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계(市界)종주 8구간] *-

[서울시계(市界)종주8구간]

[8구간]
석수역~호암산~장군봉~삼성산~관악산~연주대~남태령~우면산~양재천~한국트럭터미널21.2㎞


최근에는한번걸었다하면20㎞는예사로훌쩍넘긴다.매월둘째,넷째화요일에구간을종주할때마다첫인사로“오늘은몇킬로미터정도예상됩니까?”라고묻는게정례화되다시피했다.그만큼많이걷는다는얘기다.

이날은기존동행멤버에25시산악회회원까지합쳐서종주를시작할때의인원과비슷한21명이나됐다.출발부터사람들로북적북적했고호암산·삼성산·관악산·우면산등4개의산을넘는다는말에다소힘이빠지는듯했다.그래도걷는게일이다.

▲(좌)우면산등산로는잘닦여있고,숲도우거져각종새소리에딱따구리나무쪼는소리까지들린다.(우)둑위로는야생화와가로수등이아름답게정돈된양재천을서울시계종주팀이걷고있다.
석수역에서오전9시에모이기로했으나많은인원이참석한관계로출발이20분쯤지연됐다.석수역에서내려육교로바로1번국도를건너호암산까지는불과1㎞정도밖에안됐다.호암산입구엔등산안내판이있어등산로를상세히안내하고있다.

산으로들어서는순간‘이제는신록이왔구나’를직감할수있었다.파릇파릇한나뭇잎들이등산로를가득덮었다.보기만해도상큼한세상이다.

호암산은관악산의끝봉우리에속하는산으로봉우리가호랑이를닮았다고해서호암산(虎巖山)이라불린다.호암산과관련된일화는조선건국당시로거슬러올라간다.경복궁건설당시호랑이모습의괴물이궁궐건설을방해해밤에만나타나건물을무너뜨리자그남쪽의산에있는호랑이를제압하고자시흥에있던호암사를산위로옮겨호압사(虎壓寺)라고치고,산정상에방화(防火)의상징인해치를세우고한우물을조성했다고전한다.한우물주변에있는호암산성은통일신라시대당군을축출할때군사적요충지로사용됐다고한다.

마침‘뒷모습은40대,앞모습은50대,마음은30대’인65세의전윤정대장이한말씀하신다.

“서울시계종주하면서참많이배워요.서울에수십년을살면서전혀이름도들어보지못했던산을이번기회를통해알게됐고,산과관련된역사도많이배웠어요.”

정말마음이젊은분이다.요즘도매주한두번씩,한달에최소일고여덟번씩산에간다
고자랑한다.

▲1.서울시계종주팀이비를맞으며안양천을걷고있다.이날안양천만8㎞남짓걸었다.2.한우물옆50m거리에있는석구상.원래경복궁의방화를목적으로건립한것으로알려졌으나한우물발굴결과석구지라는비석이나와석구상으로확인됐다.3.우면산등산로에도호젓한길이많다.
호암산‘한우물’은국가사적제343호

▲1.서울시계종주팀이비를맞으며안양천을걷고있다.이날안양천만8㎞남짓걸었다.2.한우물옆50m거리에있는석구상.원래경복궁의방화를목적으로건립한것으로알려졌으나한우물발굴결과석구지라는비석이나와석구상으로확인됐다.3.우면산등산로에도호젓한길이많다.
호암산정상조금못미쳐국가사적제343호인‘한우물및주변산성지’에도착했다.등산로가는길에있는사적지는뒤늦게발굴한‘제2한우물과옛건물터’라고소개하고있다.

연못에는물도없고주변에는성터만조금남아있을뿐이다.약50m쯤내려가니통일신라시대조성했다고알려진한우물유적지가나왔다.가뭄에도물이마르지않는신기한연못이라고한다.이런연못이대개하천이나강의발원이되는경우가많다.지금은복개돼그흔적을찾기도쉽지않지만한우물은삼성천의발원지다.

한우물인근에는돌해치가있다.태조이성계는한양에도읍을정하면서풍수지리설에의거해우물과함께방화의상징인해치를세움으로써경복궁의화기를막았다고한다.

1989년서울대박물관에서한우물과호암산성유적을발굴할때우물에서‘석구지(石狗
池)’라는새김글이발견됨으로써지금까지해치로알려졌던석조물이‘돌개’라는사실이확인됐다.현재이정표에도석구상(石狗像)이라고설명하고있다.

이어장군봉을지나장군능선을따라국기봉에다다랐다.지나가는등산객은깃대봉이라고도했다.“관악산에는봉우리에국기가꽂힌봉우리만12개나된다”고덧붙였다.종주를좋아하는등산객들은12개의깃대봉을찾아완주하곤한다.

국기봉을지나콘크리트도로가삼성산정상까지포장돼있다.삼성산정상은군부대와군사시설로접근금지상태.삼성산은관악산연주대에서서쪽으로이어진능선의한봉우리다.즉삼성산은관악산의한지능선에속하는산이다.

삼성산은신라의고승인원효·의상·윤필세대사가산의중턱삼막사부근에초막을짓고수도했다는데서유래했다.또고려말에지공·나옹·무학등세고승이이산에서수도했다하여산이름이삼성산이되었다고한다.삼막사는조선초기에무학대사가중수해서산·사명대사등이수도한도량으로유명하며,삼막중에서일막과이막은임진왜란당시왜군에의해불타없어지고지금삼막사만남아있다.

삼성산정상군사시설물에조금못미쳐왼쪽으로빠지는등산로가관악산본능선으로가는길이다.이제부터관악산능선으로올라탄셈이다.관악산은한남정맥이수원광교산에서북서쪽으로갈라져한강남쪽에이르러마지막으로솟구쳐올린산이다.

관악산은그꼭대기가마치큰바위기둥을세워놓은모습으로보여서‘갓모습의산’이란뜻의‘관악((冠岳)’이라고했다.관악산은옛지도에그냥‘관악’으로많이나온다.악(岳)자체가산(山)을뜻하기때문에옛날에는‘산’자를덧붙이지않는것이관례였다.

관악산은옛날부터개성송악산(松岳山),가평화악산(華岳山),파주감악산(紺岳山),포
천운악산(雲岳山)과함께경기도오악(五岳)의하나였다.수십개의빼어난봉우리와바위,오래된나무와온갖풀이어우러져철따라변하는산모습이마치금강산과같다하여‘소금강(小金剛)’또는서쪽에있는금강산이라하여‘서금강(西金剛)’이라고도했다.관악산이바위가많고골이얕아남성산이고백호산이라불리는반면,마주보는청계산은골이깊은여성산으로청룡산이라한다.

관악산은남성산,청계산은여성산

관악산은그북쪽기슭낙성대에서출생한고려의강감찬장군과관련한전설도많이지니고있다.그가하늘의벼락방망이를없애려산을오르다칡덩굴에걸려넘어져벼락방망이대신이산의칡을모두뿌리째뽑아없앴다는전설도있고,작은체구인강감찬이지만몸무게가몹시무거워바위를오르는곳마다발자국이깊게패었다는전설도있다.

관악산은풍수로보아‘서울남쪽에있는불산(王都南方之火山)’이다.조선을개국하고왕궁터를정하면서,관악산을정면으로하면궁성을위압해국가가평안치못하다는무학대사와남쪽에한강이있어무방하다는정도전의주장이양립했다는전설이있으나어쨌든‘불산’이라는데는의견을같이했다고한다.

▲관악산기상관측소.매일오전11시부터오후4시까지일반관람을허용한다.
그래서불의산인관악산의불기운을끊는다는풍수설에따라숭례문바로앞에남지(南池)라는연못을팠다.연못뿐아니라서울의모든성문현판이가로인데반해숭례문은세로로되어있다.이는이불의산에서옮겨붙을서울의화재를막기위해서였다.‘예(禮)’는오행의‘화(火)’가되고,또오방(五方)으로보면‘남(南)’에해당되기때문이다.말하자면‘숭(崇)’은불꽃이타오를상형문자이기에‘숭례(崇禮)’는세로로세워야불이타오를수있고,또타오르는불을막아낼것이기때문이다.

관악산주봉연주대직전에관악산기상관측소가있다.매일오전11시에서오후4시까지누구나견학할수있다고한다.조금더가면연주대포토존이나온다.많은등산객이여기에서연주대를배경으로사진을찍는다.

바로앞에보이는연주대암벽은10여개의창을모아세워놓은듯한모양으로우뚝솟아있다.그위로아슬아슬하게암자가자라잡고있다.고3수험생학부모들이전국의기도발잘받는장소중의하나로꼽는다.학부모들이수시로합장하고기도올리는장면을쉽게목격할수있다.

전철사당역방면으로시경계를따라하산한다.가는길에한반도모양을닮은바위가눈에띈다.‘지도바위’라고이정표가설명하고있다.지도를가만히들여다보면관악산에는남근바위,독수리바위,불꽃바위,거북바위,관음바위등온갖형태의바위가있다.정말기암절벽의화산을실감케하는산이다.

남태령으로내려섰다.남태령로엔차들이쌩쌩달리고있다.왕복8차선은될법하다.서울방향으로조금올라갔다가횡단보도로건너우면산으로들어갔다.우면산들목직전에서울시서초구방배동과과천시를가리키는안내판이있고,바로옆에커다란남태령비석이서있다.

“남태령옛길은한양에서삼남(三南:충청·전라·경상도)으로통하는유일한도보길이었다.이곳을지나수원·안성을거쳐남쪽으로갔으며,반대로과천에서이고개를넘어사당,동작,흑석동을거쳐노들나루(노량진)에서한강을건너한양에이르렀다.원래이고개는여우고개(狐峴·호현)로불리었는데,정조대왕이사도세자의능원으로행차할때이고개에서쉬면서고개이름을묻자,과천현이방변씨가임금께속된이름을아뢸수없어남태령(남행할때첫번째나오는큰고개)이라아뢴이후남태령이라부르게됐다는전설이있다.”

남태령비석에있는문구다.이비석을지나우면산아늑한등산로로걸었다.깔끔하게단장한등산로다.산악자전거를타는사람이가끔눈에띈다.산악자전거타기에도딱좋은길이다.

우면산은소가졸고있는모양이라해서붙여진이름이다.우면산북쪽기슭에있는대성사는백제침류왕원년(384)한반도에불교를처음전파한중국의고승마라난타가주석한터로알려져우리나라불교전래의성지로주목받고있는절이다.

서울시경계는우면산정상으로향하지않고헬기장에서오른쪽양재천방향으로빠져서초구우면동식유촌길로내려온다.단독주택단지를지나양재천으로내려섰다.양재천진입직전의비닐하우스촌이서울시보금자리주택건립예정지라고한다.여기도몇년지나지않아상전벽해로변화가예정돼있는셈이다.

이젠이날의마지막구간인양재천으로접어들었다.양재천엔청둥오리와학이자맥질을하며놀고있다.‘언제적양재천인지’격세지감을느끼게했다.그만큼깨끗해진것이다.
양재천은관악산에서발원한물이여러개의작은지류와만나고,청계산에서발원한여의천과합류해탄천으로흘러들어가는한강의제2지류다.즉한강의제1지류가탄천이고,탄천의제1지류가양재천이다.

양재천(良才川)의이름은어질고재주있는사람이많이산다고해서붙여졌다.이곳에서말에게물을먹이고휴식을취한후먼길을떠난다하여지어진말죽거리란지명은지금도그대로남아있다.

원래양재천에는용10마리가살고있었다고한다.이들이하늘로승천하다가그중1마리가임신한여자를보고놀라서양재천에떨어져죽고나머지9마리만하늘로올라갔다해서양재동옆산이구룡산이됐다고전한다.

양재천을지나한국트럭터미널주변에도착한시각은오후6시30분이다되어서였다.호암산~삼성산~관악산~우면산을거쳐양재천까지꼬박9시간이상을걸었다.힘든종주길이다.

-글박정원부장대우/사진정정현부장/월간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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