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앞.
2010년10월10일10시쯤에서울공대뒤쪽으로연결된관악산산행을시작하였다.10월의가을날씨는맑고청명하였다.하늘은높고푸르고구름도없는하늘엔햇볕이따사롭게내려쬐고있었다.그러나관악산에서서울을조망해보는시야는짙은연무에뒤덮혀있어깔끔한맛은없었다.10월의전형적인가을날씨는덥지도않고춥지도않아산행하기에가장좋은계절이다.서울대구내동산을걸어오르는길은흙길이어서발걸음이가볍고편해서좋았다.그러나능선길에다가서면바위에암벽길이연속적으로이어지므로숨길을헐덕이며땀을흘리며힘들게올라가야하였다.
이코스는다른코스보다멀지않아정상으로오르는데,시간은절약할수있으나,경사가가파르고암벽을타고올라가야하므로무척오르기함든코스로분류한다.마지막국기봉을올라서면시야는더없이시원함을느끼게해준다.그러나이국기봉을멋모르고따라올라가다가는당황하게되는경우가종종있다.그만큼오그기도힘들고내려가는길도까다롭다.정상연주대에올랐다가내려와기상청안내소가개방되었다하여그곳에들려구름사진를보면서일기예보를하는과정을설명도들었다.그리고관악사지로내려가그한쪽에자리를잡고점심식사를하였다.
오늘점심시간은좀색다른맛난특식을준비하였다.영민님은밥을짓고,앵두님이만두빗은것을가져오고,미풍님이떡국용떡을가져오고,그리고여러분이라면을가져와모두가맛난음식을입이즐겁게마음이훈훈하게별식을배불리먹고마시며유쾌한점심시간을보냈다.후식도빠뜨리지않고과일과커피까지들면서그곳에서1시간여동안산행의멋과중식의맛을나누며즐거운시간을보냈다.장소를정리하고송신탑을넘어서아기자기한주능선의암벽길을걸었다.팔봉능선으로접어들어관악산에서가장아름다운능선을하나둘넘어갔다.
첫번째봉우리를오르는암벽은직벽에가까운가파른암벽을타고올라가야한다.팔봉에서가장긴장하면서올라야하는스릴이있고암벽의재미가솔솔한코스이다.그리고두번째,세번째코스도거친암벽길이다.하나를넘어가면또다른암벽코스가우리를기다리고있다.여섯번째봉우리를넘어서면팔봉코스에서가장사랑을받는왕관바위가있는곳이다.그다음은칼날같은칼바위코스를지나서내려가면마지막암벽이솟아있다.바위와바위사이를건너뛰어서옮겨가그암벽위에서사진을찍으며건너편삼성산을바라보는시야는관악산과삼성산사이의그넓은계곡을바라보면마음은그만큼넓어지는듯하다.
그리고마지막바위는타고넘어가는것이아니고그암벽사이에아주좁은굴을통과해가야하는데,우리는그굴을해산굴이라부른다.산파가먼저통과하여해산굴을통과해나오는사람을향해남자요,여자요,하면서산파역할을하고,또한분은그옆에서해산하는장면을사진으로찍어기록으로남긴다.이제팔봉을모두넘어서내려가는길은가파르다.냇가에도착하여찬물에족탁을하고무너미고개을넘어내려가는그길도길고멀어서1시간이상을걸어야서울대앞에이르게된다.오늘관악산산행은공대뒤능선으로올라가서주능선을걷다가팔봉능선을타고내려가는암벽길이었지만,모두가무사히즐겁게산행을마무리하였습니다.함께산행해주신님들모두에게감사를드립니다.
관악산(冠岳山/631m)은경기5악(五岳)중의하나이다.가평의화악산(華岳山/1468m),포천의운악산(雲岳山/935m),파주의감악산(甘岳山/675m)과천의관악산,그리고개성으송악산(松岳山/488m)을경기의5악이라부른다.산이름에악자는’큰산’,’위엄이있는산’이란뜻이었으나,지금은’바위가많은산’이란뜻으로일커러지고있다.언제부터누가그렇게불러왔는지모르지만,바위산은관악산보다북한산이나도봉산의바위가더장엄하고수려하다.서울의5악이라하면아마도북산산(836m),도봉산(740m),수락산(638m),불암산(508m),그리고관악산(641m)이다.서울의5악은전국의어느산과겨루어도암벽의장쾌한모습은아름다고수려하다.
연주대와연주암은조선조태종대왕때,양녕대군이왕위를셋째동생충녕대군(세종)에게양보하고,관악산연주대에머물면서동생이나라를잘다스려백셩을편안케하고,성군이되도록빌면서’임금(主)을생각(戀)’하며지냈기때문에생긴이름이라는긍정적인유래가있고,왕위를자의반,타의반으로동생충년에게양보한양녕대군이이곳에머물면서늘’임글(主)자리를빼앗긴것을원통하게생각(戀)’하면서지냈기때문에생긴이름이라는부정적인유래도함께전해오고있다.양녕대군이자신에게주어진세자자리를숭녕대군에게물려주고,마음을달래려고연주대에머물면서도끝내달래지못해끝내양광(거짓정신병자행세)을하면서주류천하를하였다는설이전해지기도한다.
조선조초기에한양천도(漢陽遷都)가결정된후궁궐터를잡을때,현궁궐터가관악산의화성(火星)이문제라하여반대가많았다고한다.관악산과궁궐사이에한강이가로질러있고,이를보완하여광화문앞에두개의해태상을배치하여관악산의화기(火氣)를누르는처방으로반대를물리치고현재의궁궐이세워졌다고한다.관악산은전형적인화성형상의산이라하는데,오성(五星)원래5개의행성즉,화성,수성,목성,금성,토성을할한다.풍수지리설에의하면산의형상이
서울과과천의경계에있는‘남태령’은관악산과우면산사이의고갯길로옛날엔여우가자주나타나‘여우고개’라고불리었다고한다.그런데18세기말,효성이지극하기로이름났던정조임금이선친사도세자의능을참배하러수원으로가는길에이곳에서잠시쉬게됐다.이때정조가“이고개이름이무엇이냐?”고묻자,과천현이방변씨가엉겹결에“남태령입니다”라고대답했다한다.이에그를시기하던자가“이고개이름은원래여우고개인데어찌거짓을고하느냐”고질책하자이방변씨는“고개이름은본래여우고개지만신하로서임금께그같은상스러운말을여쭐수가없어서울에서남쪽으로맨처음만나는큰고개이기에남태령이라고했습니다”라고아뢰었다.이에정조가이방변씨의예의바름과기지를칭찬해이후부터는이곳을‘남태령’이라불렀다.
남태령이여우고개로불리던조선조때는숲이우거져짐승과도둑떼가많아서시골사람이과천을지나여우고개를넘어동작나루를건너남대문으로도성에들어가는데,네번의세금을내야통과가되었다고한다.
조선조때지방수령중에서과천현감이가장좋은자리로알려져있다.서울이가깝고,오가는고관들을접촉하기가쉽고,세전과월치전,등세금징수가많기때문에제물을많이모아뇌물을상납하여조정의좋은자리로영전하는자리이기도하였다.과천현감이영전하여서울로떠나게됨으로아전들이잘보이려고송덕비를세우곘다며비문을어떻게할까문의하였드니너희들이알아서하라고하여현관감이서울로더나는길목여우(남태령)고개에송덕비를세웠다.현감이지나는시간에맞추어제막식을하고가시라고아뢰었다.잠시행렬을멈추고송덕비앞으로가둘러친포장을벗겨본즉비문에는
관악산에는묘하게생긴바위가온산을덮고있다고해도과언이아닐정도로기암괴석이많다.관악산출판사에서발행한’관악산관광등산지도’에는구석구석숨어있는묘한바위들의이름이붙여져있다.그중에서남근석이5개이고,여근석이4개인데,2개는여근석이라하는데,2개는장미꽃이라한것이또묘한뉴앙스를풍긴다.(1)안양유원지에서삼성산으로오르는중턱에제1남근석이있고,(2)철쭉동산~깔딱고개~국기봉으로오르는중턱에제2남근석,(3)삼성산서편에제3남근석,(4)제4야영장에서연주대로오르는길우측능선에제4남근석,(5)제1남근석에서삼성산쪽으로100m쯤오르면또하나의남근석이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