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문까지는10여분도체걸리지않는다.대동문엔언제나등산객이만원이다.숲속에도여기저기자리를잡고모여들있다.나도혼자이지만,한곳에자리를펴고앉아서간단하게간식을먹고,우선누워서산행의피로를풀려고눈을감았다.그러나잠은오지않았다.집에서읽던책을펴들고책속의이야기빠저들었다.혼자산행은이런재미와여유가있어서좋은점도있다.
5시쯤되어주위를돌아보니그많든등산객들은자리를비우고조용하였다.나도서서히자리를정리하여짐을배낭에넣고하산을준비하였다.올라온길을그대로다시내려갔다.북한산성에서칼바위코스로넘어가는길에이르니,인천에서혼자왔다는여성등산객이칼바위를한번도가보지않았다고하면서갈수있는지를문의하였다.그래서같이칼바위를오르기로하고내려가서칼바위암벽을올라갔다.
그냥산길은밋밋하여암벽을오르고싶다고한다.칼바위봉암벽을넘어가는꼭대기에올라서는자세가여의치않은지마지막발을올려놓는곳에서바로서지를못하며불안해한다.아마도산행경험이많지는않은것같다.위에서발올려놓는곳을지정해주고양손으로바위를잡고올라서라고하여도불안해하여손을잡아주면서간신히올라왔다.
칼바위능선에올라서서어렵게올라와서그런지삼각산을한번둘러보드니기분이좋다고하였다.형제봉으로산행을하였는데,형제봉을비켜왔다고하면서형제봉이어느것이냐고물어서알려주었다.그러나내려가는그암벽코스에서는망서림없이잘내려가고있었다.무사히칼바위사거리까지내려와서그분은정릉쪽으로하산을하고,나는화계사코스로하산을하였다.
북한산과삼각산은하나의산에두개의이름이존재하므로혼동과이질감을느끼게한다.그래서삼각산이라는원래이름으로복원시켜야한다는주장과우리가오래도록불리어온북한산을구태어다시삼각산으로바뀌어야하는번거로움은더많은혼란만을자초할뿐이라는주장이팽팽이맞서고있다.삼각산이란이름이1000년의역사적의미를가지고있다면,북한산은100년의역사를가진이름으로우리에게익숙한북한산을삼각산으로변경할필요는없다는주장이맞서고있다.
고국산천을떠나고자하랴마는
시절이하수상하니올동말동하여라."
청음김상헌(1570~1652)이병자호란때청(淸)나라에항복해서는안된다며끝까지척화를주장하다중국심양으로끌려가면서읊은시조다.이시조에나오는‘삼각산’은지금의‘북한산’을지칭한다.서울을상징하며한국의5대명산중(북한산,덕유산,지리산,설악산,한라산)의하나로꼽히는삼각산(북한산)을그언제부턴가북한산이란명칭으로불리고있다.서울의산,서울의진산북한산을옛날에는삼각산이라하였다.
북한산은도봉산과함께북한산국립공원이다.오늘도삼각산을오르며,북한산과삼각산은왜두개의이름을가져야하는가이런생각을하여보았다.삼각산문필봉에서어떤등산객이이렇게물었다.삼각산이어디에있느냐고말이다.그분은몇년전에대구에서이사를왔다고하였다.그분도북한산과삼각산을각각다른산으로이해하는것같았다.그래서여기가북한산이고,전에는삼각산이라불렀다고말해주었다.
고려및삼국새대를거치면서조선시까지는삼각산이라불리었는데,조선말기일제강점기에북한산이라는이름으로불리게되었다는기록들이전한다.지금도북한산에는수없이많은사찰이자리하고있다.그런데그사찰입구에있는일주문에는삼각산도선사,삼각산승가사,삼각산진관사,삼각산화계사등으로현판이걸려있다.이것으로보면옛날에는삼각산이었다가언제부터인가북한산으로바뀌어불리어오고있다는것이다.
그래서요즘북한산을다시삼각산으로불러야한다고주장하는분들이많이있다.북한산에는북한산성이라는역서적으로중요한사적이자리하고있다.그외에도북한산성과관련된14성문이존재하며,행궁터와그부속건물이있던사직터가있으며,비봉정상에신라진흥왕순수비가있다.북한산은서울의배경산이므로서울의진산이라한다.북한산에서뻗어나온북악산과인왕산,남산,낙산을서울의내사산이라하고,옛날조선시대에는이내사산의성안의사대문안쪽을서울장안이라하였다.
북한산성과내사산의성곽은서울의역사를간직하고있다.그래서오늘삼각산을오르며자료를통해서삼각산이언제부터북한산으로변경되어불리우게된그사유를한번규명해보고싶었다.1983년북한산과도봉산일대를묶어북한산국립공원으로지정하면서삼각산이북한산으로완전히뿌리내리게되었다.건설교통부산하국토지리정보원에서발행하는지도를비롯해국립공원관리공단이관리하는산표지기등모든공식명칭이북한산으로명기돼있다.
박경룡전서울시사편찬위원회연구원은“고려시대이후삼각산으로불려오다조선후기숙종때북한산성을축성하면서북한산이라부르는경우가많아졌고정조때는삼각산과북한산이라는칭호가혼용됐다”고했다.그러나이때의북한산은산이름이아니라한강이북의큰산을의미하는일반명사또는지명이라는게학계의중론이다.김윤우단국대동양학연구소전문위원은“삼국사기등사서를보면삼국시대때한강유역은‘한산’이라고불렸다.강을중심으로한강이북은북한산,한강이남은남한산이라고했다.
산이름이아니라지명으로오래도록사용됐다”고지적했다.박전연구원도“북한산으로굳혀진것은역사적배경을무시한채삼각산지역과도봉산을함께‘북한산국립공원’으로명명하게되면서부터였다”며“이대로두면북한산이삼각산과도봉산일대를모두일컫는산이름으로잘못인식될수있다”고우려했다.
조선시대에편찬된
‘북한산’이고려시대부터천여년간사용해온’삼각산’이란본래의산이름을제치고일반화된것은1915년에조선총독부의고적조사위원을지낸금서룡(今西龍)에의한것으로본다.그는삼각산의유적을조사하고그보고서의명칭을
‘서울의진산’삼각산(북한산)은정상백운봉(836m),인수봉,만경봉을비롯하여모두32개의봉우리로이루어져있다.북한산세봉우리북쪽으로영봉과상장봉이,남쪽으로는석가봉․용암봉․시단봉․보현봉․문수봉등이솟아있다.문수봉북서쪽으로나한봉․나월봉․증취봉(증봉)․용혈봉․용출봉․의상봉등의줄기가백운대서쪽줄기인영취봉(일명염초봉)․원효봉줄기와대서문의수구에서만난다.
승가봉․비봉․향로봉,족두리봉은문수봉에서또하나서남쪽으로뻗은곁줄기에솟아있다.그중보현봉은남쪽으로두줄기를뻗어내리고있다.남서쪽으로뻗은사자능선이있고,남동쪽으로는형제봉이있는형제봉능선이북악으로이어져북악의주맥이된다.북악산은인왕산과연결이되어남산으로이어서낙산까지이어지는서울의성곽이복원중이다.
이들
각능선사이로흐르는대표적인계곡으로는정릉계곡․구천계곡․소귀천계곡․우이계곡,육모정계곡․효자리계곡․삼천사계곡․세검정계곡․진관사계곡․구기계곡․평창계곡․산성계곡등이있다.이들북한산에서발원한계곡은청계천,중랑천․정릉천․모래내․불광천등으로흘러한강으로합류한다.삼각산의봉우리와능선,그리고능선의골짜기에는계곡이있어맑은물이흐르고산세가아름다우며암벽미의장관을자랑한다.
삼각산과북한산의관계를이상과같이대략살펴보았다.1,000년전부터사용한삼각산이나,100년의역사를가진북한산이나,우리에게는익숙한산이름이다.이제와서그것을바로잡으려는시도는결론없는메아리만양산할뿐이다.저의소견으로결론을유도한다면,북한산국립공원으로지정된범위가삼각산과도봉산이므로,북한산은삼각산으로부르고,북한산은서울의북쪽에있는산,삼각산과도봉산(국립공원)을함게부를때사용을한다면어느정도긍정으로받아들일수있지않겠나하는의견을제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