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숲 변천사 [2] *-

일제강점기의수탈과6·25전쟁으로피폐해진국토

20세기에들어서도산림황폐는개선될기미가없었다.그당시까지그나마온전하게남아있던장강(압록강과두만강)유역의산림은자원수탈에혈안이었던열강의각축장이었다.장강지역의산림자원은청일전쟁의패배로청나라의힘이약해진틈을이용해러시아가눈독을들였고,마침내대한제국과러시아사이에한-러산림조약의체결(1896년)로산림이용권은러시아로넘어갔다.그러나러시아의남하정책도잠시,장강유역의산림은러일전쟁의승리로체결된한일삼림협동약관(1906년)에따라일본의수중으로다시넘어갔고,종국에는한반도의모든산림이일제식민지경영을위한재원으로수탈되기에이른다.

▲일제강점기에압록강유역의산림벌채와뗏목으로벌채목의운반모습.
일제강점기의산림정책은이땅의산림대부분이헐벗었기에국유화해녹화시켜야한다는논리를내세웠다.그러나그러한논리는우매한민중을기만하고소유가불분명하던임야를탈취하기위한수단이었을뿐,어디까지나사실이아니었다.인구집중이일어났던중남부지방의큰강유역은비록헐벗었지만,정착민이많지않던장강유역과개마고원일대는청나라태종의변경이용금지정책으로그때까지ha당200㎥의울창한원생림이5억㎥나남아있었기때문이다.

20세기초한반도의산림총축적은7억㎥이상이었으나광복직전에는약2억㎥만남아전체약5억㎥가일제의한반도강점기간동안약탈되었다고추정하고있다.이렇게약탈된산림자원은지하자원과함께일제의식민지경영에필요한재원으로충당되었음은물론이다.

우리숲의슬픈파괴역사는이것만으로끝나지않았다.명맥이나마겨우유지되고있던이땅의숲은6·25전쟁으로또다시고사직전으로내몰렸다.일제의식민지수탈로취약해질대로취약한우리산림은군사작전에필요한소각이나군수용품에필요한목재의벌채로다시한번결딴이났다.

또한설상가상으로군대가주둔한주변의산림은군의후생사업의재원으로활용되었기에무절제하게벌채되었으며,이러한남벌은전쟁의직접적피해보다오히려더극심한피해를우리숲에입혔다.특히피란민을위한판잣집의증대는판자의수요증대를가져와가격상승을초래했고,이에필요한목재를공급하기위해일제수탈의마수를용케피했던안면도,조령,괴산,오대산,지리산등의울창한산림이민·군에의해무차별적으로남벌되었다.

전후복구기도예외는아니었다.임업정책은좀처럼제자리를찾지못하고방황은지속되었다.일제의수탈적산림이용전통은지속되었고,또부족한기술인력은산림황폐를더욱심화시키는데일조했다.그단적인예로1948년부터1957년까지10년동안1만8,000여ha의숲을새롭게만들었지만벌채면적은매년1만2,000ha에달했고,설상가상으로사방사업이필요한임지면적은68만ha에달했던산림훼손현실에서도찾을수있다.이런산림훼손은1973년부터조직적이고지속적인산림복구사업을시작함으로써마침내멈추게되었다.

세계적산림복구모델-“애국가를부르며산으로가자”

우리역사를되돌아볼때,본격적으로숲을복구한시기는1973년부터1997년까지30여년뿐이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일시적인산림복구사업이조선시대나일제강점기는물론이고1960년대에도있었지만전국토를대상으로지속적이고효과적으로시행했던녹화사업은1970년대산업화와발맞추어함께추진한1,2차치산녹화사업이라고할수있다.

녹화사업은산림법제정(1961년)과산림청발족(1967년)같은산림정책추진체제의사전구축과함께산림녹화에대한범정부적노력과범국민적참여분위기의확산으로1973년부터시작되었다.그래서흔히학계에서는1973년을한국임정사상역사적전환점으로기억하고있다.

1차치산녹화사업(1973-1978)의목표는국민참여,유실수조림으로농촌소득증대,속성수조림에의한국토재건이었다.국민적참여는산림청을내무부에두는한편국민식수기간(3월21일~4월20일)과육림의날(11월의첫일요일)을새롭게지정해그목적을효과적으로달성할수있었다.또한유실수와속성수의조림비율을3대7로계획해연료문제를해결하는한편농촌의소득증대에필요한새마을운동의지원책으로도국토녹화사업은활용되었다.

▲11970년대의산림.21980년대의산림.31990년대의산림.
아쉽게도1차치산녹화사업은임업으로서의발전요소는포함하고있었으나미완의성공으로마감되었다.미완의성공으로끝날수밖에없었던이유는비록4년이나앞당겨1차치산녹화사업을완료해108만ha의황폐지를녹화했지만지나치게실적을중시했기에적지적수(適地適樹)를충분히고려하지않았고,조림지에대한사후정리가철저하지못해많은조림목들을고사시켰던데서찾을수있다.

2차치산녹화사업(1979-1988)은1차치산녹화사업에나타난문제점을보완하는한편경제림단지를조성하는것에목표를두었다.1차치산녹화사업의문제점은‘절대녹화’라는표어처럼국토녹화를최우선과제로삼았기때문에조성된산림의질적상태나장래의경제성을충분히고려하지못했다.그래서2차사업에서는21개수종을경제수종으로선정해경제림조성에박차를가했고,이런사업은3차산지자원화사업(1988-1997)의밑거름이되었다.1차및2차치산녹화사업(1979-1988)으로완료한212만8,000ha의인공조림,20만8,000ha의연료림조성,12만ha의산지해안사방사업은세계문화사에큰족적을남긴한민족의쾌거라고할수있다.

지난수백년동안지속된산림황폐의질곡으로부터탈피해숲을복구할수있었던원동력은과연무엇일까?많은이들은경제성장에따른연탄의개발과보급덕분이라고그공을대체연료에돌리기도한다.도시나농촌구분할것없이땔감을장작으로해결했던지난세월을생각하면과히틀린답이아니다.

그러나그무엇보다국토를성공적으로녹화할수있었던원동력은바로박정희대통령의국토녹화에대한강인한신념에서유래되었다는것을기억할필요가있다.특히박대통령에의해서시작된새마을운동은자조자립정신을계발하고,마을지도자를중심으로마을공동체의식을함양할수있었고,이런정신은마침내산림녹화에국민적호응을끌어모아종국에는모든구성원이녹화사업에적극적으로참여할수있는원동력으로작용했음은물론이다.물론산업화로늘어난도시민의소득은나무땔감대신에연탄이나석유같은화석연료를선호하게만들었던점을고려하면,1960~1970년대사회경제적여건변화도녹화한숲을온전하게지키는데일조했음은부인할수없는사실이다.

▲조림왕임종국독림가가조성한장성의편백숲.
앞선세대가쏟은각고의노력덕분에우리산림은다양한가능성을지닌생명자원으로되살아났다.우리나라는세계평균산림률(30%)의2배가넘는국토의64%가산림으로구성되어있으며,이러한높은산림률은OECD국가중에4번째이다.산림의울창한정도를나타내는단위면적당임목축적량은일본(171㎥/ha)이나독일(320㎥)에는미치지못하나OECD의평균(104㎥)보다는조금더많은(109㎥/㏊)형편이다.비록일본이나독일의임목축적량에는미치지못할지라도1910년(43㎥/ha,남북한),1943년(13㎥/ha,남북한),1948년(9㎥/ha),1952년(6㎥/ha),1961년(11㎥/ha),1972년(11㎥/ha),1978년(31㎥/ha),1987년(56㎥/ha),1998년(73㎥/ha),2010년(109㎥/ha)의늘어난축적량을살펴보면.이기간에수많은개발도상국들의산림이엄청나게사라진것에비추어볼때,우리숲의복구는분명세계적자랑거리다.

우리숲의축적이괄목할정도로늘어난덕분에2000년대초반에5%미만의목재자급률은2010년13.5%로늘어났고,울창한숲에조성된휴양림을찾는사람들도현재1,000만명에육박하고있다.알면사랑한다.우리숲이어느날갑자기하늘에서떨어진것이아니라앞선세대의땀과눈물로30여년에걸쳐복구된사실을기억하고,UN이정한‘산림의해’를맞아우리도내일의세대를위해앞선세대가만든숲을열심히가꾸고지킬책무가있음을다시한번상기하자.

-글·사진|전영우국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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