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8경 [7] 수원 화성 (2) *-

한국8경[7]수원화성(2)

‘화성행궁(華城行宮)’은조선행궁건축의백미(白眉)!

*화성행궁(華城行宮)의개요

화성(華城)은실학자로불리우는유형원과정약용의성설을설계의기본지침으로삼아,영의정체제공이성역을주관하고수원유수조심태등이전력하여이룩한것으로우리나라성곽중에서는가장과학적으로구조물을치밀하게배치하면서도우아하고장엄한면모를갖춘것이다.특히성곽의축조에석재와전을병용한것,그리고화살과창검을방어하는구조뿐만아니라총포를방어하는근대적성곽구조를갖추고있다는점,또한용재를규격화하고거중기등의기계장치를활용한점등에서우리나라성곽사상가장특기할일이다.

화성축성공사에는모두22직종1,840명의장인들이동원되었으며,석재는화성북쪽의숙지산에서떠온돌을사용하고,기와와벽돌은성역소에서직접가마를마련해구워냈다.기둥이나대들보에쓰이는큰목재는충남안면도와강원도의산중에서금강송을가져다사용을하였다.또한정약용이고안한유형거와거중기등을비롯한장비를이용하므로자재운반등이용이하고수월해져서일의능률을높여공사기간을단축시키고공사비를절감할수가있었다.

화성은지형에의하면평지와산에걸쳐쌓은’평산성’의독특한형태를지닌포곡식산성으로,성벽을쌓는재료를한국에서가장널리축조되는풍부하고질좋은화강암의석성에벽돌을대대적으로활용하는’전축성’을혼용한것이특징인데,방어시설은주로벽돌을사용하고,성벽자체는모두돌로축조하였다.화성은우리나라에서가장최근에축조한성으로규모와시설을보면성곽에는동서남북으로관문을두었으며,각문의사이에는적정을관찰할수있는공심돈을만들었고,장대2곳을설치하여군사를훈련시켰다.

통신시설인봉돈을비롯하여각5개씩의포루(鋪樓)와포루(砲樓),2개의노대(弩臺),4개의각루(角樓),성안을흐르는수원천에2곳의수문등이축조되어우리나라에서가장과학적인설계아래세워진성이다.현재사적제3호로지정되어있으며,1997년12월유네스코가지정하는세계문화유산에등록되었다.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등록배경』

세계문화유산등록기준중두번째기준인’한시대나하나의문화권을통해건축,기념물,문화환경부문에서지대한영행력을행사한것’과세번째기준인’소멸된문명이나문화전통에대해독특하거나지극히희귀한사례,적어도예외적인증명이되는것’에근거하여등재가되었다.특히동서양을망라하여고도로발달된과학적특징을고루갖춘근대초기건축물의뛰어난모범이며,18세기군사건축물을대표하여유럽과극동아시아성제(城制)의특징을통합한독특한역사적중요성을지니고있다고한다.

『화성의특징과우수성』

*화성의규모는성의둘레5.7km(미복원구간포함),면적은130㏊로동쪽지형은낮은구릉을이루고서쪽은팔달산에걸쳐있는평산성의형태로51개의시설물로성곽을이루고있으나이중수해와전란으로7개의시설물이소멸되고약40개소의시설물이현존하고있다.이중23개소에는예술적가치가높은한국고유의누각을설치하였다.

*화성의축성동기는군사적목적보다강력한왕권을구축하려는정조의정치적측면,농업기술의발전으로생산력이증대되어상업이활기를띠자서울과지방간에유통이활발해져삼남의교통중심지인수원을경제도시로만들기위한신도시건설이라는경제적인측면과부모에대한효심에의해이루어졌다.그리고도시기반시설인문,도로,다리,상가등을설치하고생산기반시설인저수지와둔전을경영함으로써계획된신도시로건설되었다.중국,일본등과는달리평지와산지에걸쳐축조된독특한형태의포곡식산성으로군사적방어기능과정치,상업적기능을함께보유하고있다.

*18세기동양의성곽을대표하는한국전통건축의완성품으로축성의계획,제도,법식뿐아니라,인력의인적사항,재료의출처및용도,공사일지등이’화성성역의궤’에완벽한기록으로남아있어건축사적가치를지니고있다.

*화성만의독특한시설인’공심돈”현안’등이설치됨은물론성곽시설의기능이가장과학적이고합리적이며실용적인구조로되어동양성곽의백미라할수있으며,18세기실학의결정체라할수있다.50개가넘는시설물이저마다의고유한아름다움을지니고있어성곽전체를하나의예술적작품으로보이게하며,화홍문의수문은기능과7칸의수문위에축조된문루가하나의예술품으로조화를이루어방화수류정과한폭의그림을연상케한다.

화성행궁(華城行宮)

-화성행궁의전경-

화성행궁은조선후기정치와군사,사회문화의변화를살필수있는중요한유산이며,발굴조사및복원정비사업을통해조선시대행궁의모습을재현할수있게된중요한문화유적으로역사적,학술적가치가크다.또한정조시대실학정신을바탕으로위민과개혁을실천하고자한역사적공간이자혜경궁홍씨의회갑진찬연을베풀었던효의상징적인공간이며세계문화유산인화성의중심축이다.

*사적제478호(2007년6월8일지정)

*면적:37,268㎡

*소재지:경기도수원시팔달구남창동6-2번지외

*화성행궁의구조

팔달산정상의서장대아래의산기슭을중심으로경사지가펼쳐지고,시가지가시작되는곳의평지에위치해있다.양쪽으로긴형태의장방형구조로정문인신풍루양쪽으로남군영과북군영이있으며,신풍루를들어서면넓은마당이있는데왼쪽으로는서리청과비장청,오른쪽에는집사청이위치해있다.서리청과비장청,집사청을좌우로지나마당을가로지르면좌익문이있고,이를통과하면중양문이나온다.중양문을지나면화성행궁의정전인봉수당이나타난다.화성행궁과별도로떨어져있는화령전은정조의어진을모시고있다.

화성행궁돌기

매표소→신풍루→남군영→서리청→비장청→외정리소→유여택→복내당→장락당→경룡관/봉수당→득중정→낙남헌→화령전(전사청→제정→남측협문→운한각+복도각+이안청→북측협문→풍화당→동측협문→외삼문→내삼문→남측협문)→노래당→중양문→좌익문→집사청→북군영→신풍루/원점회귀

▲수원화성안내도

탐방기

*탐방일자/2010년8월27일(야간)&2011년2월15일(주간)

*소요시간/각1시간씩/총2시간소요

2010년8월27일(금)야간에한차례화성행궁을찾았었고,10월2일(토)비가내리는날화성성곽돌기를하기위헤두번째로화성을찾았었다.화성돌기를한두번째방문때화성행궁을다시찾을계획이었으나,비가내리는바람에탐방을보류하게되어이번에수원에행사가있어,참석후짜투리시간을내어장안문과화서문사이의외부성벽들을살펴보고화성행궁탐방을위해세번째로재방문을하게되었다.

낙남헌을제외한모든화성행궁내의건물들이일제강점기때일제의민족문화및역사말살정책으로인하여사라져버려,당시의자료들을토대로원형대로새롭게복원되어2003년공개된건물들이지만옛모습을보는듯하였으며,우리나라문화이미지를세계인의마음속에널리알린MBC드라마’대장금’과영화’왕의남자’등의촬영지이다.화성행궁에서한류열풍의본향을느끼기에손색이없는곳이었다.

또한야간에탐방했을때와는달리주간에비쳐진화성행궁의모습들이또다른모습으로다가와색다른체험을경험하게하였다.본탐방기에서는탐방순서에따라간략하게각건물들을소개하고,주야두차례탐방때촬영한사진들을함께게재를하기로한다.화성행궁소개에앞서지난해10월화성성곽돌기를할때성곽위를따라진행을한관계로성벽외부의모습을제대로관찰하지못하다.

이번에장안문과화서문사이의북서적대(北西敵台),북서포루(北西砲樓),북포루(北鋪樓)그리고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을성밖에서관찰하고,외부모습을공개를한다.화성에시설된4대관문,그리고각5개의포루(砲樓)와포루(鋪樓),4개의적대(敵台),3개의공심돈(空心墩)의외부모습을이해하는데도움이되리라생각이되어소개를간략하게곁들이기로한다.

◎화성(華城)장안문(長安門)과화서문(華西門)

♧관문(關門)

장안문,팔달문,화서문,청룡문등4개성문이있으며,그중서울을향한장안문(북문,우리나라에서가장큰성문이다.한국전쟁당시훼손된것을1975년에복원))과그반대방향의팔달문(보물제402호,남문,돌로쌓은무지개문위에목조의2층문루를축조하였으며,전면에는반월형의옹성을쌓았다)이대표적인성문이다.

▲장안문

♧적대(敵台)

성문과옹성을보호하기위한것으로,그구조와기능은치(雉,성곽의요소에성벽밖으로돌출시켜,좌우방향에서접근하는적병을방어하기위한시설물)와거의같으며화성성곽내에는장안문과팔달문의좌우에각기북동,북서,남동,남서적대라고불리는4개소가있다.

팔달문좌우의적대는시가지화와더불어사라졌다.

♧포루(砲樓)

아랫부분을3~6단의화강석돌을쌓고그윗부분에벽돌을쌓았으며,맨위는목조건물을설치하였다.화성성곽에는동포루,동포루,북서포루,서포루,남포루등5개소에포루를설치하였는데,윗부분에는양쪽에3문씩6문의대포를설치하여성벽을향해기어오르는적을공격하게하였다.다만화성에서는단한차례도전투가벌어지지않아실제사용되지는않았다.

♧포루(鋪樓)

일명각건대라불리며,동북포루,북포루,서포루,동일포루,동이포루등5개소가있다.동북포루,북포루,서포루는군사들의몸을보호할수있는두꺼운판문이있는데,동일포루와동이포루는판문이설치되어있지않다.

▲서북공심돈과북포루,그리고화성의외부성벽모습

♧공심돈(空心墩)

서북공심돈은화서문옆에위치하고있으며옛모습그대로이다.

내부는3층으로꾸며2층과3층부분은마루를깔았고,사다리를놓아위아래로통하도록하였다.군사들이이안에들어가서작은구멍으로백자총,큰구멍으로는불랑기포를쏘게하였다.

▲서북공심돈과화서문

◎화성행궁의시설물들

-화성행궁과성곽축조에이용된유형거와거중기의조형물-

♧화성행궁의정문인신풍루앞보호수들

*고유번호:경기-수원-14(좌측),경기-수원-6(우측)

*지정일:1982년10월15일

*수종:느티나무

*수령:약350년

화성행궁앞느티나무는궁궐의조경제도에의해品자형태로심어진것이다.영의정을비롯하여삼정승이이나무아래에서어진사람을맞이하여올바른정치를베푼다는의미를담고있다.

♧신풍루(新風樓)

▲화성행궁의정문인신풍루(사진上)

신풍루의야경/전면(사진下)

신풍루는화성행궁의정문이다.정조14년(1790)에세워졌는데처음이름은진남루(鎭南樓)였다.그후정조의명으로신풍루로변경되었다.1795년에정조가행차했을때신풍루앞에서정조가친히화성부의성민들에게쌀을나누어주는행사를벌리기도하였다.

♧남군영(南軍營)

화성성역의궤’에는공해(관아)건물로분류해놓았다.장용외영의친군위(화성의기병)는처음좌,우열로각100명씩입직숙위하는곳이남,북군영이다.정조13년(1789)군영24칸을지은데다가정조18년(1794)좌우익랑21칸을증축하여모두62칸의규모를갖추었다.

신풍루를바라보는쪽에서보면좌측에위치하고있으며,현재의건물은2002년7월에복원된것이다.

♧서리청(書吏廳)

신풍루를들어서면좌익문앞마당이나타나고,앞마당에서좌측/남쪽에비장청,서리청,남군영등3개의건물이나란히자리를잡고있는데중간에위치한건물이서리청으로서리들이사용하던곳이다.서리는문서의기록및수령,발급을담당하던아전이다.비장청앞에자리하며남향건물이다.예전의금도청건물을증측하여사용하였으며,현재의건물은2002년7월에복원된것이다.

♧비장청(裨將廳)

조선시대감사,유수,병사,수사등을따라다니는관원(막료)을비장이라고하는데,비장청은화성유수부의비장들이사용하던건물로외정리소앞에있는남향건물이다.

이건물은1789년에처음세워졌는데,1796년에서리청건물을수리하고비장청으로변경하여사용하였다.현재의건물은2002년7월에복원한것이다.

♧외정리소(外整理所)

‘외정리아문’이란현판

정리소는1795년정조의을묘원행때각종행사를준비하기위해1794년12월에설치된임시기관이었는데,화성성역이끝난후외정리소라명명하여정조를비롯한역대임금들이행차할때화성행궁에서행사를준비하고담당하는관청이되었다.처음의정리소는장용내영조방(소속관원들이조회하는건물)에설치하였는데1796년화성행궁이완성되면서유여택앞현위치에외정리소를세우고외정리아문(外整理衙門)이란편액을달았다.현재의건물은1998년12월옛모습대로복원된것이다.

♧유여택(維與宅)

▲유여택전경

평상시에는화성유수가거처하는곳으로쓰이다가,임금이행차하게되면잠시머무르며신하를접견하는곳으로이용되던건물이다.정조19년(1795)행차때,정조는이건물에서각종행사에대한보고를받고하교를내렸다.복내당동쪽행각과외정리소사이에있으며,이건물은원래정조14년(1790)에건립하고’은약헌(隱若軒)’이라하였다가,정조22년(1796)증축하면서유여택으로이름을바꾸었다.현재의건물은1998년12월복원된것이다.

♧복내당(福內堂)

▲복내당전경

행궁의내당으로정조13년(1789)에건립되었으며,1994년에증축되었다.

장락당남쪽에위치하며,평소에는화성유수의가족들이거처하던곳이다.이곳의현판은정조가직접썼다는기록이있으나,현판은남아있지않으며,현재의건물은1997년에복원되었다.

♧장락당(長樂堂)과경룡관(景龍館)

*장락당(長樂堂)

▲장락당전경(사진上)장락당의야경/전면(사진下)

정조의어머니혜경궁홍씨의회갑연과순조에게왕위를물려주고어머니를모시고수원에서머물때를위해정조18년(1794)화선축조시새로지은건물이다.이건물은봉수당의남쪽에동향으로자리를잡고있으며,장락당과봉수당의두건물을서로통하게만들었는데,이는조선시대다른건물에서찾아보기어려운독특한구조이며,정조19년(1795)을묘원행때에는혜경궁홍씨가이곳에머물렀다.이건물은일제강점기때파괴되었다가1997년에복원되었다.

*경룡관(景龍館)

▲경룡관전경(사진上)경룡관의야경/전면(사진下)

장락당의바깥문으로사용했던부속건물이다.

정조18년(1794)에세워졌으며,2층구조로2층은누마루로만들고,1층을문을만들어지락문(至樂門)이라이름붙였다.

♧봉수당(奉壽堂)과중양문(中陽門)

*봉수당(奉壽堂)

▲봉수당전면전경(사진上,中左)

▲봉수당야경

화성행궁에서가장중요한건물인정전이다.평상시에는수원유수부(한양을방위하는거점도시,현재의광역시규모)의동헌건물로서현재의도지사급에해당하는유수가집무를하던곳이다.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하였다.정조13년(1789)9월25일완공되었으며,정조18년(1794)에지금의규모롤증축되었으나일제강점기때파괴되었다가1997년에복원하였다.정조가수원행차시머물렀던곳이다.

▲봉수당내부전경

▲봉수당앞에서바라본앞마당의어도와봉수당의정문인중양문후면모습

*중양문(中陽門)

행궁의정전인봉수당앞에있는문으로1790년에완성되었고,가운데의정문과좌,우협문이있으며그옆으로는각각행각을두었다.

▲봉수당뒷편의화성행궁서쪽담장(사진上)

♧덕중정(得中亭)

▲득중정야경

활을쏘는정자(사정,射亭)이다.1790년정조가새로만들어진정자에서활을4발쏘아모두맞춘기념으로낙남헌자리에지었다가,정조18년(1794)에현재의자리에옮겨짓고옛이름그대로정조가쓴편액을달았다.북쪽방향으로노래당(老來堂)과이어져있으며,계단앞에는네모난벽돌을깔아어사대를두었다.현재의건물은1998년에복원된것이다.

▲화령정입구에서바라본낙남헌과득중정일대전경

♧낙남헌(洛南軒)

▲낙남헌측면(사진上)과낙남헌야경(사진下)

각종행사를진행할수있도록공간을알맞게배치한행사용건물이다.원래이자리에있었던득중정을노래당옆으로옮겨짓고그터를넓혀서정조18년(1794)에완공하였다.화성행궁부속건물중에서파괴되지않고본래의모습을그대로간직한유일한건물이다.경기도기념물제65호로1972년지정되었다.

▲노래당

♧좌익문(左翊門)

▲좌익문전경(사진上)좌익문야경(사진下)

신풍루를통과하여마당을지나면나오는문으로중양문앞에위치해있다.1790년에지어졌으며남쪽끝은외정리소와연결되어있다.

♧집사청(執事廳)과집사청앞느티나무

*집사청(執事廳)

국왕이사용하는문방사우를보관하고,비품을관리하는등과같이잡다한사무를보던집사들이사용하던건물이다.좌익문밖동북담안에정조13년(1789)에세웠는데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완전히파괴되었다.현재의건물은2002년7월에옛모습대로복원된것이다.

*집사청앞느티나무

화성행궁의느티나무는600년이상된노거수로화성성역이전부터수원을지키온신성스런나무이다.영목(營木),신묵(神木),규목(槻木)이라고불려왔으며,옛부터잎이나가지를꺾으면목신의노여움을사어려움이닥친다고하였다.또이느티나무에손을대고기도하면모든일이이루어진다는전설이서려있다.높이30m,둘레6m에이르며,1982년경기도보호수(지정번호:5-3)으로지정되었다.그러나뜻하지않은화재로인해훼손되어수원시는2003년5월에대대적인나무살리기작업을하였으며현재의위용을보여주고있다.

♧북군영(北軍營)

집사청과나란히배치되어있으며,남군영과마찬가지로친군위의기마병이숙위하는건물이다.건물의규모는남군영과동일하며1789년지어졌고,1974년에좌우익랑21칸이증축되어모두62칸의규모를갖추었다.2002년7월에현재의건물이복원되었다.

-출처/왕마구리의산행http://blog.daum.net/cheonym/16506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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