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산과 알피니즘 *-

등산과알피니즘/산악칼럼

등산과알피니즘은다른것인가?다르면어떻게다른것인가?이런문제가새삼거론된다면산악계로서는불행한일이고서글퍼진다.이러한문제제기는국제무대에올라가고도남은우리나라산악계에서등산이야기만한창이지알피니즘에대해들려오는것이없기때문이다.그런데등산과알피니즘은똑같은말이며굳이다른점이있다면전자가후자에서왔다는것뿐이다.다시말해서원래서구적인개념인알피니즘이한문화권(漢文化圈)으로옮겨가며등산이라했다.

그러나이두낱말사이에처음부터큰차이가있다는사실은등산계에서도별로의식하고있는것같지않다.즉등산과알피니즘은이를테면모두표의문자(表意文字)나다름없는데,등산은말그대로산에오른다는뜻이고알피니즘은알프스를오른다는제한된조건에서출발했다.다시말해서알피니즘에는역사적기원이담겨있다.

영국에서나온<등산백과사전>에는알피니즘에대해‘눈과얼음에덮인알프스와같은비교적높은고소에서행하는등반을말하며,그용어는프랑스어알피니즘(alpinisme)에서왔다’고풀이하고있다.알피니즘의어원이프랑스어라는것은18세기후엽알프스의최고봉인몽블랑의역사적초등이그조어의동기가됐다는이야긴데,물론몽블랑이프랑스알프스에있는산이고당시몽블랑도전에관련됐던사람들이모두불어권에속해있었던것도사실이다.

이처럼알피니즘의기원은몽블랑에대한도전에있지만그말의일반화는알프스를둘러싼나라들이그정신과행위를받아들여번져나가므로시작됐다.오늘날등산선진국으로되어있는나라들로스위스를중심으로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그리고이탈리아등다섯나라가지리적으로유리한여건속에그영향을빠르고강하게받아들였으며,19세기후엽거의같은시기에그들의산악회가모두창건되었다.

여기하나의예외가있다면유럽대륙을벗어난섬나라인영국인데,그러나영국은일찍이빅토리아여왕통치에힘입고알프스인접국가들보다먼저알프스에도전하여크게진출한것은세계등반사가증명하는그대로다.그대표적인것이에드워드윔퍼의마터호른초등정이다.그때까지알프스4000m급140봉이등정되는가운데반이상이영국산악인들의공이었다는사실에잘나타나있다.

19세기후엽알프스최후의보루였던마터호른의등정으로알프스의황금기가지나자,그때까지정상만노리던이른바등정주의(Peakhunting)가뜻있는곳에길이있다는등로주의(Variationroute)로발전하는한편,히말라야시대가열리면서알피니즘은명실공히국제어로자리를굳히기시작했다.

‘날로늘어가는등산인구가한국의등산문화의질적수준을말해주지는않는다.지난날초라하게키슬링과클레터슈즈차림으로도의기양양했던산사나이들의세계가오히려그립다…그들은정열과투지로주어진자연과맞섰다.’사진은80년대초반키슬링을메고북한산을오르는외대산악부원들./사진정광식


이에대해프랑스의등산가폴베시에르가그의책<알피니즘>에서이렇게밝히고있다.‘산에오르는것을프랑스말로‘알피니즘’이라고하지만배타적인사람들이강조하는표현과달리그것은알프스를오른다는좁은뜻이아니다.거기에는역사적기원이있을뿐넓게일반적이다.전문적인산악인들은피레네에오르면피레네이즘,히말라야는히말라이즘,안데스를안디니즘이라할는지모르나요는산을오르는행위에지나지않는다.’

알피니즘이라는말의유래를이이상설명하기어려우리라.그리고이에준해알피니스트라는말도생겼으며한문화권에서도등산가니산악인이라는말을쓰고있다.그런데여기에는조건이따른다.즉알피니즘에담긴정신과행위를전제로하고있다는것이다.따라서산이좋아산에가는이른바등산애호가나무료한시간을산에서달래는소일파는여기서제외된다.등산세계의일종의배타성이여기에있다.

그런데알피니즘의정신과행위란구체적으로어떤것인가?몽블랑에사람이처음오르며시작되어오늘에이른세계등산의발전과정은바로알피니즘의구체적이고도충분한모습이요설명이다.그250년가까운시간의흐름속에5대륙6대주에걸친산군들이답파되며,정신적으로육체적으로뛰어난선구자들이영광과비극속에부상하고침몰하는가운데지구상에더오를데가없어진역사적현실외에또무엇이필요한가?

이것이알피니즘의모습이고이것을알고행하는자가알피니스트다.등산세계는등산가의산에대한지식과체험이누적되어형성된다.이러한등산의세계가자기에게있는가없는가로알피니스트와일반등산가가갈라진다.즉산악인의조건이여기있다.그가아무리높은산을,그리고어려운산행을한다해도알피니즘이표방하는것과거리가있다면그의등반은헛것이며뜻이없다.

이제우리나라산악계도세계무대에진출하고한세대가흘렀다.이것은우리의자연조건으로볼때그진출양상이놀라울따름이다.또한세계등산사에비출때그토록제한된조건하에알피니즘의토착은잘진행된셈이다.그러나이때내용이외형을따라가지못한것이문제였다.이것은한국알피니즘존립지반의허약을뜻하며이런데서건실한등산문화를기대하기는어렵다고본다.날로늘어가는등산인구가한국의등산문화의질적수준을말해주지않는다.

지난날초라하게키슬링과클레터슈즈차림으로도의기양양했던산사나이들의세계가오히려그립다.당시젊은이들은알프스도히말라야도몰랐으며오직국내의낮은산을높은줄만알고오르내리며조금도기가죽지않았었다.몸에걸친것은언제나헌옷이고장비라할것도없으면서그들은정열과투지로주어진자연과맞섰다.이러한과거가있어서오늘의산악계가있다는사실을아는사람이얼마나있을는지의심스럽다.

근자에산악동지회라는이른바계파를초월한산사람들의모임이있었다.연례적인행사여서거기에는옛날그얼굴그대로만나니친근감이더했다.이를테면우리산악계노병들로오늘날기준으로볼때화려한해외원정을체험한사람이별로없지만,그들이한국알피니즘의트레거(담당세력)이었던것은아무도부정할수없으리라.등산과알피니즘은동의어이면서뜻이다르다.이것은자기모순같지만사실그렇다.

그러나여기서파생한등산가와알피니스트사이에는간격이없다.그들은으레몽블랑초등의의미를알며,‘등산은길이끝나는데서시작한다’는알랑드샤테리우스의말을그대로믿는것이예상되기때문이다.등산즉알피니즘에는두드러진특징이있는데,이것을아는사람이많지않다.그것은내면적인것으로,등산의육체적노력을넘어서얻어지는정신적인것이다.

이때의내면적이라는것은정신의고양을말하며,등산이높이와어려움을지향하는것이언제나이러한정신의고양을전제로하고있다.알피니스트가산의세계에몰입되고거기서벗어나지못하는것은산에대한향수때문이다.일본산악계선구자의한사람이었던오오시마료오끼치(大島亮吉·1899~1927)가‘베르그슈타이거(등산가)는누구나산에자기하이마트(고향)를가지고있다’고말했다.

이를테면등산가의의식과행위는언제나그의귀소본능과깊은관계가있으리라.등산을고작해서여가선용이나건강관리를위해산에가는것으로아는이른바등산객과산악인과는분명거리가있다.그러나이거리가산악계의침체나위기를가져오지않는다.산악인과산악계는언제나그존재이유를분명히유지해야하며,그근거가되는것은꾸준한알피니즘에대한토론과주장이다.

-글/김영도한국등산연구소장/월간마운틴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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