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한창잘나가던시절두사람은바인타브락2봉원정을마지막으로각자의길을갔다.윤대표는1983년틸리초피크(7,132m)동계등정에이어1983년바인타브락2봉재도전,1984년샤르체(7,459m)등정,1986년K2원정등30대중반까지히말라야고산등반에열정을불살랐고,이후자유등반의세계에몰입하면서코오롱등산학교를통해후배산악인양성에힘을기울여왔다.
“20년만에인수봉을찾았어요.그런데우이동에서부터인수밑에다가서는사이에아는사람이한명도없지뭐예요.낯선세상에서외톨이가된기분이었어요.그래도까칠까칠한바위맛을보고싶어인수봉대슬랩을올라서는데귀에익은목소리가들리는거예요.대표야!대표야!하고불러댔어요.”
윤대표는코오롱등산학교수강생들과교육등반중이었다.두사람은함께전쟁을치른전우를몇십년만에만난기분이었다.줄을묶었다.그리곤20여년전알프스3대북벽을오를때와같은전율을느끼며인수봉정상을올랐다.
이렇게재회한두사람은2월9일토왕골로들어섰다.암투병중인허욱의쾌유를기원하는토왕폭등반을위해서였다.뚱딴지같은계획이었다.허욱은암에걸렸어도자신이멀쩡하다는사실을그스스로확인하고싶었고,윤대표는그런마음의山친구를도와주고싶었다.
설을닷새앞둔토왕골은랜턴불빛없이는한발짝도움직일수없을만큼짙은어둠이깔려있었다.그러나골깊숙이들어설수록어둠이옅어지더니Y계곡아래도착,안전벨트와아이젠을차는사이환해졌다.
“이거봄이온게아니라봄이터졌어.콸콸대며쏟아지는물소리좀봐.”
허욱씨일행외에도토왕폭을목표로하는클라이머들이속속Y계곡으로올라섰다.대부분“이렇게물이흘러내리는상태에서등반이가능하겠냐?”걱정하면서도포기하고내려서는이는단한명도없었다.
“저기무너질듯한암봉알지?선녀봉말야.저거내가개척한봉이야.”
윤대표는1985년대승폭과1986년영실중앙폭을초등하는등빙벽등반에관한한국내최고수로꼽히는실력자다.그는초등이듬해인1978년2월세번째로토왕폭을완등했다.1979년에는토왕폭동계우벽에도전했다.
“처음시도때는시간이너무늦어져다음날마무리할생각으로하산했어요.한데바로옆에서등반하던다른산악회회원이등반을강행하다추락하고말았어요.그래서이튿날에는사고를수습하느라등반을하지못했어요.그리곤파트너가없어등반을미루고있다가노동절을맞아출근하지않는후배와함께등반을끝냈는데하산하다그만후배가추락사하고말았어요.미끄럼타며뒤따라내려오다제동하지못해100여m아래바닥까지떨어진거예요.이후10년넘게토왕골에들어서지않았어요.”
“난1997년에하단한번붙어본게끝이었어.그리고5년전토왕폭을처음완등한거야.”
허욱은2006년처음토왕폭을완등한이후매년등반해오다지난해에는갈비뼈골절로건너뛰어야했다.그래서이번겨울에는꼭토왕폭을오르리라마음먹고있던터였다.그렇지만대장암수술을받고나니등반이망설여졌다.
“3기에접어들고있다는의사말에인생의山을또넘어야하나싶더군요.어떤상황이든포기한적이없어요.떨어질까무서워돌아선적이없었으니까요.아이거도그랬고,마터호른도그랬어요.바일잃어버렸다고,낙석에어깻죽지가깨져나갔다고포기하지않았어요.”
1977년말두사람은악우회아이거북벽원정대대원으로서인연을맺었다.아이거는해발3,907m높이에불과하지만수직고1,800m,등반거리2,500m에이르는북벽은당시알피니즘을추구하는한국산악인들에게는도전을상징하는‘마(魔)의거벽’이었다.
악우회입회는1975년윤대표가먼저했다.허욱은알프스원정을계기로정식입회했지만고교선배와초등학교친구가회원으로지내고있었고1972년창립당시부터간혹함께산행해왔기에악우회회원들이낯설지는않았다.알프스원정을앞두고윤대표와허욱은선후배대원들과함께맹훈련에들어갔다.
서릉과미텔레기능선에서적응을마친윤대표와허욱은초등루트를그대로따랐다.한윤근씨도공격대원이었으나시등도중미끄러지며부상을당해두사람만등정길에나서야했다.갱도입구를지나면서낙석이심하리라예상은했지만한꺼번에수백개씩퍼붓는돌멩이와얼음덩이는두사람을공포의도가니속으로밀어넣었다.
그래도두사람은둘째날계획했던대로해발3,300m제2설원상단에위치한‘죽음의비박지’까지오를수있었다.셋째날에는람페구간에서길을잘못드는바람에시간을지체하고,허욱이바일한자루를떨어뜨리는바람에두사람은바일세자루로등반해야했다.그런데도두사람은속도를내신들의트래버스를돌파하고하얀거미설원아래비박지까지가는일정을마무리지었다.
“하루종일먹은것이라곤비스킷몇개가전부였어요.저녁은알파미에육포를찢어넣고얼음물에푹끓인다음김에싸먹는거였고요.천길낭떠러지위에서엉덩이만걸치고앉아밤새자다깨다했어요.다리는허공에서대롱거렸고요.그래도구름바다속으로빠져드는석양은왜그리도아름답던지.그린델발트마을의불빛은황홀할지경이었어요.대표,너도기억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