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산 [20] *-

6.도봉산만장봉낭만길(5)


◇4피치침니구간을등반중인주정은씨.팔을어깨까지끼우는암바(ArmBar)기술이사용되는곳이다.

‘낭만’을사전에서찾아보면주정적(主情的)또는이상적으로사물을파악하는일,현실보다공상의세계를즐기는일이라는풀이가나온다.주정이라함은말그대로감정에바탕을둔,별로이성적이지않은,소위알딸딸한주정(酒酊)과비슷한상태같다.한자어로풀어봐도물결랑(浪)에질펀할만(漫)이니뭔가이리저리넘실대는분위기가느껴진다.그래서낭만은곧취하고볼일이다.

번득이는칼날같은각진낭만이있을까.얼음이동동뜬시원한설렁탕을상상할수없는것처럼.만장봉오르기전에우람한만장봉이바라보이는길가에쭈그리고앉아볕을쬈다.도봉산만장봉낭만길을등반하기로했기때문이다.문득도봉,만장,낭만이라는단어를염불처럼입에서굴리다보니이상하게도그사이에서비슷한점을찾아낼수있었다.

무어라표현하기는힘들지만,‘도봉만장낭만’이라거나‘도봉만장낭만’을읊으며‘그것참낭만적인단어들이군’하는엉뚱한생각이들었다.만춘(晩春),아지랑이의봄이무르익는날의낭만이란꽃에취하고볕에취하고황사에취하다가결국방향감각을잃어아무렇게나부는바람이되어버릴거야.매운황사가퀭하게휩쓸고지나갈수록아,반쯤뜬눈으로도낭만적이고싶다.

인간은반드시이성적판단에기대어현실의한가운데에서만사는것은아니다.이런생각또한작렬하는태양을따라머리를쿡쿡찔러왔다.중얼거리던중주정은씨를만났고더이상이마가뜨거워지기전에김봉주씨가나타났다.다들모여늦은아침을먹고나서야김형일씨가헐레벌떡뛰어왔는데,그는약속시간보다한시간쯤늦었다.

“마셨기때문이지.”밤에는술에취하고낮에는바위에취한다.취(醉)하는일이술(酒)로졸(卒)하는것만아니라면늘어딘가에젖어있는것도나쁘지않다.취생몽사(醉生夢死)란결코아무뜻없이한세상을흐리멍덩하게보내는일이아니다.낭만을읊은시인묵객을이루다꼽을수야없지만단연가수최백호가노래한낭만이무딘가슴으로도이해가빠르다.

그의노래에서‘도라지위스키’가‘계란동동쌍화차’라면좀감흥이떨어질터이다.‘궂은비내리는날그야말로옛날식다방에앉아/도라지위스키한잔에다짙은색소폰소릴들어보렴…이제와새삼이나이에청춘의미련이야있겠냐만은/왠지한곳이비어있는내가슴이다시못올곳에대하여/낭만에대하여’


◇2피치참나무가서있는쉬운크랙을오르면나오는작은뜀바위구간.올록볼록한바위를잡고다리를벌려건너가면된다.

만장봉낭만스토리

낭만에대해연구한어떤학자는그에대해1400여가지정의를내렸다고한다.결국세상모든것이낭만없이는없다는것이다.그렇다면모든낭만의공통점이란마음속에서끝없이용솟음치는무엇일터이고,멈추지않는다는것은이루지못할어떤열망을지니고있기때문일테다.안타깝고도이상한건낭만을좇는사람들이이세상에서현실을외면하는비주류적인종(種)으로치부되는경우가많다는것이다.

인간은낭만을동경하기도하고낭만으로부터떨쳐나려고하는두가지모습을모두가지고있기때문아닐까.여하튼그낭만과낭만의원천이란때로저단단한바윗돌에까지스며들고사람들은끊임없이새로운벽을탐한다.만장봉도그런사연의세월을지니고있다.만장봉(萬丈峰)은꼭도봉산에만있는것은아니다.

그이름처럼단지‘높은산봉우리’에가붙었던만장봉이라는이름은옛사람들에게는쉽게범접할수없는무엇과,동경하는거대한물신과,뿌리부터치밀어오르는우렁찬사자후의다른모습이었을지모른다.만장봉은지금의수많은바위꾼을있게한한국근대등반의시작점이되었는데,영국산악회회보1931년판에영국인아처(C.H.Archer)와매크리(H.A.Macrae)의등반기록이나와있다.

1925~27년의것으로추정되는그기록에서아처는“한국은산악국이지만그들의통념은높이에는큰관심이없다…좋은암벽의산들이많고등반에도어려움이따르는데이제겨우이런암봉이산악인들의주목을끌기시작했다…나는갈고리같은기구를사용해만장봉남벽90여m벼랑의침니코스를올랐다…6개월뒤매크리와함께270여m에이르는북면코스를올랐다.

이등반은7시간이나걸렸다”고적고있다.1987년4월한국산서회에서는이들과같은시대의장비를사용해만장봉남벽초등반을재현한후<산서>2호에‘근대등산뿌리의재조명’이라는글을실은바있다.만장봉에는낭만길이있다.아처의북면루트와겹치는곳이었을지도모를이길에이름을붙인사람들은요델족(族)이라고전한다.

40여년전이곳을등반한요델산악회백인섭씨는홈페이지를통해공개한그의자서(自敍)에서당시를이렇게회상했다.‘길지는않지만쉬운것에서꽤어려운것까지여러가지베리에이션루트가있었고군데군데널찍한마당바위들이있어우리부족이모두모여앉아서산의정취에마음껏취하고정다운산노래를합창도하고그리고조금은어설프지만그래도요델소리도질러보면서우리만의낭만을즐길수가있는그런암릉이었다.

그래서우리는그것을낭만길이라불렀고무척이나애용했었다.’때로인간은태고에서낭만을찾는다.그것은분명현재에존재하기힘든,과거의기억에의존해점점부풀어오르곤한다.만장봉오르는낭만길에지금까지사람들의발길이잦은이유는그길이지닌자연본위의모습때문일것이다.오늘날의우리들은낭만길등반을준비하며습관적으로퀵드로를5개쯤챙기게되지만정작그곳에퀵드로를클립할만한볼트는없다.

오로지손맛좋은크랙과침니,굵은소나무만있을뿐이다.그길의무게는얼마나될까일행은매표소를지나색소폰바위를지나짱구바위,천축사갈림길과부엉이바위를지나석굴암과갈라지는삼거리에서만월암으로곧장발길을옮겼다.그곳까지오르며나는생강나무와산수유를구별하는법에대해새로알게되었고간간히황사를뒤집어쓰고부스스한미소를짓는진달래에서늙은봄의구부러진등허리같은것을떠올리게되었다.

폐허처럼지붕이날아간피톤산장과그뒤에우뚝선선인봉의모습에서는마그마에서시작한돌의팔자가저렇게달라질수있구나와같은생각이잠시떠올랐다.바위에취할오늘의‘낭만클라이머’들의관계를정리하는일도빼놓을수없다.김형일씨와김봉주씨는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를통해알게되어알프스와히말라야원정도함께다녀온사이고김형일,주정은씨는코오롱등산학교에서강사와교육생으로만났던사이며,김봉주씨와주정은씨는오늘처음인사를나누는사이다.

그들은줄곧서로를웃겼는데,예를들자면이런식이다.“프랑스샤모니에서이름을묻기에‘봉주’했더니인사말고이름이뭐냐고묻더군.”“마셔도주정은하지않아요.”만월암에서물통을채우며암자뒤편을호위하는거대한바위의난이도를짐작해보던우리는좁은계단으로이어진등산로를따라낭만길초입에섰다.

평일낮낭만길을찾는사람은없었고,자운봉에한팀,멀리선인봉설우길에한팀이느릿느릿바위를껴안고있었다.1피치는굳이줄을묶지않아도되는,홀드와스탠스가좋은완경사의바위다.간간히드러난나무뿌리를잡고오를수도있어별다른중간확보물은필요없다.20m쯤올라한번경사가꺾이는테라스에서중앙으로난크랙을따르다왼쪽으로구부러진크랙을발디딤삼아횡단하면된다.

“인수봉에고독길이라면만장봉은낭만길이지.”낭만길은이제비나눈이오는날이아니면소위전문클라이머들의발길은뜸하다.주로리지등반을즐기는사람들이주말에줄을서서오를뿐이다.하지만가장어려운곳을골라오른다고해도요세미티난이도로5.7급에지나지않는그길에는단지숫자로매길수없는무게가있다.

그것은백번떠들고듣는다한들완전히알수있는것이아니어서아무도없는조용한평일오후,무엇을나누어도아깝지않을파트너와함께올라보는수밖에는없다.적어도줄끝을통해가냘픈떨림같은것이전해온다면그것이이길의무게이리라.앞줄을묶은김형일씨가기자의확보를받으며먼저오르고촬영을위해김봉주씨와주정은씨는따로뒤이어올랐다.

모인세사람에게는모두올해‘첫바위’다.주정은씨는작년봄등산학교를졸업하고지금까지산에푹빠져지내고있다.방송작가인그는지금까지시청률이제법높았던시트콤대본을써왔는데,그런이력처럼말끝마다재치가넘치곤했다.그가등반에앞서“누구든나의캐릭터가될수있다”고말했기에우리는바위에매달려코를후비거나눈곱을떼는일등은보다주의를해야했다.

산허리까지띠를둘렀던꽃길은바위가시작되며끊어졌다.동북쪽으로누운낭만길에는그늘이드리워제법한기가남아있다.이제막꽃망울을틔우거나아직마른가지에물이오르지않은것들도자주보였다.두번째피치에서앞서가던김형일씨는동굴로빠져나가는길을모르고지나쳤다.유심히살피지않으면쉽게계곡으로빠져들수있는곳이다.

바로잘닦인‘우회로’때문인데,수많은우회로가생겨났다는것은그만큼등산인구가늘었다는것과,우리시대의등산이란굳이가파른벼랑을택하기보다는적당히짜릿하고완벽히안전한,그런것들을좇는다는반증이다.어쨌든앞서가다삼천포로빠진그는다시뒤로돌아와야했고줄을서서뒤따르던우리들도제길을찾아동굴을빠져나와쉬운크랙을각자올랐다.

낭만의끝은온기로가득한정상

크랙에박힌참나무를붙잡고빠져나온능선에서는비로소시야가트였다.이어진주먹하나가들어갈만한크랙과계단처럼닥터링이되어있는푸석바위를지나몸이가까스로빠져나갈만한침니를오르면여러명이앉아쉴수있는너른테라스가거기에있다.테라스한가운데에는‘한국TOP산악회’라는이름이새겨있는비석이있고,자운봉의매끈하고도아찔한고도가눈앞에펼쳐진다.

한아름이넘는큰소나무가그늘을드리우고있으니간간히살속으로파고드는서늘한바람만아니라면그대로누워낮잠한숨자고가고싶은곳이다.일행은배낭을풀어놓고간식거리를꺼내먹으려잠시망중한을즐겼다.“볼수록트랑고타워같네.”“거기가보셨어요?”김형일씨는너른바위에서바라보이는자운봉의모습에서파키스탄의침봉네임리스트랑고타워를본다.

사진으로만그곳을보아왔던기자도배추흰나비의추억리지로뻗어내린자운봉의매끈한벽이꼭숄더와상단벽으로이루어진트랑고타워의모습같았다.주정은씨는아마도산행을끝내고돌아가면책을뒤져트랑고타워라는곳의실제모습을찾아볼것이다.산에서궁금한것을발견하고그것을알아내며클라이머는성장한다.가스통레뷔파도꼬마시절그렇게컸다.

김봉주씨는그곳에서바라보이는자운봉남벽에여러가지등반선이나올수있다는의견이다.과거몇번의등반기록이남아있는침니와크랙말고도불규칙하게나있는선들속에는분명숨어있는길이있을것이고지금우리가오르는낭만길도수십년전에는그랬을것이다.“이제어디로가죠?”주정은씨의고민처럼초행이라면도무지방법이없을만한절벽에도길은있다.

너른바위에서바라보이는건너편벽은적어도자유등반으로는불가능한,그리고등반흔적도없는크랙이다.하지만침니반대편을클라이밍다운하면거기에또불규칙한침니가숨어있다.처음이길을올랐던사람도같은고민을했을것이다.테라스에서바로솟은벙어리크랙을도전해야하는가,내려가면또다른길이있을까하고말이다.

낭만길에서가장어려워우회로가뚜렷한4피치침니는사람들의흔적이확연히적다.크랙사이에두텁게낀이끼가그것을말해주는데,이끼는사람의손을타면주변까지금방죽는다고알려져있다.김형일씨가막막한침니에서끙끙소리를내며몇번힘을쓰고나자이내완료소리가들린다.어깨까지끼워넣는암바(ArmBar)기술을사용해도되고밖으로나와스탠스를잘찾으면어렵지않게오를수있다.

침니를올라서니만장봉정상이눈앞이다.사실우리의배낭에는맥주가들어있었다.정상을위한것이었기에지금까지타는목을침으로달래며,이곳까지왔지만눈앞에길끝이보이자더욱몸이달아올랐다.
머릿속엔정상에올라너른암반에아무렇게나앉아벌컥벌컥그것을들이킬생각뿐이었다.짧은슬랩과뜀바위,조금미끄러운핑거크랙을올라유일하게쌍볼트확보지점이있는6피치시작지점테라스에닿았다.

길은세갈래로나있어오른쪽침니와바둑판과같은정면페이스,왼쪽디에드르크랙을골라오를수있다.우리는가장쉽고,많은사람이이용하는왼쪽크랙을따라올랐다.40m를계속오르면정상까지한번에치고오를수도있지만,하켄과볼트가박혀있는중간테라스에서피치를한번끊었다.느지막이시작했기에이미바위그늘이길게드리워더이상볕이들지않았다.중간테라스에서길은다시오른쪽과왼쪽두갈래로갈라진다.

쉽게왼쪽으로트래버스해여러개로조각난바위를붙잡고정상으로뚫린출구를향한다.겨우내얼었던바위사이의흙이녹으며조금씩흔들리는촉스톤도있었다.“여긴따듯해!”바위에슬링을감아확보지점을만든김형일씨가그늘을벗어난정상에서처음외친말이었다.하루종일우리가찾아오른것이바로이양지와같은낭만이었을까.뉘엿뉘엿태양의각도가눕고보름을알리는둥근달의실루엣이황사먼지사이로희미하게떠오르고있었다.봄날은간다.

◇푸른창공에로프를던져라.만장봉정상에서후면으로25m씩2번하강하거나선인봉전면으로도하강용피톤이있다.

INFORMATION

도봉산만장봉낭만길길잡이


도봉산만월암에서시작해만장봉정상에이르는암릉인낭만길은1964년요델산악회에서등반후이름붙였다.선인봉의가장오른쪽능선에서시작하며오른쪽으로는자운봉,왼쪽으로는선인봉을조망하며오를수있다.크랙과침니등자연스런등반선을따르기때문에고전식등반을익히는데좋은코스다.난이도도어렵지않아초보자도등반가능하다.리지등반이라기보다는벽등반과걷는등반이섞인곳으로생각하는것이좋다.

접근로


도봉산매표소를지나만장봉가는방향으로오르면도봉산장이나온다.도봉산장에서오른쪽길로계속올라물건너는곳을지나면선인봉석굴암가는방향과만월암방향으로갈라지는쉼터삼거리가나온다.
어느쪽으로올라도낭만길시작지점에닿을수있다.석굴암쪽으로가면푸른샘을지나경찰산악구조대가있는공터에서선인봉을마주보고오른쪽으로난길로계속간다.

선인봉의가장오른쪽측면에있는길이낭만길이므로선인봉을끼고돈다고생각하고곧장가면된다.외벽길과영우길시작지점을지나100여m를가서마사토오르막을올라선능선안부가낭만길시작지점이다.쉼터삼거리에서만월암쪽으로간다면만월암위로난길을따라조금오르다가왼쪽으로난희미한길을따르면만장봉에서흘러내린능선안부와만난다.도봉산매표소에서낭만길시작지점까지는약1시간20분이걸린다.

등반정보

1피치는홀드와스탠스가좋은완경사바위를15m올라크랙으로진입해확보물을설치하고왼쪽으로난크랙을따라트래버스해위쪽나무에확보하면된다.트래버스하지않고직상하는것도가능하다.이후로프를사려걸어가는구간을지나면동굴처럼뚫린바위가나온다.바위에서왼쪽으로조금내려가오른편으로나있는쉬운크랙을따라오르면2피치가끝난다.

3피치는정면에나무가있는재밍크랙을10m쯤오른뒤이어나타나는테라스에서왼쪽에계단식으로패여있는바위를올라침니로진입해15m를등반한후큰소나무에확보한다.침니는오를수록폭이좁아져배낭을메면불편하므로바깥으로나와스테밍자세로오르는것이편하다.소나무뒤편에는비석과넓은테라스가있다.

테라스에서침니반대편으로20m클라이밍다운을해서10m걸어가면4피치출발지점이다.침니와크랙이섞인4피치는난이도5.7급으로오른쪽으로우회하는길도있다.침니를등반한후능선아래나무에서확보한다.이후슬랩과닥터링이되어있는바위턱을오른후짧은크랙을지난다.중간에로프로확보하는것이안전하다.6피치는쌍볼트가박혀있는넓은테라스에서시작한다.

정면에볼트가박혀있는페이스를올라도되고왼쪽침니나오른쪽크랙어느쪽으로올라도된다.20m를올라위쪽으로뻗은좌향크랙을20m오르면만장봉정상이다.정상에는확보물이없으므로캠등으로확보지점을만들어야한다.정상에서자운봉쪽으로조금내려간지점에피톤2개가있으며여기서25m씩2번하강하면신선대와만장봉사이안부로내려설수있다.4피치아래에서우회로를따라계곡으로탈출할수있다.

등반장비

3인1조로등반할경우60m로프1동과캠1조,퀵드로5개,슬링3~4개가필요하다.
등반시간은하강까지3시간여가소요된다.
식수는만월암이나선인봉아래푸른샘에서구하면된다.

-글이영준기자·사진김도훈기자/월간마운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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