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벤처업계의 한국인 신화’ 김범섭 퀄컴 부사장 *-

‘美벤처업계의한국인신화’김범섭퀄컴부사장

교수직박차고실리콘밸리간까닭?"예측가능한삶은재미없잖아요"
‘미국벤처업계의한국인신화’로불리는김범섭(48)퀄컴부사장은어렸을때꿈이‘교수’였다.퀄컴은CDMA(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의휴대전화원천기술을가진세계적IT(정보기술)업체이다.김부사장은1994년34살의나이에KAIST의교수가되면서어릴적꿈을이루는가싶더니,2000년미국에서벤처기업‘버카나와이어리스’를창업하고2006년엔부사장으로퀄컴에합류했다.
그는현재퀄컴의최고위직한국인이다.그가창업한버카나와이어리스는휴대전화용송수신칩을개발하는회사였는데,퀄컴에5600만달러(당시환율로약547억원)에매각했다.지난8월16일‘건국60주년명예위원’으로위촉돼서울을방문한김부사장을숙소인서울소공동롯데호텔에서만났다.
외교통상부는8월15일열린광복절경축식에지구촌곳곳에서한민족의자긍심을높이는데기여한재외동포주요인사와그후손을건국60주년명예위원으로선정해서초청했다.
미국에서성공한대표적인경제계인사로김부사장이선정됐다.김부사장은42명의건국60주년명예위원중최연소다.김부사장은우선왜안정적인직업으로꼽히는‘교수’를그만두고‘벤처기업가’에도전하게됐는지털어놨다.
그는“서울대전자공학과를졸업하고미국UC(캘리포니아주립대학)버클리캠퍼스에서박사학위를마치기전까지만해도교수가되는것만이인생의목표였다”며“때문에당시는교수가되기위해논문을쓰고업적을쌓는데에온힘을기울였다”고말했다.그는초등학교때부터공상과학소설읽는것을좋아했고‘학생과학’이란잡지의애독자로과학자의꿈을키웠다.

미유학시절,공학도들의벤처정신에충격
한국학생이책만볼때그들은주식얘기

그러던김부사장은박사학위후1990년‘칩스앤테크놀러지’란회사에근무하면서문화적충격을받는다.김부사장은교수지원을위한연구소경력을쌓기위해회사에입사했건만,미국회사에서만난건새로운‘벤처문화’였다.칩스앤테크놀러지는1985년벤처기업으로창업해김부사장이입사할당시는주식시장에상장을하고연간3억달러의매출을올리는회사로성장해있었다.

회사에선창업가정신이투철한공학도를많이만날수있었다.김부사장은“한국에서공부할땐단지‘학문’에대해서만들을수있었지만미국회사에선공학도들이주가와월스트리트문화에대해얘기하고있었다”고말했다.그는“당시들은단어중‘에인절(angel)’이란새로운개념은‘기업이망하면감옥에가야한다’는한국적문화에물들어있던나에겐충격이었다”고말했다.
에인절은벤처업계용어로창업을하면자금을대주고사업가이드도해주며인력도뽑아주는등의도움을주면서회사와운명을같이하는초기투자자를가리키는말이었다.미국에선벤처사업을하다망해도에인절이‘내돈물어달라’고하지는않는다는것이었다.하지만교수의길이인생의목표였던김부사장에게새로운벤처문화는맛보기정도에불과했다.
그는교수임용에더욱도움이될수있는글로벌대기업필립스의연구소로직장을옮겼다.
1994년마침내30대에인생의목표인교수가됐다.김부사장은“교수가되고나니앞으로의인생이어떻게될지예측가능하게됐지만오히려인생의흥미가없어지게됐다”며“이러다‘도끼자루썩는지모르고살게되는건아닐까’라는두려움이밀려왔다”고말했다.한번받은‘벤처의세례’가그의사고를완전히바꿔버렸기때문이었다.

한국에시스템반도체설계씨앗뿌려
‘보장된미래’대신실리콘밸리에도전장

그런와중에도김부사장은KAIST교수로있으면서한국에시스템반도체설계의씨를뿌리게된다.당시외국에서유학한반도체전공자들은대부분반도체만드는‘공정’을전공했지만김부사장은‘설계’를전공했다.김부사장은“당시는이미만들어진반도체칩을모아다가시스템을설계했지만미국에서공부를하다보니앞으론반도체칩하나에시스템이모두들어가게설계하는게주류가될것이라고예상하고설계를집중해서연구했다”고말했다.

김부사장은“당시한국이반도체강국으로부상하던때였지만반도체설계를연구할수있는기반시설은턱없이부족했다”며“대학에서이용할수있는반도체칩설계용그래픽프로그램이나시험제작할수있는공장(팹)이거의없었다”고말했다.그는경종민KAIST교수의주도아래몇몇뜻이맞는교수들과함께KAIST에반도체설계교육센터를세우고전국대학에반도체설계를보급하는일을했다.

시스템반도체설계보급이어느정도진행된후에1999년또한번미국벤처의매력을경험하게된다.당시김부사장은미국스탠퍼드대학에교환교수로있으면서실리콘밸리벤처기업에자문을해줬다.

한국에돌아와서창업을고민하던김부사장은2000년KAIST교수직을사임하고미국실리콘밸리로향했다.김부사장은“창업은아무때나할수있는게아니다”라며“당시는무선설계가고집적설계기술로전환되는시기로,기술전환기는몸집이큰대기업이움직이기어려웠기때문에창업이가능했다”고말했다.

기술만믿고덤볐다가1년간‘주문제로’
한국·대만오가며직접영업나서기도

김부사장은버클리때의친구인코맥콘로이박사와함께버카나와이어리스란회사를자본금500만달러에세웠다.창업후에인절의투자를받아곧바로휴대전화에사용되는핵심반도체무선칩을개발하는작업에착수했다.4년여만에세계최초로CMOS(상보성금속산화물반도체)기술을이용한RF(무선송수신)칩을개발했다.

이는휴대전화에들어가는가장핵심적인칩이다.예전무선칩에비해작은신호도받을수있도록성능을개선했을뿐아니라전력소모도줄이고가격도싸게했다.하지만구매처는쉽게찾을수없었다.당시경쟁자는브로드컴,텍사스인스트루먼트,필립스등쟁쟁한글로벌기업들이었지만‘버카나와이어리스’는이름없는벤처기업에불과했기때문이었다.
김부사장은“영업을간단하게생각하고20년이상경험을가진영업전문가를영입해맡겨버렸는데1년동안제품주문을받은게한건도없었다”며“직원들월급주는것까지걱정해야했다”고말했다.그는“당시가인생에서가장어려웠던때일것”이라고말했다.결국김부사장이기술개발에서손을떼고직접영업에나섰다.한국·대만등지를오가며제품을사줄곳을찾았다.몸무게가7㎏이나빠졌다.

그렇게1년6개월넘게구매처를찾다구매자가나타났다.그런데그소식을들은퀄컴이인수를제안해왔다.김부사장은“퀄컴도개발노력을하다실패하니까우리의기술을인정하고인수제의를했던것”이라고말했다.김부사장은‘반쪽의성공’이아쉽다고했다.그는“개인적으론기업을더키울수있었을것이라는아쉬움이있지만투자자들이자금회수를원해그에따랐다”고말했다.

한국선성적순이지만미국에선열정순!
한국젊은이들좋아하는일에열정바치길

퀄컴에합류한후김부사장은기술개발에집중할수있게됐다.김부사장은“이젠보다다양한분야의인력과함께연구에전념할수있게됐고,멀리내다보는제품도개발할수있게됐다”고말했다.미국캘리포니아주남단샌디에이고에본사가있는퀄컴은버카나와이어리스를인수한후에실리콘밸리에1000여명이근무할수있는연구센터를만들었다.

김부사장은현재실리콘밸리의연구센터에서일하고있다.김부사장이이끄는팀은과거벤처기업시절50여명에서출발했지만현재는150명으로늘었다.김부사장은퀄컴에합류해서도휴대전화핵심칩기술을개발중이다.버카나와이어리스시절첫고객을찾는데1년6개월이걸렸지만퀄컴에합류해서작년에개발한칩은3개월만에고객을찾았다.
김부사장팀이작년개발한칩은1년만에1억개가넘게팔릴것으로보인다.현재는4세대통신칩을개발하고있다.유럽,미국,한국등에서사용되는모든통신방식을지원하면서GPS(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나무선인터넷등도한개의칩으로가능하게만드는‘원칩’시스템이다.

한국인에게있어퀄컴은휴대전화기술료만받아가는회사라는부정적이미지가강하다.하지만김부사장은“한국은퀄컴에있어가장큰고객이고,한국과퀄컴은동반자로서함께성공해야한다”고말했다.김부사장은또“퀄컴은규모는대기업이지만문화는벤처처럼굴러가는회사”라며“기술확보를중시하는회사라서앞으로10년간은기술력으로먹고사는데문제가없는회사”라고말했다.

김부사장은글로벌인재를꿈꾸는한국의젊은이들에게“자기가좋아하는것,즐겨하
는것을열심히하라”고조언했다.그도중·고등학교때는서울종로세운상가를다니면서트랜지스터등을사다가전자제품조립하기를즐겨했다.김부사장은또“책을많이읽고경험을많이해야하며,열정과욕심이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

김부사장은“한국대학은시험성적에의해선발하지만미국대학에선자신이어떤일을얼마나열정을가지고수행했는지를가장중요하게본다”며“열정이없이는글로벌인재가되기힘들다”고말했다.열정이필요하긴성인이돼서도마찬가지다.김부사장은“한국에선승진때만되면비슷한사람끼리다시경쟁하는과정을거치는것같다”며,

“미국에선높은직위로올라갈수록더뛰어난경쟁자가나타나훨씬힘든과정을거쳐야한다”고말했다.그는“엔지니어,교수,벤처기업가,대기업임원등을거치면서단계별로만났던경쟁자들은수준이완전히달랐다”며“위로올라갈수록힘든게미국사회”라고말했다.

김부사장은성공한과학자이기도하다.2004년세계최대의공학계열학회인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펠로(석학회원)에선정됐다.한국인IEEE펠로는10여명정도있다.또작년부터반도체설계에서가장권위가있는IEEE저널오브솔리드스테이트서킷의부편집장을맡고있다.

|퀄컴은어떤회사|QUALCOMM

휴대전화CDMA원천기술개발한국계250여명근무

미국캘리포니아주샌디에이고에본사를두고있는퀄컴은CDMA(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의휴대전화원천기술을개발한회사로널리알려져있다.CDMA방식은1995년한국에서최초로상용화됐다.휴대전화방식으로는CDMA외에도유럽등에서사용하는GSM방식이대표적이다.

퀄컴은1985년어윈제이콥스등7명의통신업계전문가가모여설립했다.당시퀄컴은계약제연구방식으로무선이동통신제품을개발하는것을목표로했다.1988년개발한옴니트랙스라는기술은현재가장널리쓰이는위성통신기반의상업용무선통신망이다.

퀄컴을일약이동통신업계의스타로만든것은1989년CDMA방식의이동통신방식개발이다.CDMA는마치영화필름모양으로가상으로통신주파수를잘라디지털화된음성신호를실어보내는방식이다.퀄컴은현재7200여개의특허를보유하고있으며,145개의통신단말기제조업체와특허제공계약을맺고있다.

휴대전화도매가격의평균5%이하를특허료로받고있는것으로알려져있다.퀄컴은전체매출의30%이상을특허사용료등으로올릴정도로기술개발과확보를중시하는회사다.특허료외에도휴대전화핵심칩판매등으로수익을올린다.

퀄컴의한국인직원은150여명으로미국국적의동포까지포함하면한국계가250명을넘는다.한국계는본사직원(8400여명)중약3%를차지한다.퀄컴의작년매출은88억7000만달러였다.

-방현철기자weeklychosun[2020호]2008.09.01.-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