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신의병장유적지를벗어나화령(化寧)으로간다.상주와보은을잇는25번국도가지나는화령재는한때제법번잡하던고개였다.고갯마루서쪽의화서면신봉리장터에선매월끝자리가3,8일인날에화령장이선다.고려때부터화서•화동•모동•모서•화북•화남등상주서부인중화지역의중심시장으로역할을해온화령장은1965년부터현대식정기시장이개설되면서전성기를구가하기시작했다.이후70~80년대엔“다른지방에서화서는몰라도화령장은안다”고할정도로성황을이루었다.당시장날이면사람어깨가부딪혀서걷기어려울정도로인파가붐볐다지만,지금은점심무렵이면어느덧파장분위기가풍겨나오는시골장이되었다.
화령장으로유명했던화령은6•25전쟁때낙동강방어선전투중칠곡군가산면의다부동전투다음으로치열했던화령장전투가벌어졌던곳이다.‘한국전쟁사’는1950년7월17일부터25일사이화령장주변에서처절하게벌어졌던전투를생생히기록하고있다.
당시북한의인민군제15사단은괴산에서보은에이르기까지국군제1사단을공격하는한편,증강된1개연대로일거에화령장을돌파하고상주를점령하려했다.국군제6사단의병참선을차단해이를격파한다음북한군제1사단과협공하여대구를점령하려는계획이었던것이다.
화령주변은백두대간을따라나있는산간도로인보은~화령장~상주에이르는도로와,괴산~갈령~화령장~상주도로의합류지점으로백두대간을통과하여상주로연결되는요충지였다.그러나국군은이곳의중요성을미처파악하지못했고,따라서병력도배치하지않았다.이점을간파한인민군은이곳에제15사단을투입하여집요한공격을감행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