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명산덕유산(德裕山/1,614m)을가다.[4-2]*-
종주산행/향적봉~중봉~무룡산~삿갓봉~봉황산(남덕유산)
◇삿갓봉에서북쪽으로힘차게움틀거리는덕유의등뼈를내다본다.
길은나아가고사람은에돌아온다
향적봉에서남덕유까지북에서남으로능선을따라걷고또걷는다.향적봉과삿갓재대피소를거쳐남쪽으로걸어내려가는2박3일여정의봇짐은온전히걷기에소용되는것들뿐이다.잘걷기위해필요한먹을것들,그리고달고깊은잠자리를위한최소한의것들.배낭헤드의조임끈을당기면서번잡한일상이가방하나로도충분히압축된다는걸확인하는일이새삼즐겁다.‘걷는다는것은자신의몸으로사는것’이다.
몸만으로살수있는삶은정직하다.덕유산종주에는몸으로사는즐거움그이상이있다.향적봉대피소에서첫날밤을위해무주리조트에서설천봉으로오르는마지막곤돌라를탔다.덕유산은1997년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위해무주군설천면일대의산일각을허물어사람들에게내주었다.스키가미끄러져가는눈밭위로육중한배낭을멘중등산화의무거운발자국을찍으며가로질렀다.급경사의스키슬로프위로곤돌라를타고오르는마음이불편하다.
곤돌라에서내려20여분걸으면덕유산정상이다.땀흘리지않고고도를높인사람들이떼로드나드는향적봉(香積峰·1614m)은수심이많다.향기로운나무가쌓인듯많다는산정엔향기롭지못한사람의발자국만쌓여가기때문이다.그래서미륵부처가세상에오는날누워있던나무가벌떡일어나향기를내뿜는다고믿었던그봉우리의이름이서글프다.해거름에설천봉에서향적봉으로나무계단을오르면,지는해와돋는달사이로고즈넉하게몸을끌어올릴수있다.
달이왼쪽머리위로떠오르는만큼오른쪽으로는해가기운다.향적봉정상에서남서쪽으로힘차게뻗어내린선굵은덕유의등줄기를내려다본다.그뒤로멀리지리산천왕봉에서노고단까지지리산의산줄기가가로놓여있다는데사위가어두워져분간하기힘들다.덕유산에서지리산의능선과능선이어우러진모습을보는멋은지리산을걷는것과는또다른의미가가슴에와쌓인다.석양에비치는어머니의산은그림자처럼드라마틱한선의율동이정겹게다가온다.
바람과추위를견딘인내의화원‘덕유평전’
향적봉대피소는지는해와돋는해를붙잡으려는사진가들이연일진을치고있는곳이다.잠들기전까지뭇별들아래카메라는마냥오래도록눈을열고서있었다.검푸른산그림자가한꺼풀씩그림자를벗고온전히제모습을드러내는것이느껴진다.이튿날향적봉일출은구름에갇혀밋밋했다.대신멀리구름바다위로섬처럼봉긋떠오른지리산천왕봉이반가웠다.지리산과덕유산.출중한맏이때문에자잘한마음고생이많았을속깊은둘째를보듯,덕유산을다시본다.
이산은너른품새로보나역사적의미로보나허투루봐넘길산이아니지만,지리산가까이있어늘저평가되는느낌이다.분단이전에각광받던금강산그늘에가려찾는이의발길조차뜸했던설악산처럼.배낭의어깨끈을조이고본격적으로걸음을재촉한다.이길을함께걷는이들은원광대학교산악부문상균,김진성씨와전북대김은미씨다.이들도덕유산가까이살면서종주는처음이었다.‘발로,다리로,몸으로걸으면서인간본연의실존에대한행복한감정을되찾는다’는것은고즈넉한산길을오래도록걸어본사람이라면누구나느끼는일이다.
중봉을지나덕유평전까지완만한산길을걷고또걸으면서우리는충분히행복해지고있었다.좁은산길양옆으로는목덜미까지두툼한눈이불을뒤집어쓴조릿대푸른잎이겨울산흑백의수묵화위에색을보태고있다.죽은듯말라있는겨울나무들은하늘을향해만개한꽃처럼잔가지들을활짝펼쳐놓았다.그끝에는예외없이어린아이젖꼭지처럼봉긋봉긋솟아오른잎눈이매달려있다.저단단한껍질을열어젖힐봄바람은멀고먼적도의바다한가운데서아직태어나지도않았으리라.
길위에서고개를들면둥그런산줄기들이굽이굽이이어지는풍경속,하늘을찌를듯솟구친고사목들이도드라지게아름답다.향적봉에서중봉으로가는길목에서부터아고산대(亞高山帶)식물보호에관한표지판이눈에띈다.보호를구호로외치는것은그만큼훼손이심했다는뜻이다.아고산대란비바람이잦고궂은날이많은고지대에키큰나무들이자랄수없는곳이다.이곳에선철쭉이나진달래·눈향나무·시로미등키작은떨기나무들이조릿대·원추리·산오이풀·동자꽃들과함께어우러져살아간다.
철따라형형색색의꽃잔치가벌어지는덕유평전은바람과추위를견뎌낸풀과떨기나무들의인내로일군산상화원(山上花園)이다.그빼어난아름다움이사람들을불러모았지만,이것이오히려스스로화를부른꼴이되었다.덕유평전(德裕平田)역시지리산의노고단과세석평전과함께훼손된생태계복원노력이진행중이다.그나마눈이많은산이어서겨우내두툼한눈이불을뒤집어쓴채사람들시선으로부터숨어있을수있는것을다행이라고해야할까.
군데군데눈밭위로삐져나온마른풀들을바라보며봄부터가을까지덕유평전에이어지는꽃들의영화와그그늘을생각한다.중봉에서멀리무룡산까지탁트인능선위로구불구불이어지는산길은고흐의그림‘삼나무와별이있는길’처럼아름답다.서둘러걸음을옮겨고즈넉한길위에한점풍경으로스며들고싶은곳이다.그러나풀꽃들을헤집고난길은아무리작고좁은길이어도폭력이될수밖에없음을생각하면걸음이무겁다.하염없이걷고만싶은욕심에눈이먼다리들,부디소리없는바람처럼조용히스쳐지나갈수있다면좋으련만.
◇삿갓봉정상에서남덕유를향해희디흰눈꽃터널사이로부서질듯시리고파란하늘을바라보며힘든줄모르고걷는다.
겨울을넘어봄날로간다
둘째날의목표는삿갓재대피소까지다.크고작은봉우리를연거푸넘어가는데남쪽을향해올라가는북쪽사면은눈밭이고남덕유를바라보며내려가는남쪽은봄날이다.미끄러운눈밭을딛고올라서서얼었다녹은검붉은흙이질척이는길위로내려서기를반복해야한다.“꼭초콜릿녹은것같아요.”김은미씨의비유가가장적절했다.그의표현을빌어설명하자면단단한아이스크림같은길과초콜릿녹은길을여러차례오르내려야동엽령을지나고무룡산을넘는다.
길은무릎께부터어깨너머그리고머리위까지층층이다른겨울나무의숲사이로길게이어진다.다른나무들과의경쟁에서살아남기위해햇살을향해곧게키를키우는산아래나무들과달리,고지대의나무들은키는작아도사방으로자유롭게가지를뻗고있다.키가작고굴곡이많은나뭇가지가목재로효용가치는떨어지겠지만나무에게는더행복한모습처럼보인다.하늘을향해팔을뻗은덕유산의겨울나무들은굴곡있는모양새가꽃보다더아름답다.
가지가지마다얼음꽃이매달려바람에흔들릴때면이길을걷는사람들은크리스털부딪히는청아한소리를들을수있다는데….눈도매서운바람도소식없는푸근한겨울날이빠르게저물고있었다.넘어야할마지막고비인무룡산정상을오르는길이가장가팔랐다.겨우점심한끼를덜어내고1박2일분의짐이고스란히남은배낭은여전히묵직하다.무룡산너머헬기장에서부터내려가는길에는나무계단이길게이어진다.
계단이라기보다는토사유출을막기위해나무판을가로질러놓았다는표현이정확하다.길옆으로흙을덮은가마니들도터져버린것이많다.육십령부터장수덕유산∼월성재∼삿갓봉∼무룡산∼동엽령∼송계삼거리까지백두대간이지나는덕유산등줄기는길이뚜렷한만큼발길에무너진상처도많다.길옆으로누운풀들위로는바람의흔적도거칠다.무룡산산정을향해치고올라오는바람의길을따라한쪽으로만머리채를눕힌풀들을보며어서녹녹해진몸을누이고싶은마음이걸음을재촉한다.
산은한번에다보여주질않아?
◇덕유산의일출.수많은산줄기넘어솟은가야산,그옆으로동이터온다.<사진제공허의준>
◇덕유산고사목과산자락을뒤덮은운해.<사진제공허의준>
무룡산과삿갓봉사이의삿갓재대피소는육십령으로오가는백두대간종주자들이많이찾는다.곤돌라를타고올라와힘이남아도는사람들이밤늦도록술과마주하며잠들지못하는향적봉대피소와는사뭇다른분위기다.외진산길에버려진쓰레기를반가운친구만나듯하나하나주워들며묵묵히앞서걸어가던일행의막내김진성씨는배낭을내려놓기무섭게곯아떨어졌다.“덕유산에와서눈을못봐서섭섭했겠네요.…산이그렇게한번에모든걸다보여주지않아요.”
덕유산종주가처음이라는말에대피소직원은무심하게말을던진다.새벽녘바람소리에잠을깼다.대피소이층침상위에서침낭밖으로고개를내밀어보니창밖이심상치않다.어둠속을뒤흔드는황소바람에어깨를움츠리며동이틀때까지선잠을잤다.밤새바람이울부짖으며한일은경이로웠다.운무에휩싸여한치앞도보이지않던삿갓봉품속으로들어가니상고대가활짝핀별천지가열렸다.겨울나무를뒤흔든세찬골바람의흔적이아로새겨진서릿발그대로눈부신꽃이되었다.
길위에는바람을이기지못하고조각조각떨어져내린상고대가떡시루에소복하게얹은쌀가루처럼탐스러웠다.고개를들면눈꽃이핀나뭇가지사이로파란하늘이열리고닫히기를반복한다.산기슭에서부터바람을타고올라온수증기가겨울나무들사이를훑으며순식간에안개에서구름으로탈바꿈했다.바람은겨울나무언가지위에꽃을피우고산정에올라부지런히하늘을여닫는수문장노릇을하고있다.삿갓봉정상까지제법가파른눈길을치고올라가는데도힘에부치는줄몰랐다.
전날산행으로몸이풀린탓도있겠지만희디흰눈꽃터널사이로부서질듯시리고파란하늘을바라보며통각도마비가된것같다.삿갓봉에올라보니덕유산주능선의서쪽사면만하얗게눈꽃이피었고,해가드는동쪽은앙상한겨울나무들이햇살을그대로통과시켜산의속살까지붉게드러내고있었다.뒤로는멀리향적봉부터덕유평전을지나무룡산까지지나온길들이아스라히멀고눈앞에는새로운길들이움틀거린다.삿갓봉부터남덕유산까지는산허리를가로질러오르내리는길들이이어지는데마치요지경속을걷는듯하다.
산을오른쪽으로돌때는꽁꽁얼어버린눈길위를걷다가고개하나를너머왼쪽으로산을돌때는금세봄기운이완연한풋풋한흙길을만난다.“숲이나길,혹은오솔길에몸을맡기고걷는다고해서무질서한세상이지워주는늘어만가는의무들을면제받는것은아니지만그덕분에숨을가다듬고전신의감각들을예리하게갈고호기심을새로이할수있는기회를얻게된다.걷는다는것은대개자신을한곳에집중하기위하여에돌아가는것을뜻한다.”-다비드르브르통의<걷기예찬>중에서.
겨울산에서걷는일은예민하게온몸의감각을곤두세우고한걸음씩신중하게내딛어야한다.눈과얼음의길위에서미끄러지지않으려면별수없다.스틱으로먼저앞을지지하고나서야겨우발을뗀다.한걸음내딛기전에우선의심하고디딜때는확신을담아힘껏체중을실어주어야한다.순간순간회의와안도가교차하면서앞으로나아가는것이다.아이젠을차지않은문상균씨의걸음이가장진지해보인다.발끝으로바닥의눈과얼음을잘읽어야만미끄러지지않는다.그런진지한걸음은앞으로나아가는만큼결국자기안에숨겨진세계로되돌아오게만든다.길고긴덕유산겨울종주의미덕이거기있다.
겨울나무와바람의애끓는사랑
월성재에서부터마지막준령을넘어설즈음,해는마지막목적지인남덕유의산정위로올라서고그새상고대는흔적을감추었다.자정너머부터산기슭을치고올라온강한바람이나뭇가지위에잠시얼어붙었다흔적도없이떠난것이다.해가머리위로올라서기전까지짧은순간동안불을지르듯확피었다가기약도없이사라지고마는‘겨울나무와바람의애끓는사랑’이라고할까.어차피가둘수없는것이사랑이라고가르치려는것인지.
상고대도사라지고눈부신풍경속에취한듯걸어오던두다리에‘약발’이다떨어질무렵,괴력의사나이들이무서운기세로뒤를따르고있었다.취재진이이틀동안걸어온길을한나절에주파하고남덕유산에서늦은점심요기를할요량으로걸음을재촉하는이들은,한국산악회부산개인택시기사연합회원들이라고했다.새벽여섯시에향적봉을출발해어둠속에서길을잘못들어30분을허비했다는데도남덕유를넘기전우리를앞질렀다.물만난고기들마냥팔딱이는걸음걸음이놀라웠다.
향적봉에서남덕유산까지의길은외길이다.그렇지만산은어떻게걸어왔느냐에따라수많은갈래의다른길들을낳고있다.하물며같은시간에그길을함께걸은일행들끼리도저마다다른산길을넘었을것이다.오래걷는다는것은몸은길위에있어도정신은저마다다른세계로파고드는것아닌지.덕유산너른품에서길은끝없이앞으로나아가지만사람은자꾸만자기안으로에돌아가고있었다.
◇덕유산의꽃상고대는겨울나무와강한바람의애끓는사랑의열매다.
덕유산의너른품같은사람향적봉대피소관리인박봉진씨
향적봉대피소를운영하고있는박봉진(46세)씨는1978년도부터남원산악회에서산악활동을시작한그는1997년부터구천동에들어와살다가2000년1월아예향적봉에둥지를틀고덕유산의사람이되었다.덕유산에서조난자가생기면구조대보다으레산에사는그가먼저달려간다.산에서살면서산을닮아가는탓일까.박봉진씨는덕유산너른품처럼진중한사람이다.그는사진가들의요람인향적봉대피소에서생활하면서자연스럽게카메라를손에들었다.남부끄럽다며어렵게사진들을내보였다.
이번에소개된<100명산갤러리>는세련된기교보다는산에깃들여사는사람의따뜻한시선이느껴지는순박한사진들이다.그는단지사진만찍기위해향적봉을오르는사람들과는다르다.“야생화를뽑아다원하는그림을만들어놓고사진을찍는사람들도많이봤습니다.작품욕심만앞섰지산은안중에도없는사람들보며사실사진찍는일에많이실망하기도했습니다.”박봉진씨는그런인위적인사진욕심보다는산욕심이더많은사람이다.올8월중순에는남원의후배산악인들과칸텡그리원정을떠날기대에벌써부터가슴이설렌다.
덕유산산길과거창의문화유산가이드
덕유산의주릉은남쪽육십령에서북쪽소사고개까지35.9㎞,덕유산최고봉인향적봉은주릉에서1.6㎞떨어져있다.계곡은북쪽구천동이예로부터유명하고,서쪽칠연계곡(안성계곡)은고요하다.남쪽거창지역은월성계곡과위천물가에수승대와갈천임훈의유적이흩뿌려져있다.산행을할경우향적봉대피소에서1박하는것을적극권한다.가야산을정점으로펼쳐지는일출이장관이기때문이다.한편1997년무주리조트가향적봉에서15분거리인설천봉까지곤돌라를설치했다.산꾼들은되도록자체하고,노인과아이들이이용하면좋겠다.
주릉종주
북쪽정상향적봉에서중봉~백암봉(송계삼거리)~동엽령~무룡산~삿갓봉~월성재~봉황산(남덕유산)까지길이만20km가넘는덕유산종주는지리산,설악산과더불어대표적인종주코스로사랑받는곳이다.이가운데봉황산~송계삼거리구간은백두대간종주길로이어진다.능선을따라뚜렷하게길이이어져있어초행이어도큰어려움이없다.다만체력에따른적절한시간안배로종주계획을짜는것이중요하다.
향적봉에서부터남서쪽으로길게이어지는덕유산줄기를종주하는길은북쪽에서남쪽으로향하는것이수월하다.특히봉황산~영각사구간이가파르고지루한철계단이이어져웬만한건각들도고되기때문이다.향적봉까지오르는것은삼공리매표소에서백련사나오수자굴을거쳐오르거나무주리조트에서설천봉까지곤돌라를타고오를수있다.향적봉대피소와삿갓재대피소를이용해2박3일의종주일정을짠다면여유있게산행할수있다.
봉황산(남덕유산)
경남의산꾼들은황점에서삿갓재또는월성재로올라봉황산을경유하여영각사로내려오는코스를애용한다.황점∼삿갓재는황점매표소에서마을길로올라가야하고,황점∼월성재는매표소에서남령재방향으로도로를따라100m가다가이정표를따라오른쪽계곡으로들어간다.산행시간은삿갓재가1시간30분,월성재는2시간잡는다.
칠연계곡(안성계곡)
덕유산서쪽의대표적인계곡으로향적봉으로오르내리는코스로이용되고있다.용추폭포는칠연계곡매표소전에있고,매표소를지나자마자왼쪽계곡을건너면칠연의총합동묘가있다.계곡은소나무와계류가어울려그윽하다.1.2㎞가면길이갈리는데,왼쪽구름다리를건너2시간오르면주릉삼거리에붙는다.갈림길에서직진하여300m가면칠연폭포가쏟아진다.폭포는연달아7개의담과폭포가장쾌하다.계곡산행을즐기는산꾼들은향적봉을정점에놓고,구천동과칠연계곡을연결시킨다.
-글김선미기자/사진남영호기자/협찬도이터코리아/월간마운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