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벨트도없이바위를타던시절이었다.암벽화도되는대로신고바위를탔다.그래도즐겁고재미있었다.78년서울고에입학하자잠시갈등이생겼다.서울고산악부OB모임인마운틴빌라는꽤잘나가는산악회였다.그래도선배들과의리를지켜보겠다는생각에용암산악회와활동을계속이어나갔지만얼마지나지않아산악회는흐지부지되고말았다.
새로운유혹은또다시찾아왔다.악우회였다.악우회멤버들이국내최초로알프스3대북벽완등에성공한직후였다.마침악우회회원이었던친구형은산에한창빠져지내던기섭을산악회로끌어들였다.
이후기섭은열정이더욱뜨거워졌다.윤대표,허욱,유한규,임덕용등기라성같은선배산악인들과함께줄을묶는다는것만으로도뿌듯했다.사실기섭은스스로생각해도바위체질은아니었다.단신에팔다리가짧다보니핸디캡이많을수밖에없었다.거기다선천적으로겁도많아중요한크럭스에서는발이떨어지지않고몸이말을듣지않아곤욕을치르곤했다.그런데도선배들은기섭을아껴주고,기섭은그런선배들이너무도좋았다.
▲98년1월두타산에서폭설을
헤치고나오는김기섭씨.
술좋아하고사람좋기로이름난산꾼
기라성같은선배산악인들과지낼때는뒤따르는것으로도등반이가능했지만,82년경원대산악부를창립하곤상황이달라졌다.악우회가흐지부지되면서파생된요반구락부회원으로활동하다그산악회도유명무실해지자동년배끼리다니자는생각에대학산악부를창립했다.새내기이자창립멤버10여명중클라이밍을해본사람은김기섭이유일했다.
“산을동경만해왔지실제로는거의다닌적이없는친구들이었죠.그렇다고매일워킹산행만할수도없는일이었고요.할수없이제가앞장서서이끌었어요.국산자일에확보물등무거운장비를짊어지고등반하자니힘이많이들기는했죠.그래도즐거운시절이었어요.특히동기몇명이어느정도실력을갖춘뒤로는미친듯이바위를찾아다녔으니까요.”
김기섭은등반력이그리뛰어나지않지만루트파인딩에관한한남다른능력을지녔다.그가원하는등반선은어렵거나독특한선이아니다.아름답고자연스런선이다.대학1학년시절설악동을출발해화채릉~대청봉~서북릉으로이어지는능선종주산행에나섰던그는권금성을오르던중노적봉에매료된다.피라밋형상의노적봉은너무도웅장하고아름다웠다.6년이지난88년여름그는목적달성에나섰다.그러나길을제대로몰랐던그는엉뚱한길로접어들어곤욕을치르고말았다.그런데도노적봉을오르는사이너무도가슴이설레었다.아름답고자연스런등반선이눈에띄었다.
“이듬해여름그선을따라올랐어요.손을잡는곳마다,발을딛는곳마다에델바이스가피어있었어요.거의막바지에접어들었을때뒤통수를한대맞는느낌이들더군요.눈앞에토왕폭이나타난거예요.하늘에서떨어진듯한물줄기가거대한폭포를따라쏟아지고,그물이굽이지는골짜기를따라흘러내리는광경이한눈에들어온거죠.등반도중소낙비를맞았어요.그러고나자더환상적인광경이이어지지뭐예요.달마봉쪽에서쌍무지개가떠올랐어요.”
▲경원대길마지막침봉을오르는김기섭씨.
경원대국어국문과출신인기섭은시인이기도하다.그길을‘한편의시를위한길’이라지었다.그이상적절한이름이떠오르지않았다.그리곤곧바로한편의시를위한길에봉헌하는시를지었다.제목‘한편의시를위한길’이다.
‘암벽화끈을조이며/이마에붉은스카프를묶는다./피너클아래까마득한/소토왕골의/시퍼런물소리가들리지않는다./우리가가는이길은/동해푸른바다가생기고/바람이생기고/우리가처음인지도모른다…(중략)…우리는/인간의언어를다동원해도/표현치못할/한편의장엄한서사시를보았다./그리고/푸른바다/동해가밀려들고/천상에서지상으로내리꽂는/저까마득한수직의물줄기/우리가구름위에서있다는것을/바람가운데있다는것을/태어난처음비밀처럼깨달았다.’
한편의시를위한길을만든뒤그의개척등반에대한열정이나날이뜨거워져갔다.설악산과북한산을유독좋아했던그는백운대에‘시인김동엽길’(93년),‘녹두장군길’(94년),‘김개남장군길’(94년)을,노적봉에‘경원대길’(96년)과도봉산자운봉에‘배추흰나비의추억‘(98년)을개척하고,설악산토왕골경원대리지(96년)와’별을따는소년들‘(97년),설악산망경대별길(99년)과석황사골몽유도원도(01년)등요즘도많은사람들이즐겨찾는암릉이나벽등반루트를개척해왔다.
“설악산별길은오련폭에서망경대로이어지는루트에요.경치가죽여줘요.오련폭이어찌나아름다운지풍덩뛰어들고싶을정도지요,제주도중문암장에도개척한게있어요.‘푸른물결의선율’,‘어느모델의하루’두코스예요.해안관광지다보니이름을그렇게짓게되었어요.‘배추흰나비의추억’은개척당시산에서는보기힘든배추흰나비가날아들었어요.거기다추억이란단어만덧붙인거죠.”
▲<상>휠체어를미는연습을하는김기섭씨./<하>재활치료를받으며고통스러운표정을짓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