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악인 탐험 정연복 *-

산악인탐험정연복

단한줄의이력서‘우이동출생’

1958년우이령고개에서태어난정연복씨는지금까지그곳을떠나본적이없다.

그는“우이동을떠나서는살수도없을것”이라고말했다.

그에게선진한향기가배어났다.그건누구에게서도쉽게풍기지않는‘우이동냄새’였다.그는51년간우이동을떠나본적이없다고했다.우이동에는단지‘서울시강북구수유4동’으로만정의내릴수없는무엇이있기에?우이동은산사람의고향이다.그곳은서울이지만여느‘서울’에서는접할수없는고유의채취가남아있으며,그것은또한전형적인농촌이나산골의분위기와는또다른무엇이다.

단지카라비너나절그럭거리며달고다닌다고해서산꾼이라말할수없는것처럼,뒤로산이있고앞으로는개천이흐르는것으로우이동의지세를다말할수없다.그곳엔사람이살고,사람의이야기가있으며,그들의손톱밑에낀바위때와목덜미에서흐르는땀한방울이흙과바위와개울에섞여‘우이동’이라는또다른세계를구성하는절반이된다.

그래서우이동의냄새는쓰고털털하고고집스러우며,때론눈물맛이난다.그건인수봉올라히말라야몇번다녀오고대폿집쪽탁자에앉아막걸리몇잔마셨다고쉽게배어드는것도아니지만그에게서우이동이라는냄새가진하게배어난것은단지그곳에서살아왔기때문만도아닌것같았다.가짜우이동,시늉만내는우이동,형색이화려한수많은우이동들도이제북한산아래우이동에는얼마든지넘쳐나는세상이기에.나는정말오랜만에그에게서맡은우이동향기를오래도록기억하고싶었다.

고향우이동에서51년간살아와

“우이령고개가집이었어요.김신조가넘어와막히기전까지는.”우이동자락에서그가손가락끝으로가리킨그곳은사람이살았던흔적이라곤전혀찾아볼수없는무성한숲속이었다.2월의평일우이동은한산했다.정월대보름을앞두고동네척사대회가열릴것이라는플래카드가걸린공터앞을지나며누군가“연복이,전기톱좀구해와”라고그에게말을건넸고,그는토요일까지구해오겠다고대답하곤휘휘걸음을옮겼다.

우리는우이암을향해걷고있었다.기온이영하10℃까지내려갈것이라는예보였지만생각만큼양지바른남쪽사면은춥지않아완만한오솔길을오르면서도껴입은웃옷을하나씩벗어야했다.정연복,그의고향은우이동이다.어릴때부터용개울에서멱감고놀곤했다.용개울은우이동사람들만아는물웅덩이로,지금은물도많이줄었거니와펜스를쳐놓아들어가지못하게막아놓았다.

인터뷰요청을했을때그는스스럼없이우이암에가자고했고,그곳이첫바위를했던곳이라는설명도덧붙였다.“14살이면중학교1학년인가,그때처음티롤산악회선배들을만났어요.처음우이암에따라올라가고,바로선배들한테장비를빌려그줄로다시톱을섰죠.지금생각해보면황당한일이죠.”친구들과집뒤바위에올라육모정능선을따라영봉까지다녀오곤했던그에게영봉정상에서바라보이는인수봉의모습은늘가슴벅차게하는소년정연복의로망이었다.

우이암볼트트래버스코스아래서줄을묶고있는정연복씨.

우이암은37년전그가첫바위를했던곳이다.

“그때도가끔인수봉에매달린사람들이있었어요.구경하다가우연히형님들의눈에띄어서따라다니게됐죠.전부터우이동은산다니는사람들이많이살았어요.그런데대부분세상에알려지지를않아서….”
올해로창립42년을맞은티롤산악회는그역사만큼이나완고한면이있는모임이다.많은산악회들이생겼다없어지기를반복하고또,쉬운길을찾아가는동안에도그들은외길을버리지않았다.창립부터지금까지오봉야영터만을고집해시산제를지내온것을봐도알수있다.

오봉야영터에있는샘은‘티롤샘터’로,그들이정비하고가꾼곳이다.물론지금까지도도봉동에서2시간여땀흘리며그곳에닿은사람들의목을시원하게적셔주고있다.“선배들이전부터‘우리도볼트박아바윗길하나내보자’고하면‘자연도모르면서무슨자연파괴냐’하고,원정가자고하면‘국내산도다모르는데무슨원정이냐’고했어요.”그래서정연복의이력서에는여느유명산악인들처럼적어낼화려한경력들이없다.

1958년우이동출생,티롤산악회를알고나서바위를배웠고,우이동에서장비점‘티롤산장’을운영했으며,지금은티롤등산학교를꾸려오는중이라는말밖에는.그의인생에줄곧따라다닌‘티롤’.하지만그또한오스트리아에있는티롤산군을올라본적이없다.그런데,어쩌면그런이력을굳이밝히고적어내서,고봉몇개를올랐느니그레이드몇급을등반했느니나열하는것들이한편으론싫어했다.

‘이사람은모두입이쩍벌어질만큼튼튼하고능숙하며강력한기능을지니고있으니모두부러워할지어다’라고떠드는꼴밖에는안되는것같아씁쓸하기도하다.그건마치우이동을‘서울시강북구수유4동몇번지’라는문장으로도식화시키는것밖에는되지않는다.차라리‘봄이오는인수봉에혼자올랐을때얼굴에닿았던따스한바람을잊지못한다’라거나‘눈내리던날우이동평양상회파라솔아래앉아들이킨막걸리외상이아직도남아있다’고적는게그사람의이력이되면어떨까.

예전과달리빠르게변해가는산정서안타까워

“처음산악회를만들고한동안이름이없었다고해요.그즈음유럽출장을갔다티롤산군을보고온한선배가그곳을설명했고,모두좋다고해서산악회이름이됐다고하네요.”티롤산악회는지금까지오봉티롤길개척,그리고지난1999년동계유럽알프스3대북벽원정대를꾸렸던것말고는밖으로소리를낸적이없다.그도알프스원정대와함께등반을갔었다.결과는,수십년만에몰아친한파와폭설로꼼짝없이텐트에갇혀있다구조돼내려온것이다.

그때재미있는일화가있다.이리듐전화기를가져갔던그는조난상황이닥치자급한마음에우이동에전화를했고,전화를받은우이동패들은알프스현지에밝은허긍열씨에게연락을,허긍열씨는프랑스샤모니에서장비점을하는조문행씨에게연락을,조문행씨는스위스현지구조대에연락을한것이다.지구를한바퀴도는우여곡절끝에티롤의첫원정은끝이났다.

“우이령이막힌게지금와서는오히려잘됐다고봐요.덕분에그곳만큼은옛모습을그대로간직할수있었으니까.”정연복은우이동토박이들의모임인‘소귀골모임’의총무를10년간맡아오고있다.별다른건아니고동네에큰일이있을때모여논의하고,매년척사대회나잔치를벌려한판놀고,누구네집몇째가장가를간다고하면추렴해축하해주기도하는그런모임이다.

“여기토박이들은처음에관리공단이들어서고산에서입장료받기시작했을때거부감보다도그냥기분이이상했어요.매일내집처럼드나들던곳인데돈내라고하니까.그래서처음엔샛길로다니고그랬죠.지금은다제자리로돌아왔지만.”두번째송전탑에서다리쉼을하면서도그는줄곧우이동을굽어봤다.그의우이동은예전과달리모습도변했고,사람들도변했고이제곧경전철이들어오고우이령터널이뚫리면지금까지와는전혀다른속도로변해갈것이다.

“우이동유원지도대부분타지에서들어와이제남은토박이도몇안되요.얼마전보문산장배용복형님이산장을잃고돌아가셨을때가가장안타까웠어요.우리가그분을지켜주지못한게괴롭습니다.”
천천히옮긴발걸음은어느새옛보문산장터에닿았다.우이암을오르며,늘산사람들의아지트같았던보문산장은전쟁후의폐허처럼무수한돌무덤으로만남아있었다.산장은건물노후로인한안전문제등의이유로지난해공단에서철거했다.

“저튼튼한돌로만든집이대체얼마나위험하다고….”정연복의시선에는산과함께한지난40여년세월에대한반추가묻어나는듯했다.생각난김에인사나할까아직할머니가기거한다는원통사컨테이너박스에찾아가문을두들겼지만기척은없었다.“지금까지살아오며어려웠던적도많았지만늘오뚝이같이일어설수있었던건모두산덕분이고산에서만난선배들덕분이에요.”그는“이말은꼭써달라”고했다.그가산에오르는가장큰이유이기도하다.

3년전부터티롤등산학교운영하며졸업생100여명배출

우이암하단,오늘등반할코스는낡은링볼트가촘촘히박혀있는일명‘볼트트래버스’다.장비를차기위해주섬주섬배낭을풀고있는데,그가꺼내놓은장비중낡은알루미늄레다가눈에띄었다.이제는바위위의풍경에서는아예사라진줄만알았던걸그는지금도가지고다녔다.

티롤등산학교교육중북한산노적봉을등반중인정연복씨.지금까지도여간해서는앞줄을놓지않고있다.

“이건정말40년된장비에요.선배가쓰던건데아직도멀쩡해요.이것말고도물려받은오래된장비들이집에많아요.우이암볼트트래버스도요즘추세로보면등반을잘안하는곳이고,확보물도낡았지만저는이런등반도해볼필요가있다고생각합니다.그래서등산학교교육중에꼭한번씩찾아오죠.”3년전부터티롤등산학교를운영해오고있는‘교장선생님정연복’은사실지난시절장비점을할때부터사람들을모아전문등반을가르치곤했다.

1999년부터는도봉구에서시작한구민등산학교대표강사로활동하며1천여명에달하는수강생들과인연을맺어왔다.티롤등산학교는현재21기,100여명의졸업생을냈다.등산학교해서돈벌생각은없어요.그렇게되지도않고요.처음등산교육시작한게IMF무렵인데,그때정리해고다뭐다해서중장년층이산에많이가고,그러다보니사고도많이났는데그때만해도이분들이산에대해배울교육기관이없었거든요.

저는나이제한도없애고누구나오시라해서같이산에다닌거죠뭐.얼마전(박)영배형을만나서술한잔하게됐는데,이분이어렵게혼자해오던북한산등산학교그만두겠다고하시더라고요.안타깝죠.평생을산과함께한분인데,사람들은깊은속내를알아찾아오는게아니라‘브랜드’따라가잖아요.”이제대학생인그의딸수아는어릴적부터아버지따라암벽등반을배워등산학교에서보조강사를하기도하고,작년엔암벽등반대회에나가대학부에서1등을하기도했다.

중학교1학년인아들도함께바위에오른다.그는“애들이너무착해서…내가팔불출같을지모르지만어릴때부터산에다녀그런지정말속이깊다”며“딸아들과함께등반하러가는시간이가장행복하다”고말했다.레다가바위에부딪히며내는달그락거리는소리와함께그는앞줄을묶고나섰다.그촌스럽고투박한소리에도‘우이동’은있었다.정연복은한참동안힘을쓴끝에시작부분오버행을넘어설수있었다.

“오늘따라잘안되네”하며멋쩍은웃음을지었지만뒤이어올라보니손이곱아정말만만치않은곳이기도했다.전망은트였다.쨍한하늘아래로우이동과그너머의서울이손에잡힐듯펼쳐졌다.우이동은마이너리티다.그런데마이너리티면서도그아닌것들을모두보담을,어떤것보다도큰메이저리티다.단한줄의이력서‘우이동출생’.그향기는정연복이하나둘볼트를잡고가로지르는동안에도계속퍼져갔다.

-글/이영준기자사진/양계탁기자/월간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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