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산악조난구조대장 김남일씨 *-

서울산악조난구조대장김남일씨

“산에서받은혜택,봉사를통해갚고싶다.”

▲소속
서울산악조난구조대대장
서울시산악연맹대회협력이사
한국등산학교강사

김남일씨(金南一·42·디자인메카대표)는늘즐거운마음으로산에다닌다.무엇보다봉사를통해얻는보람이더할나위없이뿌듯하기때문이다.그는90년부터한국등산학교강사로등산기술과정신을전파하는데힘써왔다.16년간그가참여한교육과그의가르침을받은산악인은일일이거론할수없을정도로많다.서울산악조난구조대(서울시산악연맹산악조난구조대)활동은그가산을통해얻은은혜를갚는일이나다름없다.

그는90년구조대에가입한이후총무와부대장을거쳐2000년가을부터제6대대장으로구조대를이끌어오고있다.그사이인명구조는물론,사고예방을위한확보물교체,사고가많은암릉등반가이드북배포등안전사고예방활동에도앞장서왔다.“좋은선후배도많이만났고,고산도여럿올랐습니다.다산덕분으로생각하고있습니다.그보답을산을통해하려는거죠.등산학교강사도그렇고,구조대활동도그런생각에서비롯된겁니다.”

교육통해등산의진정한의미깨달아

그는제대직후인86년한국등산학교에들어갔다.남대문의등산장비점에근무할때였다.당시코브라스포츠를운영하던박규동씨의권유로뭐하는곳인줄도제대로알지못한상태에서정규반에들어갔다.주말에1박2일씩8주간이어지는교육과정이었다.이전까지산은오로지놀이의대상이었다.그런데8주간의교육은산이모험과도전의대상이라는사실을깨닫게해주었다.

졸업과함께26기동기들끼리이륙회라는산악회를만든이후더욱깊이산에빠져들었다.선인봉에서인수봉으로,인수봉에서부산앞바다의해벽에이르기까지등반영역을점점넓히고,일단바위에붙으면땅을밟지않는연장등반을인수봉에서사흘내리하는등강도도높였다.이러한과정을통해기량이향상되자자연스레한국등산학교강사들의눈에띄게됐고,마침젊은강사충원을필요로하던90년부터등산학교에서강사로활동하게됐다.

“장봉완,홍옥선같은선배들은등산학교다닐때만해도함부로쳐다볼수없는기라성같은산악인이자사부였습니다.그런선배들이들어오라는데마다할이유가없었죠.그런데구조대에서도들어오라지뭡니까?마침하얀산에대한열정이뜨거워질무렵이었으니그런고마운손길이또어디있었겠습니까?”


▲2000년아비가민C3.서울산악조난구조대가2개봉연속등정을이룩한
원정이었음에도무쿠트파르밧동봉2등의확인으론서운했던등반이었다.

열심히노력했다.그로인해일본문부성부설등산연수원에서교육도받았다.정작원했던하얀산을가는일은쉽지않았다.90년결혼한아내신연수씨역시유한공대산악부출신으로한동안산에흠뻑빠져지내기는했지만,주말이나휴일이면산에가서살다시피하는남편이좋을리없었다.게다가짧으면한달에서두달까지빠져야하는해외원정을직장상사가허락해줄리만무였다.그래서94년매킨리(6,904m)원정기회도,96년가셔브룸1봉(8,068m)원정기회도놓치고말았다.


▲6년선인봉남측오버행자유등반.

그때마다씁쓸했다.직장생활을하는한히말라야꿈을이룰수없다고판단한그는95년말자신의사업체를차렸다.배와비행기를이용한짐수송을대행해주는메카항공해운이그것이었다.회사는잘되는듯싶더니97년말불어닥친IMF의여파로휘청거린뒤회생의기미가보이지않았다.그러한상황에서도고산에대한꿈은이루어나갔다.우리나라처럼1948년정부를수립한인도는이를기념하는합동등반을서울시산악연맹에제의해왔다.

아직등정이이루어지지않은무쿠트파르밧동봉(7,130m)을대상산으로내놓겠다는인도산악연맹의제의를거절할이유가없었다.98년부대장으로무쿠트파르밧원정에참가했다.그원정에서구조대팀은한국의인도히말라야진출사상최초의초등봉을이끌어내는결과를가져왔다.그런데이듬해‘등정사실에대한의문이있다’는엉뚱한얘기가전해왔다.99년같은루트를등반한인도NIM(NehruInstituteMountaineering)팀의등정의혹제기였다.

“98년여름현지에도착했더니합동등반하겠다는인도대원들이장비에일당까지요구하지뭡니까?그동안인도측은외국원정대와그런식으로합동등반을해왔던거죠.그런관례를전혀몰랐던저희로서는정말황당했죠.그래서우리대원끼리등반에나서후배대원두명이정상에올랐습니다.이들이정상에올랐을때는워낙화이트아웃이심해사위가불분명한상황이었죠.앞에봉우리가하나있는데서너시간거리다하여다른봉이려니했죠.이듬해등정시비건에대해서도한동안합동등반이제대로이루어지지않은데대해인도측이시비를거는것이려니했습니다.”


▲2000년무쿠트파르밧동봉전위봉에오른김남일씨와대원들.

건너편봉이아비가민이다.

서울산악조난구조대는2000년무쿠트파르밧재도전에나선다.찜찜한부분을깨끗하게해결하겠다는생각에서였다.당시구조대부대장이었던김남일씨는관례에따라원정대장을맡았다.그리곤2차공격조로서정상에올라섰다.“구조대는짝수연도에해외원정을나가는것을원칙으로삼고있습니다.그래서2000년에도원정이계획돼있었는데,당연히새로운산으로가려고했었죠.그렇지만적어도서울산악조난구조대가등정의혹에휘둘리면안되겠다는생각에재등반을강행했던겁니다.

1차등정대원들을통해인도측주장이맞다는얘기를듣는순간맥이쫙빠지더군요.그런데도2차공격조에합류해98년오른봉우리에올라서는순간그너머로보이는게없기를간절히기원했습니다.결국또다른봉이빤히보이더군요.기어가도30분거리였죠.98년등정자들이그봉을보고서너시간거리였다고한거죠.정말캄캄하더군요.”김남일대장은무쿠트파르밧동봉정상에서내려서다C3에서머물렀다.

같은능선으로연결된아비가민(7,355m)정상공격에나선대원들이무사히돌아올때까지홀로거기서기다렸다.북서릉~남서벽루트초등반이었기에등반로에대한정보가전혀없었다.때문에공격조는텐트와취사구까지지닌채한발한발확인해가면서오를수밖에없었다.이렇게어렵게2개봉연속등정에성공했는데도,무쿠트파르밧동봉등정이결국제2등으로결론남에따라특히대장인그로서는허탈할수밖에없었다.

2002년에는브리구판스(6,772m)를등반했다.바로옆에솟은인도히말라야의난벽탈라이사가르(6,904m)북벽을등반하는게낫다싶었을만큼어려웠던봉이다.하루면가능하리라예상했던마지막캠프위의150m길이쿨와르를뚫는데나흘이나걸리고,3개봉으로이루어진정상부는어느봉이주봉인지관측되지않아세봉모두올라서면서정상을확인해야했다.김남일대장은1차등정시도때C3상단을등반하던후배대원이낙석사고를당하면서하산해야했지만,3차공격대원들은한국초등의목표를달성해냈다.

구조활동과더불어정통알피니즘추구

김남일대장은2003년서울시연맹-티벳등산협회에베레스트합동대의등반대장을맡았고,2004년에는티벳의미등봉로부제쿵동봉(7,094m)원정에참가하는등히말라야를향한꿈을계속이어나가고있다.김대장이해외원정을꾸준히추진하는것은후배대원들이더욱열심히구조활동에매달리게하려는의도에서였다.“당연히봉사정신이투철한산악인들이더욱열심히노력할수있도록끊임없이동기를부여해야합니다.그중가장큰게해외원정입니다.저역시같은마음이었으니까요.”

구조대원으로서그의긍지와자부심은대단하다.그는“서울시산악조난구조대는한국산악계에서정통알피니스트가되기위한엘리트코스나다름없다”고말한다.그럴만한것이한때한국최고의고산등반가로일컬어졌던장봉완(서울시산악연맹부회장),김창선씨(성균관대OB)외에도14개봉완등자인엄홍길,토틀클라이머이자개인등산학교교장으로이름을떨치고있는정승권씨등국내대표급산악인들가운데많은이들이서울시연맹구조대출신이다.

게다가83년북한산과도봉산에경찰산악구조대가상주하기전까지는이일원의조난자구조는거의가서울시연맹구조대가도맡아정통파산악인을대변하는모임으로뭇산악인들의신임을받기에이르렀다.구조에는일사불란한지휘체계가생명인만큼지금도서울시연맹구조대엔70~80년대식규율이퍼렇게살아있다.“올해로34년역사의구조대입니다.구조대는구조활동을통해좀더어려운루트를등반할기회를가질수있고,동계와하계때는해외원정을대비해1주일씩산에서생활하면서많은경험을하게됩니다.

▲2004년티벳로부제캉BC에서구조대자문위원들과함께.맨왼쪽은김남일씨의아내신연수씨–->

그렇지만신입대원은한동안적응하는데애를먹습니다.위계질서를지키는일이무엇보다힘듭니다.선배의말은곧지상명령과같으니까요.개인주의와등반의경기화가가속화되면서정통알피니즘은많이흐트러졌습니다.그런면에서구조대만큼이라도정통알피니즘을고수해야한다고생각하는겁니다.”김남일대장은83년창립한경찰산악구조대나119구조대가사고자구조나후송에주력하고있으므로서울산악조난구조대는사고예방활동에신경써야한다고생각하고있다.

그런차원에서서울근교암벽루트상의노후된확보물교체,낙석제거,낙석방지철책설치등사고예방활동에힘써왔고,지난가을에는몇년새급격히늘어난암릉사고를막기위해대한산악연맹이제작한암릉등반가이드북을대원들과함께암릉기점까지찾아가배포하기도했다.“확보물교체작업때처음에는너희들이뭔데길을막느냐며화를내는클라이머들이있기는했지만,얼마지나지않아의도를알고오히려고마워하는이들이많아졌습니다.

암릉등반은무엇보다남들에게과시하기위해줄도묶지않고하는게문제입니다.추락하면거의죽음인데말이죠.헬밋은꼭써야합니다.한동안은일반산악회도그렇고저희구조대원들까지도고참들은안쓰고등반하는걸당연하게받아들여졌지만,지금은많이달라졌습니다.”김대장은재작년부터금강산산악활동에도열중하고있다.분단이후남한산악인최초의구룡폭·비봉폭빙벽등반을2004년1월초성사시키는가하면,지난해가을에는암벽루트개척에이어북한사람들을대상으로암벽등반기술교육까지했다.

“구룡폭·비봉폭빙벽등반은원로산악인고김정태선생이일제때인1935년2월첫시도한이래금강산에서60여년만에이루어진본격빙벽등반이었습니다.지난해9월초에는대원20명이참가,금강산에서가장큰폭포인구룡폭포우측벽인구룡대에아산길과독립문길이라는바윗길을냈습니다.재미교포산악인이등반한적은있지만,한국국적산악인이금강산암벽을등반하기는해방이후저희가처음이었습니다.”

김대장이금강산빙벽등반을떠올린것은2003년에베레스트등반중만난일본팀의말을들은직후였다.대원중한명인조총련계재일교포가“금강산에등반가치가높은빙폭이많다”고귀뜸해줘금강산빙폭초등만큼은일본인들에게넘길수없다는생각이들었다.그래서귀국하자마자현대아산측과교섭을벌여빙벽등반을이끌어낸것이다.


▲서울산악조난구조대한라산동계훈련중대원들에게등반

사항을지시하는김남일대장.

김남일씨가제6대구조대장으로추대된것은선배들로부터기획력과친화력을인정받았기때문으로알려져있다.그러한재능은곧발휘됐다.취임직후사회적으로기반을잡은선배산악인들로구성된구조대자문위원회를만들어재정적인도움을끌어냈다.최근에는서울시로부터구조활동에필요한경비를끌어냈다.취재도중그는후배들에게서여러차례전화를받았다.서울시지원을이끌어내는데도움을준이들에게고마운마음을표시하기위해이날오후마련한저녁식사자리에관한건때문이었다.

“지난해로부제캉등반때는완벽한‘따까리(설거지담당막내를이르는속어)’로지냈습니다.그동안도와준선배들을모시고안나푸르나푼힐과에베레스트BC를거쳐로브제캉BC로이어지는장기간의트레킹을했으니까요.그분들도움이아니면사실구조대가원활하게굴러가기어렵습니다.올해부터는서울시로부터재정지원을받게됐습니다.만약해마다지원을받을수있다면구조대발전을위해큰보탬이되리라생각합니다.노후된장비와확보물교체에도쓰고,아껴서후배들등반에지원해줄수있다면그만큼한국산악계도발전하는것아니겠습니까?그후배들이또다른후배를키워낼테니까요.”“남북산악인이손잡고오를날이기다려집니다”

그는마흔을훌쩍넘어섰었는데도클라이머로서의꿈도크다.올해는후배들과함께인도히말라야의난벽인탈라이사가르북벽과조긴(6,850m)원정에나선다.탈라이사가르는우리나라팀으로서는열두번째도전이다.그중한팀은북서릉으로정상에올랐다.그렇지만북벽은아직도완등해낸팀이없다.98년가을기대를모았던고신상만·최승철·김형진팀마저도‘코리안다이렉트’직등루트를뚫고거의다올랐지만정상을100m도채남겨놓지않은설원에서추락사했다.그루트를완성시킬계획이다.

“그동안등반한팀들에게서북벽에관한많은정보를얻었습니다.98년3인조외에다른팀들이돌파하지못한블랙타워를넘어설비책도마련해놓았습니다.저희대원들은고산등반경험이많습니다.물론등반력도뛰어나고요.조긴은브리구판스등반때이미정찰한봉입니다.난이도가높지않아탈라이사가르북벽등반을앞두고고소적응하기에적당할것으로예상합니다.”


▲97년레이니어등반.왼쪽서부터김남일,전서화,이상록씨.

개인적으로인도히말라야의미봉난다데비주봉을등반하고싶어한다.인도육군팀이초등한이후아직까지외국의어느팀에게도등반허가를내주지않고있는봉우리다.그와더불어에베레스트를다시찾고싶어한다.이미구조대가소속된대한적십자사에남북산악인에베레스트등반계획서를제출해놓았다.“금강산구급봉사대원들에게등반기술을가르친것도이들중몇명이에베레스트등반에참가할수있으리라는기대에서였습니다.남한과북한산악인들이힘을모아세계최고봉에올라선다면얼마나멋진일이겠습니까?통일은민초들차원에서서서히무르익는게바람직하다고생각합니다.”

메카해운항공에서재미를못본김남일씨는99년디자인메카라는광고제작업체를차렸다.생소한사업인지라초반에는어려움이있었지만,곧자리를잡았다.무엇보다2000년이후아웃도어레저용품의호황이그의사업에도큰도움이됐다.그런데요즘김남일씨는혼자지내는시간이많아졌다.아내와아들경래군(중1년)이미국에서생활하기때문이다.아내가수시로다녀가기는하지만기러기아빠이다.그런데도산악활동과사업으로너무바빠외로워할시간이없다는그다.

-글/’월간산'[436호2006.02.]한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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