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클라이머의 삶] -* 박희영씨 *-
[이클라이머의삶]
네파탈레이사가르-조긴원정대박희영대장

박희영씨(朴喜英·38·알펜그로우대표)-.그가재난구조대대원들로이루어진네파(NEPA)원정대를이끌고한국팀들이10차례의도전에도불구하고해결하지못한인도히말라야의난벽탈레이사가르(6,904m)북벽과조긴(6,465m)에도전한다.

“탈레이사가르는7월8일세계9위고봉인낭가파르밧등정에성공한구은수대원과,등반경험이많은서우석형을주축으로등반하게될겁니다.대원들이경험이많지는않지만젊은패기가넘치고여러해동안쌓아온팀웍으로밀어붙인다면해볼만하다고생각합니다.그리고8월20일출국할후발대는스키를타고북서릉을통해조긴정상에도전할겁니다.”

탈레이사가르는한국산악계의과제로남아있는봉이기도하지만,박희영씨개인적으로도한이많은산이다.98년가을북벽등반을마치고정상설원을오르다추락사한신상만·최승철·김형진씨가절친한산우들이었기때문이다.

“원정을결정짓기전승철이아내인김점숙씨와형진이형인형일씨한테양해를구했습니다.이번에는우리구조대가도전해보겠다고말입니다.그런인연을떠나서라도탈레이사가르는산꾼이라면오르고픈욕심이생기는봉입니다.특히북벽은볼때마다두주먹을불끈쥐게만드는거벽이니까요.이번등반에서세산우들의한을풀어주고싶습니다.”

스포츠클라이밍·루트세터1세대

사실박희영씨가대장을맡게되었다는소식이전해졌을때적잖은이들이의아해했다.무엇보다대장을맡기에는체격조건이어울리지않아서다.그러나,선배에게깍듯하면서도후배들에게너그러운성격을지닌데다어린시절부터열정적으로펼쳐온등반활동으로볼때대장자격이충분하다는게그를잘아는이들의중평이다.

이미고교시절전국등반대회에서우승을차지한바있는그는스포츠클라이밍1세대이자루트세터1세대로꼽힐만큼등반경력도오래됐고기량도뛰어난클라이머다.그런그에게작고가벼운체격은어린시절부터핸디캡으로따라다녔다.84년동양공고에진학,산악부에들어갔을때도그랬다.선배들은동기인주광인은늘함께인수봉을오르면서희영에게는텐트나지키면서기다리라고했다.몸이약해보여한두번나오다그만두려니생각했기때문이다.

“그때나지금이나키는160cm정도로비슷하지만몸무게는지금의53kg보다도4~5kg덜나가는체격이었으니산에다니기에어울리지않는다고생각했던거죠.그런데도저는산에있다는것만으로도행복했습니다.인수봉처럼큰바위는아니더라도캠프장주변에널려있는바위에서등반을즐길수도있었고요.그래서한주도빠지지않고산행에참가했죠.”

▲인수봉남측에개척한‘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를등반하는박희영씨.(왼쪽)도쿄월드컵을마친뒤찾은푸라고야마암장.(오른쪽)

악착같이바위에붙었다.가르쳐주는이도거의없었지만가능한선이다싶으면올라붙었다.방학이면아예북한산백운산장뒤편능선에텐트를쳐놓고살다시피했다.그렇게칼을갈고닦은희영이인수봉정상에처음올라선것은2학년2학기동기주광인씨와함께해낸비둘기길등반이었다.인수봉루트중비교적쉬운길이었지만뭐가뭔지모를만큼정신이없었다.하지만정상에올라서서백운대를마주보고,산아래서울시를내려다보는순간이루말로표현할수없는기쁨이밀려들었다.

박희영의등반력은고교3학년때부각되었다.북한산족두리바위맞은편의코끼리바위에서전국암벽대회가열린다는소식을들은희영은선배들에게대회에나가면어떻겠냐고슬쩍물어보았다.대답은나가봤자결과가뻔한데뭐하러나가냐는투였다.

그러나그는학교에서1주일간의훈련기간을허락받아내어경기루트인코끼리크랙에매달리고매달린끝에결국고등부우승을차지했다.선배들을깜짝놀라게하는결과였고,그제야선배들은박희영의존재를인정하게되었다.이후희영은바위에만가면신날수밖에없었다.

▲아마다블람정상에서거리회깃발을펼쳐들고있는박희영씨.(위쪽)가셔브룸1봉아이스폴지대.(아래쪽)

“정말미친듯이등반했습니다.같은루트라도매번다른스타일로등반했습니다.물론그때마다한단계높은기술이었죠.마침프리클라이밍붐이한창일때였죠.그런영향을받은선배들은등반할때볼트를절대못잡게했답니다.다른산악회회원들은볼트를잡거나밟으면서쉽게오르는데말이죠.또확보물이안전하다싶은루트만나타나면선등을서게했습니다.그렇게치열하게등반한게보약이되었던것같습니다.”

고교를졸업하자마자여러해동안꿈꿔오던전국암장순례에나섰다.프리클라이밍붐이한창무르익던80년대중반,경남일원에는고난도하드프리루트가많이개척되고있었고,이근택,임두학,유재경등국내최고수의기량을지닌클라이머들이많았다.

“반년동안해병대볼더,꼬시락바위,무명암,대륙암등마산과부산등지에있는이름난바위란바위는다찾아다녔죠.당시서울일원의암장에서는접할수없을만큼어렵고도재미있는바윗길들이었습니다.바위에붙어지내기만하면최고의바위꾼이되는줄알았는데,그게아니더군요.이근택선배를통해평소에도끊임없는트레이닝이필요하다는사실을깨닫게되었으니까요.”

서울로돌아와며칠쉰다음인수봉으로향했다.곧암장순례를다녀오기전과많이달라졌다는걸느낄수있었다.길을읽는눈이좋아지고,루트에맞는등반방식이곧바로떠올랐다.6개월간의순례가등반기량을한단계업그레이드시키는좋은결과를가져다준것이다.

88년월출산에서열린전국암벽대회에서3위에입상하면서희영은서울지역을벗어나전국구클라이머로부각되었다.대회이튿날보충역으로입대한희영은안양의모예비사단에서근무하면서도휴일이면바위를찾아다녔다.그리곤제대하자마자또다시암장순례에나섰다.이번에는일본의조가사키해벽투어였다.

“매끄러운바위가있는가하면,칼로베어낸듯날카로운바위도많이있었습니다.당시만해도국내에는직벽루트들이주를이루었는데,조가사키에는오버행이나아예천장을거쳐야하는루트들이대부분이었습니다.신기하기도하고황당하기도했죠.서커스나신데렐라보이같은길은국내에없는5.12bc~5.13a급루트였고요.”

서울시연맹구조대입회후고산도접해

▲지난겨울천화대암릉에서훈련등반중인박희영씨.

비록열흘남짓한짧은기간이었으나희영은큰경험을쌓았고,그경험을바탕으로인수봉남측에5.12c급페이스루트인‘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를개척할수있었다.길이는10여m에불과하지만작은홀드를레이백자세로잡아당기면서언더크랙으로진입한다음상단의포켓홀드에손가락을넣어야등반이끝나는,지금까지도완등해낸사람이몇안될정도로어려운바윗길이다.

“조가사키를다녀오기전까지는그런페이스에길을낸다는건상상도안되었죠.선운산암장과간현암에하드프리루트가많이생기면서찾는사람이거의없습니다.저역시해본지오래되었고요.아마지금제실력으론어림도없을겁니다.그때는군생활하느라등반을더욱열심히하지못한게아쉬워‘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라고이름을지냈는데,또그런시간이많이흘러가고있는것같아아쉽습니다.”

그는91년일본도쿄에서열린스포츠클라이밍월드컵대회에서다시한번세계수준의클라이머들과의격차를경험하고,외국선수들의진지함과도전자세에도감탄했다.대회가끝난다음에도실패한루트에재도전하는모습은그에게진정한클라이머가되려면얼마나몰입해야하는가를깨닫게해주었다.

대회를마치고또다시나선일본암장순례를통해여러암질의암장과고난도루트를경험한그는이후선수보다는루트세터로서대회에참가하곤했다.우연찮은기회에프랑스국가대표코치들의세팅교육에참가해보곤세팅도나름대로재미있는일이다싶었다.

“아시안컵은1회부터3회대회까지연속으로세팅했습니다.이후국내대회세팅을했고요.참가선수중몇명이완등하고,몇명은떨어지게한다는계산을하곤길을만든답니다.결선루트는단한명만오를수있게만들지요.그게딱맞아떨어지면정말기분이좋아요.물론도중에다떨어지거나한지점이너무어려우면선수들과관중들에게욕을먹게되지만요.”

박희영은94년서울산악조난구조대에들어가면서산행의폭이한층넓어진다.거리회선배이자당시구조대장인장봉완씨(서울시연맹부회장)의권유에의해서였다.거리회는동양공고산악부산행때마다물심양면으로도움을준산악회였고,그로인해동양공고산악부출신들이거리회에들어가는게자연스런일이었다.그는구조대입회이듬해파키스탄히말라야의가셔브룸1봉(8,068m)원정에참여하는행운을얻는다.

▲아마다블람캐러밴중설봉과설릉을배경으로.

“유학재형이랑함께트랑고에서몸담고있을때늘회사이름과똑같은트랑고타워를언젠가도전해보자고약속하곤했었죠.그꿈이부근에있는더높은고봉으로바뀐셈이었습니다.아무튼매일바위에만붙어지내고산에서잘적응할까걱정했는데뜻밖에괜찮았습니다.그래서해발7,300m인마지막캠프까지오르긴했는데,등정은시도조차못했답니다.짙은안개가벗겨질기미를보이지않자장봉완대장의철수지시가떨어졌으니까요.

별별일다겪은등반이었습니다.먼저하산하다크레바스에빠진대원이무전기로구조요청을했는데,가까이있던슬로베니아팀닥터가구해내려다그역시크레바스에빠지는사고를당하기도했으니까요.며칠앞서정상에오른슬로베니아팀대원이스키를타고내려오는모습은정말환상적이더군요.그래서스키에도관심을갖게되었죠.”

당시박희영씨는암벽화와장비전문제조업체인트랑고스포츠에재직중이었다.그런데직장선배이자산선배인유학재씨역시가셔브룸4봉(7,925m)을등반중이었다.작은규모의업체에서직원두사람이동시에여러날자리를비우게한다는게쉬운일일리없건만당시사장인고홍성암씨는두사람의등반열정을높이사주어원정에참가할수있도록배려한것이다.

박희영씨는96년한순분씨(35)와결혼한후여러해동안사회생활과가정생활에충실하기위해산과조금거리를두며지냈다.아비가민-무쿠트파르밧원정등고산등반의기회도포기했다.그러나4년쯤지나자열정이다시살아나견딜수없었고,이를눈치챈거리회선배들은아마다블람원정에그를끌어들였다.2000년늦가을이었다.

“너무너무좋았습니다.흰산을오른다는게이렇게좋은거구나하는사실을새삼깨달았으니까요.오랜만의원정이라걱정도많이했는데,다행히고소적응도잘되었습니다.함께정상에오르기로한후배들이도중에컨디션이나빠지자포기하는바람에셰르파와둘이서정상에올랐죠.에베레스트,로체,초오유등고봉들이바로앞에솟아있더군요.바람이정신을쑥빼놓기는했지만살아있다는게그렇게좋을수없었습니다.”

박희영씨는2003년4월10년가까이다니던트랑고스포츠를그만두었다.그리곤대전으로생활터전을옮겼다.남한땅의중심인대전에서등산장비를만들어팔면성공하리라믿었다.

“미싱으로만드는제품은다만들었습니다.특히바지가주아이템이었죠.생각처럼되지않더군요.낯선지역이라예상치못한걸림돌도많았고요.그래서1년반쯤지나다시살던곳으로돌아오게되었습니다.”

박희영씨는2004년11월부천으로자리를옮긴이후알펜그로우라는브랜드의제품을선보이고있다.예전에치중하던제조업대신인권비가비교적저렴한중국의공장에서생산해낸소품위주의제품들을국내에공급하는일이다.

“산은내인생의활력소입니다”

▲가셔브룸1봉훈련등반중오른한라산백록담.

용두동실내암장인서울클라이밍센터에서인연을맺은한순분씨와성은(딸·초교4년)과정우(초교2년)를키우며단란한가정을이끌고있는그는이번원정을결정하는데고민이많았다.

“선배들이많은상황에서대장을맡아야한다는부담도컸지만,사업이이제겨우자리잡아가는상황에서오랜기간자리를비운다는게아무래도가장큰걱정이었습니다.파트너업체측에서도의아해했고요.돌아오면더욱열심히일해야겠죠.두달간못한일까지하다보면몸무게가더줄지않을까벌써부터걱정이네요(웃음).등산은참묘한스포츠입니다.몸이파김치가되도록산행하고나면사회생활도열심히하면성공할수있으리라는자신감을불어넣어주니말입니다.한피치든정상이든목표로삼고산을다니다보니사회생활에서도목표가정해지면포기하지않고끝까지밀어붙이게되는것같습니다.그런면에서산은제게큰활력소가되어주는것같습니다.”

7월25일출국을보름쯤앞두었을때에도박희영씨는이미원정에돌입해있었다.수시로대원들에게맡겨놓은일을확인하고,또선배들의주문을받고이리저리뛰어다녔다.그런데도얼굴에는늘미소가넘쳤다.

“여러해동안일에시달리며지내다보니하고싶은등반을제대로못했습니다.남들이생각할땐저정도면바위를실컷했다고할수있겠죠.하지만늘미련이남습니다.특히예전에가볍게오르던길에서자세가나오지않을때면정말갑갑해집니다.더열심히했어야하는데하는후회가들면서말이죠.이번등반에는정말열심히할겁니다.다시는‘잃어버린시간을찾아서’라는생각이들지않을정도로말입니다.좋은선후배들끼리나선등반인지라잘될겁니다.한번믿어보십시오.”

-글:한필석기자/월간산[442호]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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