(왼쪽)과맏아들광우군과함께오른고흥팔영산.

“이번에히말라야를가보니까유명하다는외국클라이머들도만나게되더군요.그래도한국팀이제일막강한것같았습니다.제일먼저들어가체력이소진된순천대팀도그렇고,저희팀도그렇고앞장서길을뚫고고정로프를깔았으니까요.특히2봉을등정한외국산악인들가운데많은이들이순천대팀이길을닦아놓으면눈치를보다오르곤했습니다.분명산악인답지못한행동이죠.그런면에서가셔브룸1봉시즌초등을달성한우리팀이자랑스럽습니다.”

남상익씨는등산장비판매업계에서소문난경영인이다.87년“산에다니는사람이장비점하면망할수밖에없다”는주변사람들의우려속에서아이거산장을연그는현재수원중심가에3층건물을통째로사용하는아이거산장외에노스페이스,트렉스타등3개매장을운영하고있다.그는언젠가3개매장을한건물에모은등산장비전문빌딩을세우는게꿈이다.

80년최미자씨(50)와결혼해아들둘과함께단란한가정을이끌어가는남상익씨는산에관한한가족들도동호인이다.수술직전까지는아내역시해외트레킹을즐길정도로산에흠뻑빠져지냈고,이번에원정단장을맡아베이스캠프까지캐러밴했던최원식(66)경기도산악연맹회장은손위처남이다.최회장과는킬리만자로와엘브루즈등대륙최고봉정상을2개나함께올랐다.

▲암벽등반에막맛들인83년설악산천화대에서.

남상익씨는원정기간중인7월9일BC에서53번째생일을맞았다.경기연맹팀과순천대팀외에도미국,이탈리아,아르헨티나,일본등외국산악인들이30여명이나축하객으로참석했으니국제적인생일파티를연셈이다.그는산사람들은다른스포츠에서는보기힘든특이한기질을가지고있는것같다고말한다.불구의몸이되더라도신체적인결함에연연하지않고꿋꿋하게살아가는사람들이많다는것이다.

“그런면에서등산은다른스포츠와판이한것같습니다.그게앞에닥친모든일에대범하고,현실을긍정적으로받아들이는등산가들의정신세계때문인것같습니다.어쨌든발가락10개를모두잘라낸후배도어떤상황에서든꺾이지않고살아가는데,그보다나은제가힘들고어렵다고표현할수는없는일이죠.오히려사람들이저를안쓰러워하는게부담스러울적이많답니다.모든것을팔자이려니하고받아들이고있습니다.”

2000년부터2004년까지경기도등산학교를이끌며후배양성에도힘을기울여온남상익씨는이번원정으로경기도산악연맹의고산등반이탄력을받기를기대하고있다.그렇지만우선원정을떠나기전아내에게약속한산행부터실행할생각이다.
“아내나저나큰병을겪어보고나니까건강이최고라는생각이들더군요.그래서출국전약속했답니다.집부근에있는청명산부터차근차근다시시작하자고요.그러다보면우리부부모두다시예전의모습으로돌아가겠지요.”

-글한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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