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만1126㎡면적에34만여그루자라
1950년대산림녹화용으로미국에서들여온리기다소나무는껍질이거칠고곧게자란다.목재는질이나쁘고송진이많이나오며옹이가많아쓰임새가적지만송충이의피해에강하고어디서나잘자라기때문에사방조림에주로사용했다.지금은별로심지않는다.
아울러일본원산인금송(金松)도있다.금송은잎이두툼하고더운지방에산다.
이처럼많은종류의소나무가있지만우리나라사람들은금강송을최고의소나무로친다.그이유는미인송이라이름붙일만큼곧게자라미학적으로아름답고,목질이좋아건축재로서의가치가높으며,장기생육하여둘레가큰목재를얻을수있기때문이다.더디게자라목질이조밀하고,송진함유량이많아잘썩지않으며갈라지지않는장점도가지고있다.
금강송은경북봉화·울진,강원도삼척등에서주로자란다.울진은금강송보호구역으로지정될정도로유명하지만,삼척군준경묘·영경묘역은가장아름다운소나무들이자라는곳이다.
준경묘는조선태조이성계의5대조인이양무장군의묘다.준경묘로가기위해서는동해고속도로동해종점에서우회전하여38번국도를타고미로면에들어선후활기리에이르면표지판이있다.하지만준경묘는평지에있는것이아니라거의노동산(蘆洞山)정상부근에있으므로마을사람에게길을물어야한다.
차에서내려산길로1시간여를걸으면갑자기탁트인분지가나타난다.그리고탄성이절로나온다.삼척시미로면활기리에위치해있는준경묘주변의소나무들은궁궐목재로사용하기위해현재문화재청의소유로시가관리하고있으며면적은507만1126㎡에이르고소나무만34만여그루가자라고있어장관을이룬다.
준경묘역은2005년제6회‘아름다운숲’전국대회에서대상을차지했을정도로아름다운숲인데이숲을제대로알기위해서는역사공부를먼저해야한다.“해동(海東)육룡(六龍)이날아샤일마다천복이시니…”로시작하는<용비어천가>의첫머리를장식하는목조(穆祖)는전주이씨의시조이한(李翰)의17대손이다.조선을건국한이성계의5대조로본명은이안사(李安社)다.
이안사의할아버지(15대)이린은이용부로대장군을지냈다.대장군은고려시대무인의최고관직이다.16세이린은내시집주를지냈으며당시의실력자인시중(侍中)문극겸의딸과결혼했다.시중은현재의국무총리에해당하는최고관직으로시중의딸과결혼했다는것으로보아대단한세력을형성하고있었음이틀림없다.
그런데<고려사>를보면이린은이의방의동생으로되어있다.이의방은정중부,이고등과함께고려의종때무신란을일으켜문신들을모조리척살하고무신정권을창출한주역이었다.그러나이의방은계속된권력투쟁의와중에정중부의아들균에게살해되었다.이때이의방의형인이준의도죽었으며동생이린도실각했다.다만이린이죽음을면한것은시중문극겸의영향력이작용했기때문으로추측된다.이린은유배지를떠돌다전주에정착했다.
<조선왕조실록>에의하면이안사는어려서부터성품이호방하여사방을경략할뜻을가지고있었다.한때그는전주관아에소속된관기를좋아했다.그런데어느날산성별감이이안사가좋아하는관기에게수청들게하자이일로전주주관(州官)과다투게되었다.이안사를경계한주관은안렴사(按廉使:안찰사·지방5도의장관)와의논하여중앙에알리고군사를동원하여이안사를치려했다.소식을들은이안사는황급히피란해강릉도삼척현으로이주했다.이때170호가이안사를따라나섰다.
이안사가삼척으로도피한까닭은부친이양무가삼척이씨이강제의딸과혼인하였기때문이다.전주를떠난이안사는태산준령을수없이넘어삼척군미로면활기리에정착했다.그러나이안사가170여호의대집단을데리고정착한활기리는지금도누구나가보면알수있듯이첩첩두메산골이다.현재활기분교에서동북쪽으로200m가면목조대왕구거유지(舊居遺址)가있다.
옛집터에는지금도섬돌과주춧돌이남아있다.앞에냇물이있고뒤편에산이있는100여평의터로집한채가들어갈만한정도의옹색한공간이다.그러나옛터앞에자라고있는20여그루의소나무는아주미학적인아름다움을발한다.활기리에는약간의평지가있으나논농사는부적합하고겨우밭농사를지을수있을정도라서170호가살수있는터전이전혀되지못한다.그러므로170호를끌고왔다는것은과장이라고생각된다.
百馬를白馬로오해하고흰말잡아제올린뒤만든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