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클라이머의 삶] 박종관씨 *-
[이클라이머의삶]5대륙최고봉완등한박종관씨
“내인생의절반을산으로채웠다”

박종관씨(朴鐘款·38)는2004년아프리카킬리만자로(5,895m)정상을밟음으로써,북미매킨리(6,194m),남미아콩카구아(6,959m),아시아에베레스트(8,848m)로이어지는5대륙최고봉등정을해냈다.히말라야8,000m급14개거봉을완등하고또새로운기록에도전중인엄홍길이나,박영석,한왕용씨같은산악인들에비하면내세울만한기록은아니지만,그래도이기록은평범한셀러리맨으로서해낸기록이기에나름대로의미가있다.

더욱이그는가능한한난도높은루트를택했다.매킨리는캐신리지로등반했고,아콩카구아는동면루트한국초등을기록했다.특히아콩카구아는그를죽음의늪깊숙이끌어들였던산이다.

‘잠들면죽는다’…처절했던아콩카구아하산길

1999년12월말박종관씨일행은남미최고봉아콩카구아를등반하고있었다.루트는당시한국인이처음도전하는동면폴란드직등루트.박씨를포함한세사람은새벽2시경C2(5,800m)를출발해정상으로향했다.그런데선배인최영규씨가아이젠한짝이고장나면서자꾸벗겨져어쩔수없이포기했고,후배인송진철씨와둘이서정상으로향했다.

그날정상에올라섰다가C2로돌아올계획이었으나가도가도정상이나타나지않았다.저녁7시경,날이어두워지자크레바스구멍을깨내고들어서서안전벨트를벗고배낭안의물건을꺼내깔고앉았다.이때아무것도먹지못하고수통이얼어붙어물도마시지도못하는상황에서눈보라가들이쳤다.눈은점점더쌓였다.크레바스밖으로는나갈엄두도내지못했다.자면죽는다는생각에툭하면서로부르거나흔들어잠들지못하도록했다.

▲아콩카구아동면을등반중인박종관씨.

기다려도기다려도눈보라는멈추지않았다.날이밝을즈음에는눈(目)만빼놓고는완전히눈(雪)에묻혀버렸고,안전벨트며수통등몇몇장비는어디갔는지찾을길이없었다.그런상황에서도이제300~400m만오르면정상이리라는기대감과,선배들에게받은후원에대한부담이박종관씨를정상으로향하게했다.반면,송진철씨는체력적으로무모하다는판단에포기했다.이후두사람은반대방향으로나아갔다.

“이제죽었구나싶었습니다.정상에다왔다싶었는데발이푹빠지더니온몸이쑥들어갔으니까요.정상부에크레바스가있으리라곤상상도못했던거죠.다행히양팔과무릎이턱에걸려구사일행으로빠져나오기는했지만,맥이풀리고말았죠.C2를치려고돌을거둬내다가죽은시신의얼굴과이중화가보여얼른다시돌을덮었고,동면등반중에도바짝말라붙은시신을보곤잔뜩겁먹고있던터라더욱겁이났습니다.”

눈보라와안개는걷힐줄몰랐다.앞도제대로분간되지않는상황에서기다시피정상쪽으로다가갔다.너무지친나머지돌을깔고하루더자고가려고했다.이미정상적인사고능력을잃은뒤였다.그런데돌을옮기는사이바람에안개가걷히더니십자가가눈에들어왔다.남미최고봉정상을상징하는증표였다.

“죽음과도같은하산길이었습니다.얼음을깨내입에물고,눈을뭉쳐입술을적시면서한발한발내려섰습니다.잠들면죽는다는생각에졸음과싸우면서말이죠.비틀거리면서C2로돌아오니출발한지36시간이지나고있었습니다.그런데예상치못했던일이기다리고있더군요.진철이가양손에벙어리장갑을끼고있지뭡니까.동상에걸린거죠.캠프에도착할때피피장갑에피켈이얼어붙은상태였다는것으로보아하산길에두터운장갑이불편하고등반에방해되니벗어버린게동상의원인이되었던것이다.게다가저는이튿날부터설맹에시달려야했습니다.크레바스에서나온뒤날씨가흐려고글을벗고등반한게화근이된거죠.”

그사고로송진철씨는귀국후열손가락을모두잘라내는수술을받아야했고,박종관씨는지나친등정욕때문에후배의안전을저버렸다는질타에한동안시달려야했다.

“죄책감에한동안마음이아팠습니다.손가락을잘라낸다음에도진철이는웃으며저를보는데저는속이타들어가는기분일적이많았으니까요.등반당시로선서로를위해최선의선택이었다고생각했는데상상치도못한결과가나오고말았던거죠.”

전북부안출신인박종관씨는동년배클라이머에비해뒤늦게전문등반에발을들여놓았다.90년순천향대학병원진단방사선과에근무하면서서울생활을시작한이후도보산행은간간이했지만,전문등반을할기회는없었다.

▲매킨리캐신리지초입부인재피니스쿨와르등반.

그런데94년어느날산악전문지에체격당당한클라이머가우승트로피를들고있는게무척이나부럽게느껴졌다.그렇지않아도인수봉이나선인봉을오르는사람들을볼때마다저런암봉에한번은올라봐야겠다는꿈을꾸곤하던터에저사람에게배우면제대로바위를탈줄알겠다싶었다.그래서그주인공이운영하는등산학교에입교했다.

마음먹은대로94년봄등산학교암벽반은나왔지만,이후거의한해동안바위탈기회가없었다.함께등반할파트너가없었기때문이다.그러다95년동문산악회인산사람산악회에가입하면서급속도로암벽의세계에빠져들었고,또얼마지나지않아해외원정의기회도주어졌다.

“석달쯤산에다녔을때일겁니다.선배들이해외원정얘기를꺼내더군요.어디가는지도제대로확인하지않은채일단손부터들었죠.그리고매킨리에대해공부하면서어렵다는사실을깨달았답니다.그래서열심히운동을했습니다.아침마다크로스컨트리도하면서요.”

매킨리이후몸속깊이숨어있던방랑벽꿈틀

고산초행자인그는매킨리에서도만만치않은루트인캐신리지등반조에끼었다.대원7명은웨스트버트레스노멀루트조와캐신리지조로나뉘어랑데부등반을시도했다.그런데이제등반을배운지얼마안된박종관씨는대장인이동석씨와선배인백호기씨와함께험난하기로악명높은캐신리지조에선발됐다.

노멀루트조가캐신리지초입까지는짐수송을도와주었지만,이후로는세사람이모든짐을올리면서등반해야했다.초반에는배낭무게가30kg에이르렀다.때문에짐을나누어올리고,이후에도짐이너무무겁다싶어햄과초콜릿처럼무거운식량을버리기도했다.그렇게닷새째등반하던날마땅한텐트자리가나타나지않자이튿날새벽3시까지밀어붙이다좁은턱에프렌드와하켄을박아고정시키면서텐트를설치했다.

▲엘캐피탄퍼시픽오션월등반.

“너무좁아쪼그리고앉아서깜빡졸고깨어났더니텐트가턱에겨우걸려있지뭐예요.조금만더밀렸더라면세명모두몇천미터절벽아래로내동댕이쳐졌을겁니다.그날널찍한자리가눈에띄자마자텐트를치고이틀동안잠만잤답니다.하룻밤내내못잔잠을보충할생각으로말입니다.”

세명모두무난히정상에올라등반이다끝난줄알았는데엉뚱하게도하산길에서사고를당하고말았다.노멀루트의마지막캠프인데날리빌리지로내려서기전급경사설사면에서배낭을깔고앉아쉬다가일어서는순간미끄러지고말았다.

“호기형은로프에충격이전해지는순간미끄러지고말았는데,마침바위부근에있던동석이형이발을크랙에끼워넣는덕분에추락을멈출수있었습니다.그런데그충격으로동석이형은복숭아뼈가깨져나가는부상을당하고말았답니다.쩔뚝거리며암빙설혼합능선과헤드월절벽구간을내려선다음매킨리시티에서헬기를타라니까먼저내려가면뭐하냐는바람에동석형을썰매에싣고내려왔답니다.형때문에목숨을건진것이나다름없으니형을실은썰매를끌고내려오는데조금도힘들지않더군요.”

바위를타면서도슬랩등반은자신이없었다.그런데묘하게도매킨리에서돌아오자인수봉과선인봉이작게느껴지고,바짝선슬랩도누운것처럼느껴졌다.웬만한길은가볍게앞장서오를수있었다.그렇게자신이생기면서또다른고산이머릿속에그려졌다.

“제가살던마을은내변산이가까이보이고,선운산과내장산도평야끝에솟아있는곳입니다.김제평야바로아래였으니까요.아마그시절돌아다니는습성이제몸깊이파고들었던가봅니다.밥을굶어가면서먼곳을다녀오고,기차소리에십리이상떨어진철길도마다않고다녀오곤했으니까요.매킨리를다녀온뒤제몸에내재해있던그방랑벽이솟아나더군요.”

다음번고산으로아콩카구아를염두에두고계획을세웠다.97년준비해98년초에나설생각이었다.그런데97년말불어닥친IMF여파로무산됐고,그래서한해뒤인99년말아콩카구아를등반하게된것이다.아콩카구아등반을대여섯달앞두고미국요세미티의엘캐피탄도등반했으니,그스스로‘비행기병’이라는방랑벽이도져도단단히도진셈이다.

“한달쯤배운알량한인공등반기술을가지고거벽에붙었지만,색다른감흥에즐거웠습니다.절벽에설치한포타레지에누우면등밑은수백m절벽인데도밤하늘에총총히박힌별들은환상적이었으니까요.휴가기간에맞추느라동료들보다열흘앞서귀국하는데정말오기싫더군요.그런데지난해또다시엘캡을등반할때는루트가먼젓번에비해어렵기도했지만,고정로프를걸어놓은뒤본등반을포기하고말았습니다.등반을앞두고캠프에내려와자는데,꿈에여섯달밖에안된딸아이가아장거리며다가오지뭡니까.이미지훈련에소홀해마인드컨트롤에실패했던거죠.”

▲퍼시픽오션월루트로올라선엘캐피탄정상.왼쪽부터이민호,정승권,박종관씨.

2000년마침대한산악연맹에서새천년을축하하는7대륙최고봉원정계획이발표되자지원서를냈다.매킨리캐신리지등반경력이먹혀들었던지선발됐고,비행기를탄지나흘만에유럽최고봉인엘브루즈정상에올라설수있었다.그리곤2002년유럽알프스를상징하는난벽인아이거북벽에도도전했다가,날씨가받쳐주지않아몽블랑,뮌히,융프라우등정으로만족해야했다.

“고산에갈때마다외국클라이머들이꼭묻는게있었습니다.에베레스트가봤냐는거였죠.물론아콩카구아등정이후5대륙최고봉등정을꿈꿔왔지만,그런말을들을때마다더욱조바심이생기곤했습니다.”

기회는빨리왔다.2002년봄,서울시산악연맹이티벳등산협회와초모랑마합동등반을계획하고대원을선발한다는소식이들려왔다.이것저것잴이유가없었다.그런데12명선발에고산등반경험이많은클라이머40여명이지원했으니하늘에별따기나다름없었다.그런원정에선발되는행운을안고,2003년봄초모랑마등반에나섰다.

세계최고봉하산길에천길낭떠러지유혹받아

서울시연맹원정대는4월10일BC(5,200m)에입성한이후ABC(6,300m)를구축하고,노스콜(7,000m)에올라하룻밤자고내려오는등등반이순조로웠다.그런데C4를구축할즈음인5월초느닷없이몰아닥친강풍에ABC의모든텐트가바람에날아가고,폴이부러지는등엉망이되고말았다.

“네팔에서텐트를급히가져오는등,어수선한상태로여러날지냈습니다.그런데그게전화위복이되었답니다.정상공격에나서기전까지노스콜을네번이나올랐고,7,900m캠프에도올라갔다내려왔으니고소적응이완벽하게이루어졌고,베이스캠프에서아침마다구보할정도로체력도회복된거죠.”

▲2002년알프스융프라우정상.

박종관씨는엄홍길씨일행이1차공격에성공한다음날인5월22일0시를조금넘어후배두명과함께마지막캠프(8,300m)를출발했다.다른팀보다두세시간빨리출발했기에헤드랜턴불빛으로길을확인하며조심스럽게올라야했다.그런데퍼스트스텝을지나치는사이웬물체가바위에누워있었다.한해전에숨진외국클라이머의시신이었다.후배인고용준씨를불렀다.혼자보면졸도할것같아서였다.

최난구간인세컨드스텝에이어서드스텝을지나칠즈음흰산들이발갛게물들어갔다.그리고잠시후인오전8시30분경세계최고봉정상에올라서는데성공했다.그러나하산길은그를천길낭떠러지밑으로유혹했다.서드스텝을내려서는사이아이젠한짝이벗겨지면서바위턱에걸리고말았다.주우러갈것인가말것인가를놓고짧은시간이지만수십번갈등했다.그러다턱에서미끄러지는날이면수천m낭떠러지아래로곤두박질치리라는두려움이한쪽아이젠만차고내려서게했다.

곧산소통의산소마저바닥이났다.데포지점에놓아둔산소통을찾아보았지만,누가가져갔는지눈에띄지않았다.거의탈진한상태였으나마지막캠프로무사히내려섰고,C4(7,900m)로내려설시간도충분했다.하지만,산소의도움없이여러시간을보내는사이체력과정신력은바닥이나있었다.

C5에서하룻밤더자고한쪽발만아이젠을찬상태로겨우겨우노스콜캠프로내려서는사이그의머릿속에서는다시는이런미친짓은하지않겠다는생각으로가득채워졌다.그런데노스콜을내려서고기나긴플라토를지나ABC에귀환,선배들과포옹하는순간그의머릿속에선또다시새로운설산이그려지고있었다.

▲킬리만자로정상(2004년).

박종관씨는에베레스트에서돌아온지몇달지나지않아같은산악회후배인장진씨(37)와결혼했다.그리고이듬해아프리카킬리만자로를올라5대륙최고봉을마무리했다.게다가99년초보수준으로덤볐던엘캐피탄도찾았다.이렇게96년매킨리이후꾸준히고산등반을하며지내는데단한번도직장을그만둔적은없다.산보다는사회생활이우선이라는생각때문이다,

“물론직장상사나동료선후배들이이해해주어가능한일이지만,저역시무리하게원정나가서는안된다고생각하고있습니다.그래서원정때마다휴가기간과경제적부담등여러상황을고려해서결정해왔습니다.사실얼마전귀국한창가방팀에도끼고싶었습니다.그러나두달간자리를비운다는게현실적으로불가능하다는판단에포기한겁니다.”

박종관씨는98년부터2002년까지4년간수유리정승권등산학교실내암장에서50m밖에떨어지지않은집에서살았다.조금이라도운동을더하자는생각에서였다.그런데실상은운동끝나면선후배들과어울려술마시는재미에빠져병원에지각하는날이많았다.

“그래도그때가제게는가장즐거운시절이었던것같습니다.지금도산이좋아서라기보다는산친구들이좋아산에다니고있으니까요.제인생의절반은산덕분에이루어진것같습니다.산에다니다보니몸이강해졌죠,같은산악회후배를아내로맞아들였죠,게다가직장에서유명해지기까지했으니까요.특별한욕심은없습니다.산친구들이좋아산을다니고있듯이산우들에게싫은소리듣지않고계속다닐수만있다면그것으로만족합니다.”

박종관씨는내년여름바름산악회창립10주년기념낭가파르밧원정에참가한다.파키스탄의해발8,125m의이거봉을등반하려면두달이상걸린다.그렇지만등반기간내내대원들과함께지내기는어려울것이라말한다.

“회사에서받아낼수있는기간은한달입니다.그래서그한달간시도해보다가안되면돌아와야한답니다.그등반에아콩카구아에서손가락을잃은후배도참가하기로돼있습니다.얼마전직장상사께술한잔마시면서제꿈을솔직히털어놓았습니다.이번에도아내가말리지않을겁니다.결혼전에산에가는것하고술마시는건말리지않겠다는다짐을받아냈으니까요.”

“7대륙최고봉모두올라야직성풀려”

▲2004년5월22일,같은산악회회원인구은수씨(왼쪽)와함께세계최고봉에베레스트정상에올라선박종관씨.

박종관씨는2002년수유동에서옥수동으로이사한후집부근의실내암장인손정준클라이밍연구소에서운동하고있다.그는99년요세미티를다녀온뒤하드프리등반에푹빠져현재5.12급수준에이르렀다.하지만올연말부터당분간하드프리를접어둘계획이다.낭가파르밧등반을위해몸을만들어야하기때문이다.

매킨리때부터고산등반을앞두곤6개월간크로스컨트리로체력을강화시켰다.수유동에살때는가벼운배낭을메고집에서부터우이동을거쳐백운대까지달렸다.숨이턱까지차오르고,머리가어찔어찔할때까지속도를높였다.이번에는집근처의매봉산에서훈련할생각이다.

“고산등반을앞두고가장좋은훈련은크로스컨트리인것같습니다.실내암장훈련은상체는좋아지지만하체강화에는별다른도움이되지않으니까요.아무튼이번여름에도고향집에갈겁니다.하루는어머니와함께지내고,둘째날은선운산에가서바위를하고요.10여년간해왔듯이말이죠.그런데참,킬리만자로정상에서한생각이뭔지아십니까?남극대륙이떠오르면서빈슨매시프가솟아오르지뭡니까.아무래도기회가오면꼭가야할것같습니다.아무래도7대륙최고봉을모두올라야직성이풀릴것같아서요.”

그는영원한방랑자다.

글:한필석기자/월간산[430호]2005.08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