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산친구] 김영준과 윤영화 *-

[우리는산친구]대학동기서산행동기로25년김영준·윤영화
‘등산중독’,‘빨치산산꾼의사’로변신…주말야간산행즐겨

1987년,그해겨울은유난히추웠다.의대본과생이었던영준과영화,그리고또다른친구한명은그추운겨울을지리산정상에서보내기로의기투합했다.목표는2박3일걸려노고단까지가는것.동네뒷산에올라본경험이전부인이들은천왕봉에서의미있는한해를마무리하기위해남다른각오를다졌다.

각자배낭을꾸리기시작했다.그때까지지리산도동네뒷산같이오르면되는줄알았다.아이젠이뭔지도,그런게있는줄도몰랐다.젊은혈기라는가장큰무기하나에과자와사탕만잔뜩넣은배낭,장비라곤춘추용침낭하나와허접한버너정도.지리산을종주하는팀의모습이라곤어디에도찾아볼수없었다.침낭도혹시나해서가져간것이었다.

▲김영준원장(왼쪽)과윤영화원장이안양시내가훤히내려다보이는수리산관모봉정상에서손을맞잡고활짝웃고있다.

“그래도겨울산행인데침낭하나로괜찮을까?”

“걱정하지마,산장에서잘건데침낭은필요없어.”

“산장에서불편해잠이안오면밤새화투나치지뭐.그래서동양화는챙겨왔어,걱정마.”

조금은꺼림칙했지만‘아무일없겠지’라고자위하며천왕봉을향해출발했다.중산리에서출발한지얼마지나지않아로터리산장에도착했다.마침힘도들고조금쉬기로했다.산장주인은이들의행색이아무래도미덥지않은듯고개를갸우뚱하며퉁명스럽게물었다.

“어디로해서어디까지갈계획이요?”

“천왕봉을거쳐2박이상걸리더라도노고단까지갈예정입니다.”

어이없는표정을지으며산장주인은“아이젠과침낭은가져왔어요?”라고물었다.

“예?아이젠이뭡니까?그건어디에쓰는겁니까?”

기가막혀말이안나오는듯“아이젠없이겨울산을오르다미끄러져사고당하거나죽기십상이니죽지않으려면그냥집으로돌아가요”라고산장주인은단호하게말했다.하지만이들은‘얼마나벼르고왔는데그냥돌아갈순없지’라며젊은혈기로다시의지를다지는객기를부렸다.“그래도혹시모르니아이젠은준비하자”고뜻을모아하산하는등산객들을상대로이리저리훑어보며읍소작전에들어갔다.

“혹시아이젠있으세요?있으면저희들한테파세요.”

이들은남이신던아이젠을당시로선거금인3,000원을주고마련해서천왕봉으로오르기시작했다.지리산8부능선까지는아무일없었다.‘별것아닌걸가지고괜한사람겁주고난리들이야’라며호기를부리기까지했다.날씨가너무맑아주변설경은한폭의그림을보는것같이감동적이었다.

▲김원장과윤원장이수리산관모봉정상에올라위치를확인하고있다.

그러나이들의호기가통한것은거기까지였다.오후5시쯤되었을까,천왕봉150m남았다는이정표를보는순간갑자기하늘이시커멓게변하면서눈보라가휘날렸다.불과몇미터앞을분간할수없을정도였다.모두겁이덜컥났다.

빙판과눈으로뒤덮인등산로는그나마겨우장만한아이젠으로조심조심지나갈수있었다.아마아이젠이없었다면꼼짝달싹못했을것이다.눈발이계속휘날려길은점점사라지는듯했다.원래계획은‘천왕봉정상에서앞으로살아갈사나이들의기개를논하자’는다짐이었건만천왕봉까지올라가는길조차만만치않았다.

미끄러운등산로를엉금엉금기듯올라가,겁에질린표정으로천왕봉비석을안고사진한장달랑찍고바로장터목산장으로하산했다.사나이기개를논하기는커녕다들공포에질린표정들이었다.

첫지리산행서호된신고식치러

그새날은어두워져깜깜한밤이됐다.호롱불비슷한랜턴으로겨우장터목산장을찾아내려왔다.‘그나마이것마저없었다면어떻게됐을까’라고생각하니아찔했다.산장의온도계는영하20℃를가리켰다.이빨이덜덜떨리고재킷도변변찮았다.

모골이송연해지는상황은계속됐다.산장에가본적이없었던이들은산장이도시의여관이나여인숙쯤되는줄착각하고있었다.돈만내면따뜻한아랫목에편히쉴줄알았지만,실제는군내무반같은마룻바닥에살을에는찬바람이뼛속까지스며드는곳인줄꿈에도몰랐다.

▲수리산정상을향해오르고있는김원장(앞쪽)과윤원장.

밤새고스톱을치면서몸에열기를내자고했다.막판을벌이려는순간“밤9시부터소등이니등산객들은미리짐을정리하시기바랍니다”라는방송이들려왔다.가져온짐이있어야정리하고취침준비를하지….

뻘줌하게떨고있는이들을발견한산장지기가다가와“잘준비안하고뭐하고들있어요?”라고채근했다.

“저,그게사실은…,저희는준비한게없어서……”

“서울대학생들이왜이리무식해.다시는산근처에절대얼씬거리지말아.”

호통치며10여년동안한번도빨지않은듯한걸레같은조난자용이불을건네줬다.실제로이들은조난자급이었다.그것도감지덕지하게받아지리산에서그추운겨울날의하룻밤을보냈다.다음날산의노여움을더사기전에빨리내려가는게좋겠다고합의하고,지리산종주는커녕능선도제대로쳐다보지않고곧바로내려왔다.하산길에젊은혈기는비닐을주워눈썰매를타는추억도만들었다.

바로23년전엘비뇨기과윤영화원장과김영준소아청소년과의원김영준원장이겪은일이다.지금은무용담처럼웃으며얘기하지만자칫신문사회면한쪽을장식할수도있었던그런날의추억이다.

고통이클수록추억은그만큼깊고오래가는법.이들은지리산에서의첫산행이영원히잊을수없고,잊혀질수없는아찔한순간이었다고말한다.

그생생한기억을교훈삼아윤원장은서울은평구비뇨기과의사들사이에서‘빨치산산꾼’으로불릴정도의준족으로변신했다.모두김원장덕분이다.김원장은산뿐만이아니라수영·마라톤등만능스포츠맨으로바쁜나날을보내고있다.

산은이들을묶는끈이지만산이아니더라도둘의인연은계속됐다.인턴과레지던트과정을똑같이거치며월급쟁이의사로있다가전문의로개업하기까지산은조금떨어져있을수밖에없었지만워낙비슷한성향인지라만남은지속해왔다.

▲1.김원장이2008년12월선자령을오르면서.2.김원장이2009년2월유명산오토캠핑장을배경으로포즈를취했다.3.김원장이2009년6월관악산폭포를배경으로섰다.4.2006년9월북한산에서윤원장과김원장이함께했다.

소홀했던산은김원장이먼저가까이다가섰다.다람쥐쳇바퀴도는의사생활로인한권태와체력을다져야겠다는생각을가지면서산을다시찾았다.우선가까운산부터올랐다.매봉산,장수산,지양산등동네뒷산부터누볐다.달리기와겸해서시작한산행이라접근성좋은곳부터선택했다.그러다지리산,설악산,태백산등전국의명산을찾아다녔다.

10년전쯤윤원장이같은동네로이사를오면서가끔한번씩하던산행을본격적으로시작하는계기가됐다.저녁먹고만나공원길을산책도하고,안양천을걸으며수다를떨기도했다.나아가주변야산을오르다관악산,북한산등지로산행했다.

김원장은엉덩이가무거운윤원장을산으로데리고가기위해“내가전부준비할테니아무것도필요없고몸만오라”고숱한감언이설로공을들였다.윤원장도“하루종일진료실에앉아있기만하는생활에무슨운동이라도해야겠다고생각하고있던차에김원장으로부터등산하자는제의를받아쉽게나설수있었다”고맞장구를쳤다.윤원장은이렇게돌이킨다.

“대학시절부터친한사이였고,같은동네에사는것이많은시간을공유할수있는계기가된것같습니다.또무엇보다둘사이엔공통점이많았어요.둘다술을못하고,순대국이나만두같은서민적인음식을좋아하고,북적거리는도시보다는한적한시골생활을꿈꾸고,힘들게몸을움직여야운동을좀한것같고….그러다보니등산이가장적당했지요.”

두사람모두사람붐비는걸싫어하고한적하고호젓한분위기를좋아해서찾은산이바로김원장병원주변에있는수리산이다.

“맨발로걸어도될정도의편안한흙길코스와칼바위,병풍바위로이어지는험악한바윗길이잘어우러진멋진산이죠.단짝친구와둘이가는산행이라,이만큼진득한맛이느껴지는산행도없습니다.여행은동행이맛이라했어요.둘이같이산길을걸으며옛날이야기,아이들이야기,안사람흉보기,세상돌아가는이야기를나누며한주동안쌓인스트레스를말끔히날려버립니다.때로는말도안되는농담을주고받으며,엉뚱한상상력을발휘한발명품을만들어내기도합니다.한사람이말문을던져놓으면그걸되받아치면서장단을맞춥니다.우습지요.박장대소가터집니다.둘만의비밀을공유한쾌감도들고요.토요일진료를마치고오후에산을찾으면그야말로우리만의세상입니다.오후3~4시쯤산에오르기시작해노을이지고저녁어스름이내려앉는산을타는느낌은정말좋습니다.달빛밟으며산길을걷는즐거움은해보지않은사람은모릅니다.시가지가내려다보이는산기슭,우리만의아지트에자리잡고가져온음식에막걸리한잔기울이며도시의불빛이하나둘씩들어오는것을감상하노라면세상시름이전부사라집니다.”-김원장

성취감과동료의식에끈끈한정생겨

“산행은보통혼자,아니면둘,또는여럿이가는데,나름대로맛이다틀립니다.저는혼자아니면김원장과둘이다니는경우가대부분입니다.역시둘이가는것이좋습니다.함께산행을하면단독산행보다힘이덜들고훨씬즐겁습니다.오늘진료한환자이야기며,세상돌아가는이야기등온갖사소한대화를나눕니다.남자들특징이아내에게약한모습보이는걸죽기보다싫어하잖아요.혼자감당해야하는덩어리가누구에게나있을겁니다.그럴때친구에게털어놓으면그것만으로도마음의짐을덜게되고,산정상에올라까마득히내려다보이는세상을보면그런고민들은아주하찮은것이되어버립니다.산행이끝날즈음이면다리는무겁지만마음은훨씬가벼워지고,산에올랐다는성취감과함께했다는동료의식에끈끈한정이생깁니다.무슨운동이든둘이상이같이해야오래가더군요.특히등산은재미도재미지만불의의사고를당했을때를대비해서혼자보다는같이다녀야하는운동이란걸깨달았습니다.같이산에다니면서산에게도배우고동료에게도많이배웁니다.”-윤원장

주말이가까워지면김원장은윤원장에게“주말에뭐할거냐?”고전화를건다.매주걸려오는전화지만그래도항상‘이번주도잡혔구나’하며반가이등산계획에맞장구를친다.주말은주로수리산야간산행이다.토요일진료를마친오후4~5시쯤출발한산행은수리산종주를끝내고고즈넉한산길을독점하는밤9~10시쯤끝난다.

▲1.수리산의호젓한참나무숲사이로난등산로를따라걷고있다.2.윤원장이북한산사모바위앞에서.3.2006년11월눈덮인수리산에서의윤원장.

“하늘에는달과별이빛을비추고,저멀리아스라이도시의불빛은마치영화의한장면처럼빛납니다.밤의풀벌레소리는낮하고는또다르죠.가을밤에‘사각사각’하고낙엽밟히는소리도좋습니다.겨울밤에‘뽀드득뽀드득’하고눈밟는재미는더하죠.캄캄한밤에별빛을벗삼아산길을한번걸어보세요.자연과함께하고,자연속에들어간기분입니다.”

둘이서자연과함께하기위해전국의많은산을찾아다녔다.김원장은훨씬더했다.매일아침일찍수영하러나가면서부터일과가시작되는김원장은일주일에두번이상마라톤을하지만매주토요일은어김없이친구와함께산에간다.

일요일오전은마라톤하러나간다.당연히생활의일부라고강조할정도가됐다.마라톤풀코스도매년두차례씩완주해벌써10회를훌쩍넘겼다.지난해엔동경마라톤까지원정갔다오기도했다.여기에진료를더하면다른일에는아예눈돌릴새가없다.자신도모르는사이등산마니아,마라톤마니아로변해있었다.

“등산하는사람이면누구나맑은공기마시며유산소운동하는것을좋다고느낄것입니다.체력증진은물론군살빼는데도등산만한운동이없죠.또정신적으로정화되는느낌도많이받습니다.바람소리,나뭇잎스치는소리,계곡물소리를듣고있노라면그동안찌들었던몸과마음이씻겨지는기분이에요.일주일내내진료실에틀어박혀있어야하는처지라산정상에올라서탁트인전망을보면말할수없는희열을느낍니다.세상을넓게바라보게되기도하고요.”-윤원장

▲김원장과윤원장이수리산돌탑사이로정상을향해걸어가고있다.

“산은말이없습니다.말은우리가합니다.우리가투정부리고화를내고소리지릅니다.그러고나면가슴이후련해집니다.산은그저받아주고들어주었을뿐입니다.또산은아름다워요.아름다운나무,아름다운꽃,아름다운계곡,아름다운바위,그아름다움에취해길을걷는것이행복합니다.자연의아름다움에취하면사람도아름다워집니다.아름다움이잉크번지듯마음속으로번져옵니다.그것이저를산으로이끄는에너지입니다.아름답게살고싶습니다.”-김원장

산은말이없이그저받아줬을뿐

‘아름다운것을보는사람은아름다워진다’는철학을터득한김원장은이정도면어느산꾼못지않은내공의소유자가됐다.그의말을계속들어보자.

▲2004년가을구대봉산정상에서.

“산이좋네,어떻네하는백마디말보다스스로산이주는평화와안식을느껴봐야합니다.마음이아니라몸이먼저알게됩니다.산에오면머리가맑아지고눈에생기가돌고신이납니다.마음이너그러워지고배려의마음이생깁니다.도시에서는같은아파트같은동에살면서도인사한번제대로나누지않지요.그런데산에오면모르는사람끼리도자연스럽게인사가나오고음식을나누게됩니다.참신기하지요.산의힘입니다.아마도산에서얻은호연지기덕일겁니다.산정에올라세상을내려다보면저아래서아옹다옹사는모습이다부질없어집니다.부와명예가별것아니라는걸깨닫게되지요.그저건강한몸이있어아름다운자연속을자유롭게누비는것,그것이가장큰행복이라는걸알게됩니다.산정에서세상을내려다보며걸치는곡주한잔의맛과멋은정말다른어느것으로도대체할수없는최고의행복입니다.비록속세로다시내려오면꿈에서깨듯허망해지지만그행복한여운이한일주일은갑니다.그약발이떨어질때쯤또다시산을찾게되는거지요.그래요중독입니다.”

‘등산중독’김원장,은평구비뇨기과‘빨치산산꾼의사’윤원장,누가먼저랄것도없이그들은이미운명공동체다.의사라는같은직업에,등산이라는같은취미에,서민적이라는같은스타일에….대화를나눠도목소리가높아질일이없을것같아보였다.

▲(왼쪽부터)2007년3월수리산노송옆에서윤원장./김원장이산음자연휴양림을거쳐오르면서.

앞으로시간이나면부부가함께크루즈여행이나세계의안가본곳을가겠다는윤원장,백두산과우리나라명산300개등산이목표라는김원장,역시이들은산과여행이화두였다.

8월7일푹푹찌는말복을하루앞두고오후4시부터밤9시30분까지짧게종주한수리산등산은평소그들이즐기는대로산속에서하늘에빛나는별과도시의야경을새삼확인할수있었다.특히김원장은다음주말에지리산종주,그다음주말에는설악산행이예정돼있었다.철인산꾼을방불케했다.

머지않은미래의어느날,꼼꼼하게계획을세운김원장이윤원장에게다시전화를건다.

▲(왼쪽부터)김영준소아청소년과원장./윤영화엘비뇨기과원장.

“우리백두산가지않을래?준비할것없어,몸만오면돼.”

그렇게그들의산행은영원할것같다.

/글박정원부장대우사진이경호기자/월간산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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