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악문학의 걸작 ‘유럽의 놀이터’의 저자 ‘레슬리 스티븐’ *-

산악문학의걸작’유럽의놀이터’의저자’레슬리스티븐'(1832~1904)


해발3,454m로유럽에서가장높은곳에역이있는스위스의융프라우요흐.만년설과빙하,고봉이에워싼환상적인이곳을레슬리스티븐이처음으로횡단했다.

영국인이쓴세계등반사는영국인을중심으로쓰여졌다.마찬가지로이탈리아인이쓴등반사의중심은이탈리아인이며,프랑스인이쓴등반사의중심은프랑스인이다.어찌보면당연한현상이다.

누구보다도전통에대한자부심이강한그들의팔이안으로굽은것뿐이다.그러므로이들모든제각각의등반사에서공통된업적으로인정받았다는것은그야말로‘재론의여지가없는’업적으로손꼽힌다.

산악문학사에대한평가가그렇다.거의모든세계등반사에서최고의산악문학으로꼽힌작품은에드워드윔퍼의<알프스등반기>이다.그렇다면두번째의작품은?레슬리스티븐(1832~1904)의<유럽의놀이터>라는데이견이없다.

에드워드윔퍼는널리알려져있듯마터호른의초등자이다.이는결코지울수없는기념비적업적에속한다.레슬리스티븐역시숱한초등기록을가지고있다.하지만그가오른슈렉호른,블륌리잘프,비에치호른,림피시호른,지날로트로흔등은일반인들에게는낯선산이름일뿐이다.

<알프스등반기>는한개인의영웅담이다.곳곳에서과장과왜곡을확인할수있는‘소설적’서술방식으로쓰여졌다.반면<유럽의놀이터>는차분한에세이다.사정이이러하니일반인들이어떤책을더좋아했을지는불을보듯빤하다.덕분에<알프스등반기>는산악문학역사상최고의걸작이되었다.

하지만나는‘제2위의걸작’으로꼽히는<유럽의놀이터>에좀더마음이이끌린다.이책은그제목부터심오하기이를데없다.제목이지칭하는‘유럽의놀이터’란다름아닌‘알프스’를뜻한다.세상에,알프스를‘놀이터(playground)’라고표현하다니,이얼마나경천동지할일인가.

18세기에이르기까지알프스는‘용과악마가살고있는끔찍한곳’에불과했다.19세기에도그곳은‘인간이범접할수없는다른세상’으로인식되었다.그런알프스를‘놀이터’라고부르다니이얼마나도발적이고도통쾌한발상의전환인가.

일반인들에게커다란영향을미친책이<알프스등반기>라면,산악인과지식인들에게커다란영향을미친책은<유럽의놀이터>였다.19세기까지만해도알프스에오르는사람들은대개가부르주아지식인들이었다.따져보면당연한현상이다.

하루하루먹고살기도힘든일반인들이도대체무엇때문에목숨을걸고그험난한산에오르겠는가.덕분에당시에산에오르던사람들조차자신들의‘취미생활’에대하여쉬쉬하는분위기였다.그랬던그들이이제대놓고자랑스럽게“나는산에오른다”고밝히게된데에는<유럽의놀이터>가끼친영향이크다.

이책에서묘사된등반은그만큼지적이고,우아하며,고상한행동이었던것이다.이책의출간은당시지식인사회에서일대발상의전환을일으켜,이후‘지식인이라면마땅히산에올라야한다’는식의풍조를만연시켰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그런변화가가능했던것은레슬리스티븐자신이당대최고의지식인이었기때문이다.런던대학와케임브리지대학을우수한성적으로졸업한그는일찌감치케임브리지대학교수로임용된다음27세때영국국교회목사로취임한젊은엘리트였다.하지만이후그를매료시킨칸트의철학은평탄하던그의삶을‘돌아올수없는강’너머로건너가게했다.

정통신학에회의를품고‘불가지론’에기울더니이후모든공직에서사퇴하고‘등반에미친재야학자’로변신한것이다.레슬리는그의책에서고백한다.‘인간은들판을옥토로만들수도있고,강의흐름을바꿀수도있다.하지만산은불요불굴의자연력의상징이다.그앞에서인간은자신의왜소함과삶의덧없음을실감하지않을수없다.그리하여마침내인간은산을숭배하게된다.’

그는하루에40마일(64㎞)걷기를생활화했던산악인이다.영국산악회회장재직당시에는케임브리지에서런던까지의80㎞를12시간동안걸어다니기도했다고한다.그는위에열거한숱한산들의초등기록과더불어아이거요흐와융프라우요흐를최초로횡단한기록도가지고있다.

이런열정적인등반활동중에도<18세기영국사상사>(1876),<스위프트>(1882),<영국의공리주의자>(1890),<18세기의영문학과사회>(1904)등엄청난분량의저서들을출간했다니그저놀라운뿐이다.브리태니커백과사전은그를19세기최고의철학자이자문학인으로기록한다.하지만산악인들에게그는여전히<유럽의놀이터>를남긴사람으로기억될것이다.

<유럽의놀이터>의서문에서레슬리는25년전그와함께몽블랑정상에서일몰을맞았던샤모니의화가가브리엘로페와의추억을고백한다.가브리엘은캔버스를펼쳤고레슬리는얼어붙은와인을꺼냈다.‘수많은암봉과빙하가석양빛을받아불바다를이루며어둠속으로사라져가던그모습을평생잊을수없다고했다.

25년이지난지금,몽블랑의일몰에는변화가없으나,그산에오르던인간은늙어버렸구나.’그가남긴저숱한명저들도<유럽의놀이터>에실린이짧은문장하나에미치지못한다고생각하는것은한가방끈짧은산악문학작가만의오산일까?



버지니아울프가레슬리의딸…산행즐겼다면자살없었을까?

레슬리스티븐의첫번째부인은정신질환으로숨졌다.이후그는변호사허버트덕워스의미망인줄리아와재혼을했는데,당시줄리아가데려온자식이4명이었고레슬리자신의자식이1명있었다.레슬리와줄리아는이후4명의아이를더낳았다.덕분에모두9명의자녀를기르게된것이다.이들중8번째의딸로태어난아이가훗날세계적인여류소설가로이름을떨친버지니아울프(1882~1941)다.

버지니아울프는고백한다.“아버지의서재에책이넘쳐났다는것이얼마나다행인지모릅니다.9명의형제들속에서시달릴때마다나는책속의세계로빠져들었지요.”레슬리와버지니아의부녀애도대단했다고한다.레슬리는틈날때마다이병약했던어린독서광딸을데리고가벼운산행을즐겼다.하지만레슬리는버지니아가18세가되던해에먼저세상을떠나고만다.

훗날버지니아가정신질환으로고통받을때쓴편지를보면그녀가어린시절아버지와함께했던가벼운산행을은근히그리워했다는것을알수있다.하지만누군가산에라도오르지그러느냐고권하면그녀는지레손사래를쳐대며새된목소리로쏘아붙였다.“산이라면지긋지긋해요!어렸을때아빠따라서지겹게도올라다녔다고요!”나는그녀가소설을쓰는대신산에올랐더라면얼마나좋았을까생각해본다.그랬다면세계적인소설가가되지않았을지는몰라도,적어도정신분열로삶을마감하지는않았을것이다.

[심산의산그리고사람]<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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