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레스트 30주년 헌정 등정 (7)*-

제2信-남체에서베이스캠프까지

->박영석원정대는4월6일남체를출발해탕보체로이동했지만6톤의짐을실어나를야크를구하지못해일부짐의운반이지연됐다.어렵게구한야크들이무거운짐을싣고풍기탱가의나무다리를위태롭게건너고있다.

->베이스캠프가는길의마지막농촌마을인딩보체에서바라본아마다블람이해발6,856m의위용을드러냈다.아마다블람은’엄마의목걸이’를의미한다.


박영석에베레스트원정대는한국을떠난지11일만인4월10일마침내베이스캠프에도착했다.루크라에서3일캐러밴을시작했으니7박8일간의강행군의결과다.기상이안좋아비행기를내리지못해루크라도착을하루늦춘원정대는남체에서뜻밖의암초를만났다.원정대물자운반을위해예약해놓았던야크40마리가감쪽같이사라진것이다.

4월은에베레스트원정시즌이라전세계원정대와트레커들이몰려들어야크와포터가동이나는시기.알고보니예약해놓은야크는원정대가남체에도착하기바로전날,모원정대가웃돈을주고는가로챘다.분통터트려봤자‘원님행차뒤나팔’이다.급히수소문한결과,5일당시남체에남아있는야크는고작4마리.결국박영석대장은남체에서하루를더머물기로하고셰르파들을사방으로보내야크와포터들을불러모았다.

짐을여러단계로나누어급한순서대로베이스캠프에올려보내기로하고,원정대는6일남체를출발해탕보체,페리체,두크라,로부제,고락?v등을거쳐베이스캠프로행군했다.원정대는안정적인베이스캠프운영시스템을확보하는대로정상도전을향한공격캠프구축에나설계획이다.남체를넘어서면서원정대를맞는풍광이확바뀌었다.

지금까지가깊고푸른골짜기와초록이출렁이는산자락,그너머희끗희끗설산이옆모습을살짝드러낸‘한폭의그림’이었다면남체에서부터는히말라야의6,000~8,000m급대표연봉들이열을지어펼쳐보이는풍광이장엄하다.초록이줄어드는대신설산의흰빛은서릿발처럼공기를가른다.히말라야최고의전망대는해발3,860m의탕보체다.

높은언덕위에자리잡은마을을가운데두고크레용끝을깎아세운듯한아마다블람(6,856m)이위용을드러내고,그왼편으로로체(8,516m)에베레스트(8,848m)눕체(7,861m)등설산이360도파노라마를연출하며흰능선을이룬다.원정대는탕보체의라마사원옆작은언덕위에자리한‘에베레스트등정20주년기념비’에서묵상을위해잠시멈춰섰다.

1997년한국최초의에베레스트등정을기념하기위해한국일보가세운것이다.에베레스트자락은국립공원이고워낙네팔인들이신성시하는지역이라외지인의비석을세우기는매우어렵다.97년쿰중에있는힐러리스쿨의네팔어린이20명을한국으로초청한인연으로탕보체라마사원의큰스님이특별히허락,사원땅한쪽을내줘기념비를세울수있었다.

원정대는이곳에서지난날영광의주역들을떠올리며코리안루트개척의투지를다졌다.이곳라마사원에서는7일한국일보장기영한국일보창간사주의30주기(周忌)추모제가열렸다.77년에베레스트등정성공은대한산악연맹과한국일보가의기투합해벌인큰일이다.사회의무관심속에서장사주의적극적인지원이있어가능했던일이다.

장사주는원정대출발직전인4월10일타계해애석하게도등정성공을지켜보지는못했다.77원정대이태영대원은“장사주의끊임없는애정과적극적인도움이없었으면세계의지붕에올라설수있는기회는한참뒤로미뤄졌을것”이라며제단에꽃을바쳤다.탕보체를벗어나팡보체(3,930m)부터는산천의황량함이물씬느껴지기시작한다.

울창했던숲은작아지고,주변산자락의색도갈색으로바뀐다.페리체(4,270m)와인근딩보체(4,410m)가사람들이농사를지으며부락을이루는마지막마을이다.주민들은야크의변을받아땔감과밭의거름으로사용하고,높다란돌담을친밭에서감자와보리를재배한다.이곳을넘어서면인간이사는거주지는더이상없다.

고도가더높은로부제(4,910m)고락?v(5,140m)등마을이있지만이곳들은베이스캠프를오가는원정대나트레커들이하룻밤몸을누이는공간을제공할뿐,농사를지으며삶의터전을일구는곳은아니다.고지에적응하기위해발걸음마다숨을고른다.에베레스트에오른다는것은인간의생존한계선너머,그배가되는높이에대한도전이다.원정대의얼굴에긴장감이서리기시작한다.

-/로부제에서(네팔)2007/04/11=이성원기/-

/inlovewithyou/dana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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