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척 준경묘 소나무 (1) *-

[김규의나무기행]삼척준경묘소나무(1)

우리나라에서가장아름다운소나무(1)
제6회‘아름다운숲’전국대회에서대상차지

소나무는우리민족의나무다.조상들의한국화에가장많이등장하고,‘남산위에저소나무철갑을두른듯…’으로시작하는애국가2절에표현될정도로우리나라를대표하는나무다.

소나무(松)는나무(木)와공(公)자가합쳐진글자로지체높은나무라는뜻을담고있다.그런데그소나무가점점사라져가고있다.국토연구원은2009년8월에제출한보고서를통해“2050년에한반도는아열대화로소나무는찾아보기힘들게되고대표수종은더위에강한졸참나무로바뀔전망”이라고밝혔다.

▲준경묘역에는아름드리소나무34만그루가자라고있다.
적송의맏아들격인금강송을최고로꼽아

우리나라의산림은646만4000ha로국토면적의65%정도다.소나무는1970년대까지전체산림의50%를차지했다.그러나자연환경의변화에따라매년감소해2007년에는23%인150만㏊로줄어들었다.절반이상이사라진것이다.대신같은기간활엽수림은10%대에서26%까지넓어졌다.국립산림과학원의분석에따르면2060년경에는지구온난화로경북북부,지리산·덕유산등고산지대와강원도에서만소나무를볼수있다는충격적인연구결과도나왔다.

소나무가이땅에서자취를감추는원인으로크게병충해,산불,지구온난화등을꼽고있다.이중에서도소나무는지구온난화의영향으로심각한가뭄피해를입고있다.활엽수나낙엽송과달리소나무는겨울철이상고온이지속될경우증산작용을해수분이빠져나감으로써고사하게되는것이다.소나무는양수(陽樹)로햇빛이있어야자란다.그러나숲이우거져활엽수잎들이바닥에쌓이면서소나무의자연발아를차단하는것도감소의큰원인이되고있다.

소나무류가지구상에처음나타난것은중생대트라이아스기말기인1억7000만년전으로추정된다.트라이아스기에는초기공룡과원시포유류가등장했다.식물계에서는겉씨식물과양치식물의진화가뚜렷했다.

한반도에서는백악기의퇴적층에서소나무류화석이많이발견되었는데오늘날의소나무와크게다르지않은모습이다.경북의포항·영일·감포지역과강원도통천·부평등에서도많은양의소나무류화석이보고되고있다.소나무는백악기에이땅에함께나타났던나무중에서가장성공적으로환경에적응한나무라할수있다.

현재소나무가우리나라의우세수종이된이유는생태학적으로생육범위가넓고건조에강하기때문이다.소나무는강수량이그리많지않은척박한땅에서도잘자란다.또한무기염류의요구가적고,뿌리에균근의기생으로인한생육이빠르다.열매를많이달아많은종자를생산하고산포력이넓은것도개체확산에크게기여했다.

▲(좌)준경묘는두타산의배꼽에해당하는명당이다.(우)2005년‘아름다운숲’대상에선정된준경묘소나무숲표지석.
지질학적으로는우리나라의모암이화강암(65%)으로이루어져있어배수가잘되기때문이다.특히3,4월의강수량이적어소나무의꽃가루생산과수분(受粉)활동에유리하다.대개봄철이되면우리나라어디에서나송홧가루가연푸르게날리는것을보게되는데이는소나무의왕성한번식활동을입증한다.

또한우리나라는예로부터소나무를십장생의하나로꼽을만큼존송사상을가지고있었고,목재로서의높은가치때문에나라에서법으로엄격하게관리하였으므로폭넓은소나무숲이유지될수있었다.지구상의소나무는100여종이나된다.북반구의북위30도위아래로폭넓게분포하지만주분포지는동아시아의한국,일본,중국,러시아의우수리지역이다.

우리가늘가까이하는소나무는똑같은것처럼보이지만실제로는매우다르다.잎으로구분하면두갈래잎에는적송,해송,반송등이있다.세갈래잎에는백송,리기다소나무,테에다소나무가있다.다섯갈래잎인오엽송의대표는잣나무다.

종별로구분하면먼저붉은표피를가진적송(赤松)이있다.육지소나무의대표이므로육송(陸松)이라부른다.적송은껍질이거북등처럼갈라지며하늘을향해매끈하게쭉뻗어있다.위로올라갈수록더붉은색을띤다.목질이단단하면서도부드러워우리나라의대표적인건축재로쓰이고있다.

적송은다시색깔과형태에따라여러가지로나뉜다.적송의맏아들격인금강송은줄기가밋밋하고곧게자란다.외형적으로는육송의형태이나곰솔(해송)의요소가있기때문에둘사이의잡종으로본다.금강송중에서미인처럼쪽뻗은나무는미인송이라불린다.경북봉화군춘양면에서밀생하는춘양목,속이황금빛을띤다하여이름붙인황장목(黃腸木)등도모두적송이다.은송은잎에흰색또는황금색의가는선이세로로있다.

처진소나무(반송·盤松)는가지가가늘고길어서아래로늘어진형태이다.경북청도군운문사의처진소나무가유명하다.줄기밑부분에서굵은곁가지가많이갈라지며수형이우산처럼더북하여바라만보고있어도편안한마음이든다.

바닷가에서식하는해송(海松)은표피가검다.곰솔,흑송으로도불린다.해송은바닷바람을맞은탓에껍질이거칠고강한잎을가지고있다.자연조건에적응하느라줄기도많이구부러져있으며잎이짧다.이런특징때문에분재용으로많이쓰인다.울릉도해변의아주오래된해송들이멋진풍취를자랑하여지난여름카메라에많이담아왔다.

껍질이하얗게벗겨지는백송(白松)은소나무의돌연변이로알려져있다.중국베이징지방이원산지다.중국에가면궁궐이나묘지에서백송을자주볼수있는데우리나라의백송은모두중국에서가져온것이라한다.백송의껍질은매끄럽다.20년정도되어야만껍질이떨어지기시작하고40년이후에야백색의큰껍질조각이떨어져서백송의특징이나타난다.대표적인개체는서울조계사와재동헌법재판소의백송을들수있다.헌법재판소의백송은수령600년으로최고령을자랑하며아직도생장상태가좋다.

▲목조대왕구거유지.20여그루의소나무가미학적아름다움을발하고있다.
507만1126㎡면적에34만여그루자라

1950년대산림녹화용으로미국에서들여온리기다소나무는껍질이거칠고곧게자란다.목재는질이나쁘고송진이많이나오며옹이가많아쓰임새가적지만송충이의피해에강하고어디서나잘자라기때문에사방조림에주로사용했다.지금은별로심지않는다.

아울러일본원산인금송(金松)도있다.금송은잎이두툼하고더운지방에산다.
이처럼많은종류의소나무가있지만우리나라사람들은금강송을최고의소나무로친다.그이유는미인송이라이름붙일만큼곧게자라미학적으로아름답고,목질이좋아건축재로서의가치가높으며,장기생육하여둘레가큰목재를얻을수있기때문이다.더디게자라목질이조밀하고,송진함유량이많아잘썩지않으며갈라지지않는장점도가지고있다.

금강송은경북봉화·울진,강원도삼척등에서주로자란다.울진은금강송보호구역으로지정될정도로유명하지만,삼척군준경묘·영경묘역은가장아름다운소나무들이자라는곳이다.

준경묘는조선태조이성계의5대조인이양무장군의묘다.준경묘로가기위해서는동해고속도로동해종점에서우회전하여38번국도를타고미로면에들어선후활기리에이르면표지판이있다.하지만준경묘는평지에있는것이아니라거의노동산(蘆洞山)정상부근에있으므로마을사람에게길을물어야한다.

차에서내려산길로1시간여를걸으면갑자기탁트인분지가나타난다.그리고탄성이절로나온다.삼척시미로면활기리에위치해있는준경묘주변의소나무들은궁궐목재로사용하기위해현재문화재청의소유로시가관리하고있으며면적은507만1126㎡에이르고소나무만34만여그루가자라고있어장관을이룬다.

준경묘역은2005년제6회‘아름다운숲’전국대회에서대상을차지했을정도로아름다운숲인데이숲을제대로알기위해서는역사공부를먼저해야한다.“해동(海東)육룡(六龍)이날아샤일마다천복이시니…”로시작하는<용비어천가>의첫머리를장식하는목조(穆祖)는전주이씨의시조이한(李翰)의17대손이다.조선을건국한이성계의5대조로본명은이안사(李安社)다.

이안사의할아버지(15대)이린은이용부로대장군을지냈다.대장군은고려시대무인의최고관직이다.16세이린은내시집주를지냈으며당시의실력자인시중(侍中)문극겸의딸과결혼했다.시중은현재의국무총리에해당하는최고관직으로시중의딸과결혼했다는것으로보아대단한세력을형성하고있었음이틀림없다.

그런데<고려사>를보면이린은이의방의동생으로되어있다.이의방은정중부,이고등과함께고려의종때무신란을일으켜문신들을모조리척살하고무신정권을창출한주역이었다.그러나이의방은계속된권력투쟁의와중에정중부의아들균에게살해되었다.이때이의방의형인이준의도죽었으며동생이린도실각했다.다만이린이죽음을면한것은시중문극겸의영향력이작용했기때문으로추측된다.이린은유배지를떠돌다전주에정착했다.

<조선왕조실록>에의하면이안사는어려서부터성품이호방하여사방을경략할뜻을가지고있었다.한때그는전주관아에소속된관기를좋아했다.그런데어느날산성별감이이안사가좋아하는관기에게수청들게하자이일로전주주관(州官)과다투게되었다.이안사를경계한주관은안렴사(按廉使:안찰사·지방5도의장관)와의논하여중앙에알리고군사를동원하여이안사를치려했다.소식을들은이안사는황급히피란해강릉도삼척현으로이주했다.이때170호가이안사를따라나섰다.

이안사가삼척으로도피한까닭은부친이양무가삼척이씨이강제의딸과혼인하였기때문이다.전주를떠난이안사는태산준령을수없이넘어삼척군미로면활기리에정착했다.그러나이안사가170여호의대집단을데리고정착한활기리는지금도누구나가보면알수있듯이첩첩두메산골이다.현재활기분교에서동북쪽으로200m가면목조대왕구거유지(舊居遺址)가있다.

옛집터에는지금도섬돌과주춧돌이남아있다.앞에냇물이있고뒤편에산이있는100여평의터로집한채가들어갈만한정도의옹색한공간이다.그러나옛터앞에자라고있는20여그루의소나무는아주미학적인아름다움을발한다.활기리에는약간의평지가있으나논농사는부적합하고겨우밭농사를지을수있을정도라서170호가살수있는터전이전혀되지못한다.그러므로170호를끌고왔다는것은과장이라고생각된다.

百馬를白馬로오해하고흰말잡아제올린뒤만든묘

▲준경묘와영경묘는3.6km떨어져있다.
그런데활기리에머물게된1년후부친인이양무가죽고(1231년·고려고종18년)말았다.아버지이양무가죽자이안사는묘지를구하러사방을헤매다나무밑에쉬고있었다.마침한스님이지나다“이자리에묘를쓰면5대후손이왕이될것이다”라고했다.귀가번쩍뜨인이안사는스님에게달려가자세히물었다.그는“이자리에말백마리를잡아제물로하고,황금으로만들어진관을쓰면5대후손이왕이될것이다”라고일러주었다.

부유하지못했던이안사는이말을듣고고민에빠졌다.그런데꿈속에서동자가들판과장에나가보라고했다.다음날일찍들판에나가보았더니벼의황금빛물결이눈에들어왔다.그는무릎을쳤다.다음으로장에나가보았더니흰말을팔러나온사람이있었다.그는백마를사가지고와볏짚으로관을싸황금관에준하여사용하고,‘百馬’를‘白馬’로해석해흰말을잡아제를올렸다.그렇게하여준경묘가만들어졌다.

비전문가가보기에도준경묘는명당이다.여름철땀을뻘뻘흘리며작은고개를넘어서면축구장두개넓이의탁트인분지가나타나는데,분지상단에묘가있다.두타산에서동남쪽으로뻗어내린노동산자리는풍수상좌청룡우백호의외형이잘갖춰진명당임에틀림없다.필자가보기에이곳은두타산의배꼽에해당하는곳이다.

필자김규중앙대에서문학과커뮤니케이션을공부했으며,

문화일보신춘문예(시)에당선됐다.중앙대·한서대등에서강의하고있다./
월간산11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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