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강 의 문 화 [4] *-

강은누구를위해흐르는가?(2)

한강르네상스’

1980년대군사정권의심리학은그이전군사정권의심리학에이어져있고통틀어군사정권시대30년을지배한통치의문법전체는식민지시대의통치학에연결되어있다.식민시대이후‘근대화’의이름으로가장과감한국토재편을기획하고단행한것은역대군사정권이다.하나뿐이던한강다리는스무개이상으로늘어나고시멘트포장도로와고속도로는수십배수백배로확장되었다.그러나이같은국토재편에대한국민대중의심리적저항이나반감의크기는60년대이후개발시대가본격화하면서미미한수준으로약화된다.도로의확장과포장,고속도로의신설,한강의개발등은국가발전의토대가되어주었으나,전통문화의위축은심각한수준이다.

식민시대의‘신작로’가국토의“맥을끊는다”해서조선인의저항에더러부딪히기도했다면60년대이후군사정권시기의직선도로만들기와터널뚫기에서전통적인유기체적‘맥’의개념은거의완전히소멸한다.그러나이소멸에대한저항의기록은미미하다.여기서우리가주목하고자하는사항은두가지다.하나는군사정권후기의기념비적한강치수사업을포함한60년대이후국토개발기획의통치학적심리적뿌리는식민시대의근대적통치학에닿아있다는것이고또하나는근대적인것의위용과효율에대한대중적찬탄과선망역시식민시대에그심리적기원을두고있다.

60년대이후개발주의에의한이념적강화기를거쳐지금이시점에이르렀다는점이다.지금의살벌하고비인간적이고반생태적인한강풍경을초래한우리의정치적문화사적뿌리는생각보다훨씬깊고길다.‘한강르네상스’사업은이길고깊은뿌리를걷어낼수있는가?앞에서우리는에로스의강을말하고인간회복과강의회복을말했지만,이모든‘회복’은결코말처럼쉬운일이아니다.속도,효율,지배,개발은물질적근대의핵심가치들이다.근대건축구조물이지닌직선지향성과평면지향성은이런가치와직결되어있다.

‘한강르네상스’가강의잃어버린곡선을되찾고생태계를복원하고인간과강의접촉동선을확보하는등의작업을위해속도,효율,지배,개발의근대적가치들을내팽개칠수있는가?개발주의이념이시민인구의넓은층에깊게침투해있는지금서울시가,서울시장이,무슨수로개발주의의집요한요구를잠재울것인가?더구나지금은근대와후기근대(혹은탈근대)가중첩해있는시대다.후기근대의물질적가치체계를요약하는것은시장,경쟁,생존이다.우리가‘강다운강’이라부른아름다운생태의강,에로스의강은기본적으로속도,효율,지배,개발의근대가치들에동조하지않는다.

시장,경쟁,생존의가치를절대화하게하는이시대의엄혹한명령들과도거의정반대편에서맞서는다른가치들의존중과활성화를요구한다.‘한강르네상스’는시대의명령에맞설용기를가지려는것인가아니면개발,효율,경쟁,생존,시장등등의가치를‘르네상스’의이름아래재포장해궁극적으로는그가치체계에네발로더잘봉사하고자하는가?이런질문들은한강회복사업이간단하지않은문제들을안고있고깊은딜레마들에포위되어있다는사실을환기시킨다.한강은이미시멘트로뒤덮인견고한터널식수로가되어있다.

이미되어있고만들어져있는것들을헐어내는‘언두잉(undoing)’의작업은단순한‘디몰리션(demolition)’만으로되지않는복잡하고힘겨운과정들을포함한다.작업이외피적장식의차원을넘어서고자한다면도처에불가능의지점들이기다리고있다.예컨대강둔덕에걷기와어슬렁거림,어울림과누림이가능한문화거리를만들기위해양안고속도로들을철거하고고층아파트들을밀어낼수있는가?그많은한강다리에인간적공간을도입하는일은가능한가?이미강을떠난곳에사람들의삶의공간이견고하게자리잡은서울에서접수생활구역(waterfronttown)을만드는일은어떻게가능한가?

그러나우리는한강의모습을바꾸어보고자하는서울시의노력을도와야한다.한강은시청의것이아니라시민의것이고국민의것이다.그런데그한강,지금의한강은시쳇말로‘꼴불견’이다.그꼴불견의강은사람들의몸과마음을병들게한다.한강은다시아름다워져야한다.한강을되살려내기위한지혜의첫번째소스는한강그자체다.무엇보다도한강은‘두터운문화’를갖고있다.한강유역은신석기시대에서청동기시대에이르는문화유적들을모두가지고있는,세계에서몇안되는복합유적보유지다.

선사시대에서역사시대까지의유적들도있다.미사리와암사동의선사주거지들,몽촌토성과풍납토성의백제유적들은한강을중심으로전개된두터운문화의흔적을보여주는귀중한자원이다.한강은또고구려,백제,신라의고삼국에서부터고려를거쳐조선왕조에이르기까지다섯개왕국에젖줄을대준강이다.이처럼두터운역사를가진강은세계적으로도많지않다.오랜문화유적과기억을가진강은일시적볼거리나제공하는강과는그정신적차원이다르고또달라야한다.전쟁과상처,실패와좌절의기억들도한강의정신문화적차원을두텁게한다.

한강은우리가그동안소홀히팽개쳐온그런정신의차원,혼의차원이깊어지기를기다리고있다.조선시대의한강변에서꽃핀‘장터문화’는한강이가진두터운문화의또다른측면을대표한다.‘장터’는현대의‘시장’과는다르다.돈의신이지배하는,그러므로우리가가끔대문자‘엠(M)’으로표기할필요를느끼기도하는것이현대의‘시장(market)’이다.시장은구체적행위자들이그모습을드러내지않고드러낼필요가없는거대한추상이다.그러나‘장터(marketplace)’는추상의거대공간이아니라작은구체적공간이다.

살과땀과표정과목소리를가진구체적행위자들이서로의존재를확인하고거래를진행하는곳,사고파는행위가놀이의차원을넘나들기도하는장소다.시장을지배하는최고의명령이‘경쟁’이라면장터의거래규칙은‘교환’이다.시장에서사람은‘기능’으로만존재할수있는반면장터에서사람은언제나기능이상의‘인간’으로존재한다.지금은사라져버린,그러나한때번성했던‘마포나루’는그런조선시대장터의하나다.그것은사람들이강과이마를맞대고살았던‘워터프런트타운’의한형태다.한강복원기획은이런형태의장터문화에서배울것이많다.

한강에서기획되는그어떤축제도주민의삶에기초한이런종류의토착장터문화와연결되지않고서는공허한소비성행사로그치고만다.사람들의생활문화와생업활동이강과구체적관계를맺을수있게하는것은한강을살리는일의필수적인부분이다.지금의한강은위락업소들을빼면시민의생업활동과는아주먼곳에떨어져있다.나루가사라지면서한강은운송,물류,혹은어항의그어느기능도수행할수없게된지오래다.팔도에서양곡을실은조운선들이몰려들던양화나루,어물공급을담당하던마포나루등을현대에복원하기는어려울지모른다.

그러나서울은서해시대를앞두고강의항구도시가될수있는가능성을타개해야한다.이문제는지금도한강하류를틀어막고있는남북한대치구도와직결되어있다.강물은서해로흘러들지만민간선박은한강하류를통해서해로나가거나서울로들어올수없다.한강하구는민간선박의통행이금지된군사구역이기때문이다.앞에서우리는전쟁과관계된한강의기억을자세히말할기회를갖지못했지만,한강을무기력한강으로만든요인의하나가전쟁구도라는사실만은언급하지않으면안된다.몇해전에화가임옥상은그막힌한강하구를상징적으로뚫기위해임진강과한강의물살이만나는서해수역까지진출해보려는선상평화행진을시도했으나좌절한적이있다.그러나한강을통한서해출입의실현없이한강의회복은가능하지않다.

한강의가치와비전

한강의인문학적가치와비전을말하는일은우리시대의절실하고도기본적인윤리적질문들에응답하는일과연관되어있다.문명의가장이른아침들이강에서열렸다면문명을지탱하는지속적인힘도강에서나오는가?그렇다고말할수없다.나일강은지금도흐르지만그강에서나온문명은소멸하고없다.메소포타미아문명을기른강들은지금도유구하게존재한다.그러나그때의문명이여전히존속하고있는것은아니다.농업시대의강은땅의위대한젖줄이되어주었고산업시대에도제조업을위한강의효용은컸지만그러나지금같은고도기술시대,농업과굴뚝산업이생산의위계서열에서지배적지위를잃어버린시대에강의효용,강의효율,강의가치는무엇인가?

강은직선,속도,경쟁과도별관계가없다.오히려그것은비효율과느림의패러다임이다.강은자연의일부다.자연이삶의현장에서2선3선의가치로후퇴해버린시대에강의위치는어디인가?이런질문들은강의가치를,효용과효율이라는것의의미를,속도와경쟁의가치들을,그리고생존의명령을,지금까지와는전혀다른각도에서전혀다른방식으로정의하지않으면안된다는사실을부각시킨다.인문학은바로그‘다른각도’와‘다른방식’들을공급한다.상아탑에안주하던인문학을그탑에서떠나우리시대의절절한문제들과대결하게한사람의하나가현대이탈리아증언문학을대표하는작가프리모레비다.

그는인문학전공자가아니라화학을공부한과학자다.아우슈비츠절멸수용소로끌려가나치라는이름의고도효율체제가자행하는살육과파괴의폭력을견디어내는동안그가대면해야했던가장절실한화두는“도대체인간으로산다는것은어떻게사는것인가”였다.이것은물론인문학의핵심적질문가운데하나다.그러나레비의경우그질문은연구실에서,책에서,상아탑에서나온것이아니라절멸수용소에서나온것이라는점이중요하다.그질문에대한레비의응답이무엇인가도여기서는그리중요하지않다.중요한것은그질문자체다.

그것은아무도피해갈수없는질문이며,어딘가정답이있는질문도아니다.그것은각자가응답해야하는질문이다.나는이질문을‘한강의질문’으로돌리고자한다.나는레비의그질문을한강의질문으로삼는것이한강의인문학적가치를요약한다고생각한다.물론이말은지금의한국이레비가겪었던절멸수용소와유사한상황조건에놓여있다는소리가아니다.그러나우리는레비의그질문이우리시대의세계에가장중요한윤리적질문이된순간에오히려그질문을기피하고그질문으로부터열심히도주하려한다.

그질문을망각한사회가고도효율에도불구하고나치같은지옥의체계를만들어낸다는사실을우리는잊고있다.나는평화의강,생명의강,공생의강을지향하는것이한강의비전이어야한다고생각한다.이런비전은한강을유연한강,에로스의강,서로다른가치와지향들도공생의체계속에관용하고아우르는열림의강이되게할수있다.그러나그비전의밑바닥에는우리가언제나,궁극적으로던져야하는기본적인질문이있다.누구를위해서,무엇을위해,강은흐르는가?

-도정일|문학평론가·경희대명예교수/신동아2009년2월호별책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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