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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캐피탄퍼시픽오션월등반. |
“너무좁아쪼그리고앉아서깜빡졸고깨어났더니텐트가턱에겨우걸려있지뭐예요.조금만더밀렸더라면세명모두몇천미터절벽아래로내동댕이쳐졌을겁니다.그날널찍한자리가눈에띄자마자텐트를치고이틀동안잠만잤답니다.하룻밤내내못잔잠을보충할생각으로말입니다.”
세명모두무난히정상에올라등반이다끝난줄알았는데엉뚱하게도하산길에서사고를당하고말았다.노멀루트의마지막캠프인데날리빌리지로내려서기전급경사설사면에서배낭을깔고앉아쉬다가일어서는순간미끄러지고말았다.
“호기형은로프에충격이전해지는순간미끄러지고말았는데,마침바위부근에있던동석이형이발을크랙에끼워넣는덕분에추락을멈출수있었습니다.그런데그충격으로동석이형은복숭아뼈가깨져나가는부상을당하고말았답니다.쩔뚝거리며암빙설혼합능선과헤드월절벽구간을내려선다음매킨리시티에서헬기를타라니까먼저내려가면뭐하냐는바람에동석형을썰매에싣고내려왔답니다.형때문에목숨을건진것이나다름없으니형을실은썰매를끌고내려오는데조금도힘들지않더군요.”
바위를타면서도슬랩등반은자신이없었다.그런데묘하게도매킨리에서돌아오자인수봉과선인봉이작게느껴지고,바짝선슬랩도누운것처럼느껴졌다.웬만한길은가볍게앞장서오를수있었다.그렇게자신이생기면서또다른고산이머릿속에그려졌다.
“제가살던마을은내변산이가까이보이고,선운산과내장산도평야끝에솟아있는곳입니다.김제평야바로아래였으니까요.아마그시절돌아다니는습성이제몸깊이파고들었던가봅니다.밥을굶어가면서먼곳을다녀오고,기차소리에십리이상떨어진철길도마다않고다녀오곤했으니까요.매킨리를다녀온뒤제몸에내재해있던그방랑벽이솟아나더군요.”
다음번고산으로아콩카구아를염두에두고계획을세웠다.97년준비해98년초에나설생각이었다.그런데97년말불어닥친IMF여파로무산됐고,그래서한해뒤인99년말아콩카구아를등반하게된것이다.아콩카구아등반을대여섯달앞두고미국요세미티의엘캐피탄도등반했으니,그스스로‘비행기병’이라는방랑벽이도져도단단히도진셈이다.
“한달쯤배운알량한인공등반기술을가지고거벽에붙었지만,색다른감흥에즐거웠습니다.절벽에설치한포타레지에누우면등밑은수백m절벽인데도밤하늘에총총히박힌별들은환상적이었으니까요.휴가기간에맞추느라동료들보다열흘앞서귀국하는데정말오기싫더군요.그런데지난해또다시엘캡을등반할때는루트가먼젓번에비해어렵기도했지만,고정로프를걸어놓은뒤본등반을포기하고말았습니다.등반을앞두고캠프에내려와자는데,꿈에여섯달밖에안된딸아이가아장거리며다가오지뭡니까.이미지훈련에소홀해마인드컨트롤에실패했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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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오션월루트로올라선엘캐피탄정상.왼쪽부터이민호,정승권,박종관씨. |
2000년마침대한산악연맹에서새천년을축하하는7대륙최고봉원정계획이발표되자지원서를냈다.매킨리캐신리지등반경력이먹혀들었던지선발됐고,비행기를탄지나흘만에유럽최고봉인엘브루즈정상에올라설수있었다.그리곤2002년유럽알프스를상징하는난벽인아이거북벽에도도전했다가,날씨가받쳐주지않아몽블랑,뮌히,융프라우등정으로만족해야했다.
“고산에갈때마다외국클라이머들이꼭묻는게있었습니다.에베레스트가봤냐는거였죠.물론아콩카구아등정이후5대륙최고봉등정을꿈꿔왔지만,그런말을들을때마다더욱조바심이생기곤했습니다.”
기회는빨리왔다.2002년봄,서울시산악연맹이티벳등산협회와초모랑마합동등반을계획하고대원을선발한다는소식이들려왔다.이것저것잴이유가없었다.그런데12명선발에고산등반경험이많은클라이머40여명이지원했으니하늘에별따기나다름없었다.그런원정에선발되는행운을안고,2003년봄초모랑마등반에나섰다.
세계최고봉하산길에천길낭떠러지유혹받아
서울시연맹원정대는4월10일BC(5,200m)에입성한이후ABC(6,300m)를구축하고,노스콜(7,000m)에올라하룻밤자고내려오는등등반이순조로웠다.그런데C4를구축할즈음인5월초느닷없이몰아닥친강풍에ABC의모든텐트가바람에날아가고,폴이부러지는등엉망이되고말았다.
“네팔에서텐트를급히가져오는등,어수선한상태로여러날지냈습니다.그런데그게전화위복이되었답니다.정상공격에나서기전까지노스콜을네번이나올랐고,7,900m캠프에도올라갔다내려왔으니고소적응이완벽하게이루어졌고,베이스캠프에서아침마다구보할정도로체력도회복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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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알프스융프라우정상. |
박종관씨는엄홍길씨일행이1차공격에성공한다음날인5월22일0시를조금넘어후배두명과함께마지막캠프(8,300m)를출발했다.다른팀보다두세시간빨리출발했기에헤드랜턴불빛으로길을확인하며조심스럽게올라야했다.그런데퍼스트스텝을지나치는사이웬물체가바위에누워있었다.한해전에숨진외국클라이머의시신이었다.후배인고용준씨를불렀다.혼자보면졸도할것같아서였다.
최난구간인세컨드스텝에이어서드스텝을지나칠즈음흰산들이발갛게물들어갔다.그리고잠시후인오전8시30분경세계최고봉정상에올라서는데성공했다.그러나하산길은그를천길낭떠러지밑으로유혹했다.서드스텝을내려서는사이아이젠한짝이벗겨지면서바위턱에걸리고말았다.주우러갈것인가말것인가를놓고짧은시간이지만수십번갈등했다.그러다턱에서미끄러지는날이면수천m낭떠러지아래로곤두박질치리라는두려움이한쪽아이젠만차고내려서게했다.
곧산소통의산소마저바닥이났다.데포지점에놓아둔산소통을찾아보았지만,누가가져갔는지눈에띄지않았다.거의탈진한상태였으나마지막캠프로무사히내려섰고,C4(7,900m)로내려설시간도충분했다.하지만,산소의도움없이여러시간을보내는사이체력과정신력은바닥이나있었다.
C5에서하룻밤더자고한쪽발만아이젠을찬상태로겨우겨우노스콜캠프로내려서는사이그의머릿속에서는다시는이런미친짓은하지않겠다는생각으로가득채워졌다.그런데노스콜을내려서고기나긴플라토를지나ABC에귀환,선배들과포옹하는순간그의머릿속에선또다시새로운설산이그려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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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정상(2004년). |
박종관씨는에베레스트에서돌아온지몇달지나지않아같은산악회후배인장진씨(37)와결혼했다.그리고이듬해아프리카킬리만자로를올라5대륙최고봉을마무리했다.게다가99년초보수준으로덤볐던엘캐피탄도찾았다.이렇게96년매킨리이후꾸준히고산등반을하며지내는데단한번도직장을그만둔적은없다.산보다는사회생활이우선이라는생각때문이다,
“물론직장상사나동료선후배들이이해해주어가능한일이지만,저역시무리하게원정나가서는안된다고생각하고있습니다.그래서원정때마다휴가기간과경제적부담등여러상황을고려해서결정해왔습니다.사실얼마전귀국한창가방팀에도끼고싶었습니다.그러나두달간자리를비운다는게현실적으로불가능하다는판단에포기한겁니다.”
박종관씨는98년부터2002년까지4년간수유리정승권등산학교실내암장에서50m밖에떨어지지않은집에서살았다.조금이라도운동을더하자는생각에서였다.그런데실상은운동끝나면선후배들과어울려술마시는재미에빠져병원에지각하는날이많았다.
“그래도그때가제게는가장즐거운시절이었던것같습니다.지금도산이좋아서라기보다는산친구들이좋아산에다니고있으니까요.제인생의절반은산덕분에이루어진것같습니다.산에다니다보니몸이강해졌죠,같은산악회후배를아내로맞아들였죠,게다가직장에서유명해지기까지했으니까요.특별한욕심은없습니다.산친구들이좋아산을다니고있듯이산우들에게싫은소리듣지않고계속다닐수만있다면그것으로만족합니다.”
박종관씨는내년여름바름산악회창립10주년기념낭가파르밧원정에참가한다.파키스탄의해발8,125m의이거봉을등반하려면두달이상걸린다.그렇지만등반기간내내대원들과함께지내기는어려울것이라말한다.
“회사에서받아낼수있는기간은한달입니다.그래서그한달간시도해보다가안되면돌아와야한답니다.그등반에아콩카구아에서손가락을잃은후배도참가하기로돼있습니다.얼마전직장상사께술한잔마시면서제꿈을솔직히털어놓았습니다.이번에도아내가말리지않을겁니다.결혼전에산에가는것하고술마시는건말리지않겠다는다짐을받아냈으니까요.”
“7대륙최고봉모두올라야직성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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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5월22일,같은산악회회원인구은수씨(왼쪽)와함께세계최고봉에베레스트정상에올라선박종관씨. |
박종관씨는2002년수유동에서옥수동으로이사한후집부근의실내암장인손정준클라이밍연구소에서운동하고있다.그는99년요세미티를다녀온뒤하드프리등반에푹빠져현재5.12급수준에이르렀다.하지만올연말부터당분간하드프리를접어둘계획이다.낭가파르밧등반을위해몸을만들어야하기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