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클라이머의 삶] 김기섭씨 *-

[이클라이머의삶]김기섭씨

국내최다암릉·암벽루트개척한김기섭씨

"산오른다생각하며장애이겨내고있어요"

▲<사진=허재성기자>

김기섭(金起燮·46)은벌써1년넘게병상에서지내고있다.양팔을얼굴높이까지치켜올릴수있다는것외에그스스로할수있는일은없다.한해전까지만해도암릉과암벽에새로운길을내겠다고설악의곳곳을휘젓고다니고,북한산과도봉산바위곳곳을파고들던그였다.

2006년11월19일오전당시코오롱등산학교강사였던그는졸업생들과함께북한산인수봉을올랐다.대슬랩을거쳐오전10시가조금넘은시각에B코스초입에도착했을때는이미많은사람들이몰려들고있었다.기섭은망설이다비교적사람이적은아미동길로코스를틀기로마음먹었다.그리곤제1피치등반에나섰다.

인수봉서10여m추락뒤3,4번경추골절

완경사슬랩을오르고역층크랙을올라선다음크랙구간으로접어들었다.크랙상단부가불룩튀어나온항아리처럼생겼다하여‘항아리크랙’이라불리는크랙은몸을크랙에집어넣고팔과다리로바위를밀면서오르는게안전하기는하지만대개그보다는힘이덜드는레이백자세로오른다.기섭도평소와다름없이레이백으로올랐다.

그런데5m쯤오르다오른쪽발을페이스에대고밀면서일어서는순간쭉미끄러지고말았다.바깥으로몸이나가면수직벽으로떨어진다는생각에침니안쪽으로몸을집어넣었다.그러나추락은멈춰지지않았다.게다가추락을멈출수있는턱에서튕겨나가면서몸이뒤집힌채역층크랙아래쪽으로떨어지고말았다.10여m를떨어진뒤슬랩위에서거꾸로매달린그는머리에서피가나고있다는사실은느낄수있었으나몸이움직여지지않았다

급히출동한경찰구조대와119구조대의도움으로병원으로옮겨진기섭에게는이후모진시련이기다리고있었다.진단결과3,4번경추골절이었다.1,2번골절을피해목숨을잃는일은피했으나,재활치료를마친뒤에도하반신마비는회복될수없다는진단을받았다.

이후기섭은두차례의경추수술을받은뒤재활치료에들어갔다.그런데엎친데덮친격으로욕창으로5개월간곤욕을치르는가하면,하체를사용하지않음으로써뼈가석회화하는희귀병인이소성골화증으로인해대퇴부골절상을당하고말았다.

▲설악을유난히좋아했던김기섭씨는토왕골·노적봉·만경대·석화사골에6개의루트를개척했다.

“겉으로는웃고있어도속으로는피눈물나던시간이었습니다.저와같은경추골절환자는초기재활운동이가장중요한데초기에무려8개월간이나꼼짝못하고누워지냈으니말이에요.”

기섭은지난12월9일부터경기도광주시에위치한삼육재활병원에서재활치료는받고있다.아침6시일어나밤10시다시잠자리에들기전까지밥먹는시간을제외하곤재활운동에전념한다.현재그는양팔은움직일수있으나손목이하로는힘이들어가지않아손가락은거의사용하지못한다.

“재활치료사에게치료받을때는정말‘죽음’이에요.어찌나아프고힘든지-.앞으로1~2년은더병원에서지내야할것같아요.그래도이만하면많이좋아진거예요.밥도먹을수있으니까요.”

기섭은어린시절부터바위와함께살아왔다.강원도화천에서태어나7살때서울로올라온그는한양중3학년때산이라는세계에입문했다.당시독실한크리스천을꿈꾸며교회활동에열중하던그는유아세례를받는등어린시절부터교회에다닌친구들과자신과뭔가이질감이있다는것을느꼈다.

“종교적으로큰차이는없다싶었는데끼리끼리어울린다고나할까요.그런것에대한서운함이었겠죠.그래서한동안방황하다비슷한느낌을받는다면속얘기를털어놓은친구와둘이서도봉산에갔어요.산에가면갑갑한속이풀릴까싶어서였죠.”

무작정도봉산행버스를탔다.그리곤버스종점에내려커다란배낭을메고산으로들어서는이들을좇아갔다.그들이배낭을푼곳이석굴암아래야영장이었다.A형텐트를치고,고체연료에밥을해먹고자려는데누군가텐트를두드렸다.함께야영하기로약속한동료가올라오지않는바람에잘곳이없는용암산악회회원이었다.산과의인연은이렇게자연스럽게이어졌다.

“이튿날아침올라온용암산악회회원들은산에함께다녀보지않겠냐고꼬드겼어요.빠알간배낭을미끼로내건유혹에안넘어갈수가없었죠.”유혹에안넘어갈수가없었죠.”

▲별길등반을마치고후배와함께만경대에오른김기섭씨(왼쪽).

안전벨트도없이바위를타던시절이었다.암벽화도되는대로신고바위를탔다.그래도즐겁고재미있었다.78년서울고에입학하자잠시갈등이생겼다.서울고산악부OB모임인마운틴빌라는꽤잘나가는산악회였다.그래도선배들과의리를지켜보겠다는생각에용암산악회와활동을계속이어나갔지만얼마지나지않아산악회는흐지부지되고말았다.

새로운유혹은또다시찾아왔다.악우회였다.악우회멤버들이국내최초로알프스3대북벽완등에성공한직후였다.마침악우회회원이었던친구형은산에한창빠져지내던기섭을산악회로끌어들였다.

이후기섭은열정이더욱뜨거워졌다.윤대표,허욱,유한규,임덕용등기라성같은선배산악인들과함께줄을묶는다는것만으로도뿌듯했다.사실기섭은스스로생각해도바위체질은아니었다.단신에팔다리가짧다보니핸디캡이많을수밖에없었다.거기다선천적으로겁도많아중요한크럭스에서는발이떨어지지않고몸이말을듣지않아곤욕을치르곤했다.그런데도선배들은기섭을아껴주고,기섭은그런선배들이너무도좋았다.

▲98년1월두타산에서폭설을

헤치고나오는김기섭씨.

술좋아하고사람좋기로이름난산꾼

기라성같은선배산악인들과지낼때는뒤따르는것으로도등반이가능했지만,82년경원대산악부를창립하곤상황이달라졌다.악우회가흐지부지되면서파생된요반구락부회원으로활동하다그산악회도유명무실해지자동년배끼리다니자는생각에대학산악부를창립했다.새내기이자창립멤버10여명중클라이밍을해본사람은김기섭이유일했다.

“산을동경만해왔지실제로는거의다닌적이없는친구들이었죠.그렇다고매일워킹산행만할수도없는일이었고요.할수없이제가앞장서서이끌었어요.국산자일에확보물등무거운장비를짊어지고등반하자니힘이많이들기는했죠.그래도즐거운시절이었어요.특히동기몇명이어느정도실력을갖춘뒤로는미친듯이바위를찾아다녔으니까요.”

김기섭은등반력이그리뛰어나지않지만루트파인딩에관한한남다른능력을지녔다.그가원하는등반선은어렵거나독특한선이아니다.아름답고자연스런선이다.대학1학년시절설악동을출발해화채릉~대청봉~서북릉으로이어지는능선종주산행에나섰던그는권금성을오르던중노적봉에매료된다.피라밋형상의노적봉은너무도웅장하고아름다웠다.6년이지난88년여름그는목적달성에나섰다.그러나길을제대로몰랐던그는엉뚱한길로접어들어곤욕을치르고말았다.그런데도노적봉을오르는사이너무도가슴이설레었다.아름답고자연스런등반선이눈에띄었다.

“이듬해여름그선을따라올랐어요.손을잡는곳마다,발을딛는곳마다에델바이스가피어있었어요.거의막바지에접어들었을때뒤통수를한대맞는느낌이들더군요.눈앞에토왕폭이나타난거예요.하늘에서떨어진듯한물줄기가거대한폭포를따라쏟아지고,그물이굽이지는골짜기를따라흘러내리는광경이한눈에들어온거죠.등반도중소낙비를맞았어요.그러고나자더환상적인광경이이어지지뭐예요.달마봉쪽에서쌍무지개가떠올랐어요.”

▲경원대길마지막침봉을오르는김기섭씨.
경원대국어국문과출신인기섭은시인이기도하다.그길을‘한편의시를위한길’이라지었다.그이상적절한이름이떠오르지않았다.그리곤곧바로한편의시를위한길에봉헌하는시를지었다.제목‘한편의시를위한길’이다.

‘암벽화끈을조이며/이마에붉은스카프를묶는다./피너클아래까마득한/소토왕골의/시퍼런물소리가들리지않는다./우리가가는이길은/동해푸른바다가생기고/바람이생기고/우리가처음인지도모른다…(중략)…우리는/인간의언어를다동원해도/표현치못할/한편의장엄한서사시를보았다./그리고/푸른바다/동해가밀려들고/천상에서지상으로내리꽂는/저까마득한수직의물줄기/우리가구름위에서있다는것을/바람가운데있다는것을/태어난처음비밀처럼깨달았다.’

한편의시를위한길을만든뒤그의개척등반에대한열정이나날이뜨거워져갔다.설악산과북한산을유독좋아했던그는백운대에‘시인김동엽길’(93년),‘녹두장군길’(94년),‘김개남장군길’(94년)을,노적봉에‘경원대길’(96년)과도봉산자운봉에‘배추흰나비의추억‘(98년)을개척하고,설악산토왕골경원대리지(96년)와’별을따는소년들‘(97년),설악산망경대별길(99년)과석황사골몽유도원도(01년)등요즘도많은사람들이즐겨찾는암릉이나벽등반루트를개척해왔다.

“설악산별길은오련폭에서망경대로이어지는루트에요.경치가죽여줘요.오련폭이어찌나아름다운지풍덩뛰어들고싶을정도지요,제주도중문암장에도개척한게있어요.‘푸른물결의선율’,‘어느모델의하루’두코스예요.해안관광지다보니이름을그렇게짓게되었어요.‘배추흰나비의추억’은개척당시산에서는보기힘든배추흰나비가날아들었어요.거기다추억이란단어만덧붙인거죠.”

▲<상>휠체어를미는연습을하는김기섭씨./<하>재활치료를받으며고통스러운표정을짓고있다.

자칭386세대라는그는안티성향도높다.‘시인신동엽길’,녹두장군길,2003년설악산장수대석황사골에개척한‘체게바라길’루트등에는사회주의성향이높은인물들의이름을루트명으로삼았다.

그가이렇듯개척등반에심혈을기울여온까닭은무엇보다남들이안가본길을가장먼저가고픈마음때문이었다.그는“자화자찬같지만제가개척한길은대부분아름답고,특히‘한편의시를위한길’은언제가도매력적이고또다시찾고픈암릉”이라말한다.

그는사고전까지암릉과암벽루트14개를개척했다.가히국내최다개척등반가라는평을들을만한클라이머인것이다.그사이위험한일이여러차례있었지만거의의식도못한채넘겼다.‘별을따는소년’의첫피치는100~110도의오버행이다.

“거기를겁도없이확보가없는상태에서넘어섰어요.파트너가없어혼자나섰던적도많았죠.아무래도직장다니는친구들과시간맞추기는어려우니까요.그럴때는매달아놓은로프를어센더로확보해가면서루트를개척하죠.설악산은암질이물러볼트하나박는데10~20분이면되지만노적봉같은바위는워낙단단해하루종일망치질해봤자한두개박으면고작이에요.당연히힘들죠.혼자모든것을해결해야하니까요.”

그는산꾼들사이에서엉뚱하기로도이름나있다.사실그는변변한직업한번못갖고젊은날을보냈다.등산잡지사에한두해지낸게전부다.하지만그는얼굴한번찡그리지않고지내왔다.오히려어느자리이건남들을즐겁게하는데애를써왔다.요리솜씨도뛰어나야영장에도착해배낭을풀어놓으면앞장서칼을들고,각종야채를썰어대기를즐겼다.

많이마시지는못하지만술을마다해보지않았을만큼술도즐겼다.10여년간인연을맺어온기자는8년전두타산행에나섰다댓재고갯마루아래의식당을숙소로잡았다.소주한병씩나눠마신뒤잠자리를펼즈음그는식당밖으로나섰다.딱한잔술이모자란다며-.가을비가추적추적내리는밤이었다.그는딱한잔담긴소줏잔을손에들고그가을밤을즐기다스스르잠이들었다.무엇이그리도좋은지처마끝에서빗방울이얼굴로떨어지는데도그의잠든얼굴에는행복감이넘쳤다.

‘소주잔에무수히아롱지는달빛을받아마시면/소주맛이한결좋을거다./내오래된친구여./우리술잔을부딪칠때마다/지상의가장높은바람과그맑은달빛으로/세상사에찌든삶의때를벗겨내며/그동안하고싶었던삶의잔잔한이야기로/세상살이멍든상처씻어내고/그빈자리에/우리가오랜세월함께했던산을,/그리고우리의우정을/정갈하게담아놓자.’-‘술땡기는날’(김기섭)


“멀리서바라보면제가오르는기분들거예요”

▲한편의시를위한길개척직후흐뭇한표정을짓고있는김기섭씨.

2005년홍천강에‘별과바람과시가있는풍경’이란강변리지도개척한그는2006년에는영월서강에‘봄날은간다’와‘내가눈물처럼사랑했던여인’2개루트를개척하다말았다.

“아마완성되면우리나라에서가장아름다운강변리지로떠오를거예요.암릉을오르며유유히흘러내리는강물을보는감흥은다른데서는맛볼수없죠.사실어떤루트든개척중에이름을짓지는않았어요.그런데이렇게서글픈이름을붙인것을보면회한이들기도하고불운한앞날을예측했기때문인듯싶어요.”

그는다섯살때뒷산이무너져내리면서묻혔다가아버지가급히꺼내준덕분에목숨을구한일,초등학교2학년때행당동집부근의축대에서놀다가10여m아래로떨어진일등등그동안위험했던상황을하나하나열거한뒤“그렇지만이번에사고를당했을때는이제끝났구나싶었다”며“모든것을운명으로받아들이기로했다”고말한다.

그는분명지금폭풍설몰아치는광야를걷고있을것이다.눈덮인병원앞마당에서휠체어를미는연습을할때그의얼굴에는굳은의지가넘쳤다.그는자신이시를통해말했듯이지금눈보라몰아치는설악의토왕폭을오르고있는지도모른다.

‘눈보라가부른다./눈보라끝에그리운설악산이보이고/마음은벌써토왕폭을오른다./우리는한국대학산악연맹동지들/달빛이쏟아지는설동(雪洞)에서/전설이흐르는술잔위에낯익은노랫소리부르며/내일빙폭을이야기한다./산악연맹동지,동지들이여./내일은서로의가슴속에찬란히빛나는피켈을잡고/더욱더높은정상을향해/불붙는기상으로토왕폭을오르자.-‘산이우리를부르거든’(김기섭)


그는한두해쯤이면휠체어를마음대로밀고다닐수있게되기를희망하며재활치료에매진하고있다.3년전그는태국프라낭을방문한적이있다.해안에솟아오른해벽들이무척매력적이었고,주변풍광이매우아름다운곳이었다.그곳에다가도루트를하나내는게꿈이었다.

“손가락하나꼼짝못했는데이제소줏잔을입에갖다댈정도로회복했어요(웃음).병원에서퇴원하게되면영월동강을찾을거예요.제힘으로길을완성시킬수야없겠지요.그래도후배들이루트를개척하는모습을먼발치에서나마바라보면제가오르고있다는느낌을찾을수있을듯싶어요.”

병상에누워있는그의얼굴을볼때멀쩡히걸어다니던모습이떠오르면서가슴이아팠다.하지만그는장애를담담하게이겨내고있었다.그가설악산노적봉에‘한편의시를위한길’을개척하고,노적봉에경원대길을볼트를박기위해망치를휘둘러댈때처럼-.

-/글한필석차장대우/월간산[459호]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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