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의 산 그리고 사람] <3~4> 엄홍길과 손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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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의산그리고사람]<3>오늘로체샤르등정장도엄홍길


2003년두후배앗아간그곳,생애가장긴등반으로뇌리에
더오를곳없는14좌등정성공,그러나성취감보다허탈감이…
’14+2’좌완등마침표찍으려대원6명과다시그곳을간다.

엄홍길대원

2005년3월24일오후3시.나는엄홍길(46)과함께남체바자르에서북동쪽25거리에있는한5,000㎙급무명봉위에올라있었다.일반트레커들이갈수있는마지막마을인추쿵(3,730m)에서두시간쯤떨어져있는곳이다.풍광이수려하기로유명한쿰부히말지역에서도몇손가락안에꼽힐만큼장쾌하게펼쳐진설산들의파노라마가절로찬탄을자아내게한다.

그중에서도단연압권은물론비현실적으로느껴질만큼서슬푸르게깎아지른로체(8,516㎙)와로체샤르(8,400m)의남벽들이다.그러나어찌된일인지엄홍길은이천상의절경앞에서도굳은표정을풀지못했다.그는두눈을꼭감고낮은음성으로불경을외더니배낭안에서술병하나를꺼내들었다.

임자체(6,189㎙)등반을하루앞두고고소적응을겸한정찰쯤되겠거니하고받아들였던나의예상이깨지는순간이다.그는로체샤르남벽을바라보며무릎을꿇고앉아정성스레두잔의술을올렸다.그리고붉어진눈시울을닦으며신음처럼내뱉은그의탄식을나는오래도록잊지못한다.“내가가많은놈이야…내가산에다니면서(業)을많이지었어…”

2003년10월5일낮12시20분.엄홍길은로체샤르의남동릉을통하여8,250m)까지진출해있었다.2001년악천후때문에7.600까지진출했다가패퇴했던쓰라린기억을깨끗이지워버릴설욕전의성공이바로코앞에닥쳐있었던것이다.70도가넘는경사의빙설벽트래버스구간이나오자그때까지후미를맡았던젊은대원들둘이선두를자청하고나섰다.박주훈(당시35)과황선덕(당시27)이다.

그들은앞서거니뒤서거니하며트래버스구간을무사히통과했다.이제남은것은정상까지연결되어있는150m의대암벽구간뿐이다.선등자가대암벽구간에달라붙었다.나비처럼날렵한모습이다.후등자가확보를보던손에잔뜩힘을주었다.워낙가파른절벽이었기때문이다.그러나다음순간“쩡!”하는굉음과함께이절벽에는지옥이들이닥친다.판상(板狀)눈사태가발생한것이다.

히말라야벽등반도중판상눈사태를맞으면백약이소용없다.그순간누군가소리를질렀는데그것이“아악!”하는비명소리였는지“추락!”이라는외마디절규였는지엄홍길은기억하지못한다.다만본능적으로벽에몸을붙이며자일을움켜잡았을뿐이다.하지만3,000㎙아래로추락하는두대원의체중을낚아챈다는것은불가능한일이다.

“정말순식간이었습니다.눈사태는이미골짜기아래까지내려가하얀설연이피어오르는데…장갑은순식간에타들어가내손에서핏물이배어나는데…핏물을머금은우모(羽毛)들이내눈앞에둥둥떠다니던풍경들이지금도생생합니다.”

박주훈과황선덕은그렇게갔다.하지만사고당시엄홍길은그들의죽음을실감할겨를조차없었다고한다.생각해보라.그곳은히말라야8,250㎙지점이다.그는이제70도경사의빙설벽을트래버스하여되돌아가야한다.그런데그의손은이미피로물들었고그에게는자일이없다.

엄홍길은그때의트래버스를‘생애에서가장길고끔찍했던등반’이었다고기억한다.그리고트래버스를끝내고마침내주저앉을만한공간에이르렀을때에야비로소후배들의죽음을실감했다고한다.그가할수있는일이란그저파랗게굳은얼굴을무릎사이에파묻고하염없이흐느끼는것뿐이었다.

2000년7월31일오전6시30분.엄홍길은K2(8,611㎙)정상에섰다.그가오른14번째8,000㎙급정상이었다.아시아인으로서는최초였고,인류역사상8번째의대기록이다.이제그는‘더이상오를산이없는’히말라야등반가로서남은여생을명예와축복속에편히보낼수도있었다.

그런데그는느닷없이‘14+2완등’이라는새로운목표를제시했다.위성봉에서점차로독립봉으로인정되는추세에있는얄룽캉(8,506㎙)과로체샤르를마저오르겠다는것이다.산악계안팎에서찬반양론이들끓었다.어떤이는그를칭송했고다른이는그를폄하했다.과연그는왜히말라야등반을멈출수없는것일까?

그는일생일대의목표를성취했다는기쁨보다는허탈감에시달렸다고고백한다.한동안그는술만마시면먼저간산친구들이보인다며괴로워했다.엄홍길은그의자서전‘8000미터의희망과고독’에서이렇게말한다.“혼자만따뜻하고행복하게지내는것같아서,찬얼음벽속에갇혀숨진동료들에게미안한생각을떨칠수없기때문이다.아마이러한업이쌓여나는영원히산을떠나지못할것이다.”

2006년3월10일밤9시.지난해의휴먼원정대원들과올해의로체샤르남벽원정대원들이서대문의한선술집에서마주앉았다.되돌아올대답을뻔히알면서도내가물었다.“거길꼭가야만되겠어?”엄홍길은의연하게씨익웃으며담담하게말했다.“주훈이랑선덕이랑거기서기다리고있는데…내가걔들을대신해서라도로체샤르에는꼭올라가야지!”어떤사람들에게산은단순한등반의대상이아니다.

그들은그곳에있을때에만자신이존재하는이유를확인한다.그곳을하루아침에등지기에는그동안쌓아온업보들이너무도많다.엄홍길에게히말라야는꼭그런곳이다.2006년3월16일밤9시.엄홍길이이끄는‘2006한국히말라야로체샤르남벽원정대’가장도에오른다.

이미2004년에얄룽캉정상에올랐으니그가제시한‘14+2완등’계획의마침표를찍으러떠나는셈이다.대원6명의단촐한규모이지만사기만큼은그어느때보다도드높다.그의21년히말라야인생에‘화룡점정’이이루어지는순간을함께하지못하는것이몹시아쉽다.뒤에남은사람은다만그들의안전등반과무사귀환을기원할뿐이다.

▲로체샤르남벽이란?

로체는에베레스트(8,850㎙)의남쪽에있는세계제4위봉이다.사우스콜(8.000㎙)에서왼쪽으로오르면에베레스트이고,오른쪽으로오르면로체이다.‘로체’라는말은티베트어로‘남쪽에있는커다란산’을뜻한다.또로체샤르(8,400m)에서‘샤르’란‘동쪽’이란뜻이기때문에로체샤르는곧로체의동쪽에있는산을의미한다.

로체샤르는오랫동안로체의위성봉처럼여겨졌지만현재는점차독립봉으로받아들여지는추세이다.한때로체역시에베레스트의위성봉처럼인식되어왔다는사실을상기하면충분히설득력있는주장이다.한국인이최초로8,000m를돌파하여올랐던산이바로로체샤르이다.

1971년대한산악연맹의최수남대원이8,200㎙까지진출했으나기상악화로철수했던기록이있다.여지껏의로체샤르등반은대체로남서릉이나남동릉을통해서이루어졌다.하지만이번에엄홍길은대담하게도남벽을선택했다.로체샤르남벽은‘세계에서가장험난하다’는평가를받고있는로체남벽과나란히붙어있다.

벽의수직표고차가3.000㎙이상이고,잦은눈사태와낙석,그리고티베트쪽에서불어오는강풍으로인해극한상황을자주연출한다.아직까지남벽을통하여로체샤르정상에오른한국원정대는없다.엄홍길은자신의16번째8,000m산으로가장혹독한조건의루트를선택한셈이다.

불경이새겨진바위너머로오른편위쪽에로체와로체샤르가솟아있다.두산은남벽은서로맞닿아있다.심산제공

<4>산을카메라에담는손재식


자일깔고바위에매달려사진찍고글까지쓰며1인3역
느긋하게즐기며일과놀이를완벽하게조화시킨사람

손재식.국내최고수준의산악사진작가로서일과놀이를완벽하게조화시킨사람이다.

온라인폴–>

나는어떠한산악회에도소속되어있지않다.남들에게폐를끼치고싶지않아서이다.내게는빨리걷거나잘오를있는능력이없다.머쓱한변명을늘어놓자면사실은그럴의향조차도없다.내가생각하는산은단체행동의공간이나기록경기의대상이아니다.

산이란모름지기천천히걸어오르며즐겨야된다.나의이러한등산관을어여삐여기고너그럽게품어줄산악회는이세상에없다.덕분에나는늘홀로,아니면나와같은산행태도를지닌사람들하고만산에오른다.농담삼아이르기를산중한량(山中閑良)들의느슨한연합체이다.

성질급한사람들이나와함께산에오르다가는제풀에스트레스를받아나가떨어지기십상이다.시냇물이나오면발을담그고,숨이조금만차면주저앉아사과를깎아먹으며,멋진풍광앞에서면그자리를떠날줄모른다.심지어바위를오르다가도엉덩이를붙일만한그늘막이나타나면자리를확보해놓고길누워낮잠을즐기기도한다.

그들은성질을못이겨냅다소리를지다.“야임마,너지금놀러왔냐?”나는더욱편하게자세를고쳐잡으며당연하다듯대답한다.“응,나지금놀러온거야.”그런내가임자를만났다.나보다더느린속도로산을즐기는사람이바로산악사진작가손재식(50)이다.언젠가그와단둘이도봉산에올랐을때의일이다.

떡과미역국등으로간단히점심을해결하고나자그가배낭에서해먹(그물침대)을꺼냈다.“산에서자는낮잠이야말로최고의단잠이지.”막잠이들려는순간빗방울이후두둑떨어지기시작했다.우리는오버행으로이루어진바위밑으로자리를옮겼다.나는준비해간와인을꺼냈고,그는우크렐레(작은기타모양의악기)를꺼냈다.우리는

추적추적내리는산비를바라보며와인을마시고우크렐레를연주하다가저도모르는사이에스르륵잠이들어버렸다.그단잠에서불현듯깨어났을때시야를가득메웠던비에젖은도봉산이얼마나청신하고아름다웠는지….오래도록잊혀지지않을만큼행복한산행이었다.

그는산악인인동시에예술가다.그가찍은산사진들은이미국내최고수준의작품으로정평을얻고있다.그는다양한주제와앵글의산사진들을찍지만그중에서도단연빛을발하는것은‘산악인으로서찍은’사진들이다.사진작가들은많다.그러나산악사진작가는드물다.산을원경으로찍은산악사

진작가들은많다.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가는길.풍광이멋있고편의시설이잘갖춰져전세계등산애호가로부터큰사랑을받고있다.산악사진작가손재식도지금그곳에서히말라야를카메라에담고있다./월간’MOUNTAIN’진우석기자제공

하지만바위와얼음에찰싹달라붙어실제로등반을해내면서산과산사람을찍을수있는산악사진작가는희귀하다.그런뜻에서손재식은,미국출신의세계적인산악작가갤런로웰(1940~2002)과비견되는‘한국의갤런로웰’이라고할만하다.손재식은그의저서‘하늘오르는길’(2003)의표지앞날개에실린약력에스스로를이렇게소개하고있다.“사진을전공하기전에산을배워,산과사진이삶의중추가되었다.”


“너는글을써,사진은내가찍을게.”우리가함께산행을시작할즈음그가내게한말이다.하지만한동안나는그와산행을할때마다언제나카메라를들고갔다.그리고그와동일한지점에서동일한앵글을잡고셔터를눌러댔다.그러나결과는언제나같았다.그렇게황새를따라가려는어리석은뱁새짓하기를몇번,그이후로나는아예카메라를놓고말았다.따지고보면당연한노릇이다.

한사람이평생에걸쳐이룩한성취를그저어깨너머흉내내기로배워보겠다는속셈자체가애당초말도안되는짓거리였다.하지만그는카메라를든채로나의영역으로넘어왔다.작가로서가아니라‘산악인으로서’글을쓰기시작한것이다.

1998년9월28일오후5시.한국탈레이사가르(6,904m)북벽원정대의신상만(당시32세)최승철(당시28세)김형진(당시25세)대원이세계최초로북벽정면의블랙타워를돌파한뒤무려1,800m를추락하여사망했다.6명이출발했다가3명만귀환한비극의원정대였다.손재식은그때살아돌아온3명의대원들중한사람이다.

유족들로부터그들의이야기를책으로써달라는부탁을받은것은나였다.하지만나는자료들을반년가까이나품에안고있었으면서도쓸수가없었다.식은땀을흘리며악몽에서깨어난적도여러번이다.그들의이야기를결국책으로만든것은손재식이다.그가쓴글다.그가찍은사진들로이루어진책‘하늘오르는길’은한국산악문학의한정점을보여준다.

손재식이국내의한산악전문지에수년째연재하고있는‘한국바위열전’역시우리산악계의큰보물과도같은글이다.한국을대표하는바윗길과얼음길들을초등자들과다시함께오르는과정을담은연재물인데,사료적가치와통쾌한사진그리고문학적향기가두루어우러진명품이라할수있다.

그는이연재물에서스스로선등을하며자일을깔고,바위와얼음에매달려사진을찍고,그모든과정들을글로남기는1인3역을하고있다.오직손재식만이할수있는독창적인작업이다.그는이힘든일을해내면서도언제나느긋하게그과정을즐긴다.그는내가알고있는한‘일과놀이를가장완벽하게조화시킨’사람이다.

그는일주일중사나흘을산에서보내고일년중서너달동안해외원정을떠난다.이렇게‘치열하게노는’손재식이또하나의프로젝트를시작했다.바로히말라야8,000m급14좌의베이스캠프를모두돌아보는사진촬영트레킹이다.손재식은3월15일그첫번째대상지인안나푸르나(8.091m)베이스캠프를향해떠났다.일정을보아하니지금쯤마차푸차레(6.993m)아래에서여유롭게카메라셔터를누르고있을것같다.

◆히말라야14좌베이스캠프트레킹


전문산악인아니라도설산진면목볼수있어

히말라야에는8,000m가넘는산이14개있다.그산들의정상에오르는것은극소수의전문산악인이나가능한일이다.하지만그산들의베이스캠프까지만오르는것은일반등산애호가들도가능하다.단,베이스캠프라해도평균4,000m이상의고도에위치해있으므로,고산병에대한각별한주의가필요하다.

14개의베이스캠프가운데8개는네팔에있고,5개는파키스탄에있으며,1개는중국에있다.이들중가장대중적인사랑을받는곳은풍광이수려하고편의시설이잘갖춰져있는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4,130m)트레킹이다.산악사진촬영을겸한손재식의14좌베이스캠프트레킹프로젝트는4년에걸쳐이루어진다.

첫해인올해에는3월에안나푸르나,6월에낭가파르바트,11월에초오유와시샤팡마에간다.히말라야14좌중가장서쪽에있어유럽대륙에가까이있는낭가파르바트베이스캠프는온갖기화요초들이만발하여가장아름답다는평을듣고있다.2007년에는3월에마나슬루,7월에K2,가셔브룸1,가셔브룸2,브로드피크,11월에마칼루로향한다.이해7월에내정되어있는4개의산은모두파키스탄에속해있는것들로,그베이스캠프들이서로지척의거리에있어한꺼번에둘러볼수있다.

2008년에는3월에칸첸중가,11월에다울라기리에간다.칸첸중가는히말라야14좌중가장동쪽에위치해있으며인도의시킴지역과국경을맞대고있다.거의유일하게불교적색채가짙은지역이다.마지막으로2009년3월에는에베레스트와로체에간다.이두산역시지척의거리에있다.빠른산행을힘겨워하고느긋하게사진찍는것을좋아하는사람들에게는대단히즐겁고유익한체험이될것이다.

-2006,03,22.산악문학작가심산님의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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