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준의 향토기행] 상주 4. *-
[르포라이터민병준의향토기행]상주4
▲백두대간국수봉에서내려다본중화지구대.

김준신의병장유적지를벗어나화령(化寧)으로간다.상주와보은을잇는25번국도가지나는화령재는한때제법번잡하던고개였다.고갯마루서쪽의화서면신봉리장터에선매월끝자리가3,8일인날에화령장이선다.고려때부터화서•화동•모동•모서•화북•화남등상주서부인중화지역의중심시장으로역할을해온화령장은1965년부터현대식정기시장이개설되면서전성기를구가하기시작했다.이후70~80년대엔“다른지방에서화서는몰라도화령장은안다”고할정도로성황을이루었다.당시장날이면사람어깨가부딪혀서걷기어려울정도로인파가붐볐다지만,지금은점심무렵이면어느덧파장분위기가풍겨나오는시골장이되었다.

화령장으로유명했던화령은6•25전쟁때낙동강방어선전투중칠곡군가산면의다부동전투다음으로치열했던화령장전투가벌어졌던곳이다.‘한국전쟁사’는1950년7월17일부터25일사이화령장주변에서처절하게벌어졌던전투를생생히기록하고있다.

당시북한의인민군제15사단은괴산에서보은에이르기까지국군제1사단을공격하는한편,증강된1개연대로일거에화령장을돌파하고상주를점령하려했다.국군제6사단의병참선을차단해이를격파한다음북한군제1사단과협공하여대구를점령하려는계획이었던것이다.

화령주변은백두대간을따라나있는산간도로인보은~화령장~상주에이르는도로와,괴산~갈령~화령장~상주도로의합류지점으로백두대간을통과하여상주로연결되는요충지였다.그러나국군은이곳의중요성을미처파악하지못했고,따라서병력도배치하지않았다.이점을간파한인민군은이곳에제15사단을투입하여집요한공격을감행했던것이다.

▲김준신장군의가족들이자결했다는낙화담.임진왜란당시에는이보다훨씬넓었다고한다.
그러나화령장주변에서자전거를타고가던인민군전령을생포한국군제17연대가적의작전을미리파악하고,화령동쪽의상곡리와갈령주변의동관리에서각각매복작전을펼친끝에남진하는인민군을격퇴할수있었다.이로써백두대간분수령을넘어상주지역에서국군제2군단의퇴로를차단코자했던인민군의의도는저지되었다.결국개전이후계속밀리기만하던국군은이전투에서승리함으로써최후의낙동강전선구축에6일이라는시간적여유를얻게되었다.화령장전투에서대승을거둔제17연대전장병은1계급특진하였다.화서면신봉리마을입구에세워져있는화령지구전적비는이를기념하기위해세운것이다.

화령에서북으로방향을잡고지방도를타고갈령을넘으면화북이다.이곳은속리산천황봉,청화산,도장산을잇는삼각형의한중간에자리한산속의이상향이다.이곳은어디서든속리산의불꽃같은암봉들을감상할수있다.흔히속리산이라하면유명한법주사때문에보은을떠올리지만,주봉인천황봉과오래전부터속리산의상징으로군림해온문장대는상주에주소를두고있다.즉,주봉인천황봉은상주시화북면상오리요,문장대는상주시화북면장암리다.산행거리도상주쪽에서오르는게훨씬가깝다.

▲중화지구대를지나는백두대간분수령일부구간에는논과밭이자리를잡고있다.

청화산(靑華山•984m)은늘재의잠룡(潛龍)이승천하는형국이라는명산이다.부드러운능선과날카로운암릉이적절히섞여있는데,정상부근의바위에서사방으로탁트인주변산하를바라보면정말로행복하다.특히품위가넘치는천황봉의위용과문장대까지울퉁불퉁이어진바위들의기세가제법당당하다.이땅의산하를사랑한조선의지리학자이중환역시청화산칭송을아끼지않고있다.

‘청화산은내선유동과외선유동을위에두고,앞으로는용유동을가까이두고있는데,수석의기이함은속리산보다훌륭하다.산의높고큼은비록속리산에미치지못하나,속리산같은험한곳은없다.흙으로된봉우리에둘린돌은모두밝고깨끗하여살기가적다.모양이단정하고좋으며빼어난기운을가린곳이없으니,거의복지(福地)다.’

▲곶감을널어놓은풍경.상주에서는가을과겨울사이에이런광경을흔히볼수있다.
이정도의극찬이니이중환이스스로의호를청화산인(靑華山人)이라칭했어도전혀이상한일이아니다.그래서이중환과청화산의인연을아는사람들은이곳어딘가에이중환과관계된유적이남아있을거란기대를갖고그흔적을찾고있다.

도장산은앞의두산에비해유명세는떨어지지만역시속리산천황봉•문장대,청화산등의조망이눈앞에거칠것없이펼쳐지니,이러한세산한가운데자리한화북에선비록풍수를보는눈이트이지않은평범한사람도맑은기운을느낄수있다.이길손이경험해보니역시사계중에가을무렵,추석전후가절정이었던것같다.

풍수가들은이렇듯‘속리산천황봉,청화산,도장산을잇는삼각형산줄기의형세가마치속세를떠난유•불•선의대가들이모여앉아담론하는형국’이라말한다.그삼각형한가운데자리한화북의용유동(龍遊洞)은민초들이절박하면서도질박한꿈을모아이뤄낸이상향이다.용유동은병화(兵火)가침범하지못한다는신비한마을.비결을믿는사람들은이곳의지형이마치소의배안처럼생겨사람살기에더없이좋다하여우복동(牛腹洞)이라고부른다.

▲화령장지구전적비.화령은6•25전쟁때다부동전투다음으로치열했던화령장전투가벌어졌던곳이다.

우복동의지세를보면서쪽은백두대간의속리산바위병풍에첩첩이막혀있다.또북쪽은백두대간늘재를넘어야괴산으로연결되며,남쪽은갈령을넘어야멀리상주로갈수있는데다가,고개를넘지않는유일한관문인동쪽의문경가는길은가파른벼랑이연이어있는쌍룡계곡이막고있다.지금은아스팔트로포장되어있으나이처럼예전엔접근조차어려운깊디깊은산골이었다.결국우복동은전쟁이나천재지변에도안심하고살수있다하여이땅에사는민초들이영원한이상향으로여겨온십승지(十勝地)의다른이름인것이다.

우복동믿음의중심지인용유동길가엔‘洞天’이라쓰인바위가있다.비스듬히누운바위표면에새겨진멋들어진글씨는조선의명필양사언(楊士彦•1517-1584)의친필이라전한다.우복동의비결을믿는사람들은“분명우복동천(牛腹洞天)일것인데,우복동을함부로밝힐수가없으니양사언이지명을밝히지않고그냥동천이라고만쓴것”이라고말한다.

이런화북에서돌불꽃이룬속리산,신비로운청화산과도장산,그리고민초들의이상향인우복동을한꺼번에조망할수있는최고의명당은다름아닌장암리에있는견훤산성이다.산성입구에서20여분만걷는다면아마평생다시만나기어려운풍광을만날수있을것이다.그자리가다시그립다.

/글•사진민병준[월간산[456호]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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